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진등 草觀(마음이 머무는 곳)

소승 대승

통융 2017. 10. 28. 21:43

緣覺은 : 끝없이 自然을 살피다가 어느날 自然의 生滅하는 이치를 터득한자를 말합니다.
菩薩은 : 착한일을 많이한 善根者, 대승자, 즉 선남자 선여인(발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말하며, 좋은일, 보시, 지계, 인욕 한사람이 아니고,  스스로 菩薩(각유정, 산부처)인것을 굳게 믿어

            남의 허물은 안보고,  자신의 길(業)을 밝히는 사람이 보살 입니다.(예,  상불경보살)

 

금강경에 대승자에게 마음을 멈추고(항복기심) 如來를 보라고 하듯

본래 보살이란 '覺有情'(깨달은중생)을 말하며 여러분 모두에게 해당됩니다.

覺有情 이란 여러분 모두의 성품이 空하기에 覺이라 하고, 각각의 모양으로 나퉜기에
有情이라 합니다. 고로 菩薩이란  '깨친중생'  또 '살아있는부처' 라 해도 됩니다.

 

다만 스스로가 부처(각유정)인줄 모르는것이 허물 입니다.
이곳이 법화세계요, 화엄세계요, 연화장세계요, 아미타 세계요 금강의 세계 인줄 몰라서
헐떡이며 괴로워 하지요. 깨쳐도 그 자리, 못깨쳐도 같은 그 자리 입니다.
중생과 부처가 법계를 한발짝도 벗어날수 없습니다. 깨친자는 다만 고요할뿐입니다.

 

보살의 의미도 여러가지로 쓰입니다.
중생이 도업을 이루고자 행 할때는 보살도 라 하고
보살이 중생을 도와줄때는 관자재보살, 관세음보살, 지장보살, 허공장보살, 등으로
나타냅니다.

 

여기서 보살도란 육바라밀을 말하며, 이것도 중생계에는 없는 일로 보살들이 행하는일
을 말하며, 여래가 보살을 선호념 선부촉 하는 행을 말합니다.

 

이래서 위에 열거한 성문, 연각, 보살, 이 일불승 으로 향해야 成佛(도의 완성) 입니다.
이들을 가르친 경이 금강경 이요, 반야심경 이요, 대승경전 들 입니다.
즉 삼승이란 법의 성품을 理解한 사람을 말합니다. 법화경이 이런 이치를 설한경입니다.


소승, 대승은 무엇인가?
이말도 오해와 잘못된 해석을 합니다.

 

대승 한다고, 좋은일 한다고, 고아원 짖고, 양노원 짖고 그것도 모자라 짐승도 기르고

바쁘게 헐떡이는데, 없는인연 만들어 다음생에 세파만 더 시끄럽겠지요.

출가할때 낳아준 부모 인연도 끊은 분들이 왠 상좌는 그리 많이 두는지?.  웃기지요.

 

칠보를 삼천대천 만큼 쌓아놓고, 보시를 하고,  몸둥이를 항하의 모래만큼 바쳐서

아침, 점심, 저녁,  세번씩 바쳐 보시를 해도 福 짓고, 福 받는일이지

대승과는 천리 만리 떨어진 일입니다.

 

소승 이란 삼승이 일불승 으로 정진 안하고 안주한것(즐기는것)을 소승이라 하고
대승 이란 금강경에 말하듯 안주하지 않고 일불승으로 향하는 것을 말합니다.

 

어느날 깨치면 일체 유정무정 들이 모두 환희심에 젖어 찬탄 합니다.

'고로 중생이 병들면 내가 병들고, 내가 깨치면 일체 중생도 깨치더라'

 

이것이 대승 이며,  이것이 상구보리 하화중생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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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자연의 이치를 깨쳤다고 즐기는 자를 緣覺 또는 獨覺 이라 하고
많이 들어서 인연의 이치를 아는자를 聲聞이라 합니다.

세파 속에서 인연의 고통을 참고 견디다가 어느날 그 고통이 남의것이 아니고
자신이 지은것이란 이치를 깨친 자가 菩薩 입니다.
이것을 진흙속에서 연꽃이 핀다 하여 연화생(菩薩) 이라합니다.


삼승이 요즘 말로 견성자 입니다.
이들을 위하여 가르친 경이 금강경이고, 반야심경 입니다.

물질의 근본 성품을 본사람.


반야심경은 지수화풍의 근원을 보고 아는 사람에게 가르친 경이고

 

선가말로

방거사가 '서강의 물을 단숨에 마시고오라' 한것이 같은 말입니다.

지수화풍 근본을 보면 서강의 물을 단숨에 마십니다.

방거사가 그 다음에 가르치겠다고 했습니다.

방거사 말은 공안등 문자풀이, 글자풀이 가 아닙니다. '보아라'(見性) 입니다.

 

空中無色!
사리자여 空가운데는 그런 지혜도, 그런 성품도, 물질도,  一切가 없느니라!.
뭐던지 있으면 안됩니다. 그렇다고 '없다' 하면 더욱 안됩니다.

 

[법성원융무이상 제법본래적 무명무상절일체]
법을 말과 글자로 가르키려니 성품이란 말을 한것이지 그런 것 일체 없습니다.

말과 글자는 올바로 전하기 이렇게 어렵기에 법상에 올라 다중을 향해서 할수 없으며,
해서도 안되며, 직접 인연자를 만나서, 그것도 듣는자의 근기에 맞춰서 설해야 합니다.


때로는 자세히 이끌고,  때로는 언하에 막고,  때로는 모른척...

 

見性 참으로 어렵습니다.
그러나 믿는 마음이 돈독하면 쉽습니다.

 

무엇을 믿을것인가?
'천상천하 유아독존' 당신이 이렇게 존귀한 존재란 것을 확실히 믿습니까?


 

확실히 믿는자 에게는 계를 주거나 계를 지키라고 설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렇게 확실히 믿는 사람은 이미 그 존귀한 몸을 함부로 사용하지 않습니다.


먹고, 말하고, 행동 하는것에서  이미 존귀한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근기가 낮을수록

네가 부처라 해도 건성으로 듣고, 인과가 무섭다 해도 안믿기에

참회 하라고 절을 시키고, 네가 부처라고 염불시키고, 

존귀한 몸 받았을때 부처 되라고,  거룩한 몸 깨끗이 지키라고 계를 주지만

그런데, 작심삼일. 아니면 억지로 참고, 또 참고  매일 매일 인내심과 싸우지요.

그렇게 매일 참회해서 언제 업장소멸 해서 부처 됩니까?

염불해서 언제 부처 됩니까? 부처가 마음 밖에 있으면 염불 억겁을 해도 안됩니다.

부처가 내안에 있으면 염불 할일없고, 절 할일없고,  참회할 대상이 없는것 당연하겠지요?

 

몸이 큰지,  유명한 선방 조실 크다는 스님들

法門 하다말고...  두눈 꽉감고 합장하고  "나무아미타불~~" 하면 모두 따라서 하던데

유행인가 봅니다. 두눈 꽉감고 '아미타 귀신' 찾는지,  참  허망한짓 들 합니다.

法이 空한데, 空 소리 하다말고 어느곳에 의지하고 귀의 한다는 말인가!!

법문은 청산유수 지만 行은 모두 걸려 있다는 증거 입니다.

여러분이 눈을 못떠서 속고 속이는 거지요. 그러나 이글을 보면 이해는 될것입니다.

 

깨친자는 다중에게 법문 하지도 않고, '아미타불 염불' 을 하지도 않습니다.

 

그러면 어느때 하는가?

빔비사라왕 처럼 진실로 믿고 따르는 인연자 에게 갈날(임종)이 촉박 할때와 

원효스님 처럼 근기가 약한 사람에게 악도를 면하고 내생을 기약 하라는  자비방편 입니다.

확실히 깨친자는 가르칠수 있습니다. 자기가 하는것 아닙니다.

 

만일 어느 훌륭하다는 분이

탑쌓고, 절 짓고, 그 절 돌 부처에게 절하고,  염불하고 있다면 외도의 자손이니

그런자 에게는 가르침 받을것이 없습니다.

 

근기가 하열 하기에 많은것을 가르칩니다.

축생보 받으면 종래 기약이 없습니다.

천배 만배, 귀한몸 받았을때 그만 엎드리고,

일어나 앉아서 올바로 굳게 믿고 세존의 가르침을 따르십시요.

 

무엇으로 근기를 구분 하는가?
믿음은 공덕의 어머니,  믿는 마음이 스스로의 근기를 만듭니다!!


---草觀님의 블로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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