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진등 草觀(마음이 머무는 곳)

3현4료간

통융 2017. 10. 28. 22:19

임제의 三玄三要 를 해설하기 앞서
임제의 四料揀과 三玄三要를 모르면 소경과 같아서  法門은 커녕 납자도 제접도 못합니다.
즉 확연히 모르면 法門에 果가 따릅니다. 강의,  강설이라 하면 괜찮습니다.

 

三玄三要에 대하여 무비스님의 강설을 인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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師又云,
一句語에 須具三玄門이요
一玄門에 須具三要니 有權有用이라
汝等諸人은 作麽生會오 下座하다

 

임제가 말하길
“한 구절의 말에 반드시 삼현문이 갖춰져 있고,
일현문에는 반드시 삼요가 갖춰져 있어서 방편도 있고 작용도 있다.
그대들 모든 사람들은 이것을 어떻게 이해하는가?” 하시고는
법상에서 내려오셨다.


한마디 말에는 반드시 삼현문이 갖추어져 있다.” 라고 했는데
그 三玄이란 현중현(玄中玄)과 구중현(句中玄)과 체중현(體中玄)이다.

 

현중현은 말 그 자체로서의 진실이다.
구중현은 말의 인식 위에 나타나는 진실이다.
체중현은 말의 실천 속에 나타나는 진실이다.

이러한 세 가지의 경우가 한 마디의 말에 다 포함되어 있다는 뜻이다. [해석이 틀렸 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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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說합니다

진리(진실)를 세가지로 보일수 있으니, 하나는 寂 이요, 둘은 말(법문)이요, 셋은 보임(見)이로다.

 

다시 풀면,
진리가 身, 口, 意 에 있다는 뜻으로

體(身)는 손가락을 들어 가르키고,   口는  말귀句 즉 句란,  입으로 法門하고,   玄은  禪定에 들어 침묵(寂)합니다.

 

다시

玄은 意요,  句는 글자 대로 말(口) 이요,  體는 (身몸)을 가르킨 것입니다.

무비스님이 글자 의 자구만 해석 했기에, 말의 낙처가 없는 공허한 해석이 됐습니다.
문자의 낙처를 살펴야 가르침의 본뜻을 알수 있으니 원리전도몽상 해야 글자가 보입니다.


 

三玄三要을 다시 가리키니 문자를 버리고 實로(체득) 확인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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玄中玄 : 玄 가운데 玄이란, 말없는 가운데 진리가 있으니, 寂!(禪定)을 말하는 것으로
설사 말을 하였다 해도 말한바가 없으니, 如來는 본래 오고감이 없듯이 말도 이와 같음이라.
如來의 말은 본래 空寂하여 말한바가 없습니다.
[如來가 설한 法이 있다면 여래를 능멸함이니 여래는 한마디도 설한바가 없느니라/금강경]

 

납자의 질문을 침묵(寂!)으로 答하여 상근자의 눈을 열어주려 함이니 榜과 割을 쓸때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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句中玄 : 말가운데 玄(진실)이 있는것으로, 말로서 말길을 끊어 진리가 드러나게 함이니
납자를 언하에 깨침으로 이끄는 방편으로 말과 진리가 하나로 계합됨을 보인는 것이니라.

 

납자가 의정에 든것을 보고, 그에 알맞는 一句 法門으로 납자 스스로 깨치게 하는 방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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體中玄은 말가운데 실천이 아니라, 말이 몸(空)에서 나와 몸(空)으로 돌아가기에 몸과 말이
다르지 않음을 보여 '몸 가운데 마음이 있다'  色卽是空, 즉 空을 體(몸)로 보이는 것입니다.

 

주장자를 들거나, 손가락을 세워 보이니 '體(몸) 가운데 玄(진리)을 보라'는 방편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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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 사료간으로 납자의 근기를 살피고, 삼현삼요로 납자를 이끄는 조사의 자비입니다.

 

다시 말하면 색즉시공 공즉시색  수상행식역부여시' 의 총체적 진리를 설한것입니다.
몸이 공이요 공이 몸이니, 몸 따라 일어난 수상행식(감수작용)이야 당연히 空하도다

色(몸 )이 곧 수상행식(마음)이다!

 

몸과 말과 마음이 모두 空寂하니,  身이 體요,  말귀句는 口(입)이요,  意(마음)는 玄 이로다.
셋으로 나누었으나 본래 한물건도 없지만 납자를 위하여 가르침의 방편으로 보인것이니

 

三玄三要를 모르고 는 法을 설하지 말것이며, 납자도 제접치 말라! 지옥이 코앞에 있다.
살펴보니 봉사가 주장자를 들고, 귀 먹어리가 割을 외치도다. 果가 따르니 조심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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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두 깨친후 부터가 참선이고, 그 이전에는 좌정(앉아 있는것)입니다.

수많은 세월동안 죽은 화두에서 생명의 싹이트길 기다렸으니
공연한 헛고생으로 몸만 고달플 뿐이로다.

내 다시 가르치니 기존의 방법과 방편을 모두 버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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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화두를 버려라!.       삼세근, 정전백수자, 無자등, 죽은 송장위에 앉지마라.
가부좌에 목매지 마라!.    몸이 경직되면 생각이 굳어지니 병을 만들고 키울뿐 이로다.
장소에 구애받지 말라!.    고요한곳을 집착하면 마음이 침잠되어 착각禪(無記)에 빠진다.
몸을 피로하게 하지마라.  몸이 곧 마음이니 몸이 피로하면 마음도 피로해 번뇌만 치성해진다.

 

석가 세존처럼 우유죽은 없으나
음식을 적당히 먹어 배곯치 말고, 잠도 육신이 피로하지 않도록 적당히 자고,
몸과 마음의 긴장을 풀고 心身이 편안한 곳에서 자유로이 思惟 하라.

 

무엇을 思惟 하는가?
지금 눈앞에 보이는 사물이 진실한가? 무어라도 좋다.  늘상 접하는 풀, 나무,
산, 달, 별, 등 실체적 모양이 있는것을 觀하며 발견할때 까지 사유하라.
 
지금 들리는 소리는 어데서 오고 어데로 사라지는가? 파도소리, 새소리, 풍경소리, 등등
실체적 모양에 의지하여 생겨나는 소리를 끝없이 사유하라.

 

실체없는 모양은 마구니의 변화신이니 환각을 주의하라    (약이색견아)
모양없는 소리는 귀신(마구니)소리니, 환청을 주의하라.    (이음성구아)

 

다시,

현상계는 일체가 허망한 것이니 현상(對相)에 의지하지 말라(범소유상 개시허망)하셨고
일체 현상이 幻 이고, 그림자고, 거품이라 했는데, 내 눈에는 왜 그렇게 안보이는가?
왜? 왜?....

 

발견 될때까지 끝없이 궁구하라
어느날 일체의 형상에 경계가 없는, 모양이 모양이 아닌 如來를 發見하고 볼것이다.
금강경은 즉견여래(여래보는)방편을 제시했고, 후오백세에 여래출현을 수기한 경전입니다.

 

다시 말합니다.
화두가 열렸거나, 염불삼매를 체득한 知慧者, 상근자는
지금 그대 가까이 보이는 어떠한 물체라도 지속적으로 바라보면서 궁구 하십시요.
미련할 정도로 우직하게 살피십시요. 끝없이 끝없이 눈앞에서 발견 될때까지...

 

발견 되었으면 찾으시오.(구두선사는 피해야 합니다. 그들을 만나면 오히려 때를 묻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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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외 분들은 재가자 출가자 공히 주변에 연관된 인연의 현상을 살펴야 합니다.

재가자는 가족 친척, 직장등 주변 사람을 살피고, 출가자는 은사, 도반, 문중 등을 살펴야 합니다.

 

1) 남이 나를 괴롭히는 인연    2) 남이 나를 도와주는 인연
3) 내가 남을 괴롭히는 인연    3) 내가 남을 도와주는 인연 들을 잘 살펴야 합니다.

 

이 네가지가 선악이 교차하는 분별심 입니다. 선과 악이 밖에 있는것이 아니라 내 안에 있으니 왜그런가?

惡을 惡으로 갚지말고  善을 善으로 갚지말라!

惡緣은 慈悲로풀고  善緣은 법계로 회향하여 功德이 되도록하라

 

惡緣을 향하여 참회를 하고, 善緣은 회향을 하여 보답하려 하거나 마음에 담지 마십시요
善 惡에서 자유로워 지도록 양쪽을 모두 버려야 합니다. 고로 참회기도 없이는 않됩니다.

 

부모도 버리고 출가한 사람들이 말로만 인연을 끊는다 하지말고, 실체적 인연을 끊어야 합니다.
번뇌를 자른다고 머리 열씸히 깍지말고 실체적 번뇌를 끊어야 합니다.

번뇌가 모두 인연에서 생겨나니, 그 원인이 報 怨으로 엮여진 사람과 사람의 관계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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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어느날 인연의 苦 사라질때 믄득 無我相 체득 합니다. 내가 없으면 苦가 없습니다.
   첫소식으로 알긴 알았는데, 다시 괴롭히는 대상을 만나면 또 다시 괴로워집니다.

 

2) 더욱 정진하면 나를 괴롭히는 대상이 사라지는 無人相(남이없는)을 체득합니다.
    일체 대상이 텅비어  淸淨한것을 봅니다.  이것이 성품을 본다는 見性 인가 봅니다.

 

나는 見性 이라는말  안씁 니다. 見性이란 말은 낙처가 불분명하여 후학들이 혼동합니다.

사실 육조가 말한 見性은 法을 보는것을 말하는데,  후학들이 화두 깨친것을 見性으로 착각하기 때문이지요.

세존께서 법문하실때는 극히 미세하고 세밀하게 설하십니다. 팔만경전에는 낙처가 불분명한 용어가 없습니다.

 

3)  더욱 정진하면 나와 남이 사라져 중생이 없는 無衆生相을 체득하는 '인우구망' 사람과 소가 사라집니다.
    '비상비비상' 양변을 벗어나 구경각으로 착각 하지만,  아직 因果에 걸립니다.  이제 法을 보고 압니다.
     아직 法에 걸려있으니 '法도 버려야 하거늘 법 아닌것이랴!' 法尙應捨何況非法/ 금강경
  
4) 더욱 정진하면 生死가 없는 無壽者相을 체득합니다. 生滅 (生死) 없는 '卽見如來' 입니다.
   '구경열반' 구경은 얻는것이 아니고 일체를 해체하여 벗어 버리는(던지는) 涅槃 입니다.
    무엇이 오온의 집을 짖는지 확연히 봅니다. '산하대지가 현진광이로다' 반본환원
    화엄을 보고 알아야 화엄에 걸리지 않으니  집짖는자가 무엇인지 보아야 비로서
    긴 여정을 끝내니 法도 버리고 고요히 쉽니다.(안좌여시국토해 시명비로자나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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