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창성교수 칼럼 6

"여래장, 불성, 참나, 참마음을 실체가 아닌 성향 또는 가능성으로 보라. 그리고 이 성향 또는 가능성을 실재(實在)하는 속성으로서가 아니라 단지 개념 또는 단어로만 보라."

http://www.mediabuddha.net/news/view.php?number=18330 미디어붓다 [홍창성 철학 에세이] 9. 대승불교형이상학-비판불교를 넘어서- "여래장, 불성, 참나, 참마음을 실체가 아닌 성향 또는 가능성으로 보라. 그리고 이 성향 또는 가능성을 실재(實在)하는 속성으로서가 아니라 단지 개념 또는 단어로만 보라." 본고는 대승불교의 불성(佛性) 사상과 선문(禪門)에서 강조해 온 ‘참나’ 및 ‘참마음’에 대한 견해를 유명론(唯名論 nominalism)적으로 해석해서 이 주장들이 붓다의 가르침인 무아(無我 anatman non-self)와 연기(緣起 pratitya-samutpada dependent arising)의 연장선상에 있는 교리들로 이해되어야 함을 보인다. 이를 위해..

“인식론적 비유를 존재론적 방식으로 해석”[홍창성 철학 에세이] 5. ‘한자경 교수의 비판’에 대하여“비유 자체의 문제를 지적하는 건 손가락 생김새만 문제 삼는 셈”

http://www.mediabuddha.net/news/view.php?number=17641 미디어붓다 “인식론적 비유를 존재론적 방식으로 해석” [홍창성 철학 에세이] 5. ‘한자경 교수의 비판’에 대하여 “비유 자체의 문제를 지적하는 건 손가락 생김새만 문제 삼는 셈” 수불 스님의 글에 대해 비판적 글을 게재해 ‘깨달음 논쟁’이 불붙는데 큰 역할을 담당했던 홍창성 교수(美 미네소타주립대)가 한자경 교수(이화여대)의 비판에 대해 한 달 만에 응답을 글을 보내왔다. 홍 교수는 이 글을 보내오면서 박용태 교수의 ‘홍 교수가 입장을 밝히는 것이 좋겠다’는 권유를 받아들였다고 밝혔다. 홍 교수는 “이번 논쟁에 참가해 여러 논의들을 지켜보다가 문득 21세기 새 시대의 새로운 교상판석을 한국불교계가 (특히 가..

[홍창성 철학 에세이] 7. 말로 깨우치는 선(禪)

http://www.mediabuddha.net/news/view.php?number=17955 미디어붓다 [홍창성 철학 에세이] 7. 말로 깨우치는 선(禪) 의식이 없는 모든 것은 깨달음의 도구로 사용될 수 있지만 부처는 아니다 말로 깨우치는 선(禪)* (*본고는 필자가 2005년 가을 미국철학회 회보에 발표한 “How to Teach Zen in a College Classroom”을 수정 및 보완해서 완성했다. “말로 깨우치는 선(禪)”에서 ‘선(禪)’이란 엄밀히는 ‘간화선(看話禪)’을 의미한다.) 전설에 따르면 부처는 “진리란 무엇입니까?”라는 제자의 질문에 단지 말없이 한 송이 꽃을 들어 보임으로써 답했다고 한다. 부처의 가르침을 듣기 위해 모인 많은 청중은 모두 이 뜻밖의 답변에 어리둥절했다...

초(超)지성주의와 반(反)지성주의: 현응스님의 발제문에 대한 수불스님의 반론문을 읽고

http://www.mediabuddha.net/news/view.php?number=17424 미디어붓다 미국 미네소타대 철학과 홍창성 교수가 새해 벽두 에 게재된 수불스님의 ‘조계종지의 현대적 이해: 현응스님의 발제문을 읽고’에 대해 반론문 성격의 장문을 글을 보내왔다. 홍 교수는 이 기고에서 수불스님의 글이 현응스님의 저서 를 고려하지 않은 것이라면서, 현응스님의 글에 대해서는 ‘지지’를, 수불스님의 글에 대해서는 ‘비판’의 입장을 개진했다. 법(法)에 관한 유익한 논쟁을 기대하면서 홍창성 교수의 글 ‘초지성주의와 반지성주의: 현응스님의 발제문에 대한 수불스님의 반론문을 읽고’ 전문을 게재한다. 또한 이 글에 대한 격조를 갖춘 반론을 환영한다. 편집자 초(超)지성주의와 반(反)지성주의: 현응스님의 ..

[홍창성 철학 에세이] 8. 깨달음과 열반, 그리고 자비행“모든 사건과 행위가 모두의 깨달음과 열반의 산출에 기여하는 바에 따라 평가돼야”

출처 http://www.mediabuddha.net/ 미디어 붓다 [홍창성 철학 에세이] 8. 깨달음과 열반, 그리고 자비행 “모든 사건과 행위가 모두의 깨달음과 열반의 산출에 기여하는 바에 따라 평가돼야” 깨달음을 얻어 열반에 드는 것은 모든 불자들의 염원이다. 그러나 혼자만의 깨달음과 자신만의 열반이 불교인들의 목표일 수는 없겠다. 불교에서는 깨달음과 열반의 성취가 필연적으로 자비행으로 귀결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비행을 실천하지 않는 자는 깨닫지도 열반에 들지도 못했다고 판단해야 한다. 두 가지 깨달음: 철학적 깨달음과 열반적 깨달음 나는 우리가 통상 이야기하는 깨달음에 크게 두 가지가 있다고 생각한다. 깨달음의 가르침인 불교를 창시한 붓다의 예로부터 이 점을 논의해 보겠다. 역사적으로 우리는 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