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진등 草觀(마음이 머무는 곳)

임제의 4료간

통융 2017. 10. 13. 18:20

破邪顯正

임제의 사료간

 

상당하여 주장자를 한번 들어보이고

당당한 기상은 우뢰를 달음질 치게하고
늠늠한 위풍은 설상도 녹임이로다

장군의 명령으로 오랑케를 베니
신검을 한번 휘두루니 천리가 피로다

 

어느날 임제선사가 시중할때 이르되 "내가 황벽선사 처소에서 불법을 세번 묻다가
삼십방씩 세번을 맞았는데 쑥대로 두드리는것 같았다. 이제 다시한번 맞고 싶은데
, 누가 나를 때릴런고?

하니 어느 납자가 대중가운데서 나와 이르길

 

"제가 때리겠습니다"

선사가 납자에게 주장자를 넘겨주고, 납자가 주장자를 받으려는 찰라 임제선사가 믄득 때렸다.


대중아!
임제선사의 응용처를 잘보아라.

與奪自在 照用同時 로다.

 

주기도 하고 빼앗기도 함에 자유자재하며 照와 用이 同時로다.

임제선사는 종사중에 명안종사로다
四海五湖에 견성 참구자는 임제선사의 활발발지를 잘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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윗 글은 요즘 남방의 선사라는 분이 임제의 글을 빌려 선구를 밝힌 내용입니다.

破字 하면서
유명 하다는 선사와, 임제선사 의 見處 살펴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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解)
임제의 사료간 을 파하고 임제의 割을 막아 버리려 하니 다시는 납자를 이렇게 제접하지 말라.

여탈자재 조용동시[與奪自在 照用同時] 옳고  옳다, 그러나 말로는 인정치 않겠다.

남(임제)의 살림살이 살피지 말고 스스로의 견처로 말하라!

 

내, 다시 묻는다.
걸림없는 안목(明眼)이라 했으니, 照用을 다시 일러라!

입을열면 앵무새로 볼것이요, 손가락을 들면 조막손 으로 볼것이다. 다시 일러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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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제선사가 사료간으로 납자를 제접함에
奪人不奪境  奪境不奪人  人境兩俱奪  人境俱不奪

때로는 사람을 빼앗고 경계는 빼앗지 아니하며
때로는 경계는 빼앗고 사람은 빼앗지 아니하며
때로는 사람과 경계를 함께 빼앗으며
때로는 사람과 경계를 함께 빼앗지 아니 하로다.

 

누가 산승에게
어떤것이 사람을 빼앗고, 경계는 빼앗지 않는것 입니까? 하고 묻는다면

靑山有路無人到  '청산에 길은 있으되 이르는사람이 없도다.'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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解)
*지금까지 올려놓은 글을 깊게 살핀 분 이라면 아주 쉽게 낙처를 알것 입니다*

 

소는 보았는데, 고삐가 없음 이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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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누가 산승에게
어떤것이 경계는 빼앗고, 사람은 빼앗지 않는것입니까?

牧童吹笛天地驚 목동이 젓대를 부니 천지가 놀람이로다.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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解)
능숙한 목동은 '이랴 ~~ 소리만 해도,  소가 스스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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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산승에게
어떤것이 사람과 경계를 함께 빼앗는 것입니까?  물으면,
萬里絶往來 만리에 왕래가 끊어짐이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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解)
목동도 소도 잃었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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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산승에게 묻기를
어떤것이 사람과 경계를 빼앗지 아니하는 것입니까? 물으면,

 

江南三月花爭發 이요, 野老相逢勸酒歌 로다.

강남 삼월에 꽃들이 다투어 핌이요

일없는 늙은이들이 서로만나 술을 권하고 노래하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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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버려둬라 백화만발 이로다'  했으면 될것을 비단포장 하다가 티끌이 묻었습니다.

 

解)
산하대지가 현진광 이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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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제의 사료간을 남방 선사가 비단같이 유식한 한문으로 자작 답 한것을
내가 다시 쉽게 풀었습니다.

 

이까짓 문답은 절간 담 벼락에 그려진 심우도만 살펴봐도 금새 알수 있습니다.

다만
여러분들이 慧眼이 없어 몰라보는 것뿐이지요.
화두 깨치고 智慧(慧眼)만 열려도 쉽게 낙처를 간파할수 있습니다.
이러하니 거량이나 문답으로 인가하고 어쩌고 웃기는 짓입니다.

 

흔히 임제의 사료간을 살피기가 참으로 어렵다고들 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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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제의 사료간은 중도를 글자로 풀어놓은 것입니다.
중도에는 언설이 없으니 말이나 문자로 답 하는것을 인정치 않는다!.

 

그러나 답을 한다면 볼것이다!  힌트를 주마,  몸으로 글자를 보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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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산승의 글을 살펴봅시다.

 

如何是賓看主 이닛고?. 어떤것이 주인을 보는것 입니까?

 訪問知識辨來機하야  獨尊獨行無伴侶로다
선지식을 방문하여 오는기틀을 가려서 홀로높고 홀로 행하니 벗이 없음이로다.

 

如何是主看賓 이닛고?. 어떤것이 손납을 보는것 입니까??

 坐觀雲起雲滅 하다가 全機大用任自在로다
앉아서 구름이 일어나고 구름이 멸함을 보다가 전기대용을 자재로 씀이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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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두구절은 스스로를 보여주는 문장입니다.

그대가 이렇게만 할수 있다면 누가 뭐라 할것인가!!

 

비단같은 문장속에 속빈 강정이여
홀로 노닐때는 만단사료 살피다가
손님을 맞을때는 언로가 막히니
길이 멀음은 본래 눈이 없음이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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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두 구절이 틀린말은 아닙니다.
 
그분이 납자 제접한 예를들고 그분이 깨쳤다고 스스로 말한 법문을 살펴서 밝혀 드리지요.

 

예]
소납의 초심시절  남방도인 ㅇㅇ스님 회상에서 정진하던 시절이었다.
그때만 해도 ㅇㅇ정사는 지금에 비하면 도량이 초라하였다.
하루는 정진하다가 화두가 잘 안되는 것 같아 지대방에서 대중에게 화두가 잘 안된다하니
도인에게 화두를 타면 잘된다는 애기를 듣고 솔깃하여 큰스님을 친견하고 화두하나 주십사
하니 정전백수자 주길래 정전백수자를 들고 정진해 보았다. 본래 내화두는 은사스님에게
받은 이뭤고였는데 정전백수자로 바꿔보니 영 성글성글해서 성가스러웠다...

화룻밤을 지내고 나니새벽무렵 한생각 일어나 아침공양후 큰스님께 가사장삼 수하고 삼배를
올린후 어제 받은 정전백수자 돌려드리겠읍니다 하니 왜 그러야며 묻길래 제가 본래 들고있던
것이 '이뭤고' 세글자 였는데 정전백수자는 다섯글자로 너무 깁니다 하니 열심히 정진하라며
가볍게 합장까지 해 주시며 격려 해 주셨다 /중략

 
이후 큰스님 회상을 떠나 그당시 유명한 고운사 겨울철 용맹정진 한철을 보내는등 제방선원
에서 몇철을 보내고 큰스님 친견하러 가서 지대방에서 자주 거론되는 돈오돈수와 돈오점수에
대한 소납이 생각해본 견해를 말씀드리니 한참을 들어시더니 느닷없이 "백수좌인가" 하길래
나는 "봉수좌입니다"하니 열심히 정진하라 일러주시며 격려해 주셨다.

 
이후 왜 큰스님께서 느닷없이 백수자인가 물으셨는가 하고 의문이 들어 생각해보니 통쾌한
한생각이 떠올랐다. 큰스님께서는 수많은 납자들을 제접하시니 누가 누군지 잘모르실 것이다.

웬 수좌가 제법 아는 소리를 하는 것 같으니 저 수좌가 내게서 화두를 탄 수좌인가 싶어
넌즈시 정전백수자를 줄여서 "백수자인가?"하고 던진 것을 나는 "봉수좝니다"라고 답했던
것이었다....  나의 초심시절 그 풋풋한 구도열기로 돌아가고 싶구나..... //

 

 

그 선사가 깨쳤다는 법문을 인용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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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날 화두를 깨치고 당당하게 은사(당시 유명한분)에게 인가받으러 갔답니다.
몇가지 문답후에 '일면불 월면불' 에 막혀서 다시 토굴에 들어가 3?년후 어느날
벽을 박차고 나와 거량후 인가를 받고 전법게송까지 받았다는것으로 기억 됩니다.

 

문자 해득도 못다해서 다시 3년을 더하고 '월면불일면불'을 깨쳤다니 결국
두번에 깨쳐 글자의 낙처는 알았으니 지혜가 열린 慧眼은 인정하겠습니다.
그러나 그나마 열린 지혜마저 문자에 파묻혀 빛을 잃었으니 기약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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解)
사료간은 그런데로 살폈는데, 납자 제접은 참으로 엉터리 입니다.
결국 손님은 커녕, 주인도 살피지 못함이로다.

 

雲起滅相을 살피며 全機大用 한다던 자재함은 어데로 사라지고
납자를 붇들고 엉뚱한 돈점타령이란 무슨 말인고

본래 개도 안물고갈 마른장작 던져주고 그곳에서 싹이트길 기다리니
百年河淸이라.

 

그나마 납자가 '백수좌' 물음에 입을 열고 '봉수좌' 라 답할때,   찰라!! 그때가 기회였는데,,,
봉사가 어찌 살필수 있으리오, 열심히 하라 격려했다니 무엇을 열심히 하란말인가!!

 

납자가 나에게 왔다면
바로 멱살을 잡고 숨구멍을 막아줘서  납자 스스로 숨통을 열게 하였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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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글을 보는 납자여,  아직도 숨구멍 막은 낙처를 모르겠는가?  물러가라..

 

거짓 조사여,

임제의 사료간을 해석할때는 납자가 주장자를 받으려는 찰라 믄득 납자를 때렸다 하면서

어째서 납자가 '봉수좌 백수좌' 할때는 벙어리 였던가?

문자는 풀었지만 제접은 엉터리니 사료간은 말장난이 아니다!

 

몇철을 선방에서 보냈다는 그분 허물이 아니고,  눈먼 조실들의 허물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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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료간

 

길은 멀었는데, 길이 막혔구나

말길은 여우굴 같은데 法의 길은 끊혔으니
누가 막았던가

본래 法에는 길이 없지만, 榜과 割이 막았도다!!


수많은 조사들이 見性의 낙처를 모릅니다.
如來出現을 모르니 선재동자가 하는일도 모릅니다.

견성하고 홀로 높은곳에 자재 한다는것은 스스로 앉주 한것입니다.

見性을 했으면 이제부터 性品의 실참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즉 선재동자처럼 세속으로 나와서 천민 양반 수행자등 다양한 사람을 만나면서
그들의 行을 살펴야 합니다.

 

경허스님의 솔직한 고백처럼
나의 성품이 부처의 성품과 같다는 이치는 알았지만
무시이래 쌓은 습기는 단박에 벗어지지 않는구나
바람이 멈춘것은 알았지만 파도가 멈추지 않으니/ 하략,  이것이 첫문인 慧眼입니다.

 

유명한 '참선곡' 비슷할뿐 핵심 골간은 아주 잘못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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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속의 자연(自在)을 살펴야 합니다.

즉!!
술장사 십년이면 여럿이 와도 누가 술값낼 사람인지 단박에 알아본다 하고,
백정을 만나보면, 백정의 칼솜씨가 능숙하여 피한방울 안흘리고 소를 잡는다하고
뱃사공을 만나보면 바람만 봐도 파도가 일어날지 단박에 안다하고,
목수를 만나보니 나무만 봐도 어데쓸 재목인지 바로 안다 합니다.

입법계 방편설법이 무엇을 뜻하는지 모르고 52명이니 53명이니 사람 숫자만 헤아리니

기가 막힐 노릇이라,  

숫자가 중요한것이 아니라, 지혜(문수)검증을 다시받고, 언제 보현보살을 만나 如來를 보려는가..

 

견성자여, 지혜자여!
소잡는 기술을 지혜로 할수 있는가? 성품으로 기와집을 지을수 있는가?
허잡하고 알량한 지혜를 버려라, 智慧도 버려야 하거늘 하물며 知識이랴~~!!

 

지혜가 확실히 열리면 문수보살을 만나야 합니다.
문수보살이 가르쳐 줍니다. 선재동자를 가르치듯 (入法界)법으로 들어가는 길을...
어느날 보현보살을 만날수 있으니,  노사나불의 청량한 법문이 화장세계 로구나

아~ 길고긴 旅程이여 십지보살도 모르는 곳 이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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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산천을보라!

들판에 풀잎은 스스로 돗아나고

제비는 길없는 하늘길 만리를  날아서 강남을 간다.
연어는 수만리 풍파를 헤치며 고향 하천으로 돌아오고

草木은 눈이 없어도 태양을 향하는데, 아직도 판치생모를 모르는가. 

 

智慧者여, 세상 만물중에 너만 못한게 어데 있던가! 일체 만물이 부처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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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가 열려 初禪에 든자나, 天眼이 열려 性品을 아는 보살들아~!
이제부터 그대는 만나는 사람마다  "당신은 부처입니다" 하는 상불경보살처럼
보살도를 행하라! 십지보살도 모르는일을 너희가 어찌 안다고 방일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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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존께서 제자들을 잘 가르친후에 말귀를 알아들었는지 시험을 하십니다.
"제자여 산으로가라, 가서 약풀이 아닌것을 캐오너라"

온산을 헤메고 헤메어도 결국에는 빈 망태기를 들고와서 세존이시여,
약풀 아닌것이 없습니다. 옳다 옳다, 본래 그러하니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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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를 잘해서 지혜도 있고, 법의 성품도 잘알고 이치에도 밝았지만
현상계는 지혜나 지식으로 분별하는곳이 아니라는 실체를 스스로 확인하도록
가르친것이 법화경의  약초비유품 입니다,  

 

自在는 無智無得이니라. 더 알고 싶은가, 自在는 無眼耳鼻舌身意 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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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화경은 성문, 연각, 보살들에게 성불의 길을 가르쳐준 말씀입니다.
욕계부터 비상비비상처 까지 삼계가 화택 인줄 모르고 아직도 모르고 안주하는
세부류 수행자들에게 안주하지 말라고 각각의 보물로 유혹합니다.

 

모든 대승의 경전이 그러하듯
법화경, 화엄경은 특히 문밖의 사람에게 가르친 말씀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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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을 휘두르며, 殺活自在를 아무리 떠들어도 그칼날에 죽고 살사람이
없습니다, 자신의 손만 베일뿐, 과보를 생각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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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올바로 보이지도 못하면서, 거량이나 문자로 납자를 제접치 말라!
스스로 속세로 나아가 自在를 살펴보라, 自在는 말이 아니고 照見! 이로다!

보여줘도 묻지 못하면서 어느 세월에 스스로 밝히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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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31일 추가

이해가 미진한 분을 위하여 사료간을 다시 설명하지요.

 

사료간이란

납자를 맞이 하였을때, 납자의 수준을 감파하여 그 에게 알맞는 법문을 하기 위함이니

납자가  현재 어느곳에 걸렸는가? 어데까지 알고 있는가? 를 살피는 과정으로

견우, 목우, 인우구망, 반본환원,  즉 禪定으로 납자를 살피고 이끄는 방편 입니다.

 

사료간 해석을 慧眼으로는 조금 힘들수 있지만 가능합니다. 화두타파 하여 글자 풀이는 명석하지만

정작 납자가 찾아 왔을때는  봉사와 다름없기에 납자의 근기를 볼수없어서 되나 가나 마른장작 같은

화두를 주고 정진하라 하니 납자는 더 묻지도 못하고 어정쩡 물러나와 겨우 누구 만났다는 명색만 남지요.

다시 찾아갈일도 없고,  누가 속시원히 가르쳐주지도 못하기에 티벳, 스리랑카, 인도 등으로 부지런히

헤메고 있으니, 허물이 어데 있는가? 일체법은 온곳으로 돌아가니 허물은 삿된 조사로 돌아갈뿐이로다

 

그러다가 혹여 똑같이 혜안 이라도 열린 납자가 찾아오면 거량한다고 서로 글자풀이 문답으로

도토리 키재기 하다가  혹, 자신의 뜻에 안맞거나 수준이 다르면 아니다, 삿되다 방망이 질 이나

하니 거량 하러 가기전에 태권도나 검도라도 배워서 가야할 판이라, 마치 祖師禪이 완력禪 이되어

서로 뱃짱 시험하는지 완력을 방패삼아 여우굴로 몸을 숨기니,  그나마 실낫같은 법맥마저

방과 할이 끊어 버렸느니라.

 

세존께서 말법세에 삿된 무리들이 나를 빙자하여 법을 가르친다 하였으니 그때가 어느때 인가?

 

다시 사료간으로 살펴봅시다.

수보리는 금강경을 이해만 했지 아직 금강경을 모릅니다.

왜그런가?   금강경 여리실견분 에서  '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 했을때...

바로 앗~! 하고 벌떡 일어서면서   '아~~ 일체중생이 부처 아님이 없습니다!' 하던지,  

'앗~~ 번뇌가 끊어졌습니다!' 했다면,  여리실견 금강경을 본것이 되는데, 수보리는 이때

 

'수보리 백불언 세존 파유중생 득문여시 언설장구 생실신부' [누가 이말을 믿겠습니까?]했으니

이말은 자신은 이말을 이해 하겠는데, 다른 사람은 이해 못할것이다. 卽 남을 의심 하는것 입니다.

 

마음을 돌려 자신을 보아야 卽見如來가 되는데, 듣는순간 我相이 일어나서 남을 살핍니다.

이해 한것은 글자요, 글자를 버리고 理解했다는 悉의 本體,  바탕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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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보리에게 다시 수기합니다. [이상적멸분 十四]

수보리야, 다음 세상에 선남자 선여인이 이경을 듣고 놀라지 않고 받아 지니고 읽고 외우면 여래는

부처의 지혜로 다알고 보느니, 이 사람은 헤아릴수 없고 가이없는 공덕을 성취할수 있을것이다.

 

고로 금강경은 법을 가르치고,  법으로 가는길을 가르치고,  다음 세상의 여래출현 까지 수기 하셨기에 

금강경은 여기서 끝내도 아무런 허물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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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사료간으로 사리불을 보니,  사리불은 아미타세계를 전혀 모릅니다.

사리불아 이세계 공명의 뭇새(自然)들이 죄업으로 왔다고 생각 하지말라, 아미타 세계에는 삼악도가 없단다.

 

사리불이 이 말이 떨어지기전에, 앗!~~ 하면서 세존이시여,  착각 했습니다!. 業이 業이 아닙니다!  하던지

아니면, 아~ ! 온 세상이 빛의 화현이로구나~!! 했다면 세존은 법문을 중단하고 곧바로 禪定으로 들어갔을겁니다.

 

사리불이 못알아 들으니까 답답해서 다시 반복해서 설하시기를

이 세계 새들은 五根(안이비설신)의 분별없는 지혜(五力)로 일곱가지 보리분법 과 여덟가지(八正道)법문을

연설하기 때문에 그세계 중생들은 그소리를 듣고는 다 부처님을 생각하고, 스님(아라한)을 생각하느니라.

[이말은 위에 설했듯이 선재동자의 구도행이요 약초비유품 과 같습니다]

 

즉 사리불이 지혜가 출중해서, 지혜가 있다는 我人相(보특가라상) 때문에 아미타불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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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같이 사료간이 틀림 없다면 납자 제접은 물론 유마거사 처럼 십대제자도 제접할수 있어야 합니다.

인우구망 반본환원 이렇게 확실하면 如來地에 든것이니, 거량 없이도 바로 드러나기에 역대 전등조사는

물론이요,  글자 한자라도 남긴것이 있다면 여래의 눈을 속일수 없기에 모두 간파 당합니다.

 

見牛, 得牛까지는 많은 조사들이 도달했습니다. 그러나 牧牛(입법계품, 또는 여시항복기심)를

모르기에 인우구망 반본환원 에 도달한 조사는 눈을 씻고 찾아도 귀합니다.

어떻게 알수 있는가?  인우구망 반본환원 의 해석들이 모두 잘못됐기 때문입니다.

 

인우구망 과 반본환원은 따로 따로 거치는 경계가 아니고 동시 상황입니다.

싯달타 가 새벽에 별 보는찰라!  나와 별이 동시에 사라지고, 동시에 다시 환원 됩니다

찰라간에 業이 사라지고 본체만 남습니다.  이때 찰라라는 속도는 빛과 같습니다.

즉 諸相非相,  無實無虛,  현상계에 눈을 못떳다는 증거지요.

 

고로 아미타의 화현이란, 아미타가 빛의 照요,  화현이 用(作用)이며,  이것이 照用同時의 현상계입니다.

즉 빛과 힉스입자가 동시 출현과 같으며, 이때가 반본환원이며, 이것을 반야지혜라 하고, 반야지혜란  

보고 듣기전에는 아무것도 모르는 無智이지만,   보고 듣는 찰라에 간파하는 지혜를 말합니다.

 

반야심경을 다시 떠올리면,

물질이란 지수화풍 을 말하는데, 지수화풍은 빛의 작용 입니다.

빛은 스스로의 질량이 없는데, 業(習)이 질량을 부여 합니다.

입자가속기와 같이 빛이 충돌하는 순간 질량을 부여하는 힉스입자(가설의 입자)가

곧 習입니다. 똑같이 청정한 빛에 씨(因)를 던집니다. 빛에는 業이 없습니다.

業이 벗어지면 깨끗한 본체의 無智無得의 빛만 남는 아미타 세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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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得牛가 두번째 관문으로 성품을 보는 見性 인데, 이것을 끝으로 착각해서 牧牛를 모릅니다.

牧牛가 위 설명한 약초비유 와 같이 세속에 나와서 미천한 사람도 훌륭한 사람도 차별없이 똑같다는

자연의 이치를 터득하는것이 마음 길들이는(여시항복기심)목우인데, 그것을 중생제도로 착각하니

누구를 제도 합니까?  반본환원 이면 제도할 중생없고 제도받은 중생도 없으니

여래가 법을 설한바가 있다면, 부처를 비방 한것이 되느니라,  왜 그러한고 하니

본래 法이란 無法(법이 없음)을 法이라 하는데, 무엇을 설했단 말인가? 

수보리야 자성은 청정하여, 자성에는 중생이 없다,  고로 일체중생이 실유불성 이니라.

중생이란 오직 생각에 있을뿐이니, 중생이란 생각을 벗어버리면 중생이 아니니라

 

자성중생서원도, 자성번뇌서원단, 자성법문서원학, 자성불도서원성.

견성해야 自性을 알고,  自性을 알아야 구제할 중생이 나 라는것을 비로서 깨치니

자성의 번뇌를 완전히 끊고 자성의 불도 이루기를  서원하라!

 

나를 보여드리지요

참선한다고 단 하룻밤도 새워본적 없으며, 공부 하겠다고 법화경 화엄경 全文을 본일도 없으며

경전 이라고는 겨우 천수경, 금강경, 그외 세존께서 무엇을 가르쳤는가 확인하기 위하여 초기경전

으로 기초교리 밖에 본적 없습니다.  거기서 터득한 가르침은 기복도 아니요, 신통도 아니요,  오직

解脫이라는것을 믿으며,  항상 ["내가 부처라는데, 어째서 나는 확인이 안될까" ]만 생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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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당 삼존불 앞에서는 엎드려 절을 하면서도 '내가 곧 너로다' 만 생각만 했을뿐 나와 다르다는 생각으로

바라보지 않았습니다. 나를 잃깨운 스승도 나를 간파 못하니 이길은 참으로 쉽고도 어렵습니다.

지금 여기에 인용하는 경전은 흔히 회자되는 제목 또는 한 두줄의  글귀를 보고 풀어드릴뿐 입니다. 

 

불자 들 이여,

수보리 처럼 是名衆生을 가르친 세존의 말씀을 믿지 않기에 수많은 경전을 뒤적이는것이요,

선남자 선여인,  선재동자 라는 문자의 낙처를 모르기에 되나가나 화두들고 앉아 있는것입니다.

 

다시 가르쳐 드리니 깊이 새기십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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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이 깨끗해야 마음이 밝아지고,   마음이 밝아져야 지혜를 얻습니다.

지혜가 생겨야  길을 찾을수있고,  길을 찾아야 도를 이룰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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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과 마음이 깨끗해지면 계를 더욱 잘 지켜야 합니다. 이것이 보살계 입니다.

이는 마치 흰옷은 더러움에 물들기 쉽고, 이미 더러운 옷은 흙탕물이 묻어도 표가 잘안납니다.

자성을 확연히 알고  불수오염이 되지 않으면, 동사섭 보살행 한다고 진흙속으로 가면 안됩니다.

구제는 커녕 오히려 더러움에 물들어 인과에 휩쓸릴 뿐입니다. 수행자는 끝까지 惡人遠離 하라!

 

이것이 세존께서 가르친 사행사과요,  사무변처요,

조사의 사료간 이요, 육조 혜능의 개시오입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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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존께서 대기설법 하시고 다시 선정으로 살피니 제자들이 방금전의 법문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이에 제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하여 다시 제자를 부르십니다.

공을 설했는데 이해가 미진하여, 공의 이치를 제일 많이 이해한 수보리를 상대로 설하십니다.

 

또 일체 중생이 실유불성이라 했는데, 살펴본니 제자들이 전혀 이해를 못합니다.

이에, 지혜가 많아서 말귀가 열린 지혜제일 사리불을 대상으로 아미타경을 설하십니다.

 

즉, 오전에 한가지 법문을 하시고 살펴보니 제자들이 미진하기에 다시 오후에 불러 모으십니다.

대기 설법후 미진한 제자에게 손에 쥐어 주듯이 설법한 경을 요의경 이라 하고

 

사료간(사선정)으로 살펴서 제자들에게 가르칠 때가 되었다고 판단하시고

흘러가는 말끝에 실체를 찾으라고 설 하신것이 불요의경 입니다.

고로 '불요의 경'  은 지혜가 출중해야 알아 들을수 있기에 사리불을 대상으로 설합니다.

 

이래서 모든 경전은 앞뒤가 서로 연결되고 보충되어 모두 한길로 통합니다.  

요의던 불요의던 모두가 무유정법의 방편설법 입니다. 대 소승경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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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글 쓰면서 요의와 불요의가 무엇인지 인터넷을 살펴보니 간단한 답을 왜 그리 복잡하게

해석 했는지,  세존께서 다시와도 '난 모른다,  그렇게 가르친적 없다!'  할것입니다.

 

스스로 부처라는 가르침만 확실히 믿는다면  말과 글자는 무엇이던 버리십시요!.

이런 글자도 버리라는 뜻에서 破字 하는것이지 보고 익히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草觀님의 블로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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