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 불교/통융스님의 반야심경 해석

5. 우리말 반야심 - 선행학습 연기법에 대한 이해2

통융 2022. 3. 19. 13:55

 

5, 우리말 반야심경

 

2. 연기작용(緣起作用)이 불성(佛性)이다.

 

달마대사에 관한 기록이 나오는 <보리달마조>에서 남인도 향지국 이견왕(香至國異見王)과 달마대사의 제자 바라제 존자(波羅提尊者)의 대화 속에 불성이 연기작용에 있다는 내용을 살펴본다.

 

이견왕이 바라제 존자에게 물었다.

“어떤 것이 부처입니까?”

 

바라제 존자가 대답했다.

“성품을 보는 것이 바로 부처입니다.”

 

“그렇다면 대사는 성품을 봤습니까?”

“예, 나는 이미 불성을 봤습니다.”

 

“불성은 어디에 있습니까?”

“불성은 작용하는 곳에 있습니다.”

 

“불성은 어디에 어떻게 작용하는지요? 저는보리지 않습니다.”

“지금도 작용하고 있는데 왕께서 보지 못하고 계신 것입니다.”

 

“저에게도 그런 작용이 있습니까?”

“만약 왕이 작용을 안다면 성품이 아닌 것이 없으나 왕이 작용을 하지 아니하면 그 본체 자체도 보기 어려울 것입니다.”

 

“작용할 때에는 몇 곳에서 나타납니까?”

“그것이 작용하여 나타날 때는 여덟 가지로 나타나게 됩니다.”

“태중에 있으면 몸이라 하고, 세상에 있으면 사람이라 하고, 눈에 있으면 본다고 말하고, 귀에 있으면 듣는다고 하고, 코에 있으면 향기를 분별하고, 혀에 있으면 말을 하고,

손에 있으면 무엇을 잡고, 발에 있으면 걸어 다닙니다.

두루 나타나면 온 세상에 꽉 차지만, 거둬들이면 하나의 작은 먼지 속에 있습니다.

 

”지혜로운 이는 이것이 불성인 줄 알지만, 모르는 사람은 이것을 정혼(精魂)이라고 합니다.” 왕이 이 게송을 듣고 마음이 곧 열렸다고 한다.

 

‘성품은 작용하는 곳에 있다.’라는 것이다.

마음과 성품과 불성은 같다.

 

작용은 조건에 의해 인연과 결과로 나타나는데 이것을 연기작용을 말한다.

그래서 작용하는 성품을 보는 것이 곧 부처(見性成佛)라는 것이며

 

모든 일상의 삶 그대로 연기작용임을 바르게 알아차리는 것이 깨달음이고

마조스님은 이것을 평상심이 도라고(平常心是道)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