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 불교/통융스님의 반야심경 해석

18. 우리말 반야심경 - <본문>에 들어가면서 3

통융 2022. 4. 3. 07:36

18. 우리말 반야심경

 

<바른 깨달음을 이루는 참된 말씀(摩訶般若波羅蜜多心經)>3

 

드디어 <반야심경> 본문에 들어가 본다.

 

그동안 연기작용이 모든 진리의 실제이고

그것을 알아차리고 쓰는 삶이 반야 지혜라고 살펴봤다.

 

관자재보살이 사리자에게

공의 이치를 깨닫고 반야의 지혜를 얻으면

 

괴로움에서 벗어나고 이웃과 더불어

행복하게 된다는 내용이 <반야심경>이라 했다.

 

그러한 내용으로 된 경을 순우리말로 전체의 뜻을

살펴보도록 한다.

 

<바른 깨달음을 이루는 참된 말씀>

 

내 몸과 마음은 다섯 가지의 몸과 느낌, 생각, 하는 것, 아는 것(색수상행식)

쌓임인데 이것들은 한순간도 머물지 않고 바뀐다.

이 뜻을 깨달아 알아차리면 모든 괴로움에서 벗어난다.

 

반야심경이 핵심이며 이 진리를 확철히 깨달으면 게임 끝이다.

나머지 부분은 설명이다.

 

예를 들어 '반야심경이 무엇입니까?'라는 질문을 받는다면

손뼉을 치면서 "까궁!" 하고 나서

"당신을 존경합니다" 이렇게 답한다.

 

다행히 이 소식을 보고 듣고 바르게 알아차렸다면

반야심경 설명은 더는 필요가 없는 것과 같다.

 

하지만 알아차리지 못한다면

반야심경의 내용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는 것이다.

 

나타나 있는 모든 것들은 고정되어 있지 않고 변하기 때문에

마땅히 나라고 할 만한 것이 없어서 비었다()고 한다.

 

빈 것은 텅 빈 것 같으나 나타나 보이고 그렇다고 없어진 것도 아니다.

(허공에 구름이 쉼 없이 나타났다가 흩어져 없어지고 다시 생기는 것처럼)

 

몸이 그러하듯 마음의 느낌이나 알음알이

일으킴 의식도 역시 그러하여 마땅히 나라고 할 만한 것이 없다.

 

그러한 법은 태어남도 없어짐도, 더럽지도 깨끗하지도 않지만

늘지도 줄지도 않느니라.

 

이 세상에 보이는 모든 것은 처음부터 있던 것이 아니며

서로서로 이어짐과 나눔에 따라 나타났다가 사라지며

좋다 나쁘다, 더 하다 덜 한다, 늘어난다 준다고 할 수 없다.

 

그러므로 빈 가운데는 무엇이 있다고 할 수 없고, 일으키는 마음,

일어나는 것, 알음알이도 없으며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코로 냄새를 맡고, 혀로 맛보며, 몸으로 느끼는 생각들이

있다거나 안다거나 알지 못하는 것도 없다.

 

또한, 늙고 죽음이 있다거나 늙어서 죽음이 없다는 것도 없고

괴로움과 괴로움의 시작도 없고 그 시작과 끝도 없다.

 

깨달았다 깨닫지 못했다는 생각의 나눔이 없으므로

(분별하는 내가 있다면 아직 완전한 알아차림을 하지 못한 상태이다.)

 

참 깨달은 자는 두려움이 없어서 뒤바뀐 헛된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모든 괴로움에서 벗어난다.

 

과거 현재 미래 세상의 모든 부처님의 깨달음도

이와 같은 알아차림을(반야) 통해 깨달음을 얻는다.

 

깨달음이란 나타나 있는 그대로를 바르게 앎이며

너와 내가 둘이 아닌 함께 즐거움으로 참되다.

 

이런 참 깨달음은 가장 믿음이 가고 분명하고 옳은 말씀으로

그 어떤 말로도 비교될 수 없다.

 

그래서 온갖 괴로움을 없애고 바르며

꿈같이 헛되지 않으니라.

 

이제 참되게 깨닫는 바른 말씀을 이처럼 하리라.

가네 가네 건너가네, 저 건너에 바른 깨달음 있는 곳에 도달하니 얼씨구 좋구나.

 

가테 가테 파라가테 파라상가테 보디 스바하.

아제 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지 사바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