통융의 이야기

우상에 대한 이해

통융 2022. 12. 11. 21:58

 

우상 (偶像 =idol )은 명석한 사고를 가로막는 그릇된 정신 경향을 가리키는 뜻이다.

즉 우상은 형상에 있는 것이 아니라 진리를 알지못하는 어리석은 마음이 우상이다.

우상은 바른 앎을 모르고 각자 알음알이에 속아 맹목적인 믿음의 대상을 말합니다.

한 마디로 말해 무지의 소산이다.

어떤 대상물이나 진리들로 그것을 믿는 대상을 우상이라 합니다.

 

우상(偶像)을 우상(愚想)으로 해석함이 더 합리적입니다.
부처님도 형상이나 말을 따르는자가 외도라 했듯 외도가 우상이겠지요.
어리석은 생각으로 특정 대상(불상ㆍ십자가 등)이나 말(신ㆍ진리 등)을 쫒아  신력이나 권능이 있다고 믿는 대상이 우상(偶像)이고 그것을 믿는 마음이 우상(愚想)이라 봅니다.

 

늘 깨어서 있는 그대로 보고 듣고 알아차린다면
대상이나 말은 본래 그 자체로 이미 완전함(부처)인데  다만 어리석은 중생이 우상화 시킨 것이라고 봅니다.

 

부처가 진리이고 형상적 존재의 대상이 아니라 면서

왜 절에 가면 다양한 불상들로 가득 채워져 있습니까?
불자들이 많이 궁금한 질문 입니다ㆍ


불상은 부처님을 대표하는 상징물 입니다ㆍ
타 종교는 상징물을 십자가ㆍ예수상, 성모 마리아상, 언구,  경서혹은 자신들이 추중하는 인물이나 상징물 등으로 표현합니다ㆍ
그러한 상징물 들은 그 자체가 에너지를 가지고 특정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경애하고 숭배합니다.

원시인들이 공간(자연)공포를 극복하기 위해 토템적인 신앙이 만들어지고 신앙했던는 그 연장선이라고 봅니다.

 

나무, 돌, 흙, 종이 등으로 만들어진 물건이거나 자연이 만들어 놓은 것에 불과 합니다만.

각자의 믿음이라는 신념이 만든 상상의 존재로  그것들은 모두가 희망조건으로 만든 절대의 우상입니다.

만약 그것들이 그들이 믿고 숭배하는 것처럼 절대의 능력이나 권능이 있다면 절대 변화되지 않아야 되고 영원해야 합니다. 

하지만 세월이 지나면 그 모든 것은 변질되고 허물어지고 자연의 현상 그대로 변화됩니다.

 

왜 그러한 우상이 생기는 것일 까요?
대부분 사람들은 자신의 능력을 과소 평가하고 약하다고 생각하며 내 보다 더 큰 힘에게 귀의합니다ㆍ
실제 삶이 내 뜻대로 되지 않으니까 늘 불안하기 때문에 미래를 알 수없기 때문에 그렇겠지요ㆍ
그래서 '온리 유로' 오직 신앙의 대상인 우상에게 경배하고 메달리고 신에게 구원을 청합니다ㆍ

그것들이 어떤 힘이나 권능을 준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절대 그 자체에 어떠한 능력도 기적의 힘은 나오지 않습니다.

힘이나 권능 가피는 그렇게 맹목적으로 오직 한 마음으로 믿는 그 마음에서 스스로 만들어 내는 기적입니다.

자신의 간절한 힘에 의해서 나타난 작용에너지 입니다.

신의 가호는 밖에서 오는 것이 아닙니다ㆍ
내 스스로 간절함으로 인 해
내 안에서 신의 작용이 일어납니다ㆍ

그렇지만 내 안에 신이 있다고 믿지 않기 때문에 밖에서 온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전능한 능력이나 가피가 밖이 아닌 내 스스로의 의지로 내 안에서 만드는 것이라는 것을 예를 들어 확인 해 봅시다ㆍ
똑 같은 머리에 똑 갇은 조건으로 대학 입시생을 예로 들어 보겠습니다ㆍ
각각의 신앙과 종교를 믿는 아이들이 같이 경쟁을 합니다ㆍ
각자의 신에게 합격을 기원하고 열심히 기도를 하면서 공부를 소홀히 합니다ㆍ
왜냐면 신이 능력을 줄 것이라고 믿습니다ㆍ

그런데 어떤 신도 믿지 않는 아이는
자신을 믿기 때문에 열심히 공부 합니다ㆍ
신을 믿는 아이들이 기도하는 시간만큼 자신을 믿는 아이는 공부를 더 하겠지요ㆍ
결과는 특별한 변수가 없는한 분명 자신을 능력을 믿고 최선을 다하는 아이가 합격합니다ㆍ

 

 

영국의 경험주의 철학자 프랜시스 베이컨 Francis Bacon (1561-1626)

우상을 관찰이나 실험 없이 발견된 명제를 '우상'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또한, 편견이나 선입견 개인의 성향 등으로 올바른 지식습득을 방해하는 것이 우상( Idol)이라고 한다.

이러한 우상은 개인의 사고와 가치관을 편협되게 하고, 사회 대중과도 소통에 문제가 생기며 집단이기나 편집증 애고 이스트가 된다고 했다.

 

그는 네 가지로 나눠 설명하는데

 

1. 인종의 우상(Idol Tribus)

 

인간 중심 사상으로 자연의 모든 현상을 인간주의로 의인화하여 설명한다.

서양 종교가 대표적인 신본 사상이 인간 우월 중심의 이원론적 사고로 모든 자연은 인간을 위해서 신이 만든 피조물이라고 생각한다.

 

그림에서도 나타나듯이 서양화는 인물이 중심이 되며 자연이 배경으로 실, 상의 그림이다.

동양화는 자연 중심에 인물이 속해 있는 허, 공의 그림이다.

 

이렇듯 동양의 자연주의 사상이나 불교의 연기법의 일원론적 사고는 인간 또한 자연 일부로 생각한다.

모든 존재는 하나로 연결된 또 다른 나로 생각하여 동체대비 사상의 근원이다.

즉 나를 중심으로 우주가 있는 것은 이원론이고, 우주 속에 내가 있는 것은 일원론적 가치관의 차이다.

 

2. 동굴의 우상(Idols Specus)

 

개인의 주관성과 편견인 지식 알음알이로 "자신의 동굴에 갇혀서 제대로 볼 수 없는 현상"이라고 했다. 개인이 겪은 경험을 통해서 타인과 다른 오류를 범하는 경향이다.

모든 사람은 자신만의 동굴안에서 생활하기 때문에 서로 다른 동굴 즉, 주관적인 생각을 한다.

 

동일한 상황을 보고도 각자가 보고 이해하는 판단, 생각, 견해가 다르다.

결국, 자신만의 지식에 갇혀서 우물 안 개구리를 말한다. 넓은 안목과 지혜를 갖추기 위해서는 다양한 지식의 습득과 경험을 쌓고 상황을 객관화하여 바라볼 수 있는 안목을 키워야 한다.

 

특정 신이나 종교에 국한되어 그것만이 절대라는 편견을 버려야 한다. 무엇이 합리적이고 객관적인 진리인지를 깨달아야 하고 불교에서 말하는 오직 지금을 깨어있는, 알아차리는 바른 견해를 가져야 한다.

 

 

3. 시장(광장)의 우상(Idols Fori)

 

자신이 사는 환경이나 언어 소통 문제에서 비롯된다고 했다.

광장(시장)은 매매행위가 일어나고 흥정이 일어나며 사람이 넘치고 정보와 언어가 넘치는 장소이다.

 

이러한 광장(시장)에서 인간은 언어의 혼란에서 기인하는 말에 기만당하기 쉬운 경향이 있다고 얘기한다.

언어라는 것은 주관적인 관념에 불과하다.

대상을 소통하려는 방편의 수단에 불과한 것이지 그 언어 자체가 진실이 아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 언어에 속는다. 자신의 언어에 대한 지식의 습득으로 굳어진 관념이 객관성을 확보하지 못한다.

언어가 전달하고자 하는 진실은 언어 이전에 있다. 이러한 것을 화두라고 불교에서는 말한다.

 

말 이전에 소식을 알아차리는 것을 깨달음이라고 한다.

선불교에서 참 깨달음은 언어도단이고 불입문자라고 한다. 대상의 실제는 언어로도 문자로도 진실을 전할 수 없다는 말이다. 그래서 즉견여래 혹은 즉심시불이나 실지실견이라고 한다. 관념적인 언어를 넘어서 있는 그대로를 즉시 보고 알아차림 하는 단밖에 깨닫는 것을 말한다.

 

 

4. 극장우상( Idols Theatri)

 

종교 문화 사상 철학 등 전통과 권위를 맹목적으로 맹신하고 따르고 신뢰하는 것을 말한다.

잘못된 믿음으로 인해 다시 잘못된 이론과 결론이 도출된 경우다.

힘이나 권력 공포나 억압 등을 이용한 우상화. 대중의 유명함. 권위 등으로 비판 없이 받아들이는 맹신 등이 우상이 된다.

 

대표적인 것이 유일이라는 이름으로 맹신 시 하는 신앙이 얼마나 어리석은 우상인지를 깨달아야 한다. 종교와 신앙을 분명히 구분하여 보는 것 또한 무지에서 벗어나는 길이다.

 

모든 신을 추앙하는 신앙들은 합리나 객관성을 논하지 않는 절대성을 갖는다.

무조건 믿음을 강요하고 대상에 대한 절대성을 감히 인간의 힘이나 능력으로는 범할 수 없는 영역이라고 안다.

 

하지만 종교는 그렇지 않다.

종교는 진리를 직접 체험하고 깨달아 스스로 진리에 부합하는 삶을 사는 것이 불교 유교 도교 등이 종교이다.

 

대표적인 것이 불교이다.

불교는 절대 진리를 부정한다. 부처님이 깨달은 진리인 중도, 즉 연기법이 그러하다.

연기라는 것은 인연생기의 준말로 모든 존재는 조건의 원인과 과정을 통해 결과를 얻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고 이것이 멸하면 저것이 멸하는 조건 작용만 있을 뿐이다.

 

그래서 연기법은 고정된 실체가 없으므로 특정 짓는 내가 없다.

그리고 우주 속에 모든 존재는 독립된 개체가 없지만, 서로서로 연결돼 있어 어느 것 하나라도 떨어져 있지 않다.

 

다시 말해 나라는 절대가 없는 무아이지만 우주 전체가 내가 되는 절대의 참 나인 우리가 있다.

그래서 불교는 절대의 우상도 절대의 진리도 절대의 나도 없는 모두가 하나이면서 각각이다.

하나 속에 전체가 들어 있고 전체 속에 하나가 들어 있다.

한 티끌 속에 온 우주가 들어 있고 우주 속에 한 티끌이 들어 있다.

 

이렇게 우상에 대한 우려를 쓰면서 또 다른 우상의 글과 말을 만든 것은 단지 글로서 방편으로 삼을 뿐이다.

이 말과 글이 진실이 아니라 그 속에 담긴 뜻을 헤아려야 한다.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을 보지 말고 달을 볼 줄 아는 안목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 우상에 끄달려 허깨비 같은 삶을 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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