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융의 이야기

불경과 성경의 비교에서

통융 2022. 9. 25. 13:37

청봉님의 글 <불경과 상경의 비교>을 읽고

아래의 댓글을 올린 내용입니다.

 

 

불교는 특정 신이나 우상을 숭배하거나 귀의하여 구원받거나 영생을 추구하는 신앙이 아닙니다.

불교는 참된 진리를 공부하고 스스로 깨달음을 얻어 대 자유인이 되는 종교인 것입니다.

 

그리고 부처님이 깨달은 진리는 연기법입니다.

이것을 중도라 했고 불법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불교는 이 세상에 모든 것은 인연생기로 인(因)과 연(緣)에 의해 결과(果)가 생기고
그 결과의 인연(因緣)이 다하면 멸(滅)한다는 이치(法)입니다. 
 

누가 창조한 것이 아니라 모든 존재는 스스로의 의지에 따라 생주이멸하는 것이며

그 모든 과정으로 통해서 우주는 만들어지고 머물고 파괴되어 소멸하는 성주괴공한다고 합니다.

 

생로병사의 원인도 연기의 진리를 모를 때(무명이라하고) 괴로움이 일어나고 그 괴로움의 집착으로 생기는 것을 알아차림하는 것(깨달음)이다. 이것을 부처님은 4성재로 설명하고 그러한 진리를 알차아리기 위해서는 8정도를 하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연기법은

1, 이 세상은 늘 변하여 한 찰라도 머물지 않는다,

제행이 무상하기 때문에 제법이 무아로 열반적정이라고 합니다.

 

2, 이 세상은 모두가 서로 연기되어 있기 때문에 너와 내가 둘이 아닌 우리,

즉 우주의 모든 존재가 또 다른 나이며 내몸 같은 것입니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독립된 개체는 절대 존재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이 진리를 참되게 체험하게 되면 동체대비의 사랑과 자비만 실행하는 것입니다.

 

불교는 이러한 연기법의 진리를 참되게 공부하고 깨닫게 되는 것이 지혜이며

즉 이 세상은 한 순간도 머물지 않고 변한다 사실<지혜의 본질>,

이웃과 함께 나눔하는 참살이가 자비이며 너와 내가 둘이 아니라는 사실<자비의 본질>

그래서 내 이웃을 내몸 같이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불교는 지혜와 자비의 종교라고 합니다.

상구보리 하와중생 혹은 자비희사와 이고득락의 종교라고도 합니다.

 

화엄경 비로자나불을 하나님과 동일시하시는데

저도 거기에는 동의 합니다.

 

불법은 우주법계의 모두가 부처이고 불법이기 때문에 어떤 이름도 무방합니다.

지옥의 마귀라 해도 이름이 마귀일 뿐이지 진리의 법에는 한치도 어긋남이 없습니다.

 

연기작용은 우주법계의 근본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연기법을 창조하셨다고 해도 무방합니다.

단지 이름만 하나님이지 그 법의 작용은 평등하고 절대 변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제가 질문을 하나 하겠습니다.

손뼉을 치면 소리가 납니다.

직접 손뼉을 쳐 보십시요.

 

이 소리는 누가 만든 것입니까?

지식의 알음알이로는 절대 답을 찾을 수 없습니다.

 

모든 분별식을 내려놓고 가만히 하나님의 삼위를 영접하고

부처가 될 때만 참 진리와 계합을 하게됩니다.

 

스스로 체험을 통해 깨닫기 전에는

절대  깨달은 후의 세계를 알 수 없습니다.

 

답을 찾으시면 하나님을 직접 체험하는 존재와 불교의 참 진리를 이해하실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는 그동안 알음알이의 식견으로 분석하는 관념일 뿐입니다.

 

모든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하는 성경이나

부처님의 진리라고 하는 8만대장경이나

모두가 강을 건너는 방편이나 수단일 뿐이요. 

진리의  실제가 아닙니다.

 

내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이를 조견하지 않고는 하나님에게 가지 못한다는 말이

스스로 깨어있는 진리,  하나님과 하나된 것 즉견여래가 되지 않고는 절대 알지못하는 도다.

 

참진리는 늘 지금 연기작용으로 나타나 있는 그대로의 중도 실행일 뿐이니

하나님의 창조도 늘 성성 적적하게 지금 여기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사실 우리는 과거나 미래 아니 현재도 머물 수 없는데

어디에 마음을 머물 수 있을까요?

 

그래서 연기법의 진리(불법)를 언어도단, 불입문자라 하고

직지인심으로 견성성불하는 것이 불법이라고 합니다.

 

 

부처님 말씀에 '진리는 원리나 철학도 아니며 오직 순수한 체험뿐이다.

생각에 갇히면 영적 진화가 어렵다. 무지는 괴로움과 악의 근원이다.

나의 길은 진리의 길이며 배움의 길이지 숭배나 집착의 길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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