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오돈수와 돈오점수의 논쟁은 보조국사의 정혜쌍수 이전 달마스님때로 거슬러
올라가야 합니다. 어쩌면 세존 당시로 거슬러 올라가야 할런지.. 성문 연각 보살
三乘이 모두 선정에 안주하여 정진하지 않았던 것은 세존 당시에도 그랬습니다.
달마의 二入四行論에서 二入이라는 글자때문에 道로 들어가는데 理入과 行入
두가지가 각기 따로 있다고 생각하는 것과 같습니다. 오해를 불식시키고자
이를 二와 理 두가지로 표기 했어도 오해는 여전합니다.
흔히 말하길 이입사행이란 道로 들어가는데 두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理致로 들어가고
다른 하나는 行으로 들어간다 하여, 理란 경전을 이해하여 부처님의 본뜻을 깨닳는 것
이고, 行入은 네가지의 실천을 통하여 깨달음으로 들어가는 것이라고 합니다.
다시 전합니다.
이입사행은 각각의 수행법이 아니고 두가지를 모두 다 완성해야 도를 이룰 수 있습니다.
理入이란 頓門으로 들어가는 것으로 아라한의 경계에 해당하고, 行이란 깨달은 아라한이
行하는 보살도(아란나행)요 팔정도입니다. 초전법륜시 오비구에게 팔정도를 가르쳤는데
훗날 제자들이 이해를 못하기에 팔정도를 단원별로 풀어서 가르쳤으니 범망경. 원각경등
의 모체가 되고, 초기에는 마음챙김, 비파사나 또는 사념처등으로 자세히 가르쳤습니다.
이와같은 팔정도를 이해하지 못해서 첫 단추부터 어긋납니다.
正見은 바로 볼줄 아는 지혜요, 정사유는 그것에 대한 편견없는 사유를 말합니다.
正語, 正命, 正業은 범망경 바라제 목차에 해장하는 십중대계를 축약한 것이요 정정진은
삼매와 마음챙김을 교차수행하라는 뜻이요, 正定은 원각(나가정,선나)를 이루라 입니다.
다시
理入이란 사마타의 空觀이요, 行이란 삼마발제관의 비파사나 또는 마음챙김에 해당합니다.
다시, 理入이란 寂觀이요, 四行이란 幻觀입니다.
다시, 조사들의 말을 빌리면 理는 止요, 行은 觀으로 귀결됩니다.
다시 理는 돈오요, 四行은 점수입니다.
미진한 조사들이 돈오와 점수가 각기 다른 것으로 착각하고 서로 다투니 한심합니다.
그러다 보니 理는 중국을 거쳐 북방으로 전해지고, 四行(비파사나 등)은 남방으로 갔습니다.
서로 반쪽들고 다투며 北은 저혼자 깨치고 남을 인도 못하니 소승이요, 南은 소승도 못됩니다.
고로
북쪽은 자비없는 지혜가 난무하여 마치 불법이 깡패집단 처럼 변질되어 자비는 눈꼽 만큼도 없고
대기설법은 말하면서 정작 중생이 찾아오면 마치 소몰이 하듯 욱박질러서 마치 소가 뒷걸음질하다
쥐를 잡는 겪이니 깨친자가 가뭄에 콩나기 보다 어렵고, 설사 깨쳤다 해도 깨달음에 이르는 인과법
(원인과 과정과 결과)을 모르기에 역시 똑같은 방법으로 지도하니 되나 가나 방망이 질 만 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理는 敎가 아닙니다. 定에 해당하며 사마타에 해당합니다.
사마타란 산스語의 音寫語로 三昧라 했고, 止또는 寂靜으로 번역했습니다.
세존께서는 초기경에 '삼매와 마음챙김의 결합이다' 하셨는데 이것을 훗날
정혜쌍수 지관수행 理入四行 이라고 한 것 같습니다. 문자를 새롭게 만들고
해설이 난해하면 이러한 結果가 따릅니다.
<草見
고로 二入四行이란
理(定)로 들어가서 四行을하라. 문수와 보현의 관계, 智慧와 行으로 보면
됩니다. 고요한 마음으로 사물(대상)을 觀하라, 수용하라 입니다.
보조국사의 말대로 사물(대상)의 본질을 꿰뚫어보라.
흔히 理入四行을 해설할때, 道로 들어가는데 두 가지가 있다고, 합니다.
천만의 말씀입니다. 만일 그렇다면
그렇다면 八正道 는 도를 이루는데 여덟 가지가 있다고 해야 될것입니다.
이것은 그런말이 아니고
理入이란 見性하고, 四行에 의하여 保林 하는것을 말합니다.
理로 들어가서, 네가지를 行(觀)하라.
팔정도에 의하면
正見 이 理入이요, 四行은 正思惟에 해당됩니다.
禪家말로 見性 이 理入 이요, 四行은 成佛(부처 이루는)하는 것 입니다
대표적으로 청화 선사의 글과 그외 보편적 교리강좌의 예를 들어보면
理入이란 道로 들어가는데는 理入 과 行入 이 있는데, 理入이란 경전을 이해하는것 을 말한다
하며 달마나 많은 도인들이 먼저 해오를 주장하며,
해오란 이치를 먼저 알아야 바른 수행을 할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理가 뭔지 解悟가 뭔지도 구분을 못한 말씀입니다. 달마가 언제 경전 보라고 했습니까?
理入이란, 경전을 많이보고 이해하는것이 아니고, 부처님 가르침을 깊이 믿는 것을 말하는데
무엇이 깊이 믿는것인가? '중생과 부처가 같다' 는것을 깊이 믿으란 말입니다.
理를 다시 설명하지요.
법성게에서 理事冥然無分別 에 나오듯 理란 空을 말하고 事란 色을 말합니다.
고로 理事冥然無分別 이란 '色不異空' 을 말합니다. 色 空 이 같아서 분별할수 없다.
다시
理는 부처요, 事는 衆生 을 말하기에 '중생과 부처가 같다'. 또 理는 眞 을 말하고,
事는 妄 을 말합니다. 이해가 되지요. 이해 된것을 확인 하는것이 見性 입니다.
조용히 확인 될때까지 끝없이 궁리 하십시요.
그 다음에 四行(保林 = 팔정도)을 해야 합니다.
다만 지혜를 깨친자는 선정을 득한 사람이니 노력하여 十念이 가능하면 임종시 삼악도에 들지 않습니다.
육신의 죽음이란 나간 호흡이 다시 들어오지 않을때 이니
十念이란 열번이란 숫자가 아니고 들어 갔던 호흡이 나가는 시간동안 선정을 유지하라 라는 뜻 입니다.
다시
理入이란 문수의 지혜요, 行이란 보현보살의 보살행(깨친 자의 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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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렇게 가르칩니다.
내 門에 든 사람들은 이미 모두가 理入者로 그들에게 "因果를 思惟하라" 고 합니다.
보원행, 수연행, 칭법행, 무소구행, 모두 인과사유에 의한 중도행에 해당합니다.
보원행 원수와 은인의 과보, 수연행, 인연따라 이루어지는 것이나 모두 因果法입니다.
한마디로 "마음챙김" 입니다. " 그때그때 대상에 부디쳐 일어나는 마음을 살펴라"
삼매와 통찰이 합일될때
노사나불(응화신)이 눈앞에 현전하니 다시는 노사나불의 노예가 되지 않으리라.
理入四行을 천수경에 비유하면
자성중생 서원도, 자성법문 서원학, 자성불도 서원성이 됩니다.
자성의 중생을 발견한 理入者는
자성의 법문을 확철하게 사유하며 행하라
理致와 현상이 하나로 돌아 갈때 여래를 보느니라!
여기에 도달하면 因果不昧 같은 어물쩡한 대답을 하지 않고
"나는 다보고 다안다. 나를 如來라 불러라!" 자신있게 말할수 있게됩니다석가의 안광이 새벽별과 부디칠때 삼계가 무너지고 땅이 갈라지며 다보여래가 출현하는데
二入四行 에서 理를 말한 달마의 원문으로 봅시다.
理入子 謂藉校悟宗 深信含生 同一眞性 但爲妄想客塵所부 不能顯了 若也捨妄歸眞 凝心璧觀
無自無他 凡聖等一 堅住不移 更不隨於文敎 ... 略..
理로 들어간다는 것은 가르침의 종지를 바탕으로 깨닳는것을 말하니라,
그렇다면, 무엇을 깨닳아야 하는가? 바로 다음에 나옵니다.
중생과 진여가 같음을 깊이믿고, 자신의 번뇌망상 때문에 분명히 알지 못하는것이니
허망한것을 버리고 진실한것으로 돌아가 벽을 바라보며 마음을 고요히 하면
나와 남이 없고, 범부와 성인이 같음이 견고하여 마음이 움직이지 않으니 다시는
문자나 가르침을 따를 필요가 없나니라...
결국
理入 이란,
견성자가 고요히 벽보고 앉아 正思惟 하라는 말입니다.
사실 벽보고 앉으란 말도 방편입니다.
'날뛰는 마음을 벽처럼 움직이지 말라' 입니다. (여시항복기심)
四行 이란,
어떻게 인연이 오고 가는가? 인과의 실상을 확인하라는 말입니다,
'四行을 확인하고 그것이 내것이다. 이렇게 동화 되라는 말 입니다.
*고로 理란 '凝心壁觀' 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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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을보고 무엇을 觀하는가?
四行으로 因果를 觀(확인) 하라 이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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凝心(마음이 엉킨것) 풀리지 않는 마음을 말합니다.
왜 괴로운가? 왜 번뇌가 끊어지지 않는가?. 왜 성품을 보았는데도 그자리에 머물지 못하는가?
왜 아직도 마음이 항복되지 않는가?..
깊게 사유하여 그 견고함이 금강같은 부동심이 되어야 하기에 '금강삼매'라 합니다.
제가 經은 안봤지만 '금강삼매경'에 분명히 같은 내용이 나올겁니다.
이것이 완성되면 사좌좌에 오름니다. 중도의 완성이고, 대정이라 하고 나가정 에 든다 하고,
다른말로 선나관이라 하며, 혜능조사 말로 '入般若三昧'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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理 를 '경전(교리)이해 하는것' 이라고 엉터리로 가르치고 글자 공부 하라고 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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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 '주리반특' 과, 일자무식 '육조 혜능' 은 어떻게 설명 하시려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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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마스님이 길게 써놓은것보다 더 간단히 말하지요
理入 이란, "세상에 중생이란 없다! 네가 부처다! 믿어라!"
부처님 말씀 확실히 믿었다면 다시는 글자 경전 보지마라!
스스로 부처님 말씀 안믿으니 이책 저책 들춰보는것 아닌가?
아니면 남에게 지식 자랑 하려고 보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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理入四行 이런 글자 버리고! 그런行 하려고 하지도 말고! 눈 부터 여십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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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들 '이입사행' "알지만 안됩니다, 그게 쉬운가요?" 하고 되묻지요.
글자 몰라서 못하는게 아니라, 세간에서 적용되는 말이 아니기에 안됩니다.
왜 그럴까요?
見性 後 하는일을 글자부터 배우니 마음이 앞서가서, 오히려 스스로에게 안된다는 자괴감과
회의심 으로 중생심만 더 키워서 오히려 見性하는데 장애만 줄뿐입니다.
염불로 평생 사신 청화스님, 여러분이 달마의 원문에 비교해 보시면 그분의 낙처를
내가 평하지 않아도 알수 있을겁니다.
*
*
달마에게 묻습니다.
납자 : 대사시여, 음행을 버리지 않고도 見性할수 있습니까?
달마 : 나는 음행은 말하지 않았다, 오직 마음만 말한다.
납자 : 백정, 사냥꾼, 형리, 등 살생을 業으로 하는 사람도 成佛할수 있습니까?
달마 : 只(다만,지)言見性(다만 견성만 말한다) 어떤 일 을 했는가는 말하지 않았다.
설사 業을 짓더라도 미혹한 사람과는 다르니 모든 業이 그를 구속치 못하니라..
경에 의하면 이 사람은 '불입색성향미촉법' 에 든 사람으로 '수다원' 을 말합니다.
'불입색성향미촉법' 이란 말은 육경(대상 = 業)에 물들지 않는다 는 말로 달마스님이 말한
'업이 그를 구속치 못한다' 와 같은 의미란것을 알수있을 겁니다.
즉 성인의 길로 들어섰다는 말입니다. 見性이 그러합니다.
대승자여! 인연자여!
無始이래 지은죄를, 어느세월에 경전 배워서, 언제닦고, 어느 세월에 참회해서 부처가 되려는가?
여러분께 묻지요.
열심히 참회해서, 금생에 지은죄 라도 모두 참회할수 있겠습니까?
만일 참회를 다 해야 부처 된다면, 세존은 커녕 그 누구도 결코 부처를 이룰수 없습니다.
앙굴마라, 주리반특, 다 됩니다.
바로 믿고, 바로 건너 십시요. 이말은 如來의 말입니다.
번뇌가 보리 맞습니다.
그러나 이말도 문밖에 있는분들께는 해당 안됩니다.
번뇌가 보리인줄 아는 사람은 번뇌가 일어나는 근본자리를 보고 아는 사람입니다.
고로 '번뇌가 보리' 라는말이 맞지만, 근본을 못 본분 들은, 번뇌는 번뇌일 뿐입니다.
번뇌가 완전히 멈춘 자리가 있습니다. (앙굴마라여 나는 멈춘지 오래다 / 세존)
經에 의하면
대승자(선남자 선여인)는 마음을 이렇게(四行처럼) 항복 받아야 합니다.
理入은 대승자(선남자 선여인) , 四行 은 마음 항복받는 行 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늘 이런말을 했던겁니다.
"몰라서 못하나 안되니까 그렇지요"
맞습니다. 견성치 않으면 理入四行이 될수가 없습니다.
그전에 하는것은 모두 僞善, 作禪, 假行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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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말합니다.
1 報怨行 이란
원수를 만나거나, 원망하는 일이 생기면, 내가 지은거로구나 하고 달게 받는것을 말합니다.
부처님 가르침을 빌리면, '원증회고' 의 반대 입니다. 선가말로 '역경계' 입니다.
2 隨緣行 이란
즐거움 슬픔, 사랑과 미움, 만남과 헤어짐, 모두 인연따라 지은대로 오고 가는구나 하고
물이 흘러가듯 바라보는것, 집착마라..
부처님 가르침을 빌리면, '애별리고' 의 반대 입니다. 선가말로 '순경계' 입니다.
3 無所求行 이란
있는것 버리려는 생각마라, 없는것 구하려는 생각마라. 있고 없음에 초여하면
있다고 자만하지 않을것이며, 없다고 비굴하지 않을것이며
경에 의하면 이것이 求不得苦 의 반대 입니다.
四行이란
부처님이 초기경에 설하신 무엇이 괴로운가 하고 苦를 자세히 가르쳤습니다.
원수만나는 괴로움 (怨憎會苦)
사랑하는 사람 못만나는 (愛別離苦)
구하고자 하는것을 못구하는 괴로움 (求不得苦)
결국 四行 이란, 이런것 벗어나는 길입니다.
이것만 벗어나면 칭법행은 사족,, 저절로 될것 아닙니까?
[관자재보살이 행심반야바라밀다시 조견오온개공 도일체고액]
어떻게 고액을 벗어나는가?
'행심반야바라밀다' 가 四行의 완성입니다.
因, 緣, 果 一切가 空 합니다!. 사대육신(오온의 집합체)이 空 합니다!.
견성자여
응심벽관하고 깊게 깊게 사유하라!
어느날 활연히 因果가 드러날 것이다.
화엄세계의 기멸현상을 보게 될것이다.
금강의 세계가 눈앞에 펼쳐지고, 법이 빛날것이니
새가 노래하고, 산천 초목이 찬란한 법화선경 이...
4 稱法行
見性할 당시 그 자리가 청정이요, 성품의 근본 자리입니다.
항상 '입반야삼매' 에 들면 이것이 칭법행이요, 칭법행은 나가정 을 말합니다.
온전히 멈춘자리. 완성된 방하착! 이제 '자리이타' 할수있고, 육바라밀은 당연하고
天, 人, 아수라, 지옥, 아귀, 축생 까지 '육도만행' 도 됩니다.
'상구보리 하화중생' '자리이타'등 모든것이 방하착이 되어야 합니다.
수행자여, 착한일 하지마라 그 길은 성불의 길이 아니고, 果報의 길이니라.
수행자여, 경 읽지마라 그 길은 총명한 과보가 기다리니라.
수행자여 염불 하지마라, 그것은 아미타불 만나 왕생하는 인과만 있으니,,
부처가 되고자 하는 자는 마음의 뿌리(근원)를 찾아라!!
있다, 없다, 말하지 말고 스스로 확인하라!
<草觀 님의 블로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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