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은 본래
있으면서 없는 것이 불법이지
지금 나타나 있는 그대로인데
뭘 또 찾아 분별한다는 말인가.
이미 만들어져 있는 것도 아니요.
만들어질 것도 아니고
오직 지금 찰나에 생멸하는데
진짜니 가짜니 할 것도 없지.
늘 지금을 100% 깨어 있으면
보고 듣고 느끼는 자연이 펼쳐진 경전이라네.
그렇듯 경전은 진리를 안내하는 것일 뿐
경전 자체가 진리인 것은 아니라네.
싯달타 태자도
어떤 수행을 하고 붓다가 되었을까?
부처님이 경전을 공부했나.
아니면 대단한 스승에게 배우고 익혔을까?
물론 셋 스승들이야 있었지만
어디 스승들에게 참 깨달음을 얻었나요.
용맹한 수행의 의욕으로 지나친 고행도 아니요.
지나친 쾌락에 탐닉도 아닌 적당함으로.
그는 혼자서 보리도량에 가만히 앉아서
일어난 그대로 숨 쉬며 들고 나는 것을 알아차린 것이라네.
내가 누구인가?
그 내가 누구인가를 바로 깨달으니
어! 내가 없네.
나는 본래 이 세상에 모든 존재와 연결된 하나였네.
그걸 깨달은 거라네.
그동안 내가 찾았던 것이 저 밖에 어디엔가 누구에겐가 있었던 것이 아니라
내 안에 모든 존재의 작용성에 있었다네.
한 생각 일어나고 한 생각 사라진 것이 나라고 착각하고
온갖 분별 망상이 나라고 생각 생각이 허물이었네.
5온이 공한 것을 모르고 오온에 집착하여
모든 18경계에 끄달려 일어난 것을 나라고 착각했으니.
그것을 깨닫지 못하게 한 관념의 마왕이 나를 지배하고
탐진치의 알음알이로 만들어진 의식ㆍ심성들이 나의 본성을 속이고 눈멀게 하였다네.
이 세상은 늘 상주하며 불변한다며 유혹하고
생멸의 고리로 엮여 모든 허깨비 장단에 춤을 추고 웃고 울고 했으니.
이제야 알겠다.
내가 누구인지를
진짜는 한 찰나도 가고 옴도 없이
늘 조건의 인연이 생기는 작용만 있을 뿐인데.
그 연기된 작용 순간이 참 진리이고 법계인데
지금 여기, 일어나 있는 그대로…….
그때 모든 분별과 망상이 사라지니
반짝반짝 빛나던 새벽별이 쏟아져 눈에 들고
어! 그렇네.
온 대지는 고요하고, 샛별은 빛나고
풀벌레 소리 귓가에 맴돌고
태자가 가만히 가부좌한 오른쪽 다리를 풀고 말한다.
"배가 고프다.“
그렇게 붓다의 깨달음이 전부이니
가르침 또한 언어도단이라 한마디도 한 적이 없다 하지 않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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