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진등 草觀(마음이 머무는 곳)

참선하는 자들에게 임제의 3현3요

통융 2017. 10. 13. 18:18

참선을 알고자 하는 사람을 위하여

 

참선을 위한 지침서는 헤아릴수 없이 많습니다.
안내서가 부족해서 안되는것도 아니요, 글자가 모자라 못하는것도 아닙니다.
또 그러한 방법에 의하여 화두를 깨친이도 없고, 그 책을 지은 사람도 깨치지 못했습니다.

 

얼마전 지리산 어느 선방 스님들이 참선에 관하여 토론 하는것을 불교TV 에서 보았습니다.

주제는
2500여명의 스님들이 안거때마다 용맹정진 하는 나라는 불교국가 중에서 유일하게 우리나라
뿐이며 이는 부처님 가르침을 따르는 가장 올바른 수행법 입니다. 그러나 돌아보면 이렇게
수많은 스님들이 이와같이 정진 하면서도 아직까지 見性 했다는 사람이 나오지 않는다면
방법에 문제가 있거나, 아니면 정진하는 스님에게 문제가 있는것 아닌가? 하고
자문, 자탄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맞습니다. 작금의 화두 방편이 어긋났습니다."


참으로 인간은 영특 하면서도 無知합니다.

외국에서 어느 목장 주인이 소를 지키고자 넓은 목장에 견고한 울타리를 하자니 돈이 너무 많이
들기에 생각해낸 방법이 목책 따라 노란색 전선줄을 두루고 전선에 전류를 흘렸답니다.
울타리를 넘으려던 소들이 노란색 전기줄에 감전되어 깜짝 놀란후 부터는 두번 다시는
노란색 줄만 보아도 두려워하며 접근하지 않아 소 를 안전하게 지킬수 있었다 합니다.

 

짐승은 두번 속지 않건만 사람은 영악하여 의심 하면서도 혹시나 하면서 반복하며 속습니다.
그러나 진, 망이 본래 공적하듯, 짐승은 두려웠던 경험 때문에 단념해서 안되고,
사람은 속으면서도 계속 도전하는 마음 때문에 끝내 성불할수 있습니다. 고로 정진하십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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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제의 三玄三要 를 해설하기 앞서
임제의 四料揀과 三玄三要를 모르면 소경과 같아서  法門은 커녕 납자도 제접도 못합니다.
즉 확연히 모르면 法門에 果가 따릅니다. 강의,  강설이라 하면 괜찮습니다.

 

三玄三要에 대하여 무비스님의 강설을 인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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師又云,
一句語에 須具三玄門이요
一玄門에 須具三要니 有權有用이라
汝等諸人은 作麽生會오 下座하다

 

임제가 말하길
“한 구절의 말에 반드시 삼현문이 갖춰져 있고,
일현문에는 반드시 삼요가 갖춰져 있어서 방편도 있고 작용도 있다.
그대들 모든 사람들은 이것을 어떻게 이해하는가?” 하시고는
법상에서 내려오셨다.


한마디 말에는 반드시 삼현문이 갖추어져 있다.” 라고 했는데
그 三玄이란 현중현(玄中玄)과 구중현(句中玄)과 체중현(體中玄)이다.

 

현중현은 말 그 자체로서의 진실이다.
구중현은 말의 인식 위에 나타나는 진실이다.
체중현은 말의 실천 속에 나타나는 진실이다.

이러한 세 가지의 경우가 한 마디의 말에 다 포함되어 있다는 뜻이다. [해석이 틀렸 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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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說합니다

진리(진실)를 세가지로 보일수 있으니, 하나는 寂 이요, 둘은 말(법문)이요, 셋은 보임(見)이로다.

 

다시 풀면,
진리가 身, 口, 意 에 있다는 뜻으로

體(身)는 손가락을 들어 가르키고,   口는  말귀句 즉 句란,  입으로 法門하고,   玄은  禪定에 들어 침묵(寂)합니다.

 

다시

玄은 意요,  句는 글자 대로 말(口) 이요,  體는 (身몸)을 가르킨 것입니다.

무비스님이 글자 의 자구만 해석 했기에, 말의 낙처가 없는 공허한 해석이 됐습니다.
문자의 낙처를 살펴야 가르침의 본뜻을 알수 있으니 원리전도몽상 해야 글자가 보입니다.


 

三玄三要을 다시 가리키니 문자를 버리고 實로(체득) 확인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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玄中玄 : 玄 가운데 玄이란, 말없는 가운데 진리가 있으니, 寂!(禪定)을 말하는 것으로
설사 말을 하였다 해도 말한바가 없으니, 如來는 본래 오고감이 없듯이 말도 이와 같음이라.
如來의 말은 본래 空寂하여 말한바가 없습니다.
[如來가 설한 法이 있다면 여래를 능멸함이니 여래는 한마디도 설한바가 없느니라/금강경]

 

납자의 질문을 침묵(寂!)으로 答하여 상근자의 눈을 열어주려 함이니 榜과 割을 쓸때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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句中玄 : 말가운데 玄(진실)이 있는것으로, 말로서 말길을 끊어 진리가 드러나게 함이니
납자를 언하에 깨침으로 이끄는 방편으로 말과 진리가 하나로 계합됨을 보인는 것이니라.

 

납자가 의정에 든것을 보고, 그에 알맞는 一句 法門으로 납자 스스로 깨치게 하는 방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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體中玄은 말가운데 실천이 아니라, 말이 몸(空)에서 나와 몸(空)으로 돌아가기에 몸과 말이
다르지 않음을 보여 '몸 가운데 마음이 있다'  色卽是空, 즉 空을 體(몸)로 보이는 것입니다.

 

주장자를 들거나, 손가락을 세워 보이니 '體(몸) 가운데 玄(진리)을 보라'는 방편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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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 사료간으로 납자의 근기를 살피고, 삼현삼요로 납자를 이끄는 조사의 자비입니다.

 

다시 말하면 색즉시공 공즉시색  수상행식역부여시' 의 총체적 진리를 설한것입니다.
몸이 공이요 공이 몸이니, 몸 따라 일어난 수상행식(감수작용)이야 당연히 空하도다

色(몸 )이 곧 수상행식(마음)이다!

 

몸과 말과 마음이 모두 空寂하니,  身이 體요,  말귀句는 口(입)이요,  意(마음)는 玄 이로다.
셋으로 나누었으나 본래 한물건도 없지만 납자를 위하여 가르침의 방편으로 보인것이니

 

三玄三要를 모르고 는 法을 설하지 말것이며, 납자도 제접치 말라! 지옥이 코앞에 있다.
살펴보니 봉사가 주장자를 들고, 귀 먹어리가 割을 외치도다. 果가 따르니 조심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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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두 깨친후 부터가 참선이고, 그 이전에는 좌정(앉아 있는것)입니다.

수많은 세월동안 죽은 화두에서 생명의 싹이트길 기다렸으니
공연한 헛고생으로 몸만 고달플 뿐이로다.

내 다시 가르치니 기존의 방법과 방편을 모두 버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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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화두를 버려라!.       삼세근, 정전백수자, 無자등, 죽은 송장위에 앉지마라.
가부좌에 목매지 마라!.    몸이 경직되면 생각이 굳어지니 병을 만들고 키울뿐 이로다.
장소에 구애받지 말라!.    고요한곳을 집착하면 마음이 침잠되어 착각禪(無記)에 빠진다.
몸을 피로하게 하지마라.  몸이 곧 마음이니 몸이 피로하면 마음도 피로해 번뇌만 치성해진다.

 

석가 세존처럼 우유죽은 없으나
음식을 적당히 먹어 배곯치 말고, 잠도 육신이 피로하지 않도록 적당히 자고,
몸과 마음의 긴장을 풀고 心身이 편안한 곳에서 자유로이 思惟 하라.

 

무엇을 思惟 하는가?
지금 눈앞에 보이는 사물이 진실한가? 무어라도 좋다.  늘상 접하는 풀, 나무,
산, 달, 별, 등 실체적 모양이 있는것을 觀하며 발견할때 까지 사유하라.
 
지금 들리는 소리는 어데서 오고 어데로 사라지는가? 파도소리, 새소리, 풍경소리, 등등
실체적 모양에 의지하여 생겨나는 소리를 끝없이 사유하라.

 

실체없는 모양은 마구니의 변화신이니 환각을 주의하라    (약이색견아)
모양없는 소리는 귀신(마구니)소리니, 환청을 주의하라.    (이음성구아)

 

다시,

현상계는 일체가 허망한 것이니 현상(對相)에 의지하지 말라(범소유상 개시허망)하셨고
일체 현상이 幻 이고, 그림자고, 거품이라 했는데, 내 눈에는 왜 그렇게 안보이는가?
왜? 왜?....

 

발견 될때까지 끝없이 궁구하라
어느날 일체의 형상에 경계가 없는, 모양이 모양이 아닌 如來를 發見하고 볼것이다.
금강경은 즉견여래(여래보는)방편을 제시했고, 후오백세에 여래출현을 수기한 경전입니다.

 

다시 말합니다.
화두가 열렸거나, 염불삼매를 체득한 知慧者, 상근자는
지금 그대 가까이 보이는 어떠한 물체라도 지속적으로 바라보면서 궁구 하십시요.
미련할 정도로 우직하게 살피십시요. 끝없이 끝없이 눈앞에서 발견 될때까지...

 

발견 되었으면 찾으시오.(구두선사는 피해야 합니다. 그들을 만나면 오히려 때를 묻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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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외 분들은 재가자 출가자 공히 주변에 연관된 인연의 현상을 살펴야 합니다.

재가자는 가족 친척, 직장등 주변 사람을 살피고, 출가자는 은사, 도반, 문중 등을 살펴야 합니다.

 

1) 남이 나를 괴롭히는 인연    2) 남이 나를 도와주는 인연
3) 내가 남을 괴롭히는 인연    3) 내가 남을 도와주는 인연 들을 잘 살펴야 합니다.

 

이 네가지가 선악이 교차하는 분별심 입니다. 선과 악이 밖에 있는것이 아니라 내 안에 있으니 왜그런가?

惡을 惡으로 갚지말고  善을 善으로 갚지말라!

惡緣은 慈悲로풀고  善緣은 법계로 회향하여 功德이 되도록하라

 

惡緣을 향하여 참회를 하고, 善緣은 회향을 하여 보답하려 하거나 마음에 담지 마십시요
善 惡에서 자유로워 지도록 양쪽을 모두 버려야 합니다. 고로 참회기도 없이는 않됩니다.

 

부모도 버리고 출가한 사람들이 말로만 인연을 끊는다 하지말고, 실체적 인연을 끊어야 합니다.
번뇌를 자른다고 머리 열씸히 깍지말고 실체적 번뇌를 끊어야 합니다.

번뇌가 모두 인연에서 생겨나니, 그 원인이 報 怨으로 엮여진 사람과 사람의 관계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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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어느날 인연의 苦 사라질때 믄득 無我相 체득 합니다. 내가 없으면 苦가 없습니다.
   첫소식으로 알긴 알았는데, 다시 괴롭히는 대상을 만나면 또 다시 괴로워집니다.

 

2) 더욱 정진하면 나를 괴롭히는 대상이 사라지는 無人相(남이없는)을 체득합니다.
    일체 대상이 텅비어  淸淨한것을 봅니다.  이것이 성품을 본다는 見性 인가 봅니다.

 

나는 見性 이라는말  안씁 니다. 見性이란 말은 낙처가 불분명하여 후학들이 혼동합니다.

사실 육조가 말한 見性은 法을 보는것을 말하는데,  후학들이 화두 깨친것을 見性으로 착각하기 때문이지요.

세존께서 법문하실때는 극히 미세하고 세밀하게 설하십니다. 팔만경전에는 낙처가 불분명한 용어가 없습니다.

 

3)  더욱 정진하면 나와 남이 사라져 중생이 없는 無衆生相을 체득하는 '인우구망' 사람과 소가 사라집니다.
    '비상비비상' 양변을 벗어나 구경각으로 착각 하지만,  아직 因果에 걸립니다.  이제 法을 보고 압니다.
     아직 法에 걸려있으니 '法도 버려야 하거늘 법 아닌것이랴!' 法尙應捨何況非法/ 금강경
  
4) 더욱 정진하면 生死가 없는 無壽者相을 체득합니다. 生滅 (生死) 없는 '卽見如來' 입니다.
   '구경열반' 구경은 얻는것이 아니고 일체를 해체하여 벗어 버리는(던지는) 涅槃 입니다.
    무엇이 오온의 집을 짖는지 확연히 봅니다. '산하대지가 현진광이로다' 반본환원
    화엄을 보고 알아야 화엄에 걸리지 않으니  집짖는자가 무엇인지 보아야 비로서
    긴 여정을 끝내니 法도 버리고 고요히 쉽니다.(안좌여시국토해 시명비로자나불)

 

 

수행은 세존 당시부터 화두로 가는 방편과,   인연으로 가는 방편이 모두 있었습니다.

 

간곡히 說하니 명심 하십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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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중에 나도는 참선 교과서에 화두 참구하기를
마치 고양이가 쥐잡듯 하라,  또는 배고픈자가 밥을 찾듯하라 했습니다.

 

이렇게 가르쳤기에 참선 하면 신경이 날카로워져 남과 시비가 많고,
너무 긴장하고 애쓰기에 몸이 피로하여 병도 생깁니다.

또 참선 했답시고,  안거 횟수가 무슨  자량인양 아상만 키워서

부처님 가름침의 근본인 자비의 싹 마저 죽이는 꼴이 됩니다.

아주 심하게 틀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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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집중! 
집중! 집중! 

이제부터  문자를 눈으로 보지말고   몸으로 보라!  體中玄 을 하라


고양이가 쥐를 잡는것도 아니고,  안 잡는것도 아니다!    알겠는가? ~~     割!!

배 고픈자가 밥을 찾는것도 아니고, 안 찾는것도 아니다!     알겠는가? ~~  割!!

 

(......)? 
(......)?
(......)?

 

세번을 기다려도 답이 없구나...  쯧 쯧..
그대가 진실로 참구 하였다면 방바닥을 차고 일어났을 것이다.


혹시 확인한자는 답을 하라!       보았는가?  알았는가? 천지현격이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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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실망말고
어떻게 해야 쥐를 잡는것도 아니고, 안잡는것도 아닐까?  끝없이 밝혀보라.


세존께서 어느날 참선하는 제자들에게 이르시길

제자들아 거문고 소리가 잘나게 하려면 거문고 줄을 너무 당겨도 않되고
거문고 줄을 너무 느슨하게 풀어도 안되니라~~ 

이 뜻을 알겠는가?  寂!

 

세존이 제자들에게 던진 화두인데, 문자로 이해 하기에 거문고 소리에만 매달립니다.
마치 달을 가르키는 손가락을 붇잡듯 참으로 어리석은 짓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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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선으로 화두깨친 사람이  묻는 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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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롭습니다. 어찌하여 전보다 분별심이 더욱 치성해 지는지 모르겠습니다.
옳고 그름이 너무 잘보여서 참을수가 없어 다른 수행자들과 시비가 일어납니다.

 

맞습니다.
거량역시 도토리 키재듯 납자간의 부닥침 입니다. 서로 이기려고 문자를 나열하며
문답을 하지만, 확연하면 묻지도 않고, 일체현상에 의문이 없기에 초연해 집니다.

왜 그런가 알려드리지요.

 

비유하면
어두운 방에 있으면 방안의 먼지가 전혀 안보입니다. 어리석은 無明이지요.
어느날 지혜가 열리면 마치 창틈으로 지혜의 빛이 비취듯 구멍을 타고 들어오는 빛 속에
그동안 안보이던 먼지들이 자욱히 보입니다. 조금전 모를때는 숨을 편히 쉬었는데, 이제
먼지를 발견하니 가슴이 답답하고 숨을 자유로히 쉬지 못합니다. 오히려 모를때가 편했다고
하기도 하지요. 관을쓰는 초지 보살, 흐름에(예류과)들었습니다. 이제 참선의 시작입니다.

더욱 정진하면 사방의 벽이 무너져 전체가 밝아지니 먼지가 다시 안보입니다.
사천하가 맑고 밝아 淸淨이라는 見性입니다. 그러나 먼지는 여전히 있습니다.
이곳에 당도 하여도 아직 是非가 있습니다. 광명당 보살등 빛으로 화하는 보살들과 허공에
공양하는 보살등, 십지보살 까지 여기에 해당됩니다.

 

또 비유 하자면

때가 시커멓게 묻은 더러운 옷을 깨끗하게 빨아입고 길을 나섭니다.

때가많아 시꺼멓고 더러울때는 흙바닥에 딩굴어도 편했고, 진흙탕물이 옷에 튀겼어도

더러운줄 몰랐습니다. 그런데 옷을 빨아 입고나니 작은  흙탕물 한방울만 묻어도 단박에

표가 납니다. 옷이 더러워질까봐 조심하는데도 어느새 때가 묻어있습니다.

 

수행이란 이와 같습니다.  맑아지면 더욱 드러납니다. 見性者는 보살戒를 더욱 잘지켜야 합니다.

見性 이라는 淸淨을 알고나면 더욱 분별심이 극심해 집니다. 아마 혜가가 여기에 머물다 달마를 만났을겁니다.

분별심이 치성하다고 실망말고, 의심말고, 남과 시비말고, 분별심을 안으로돌려 더욱 깊은 확인을 하십시요.

 

 

見性, 성품은 淸淨 하지만, 청정가운데 낫낫의 티끌(인과의 화엄세계)들이 산재합니다.

낫낫의 티끌(일체만물)과 시비하지 않아야 하기에 노사나불의 보살계를 지켜야 합니다.

空한 性品은 보았지만, 空한 性품이 오온의 집을 이루니 아직 집짖는 자는 발견 못했습니다.

 

온전히 是非에서 벗어나려면 번뇌가 끊어져야 하니,  이때가 妙覺의 卽見如來 입니다.
初禪은 소식이요, 二禪은 見性이요, 三禪은 生涅槃(여래가 세상에 머물때 하는 열반락)이요,
四禪은 如來가 入滅할때 하는것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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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성자는 시비를 버리고 일체를 안으로 돌려서 오로지 자신만 觀하며 단막증애 하라!
오로지 내눈에 든 티끌만 걱정할 뿐,  남의 눈에 든 태산같은 허물은 보지마라!

이것이 견성자의 정진이요, 세분하면 팔정도요. 달마의 四行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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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고

흔히 납자들이 수십 안거를 해도 화두하나 깨치기 어려운데 하물며 재가자로서

한달에 한두번 또는 잘해야 하루에 한 두시간 앉는다고 화두가 열리까요?

 

참으로 사람 몸받는 맹구우목 보다 더 어렵습니다.

그런데도 그렇게 하라고 가르친다면 가르치는 자가 더 어리석을수 밖에 없습니다.

 

수십년 절간에 살아도 안되는데, 가끔 절간에 들려 기도한다고 성불될까요?

돌이켜 볼줄 알아야 잘못된것을 반성하고 찾을수 있듯이 빨리 되집어 봐야 합니다.

 

절간에 사는것은 고사하고 절을 머리에 이고 다녀도 안되는것은 안됩니다.

불상을 부숴야 합니다. 의지처를 잃어야 홀로설수 있습니다.

절간을 부숴야 머물곳이 없어서 외로운 길을 떠날수 있습니다.

 

수없이 나고 죽으며 괴로운생을 거듭 하면서 수없이 출가도 하고.

목숨을 걸고 정진하여 아미타를 수없이 만나고도 生死를 벗지 못하고

보살계의 지중함을 몰라서 다시 옵니다.

 

사람이 죽을병이 들어 이약 저약 써도 낳지 않으면 지푸라기 라도 잡고 살려 하건만

납자는 백약을 써도 안되는줄 뻔히 알면서도 넌지시 던진 지푸라기 마저도 뿌리 칩니다.

 

그러나

실망하고 安住하면 안됩니다.  향상심은 잃지 않아야 합니다.

한 두번 소식보다  더 소중한것은 구도심, 향상심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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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는 자유평등 사랑을 외치면서 축배의 잔을 들고 만찬을 즐기고

원효는 무애박을 두두리며 무애행 으로 여자를 취하여 자식을 낳습니다.

 

술을 마시고 취하지 않는다면 마실일이 없고,  만일 마시고 취한다면 어리석음을 낳을것이다.

여자를 취하여 쾌락이 없다면 사정도 없으니,  쾌락 없으면 여인을 취할일이 없을것이요. 

만일 자식이 잉태 되었다면 쾌락이 있었으니,  육욕의 쾌락 으로는  수미산을 넘지 못하리니

노사나불의 보살계를 해득치 못한  십지 이하  보살들의 착각 입니다.

 

궁국에는 마왕의 군대와 일전을 벌여 마왕의 조복을 받고 항마촉지를 하여야 生死를 벗습니다.

 

마왕아! 그대의 힘이 아무리 강하다 하여도 내가 앉아있는 곳에 한발짝도 들이지 못할것이며,

수억의 군대로 나를 위협한다 해도 나의 팔뚝에난 작은 명털 하나도 움직이게 할수 없을것이다!

나는 두렵지 않다!.  나는 편안하다!.  나는 고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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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경전에 깨친자는 함부로 막행 하여도 괞찮다고 적혀 있는가!.

있는 자식도 장애로다 장애로다 버려야  하거늘 없는 자식을 만드니 

法도 버려야 하는데 하물며 法 아니것이랴    

 

法 이란  물질의 성품을 말하는것으로(법성게) 화엄연기의 세계 를 말하며

고로 法을 버린다 함은 화엄연기(윤회)에서 벗어나 생사해탈 (구경열반)로

다시는 오온의 집을 짖지 않는것을 말합니다.


<草觀님의 블로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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