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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전호흡은 몸의 열음이다.

통융 2016. 5. 30. 21:50

단전호흡은 몸의 열음이다.

 

호흡은 몸을 유지하는 에너지이다.

기운을 모으는 것이 아니라 소통하는 것이다.

몸의 경락을 열어 줌으로서 기의 소통이 원활하게 하여 몸을 우주화 하는 것이다.

호흡은 숨을 몸 안으로 끌어들여서 몸의 일정 부위(단전)에 호흡을 모아서 기운을 운기運氣하거나 축기縮氣한다는 것이

보편적인 단전 호흡법 이라고 알고 있다.

그러나 이것들은 몸에 의존한 자아가 중심이 된 상념에서 일어나는 慾心이다.

단전에 기운을 모은다는 것이 편견된 생각이라 본다.

그런 단전 호흡법을 통해서 참 자아를 찾아간다는 견해이나 이것은

우주의 기운을 작은 양으로 모아서 소우주인 몸을 위해 쓰는 것으로 밖에는 이해할 수 없다. 물론 과정을 통한 더딘 걸음이 있을 수 있겠지만 굳이 시행착오를 범하면서 아까운 시간을 낭비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그래서 몇 가지 언설을 놓아본다.

너무 지나친 형식이나 격식에 집착하지 말라.

원래가 없는 몸에 의념으로 몸을 만들고 분별로 몸을 힘들게 하지 말라.

설사 몸이 체로 의념화 하더라도 기본 이치를 바로 알고 몸을 경계하라.

호흡도 원래 들고남이 없는 것인데 무슨 잡다한 이념이 생길 수 있겠는가.

너무 현상에 집착하여 마음을 분주하게 하지 말라.

알고 나면 모두가 그 자리에 있는 것을 우리가 모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진정 너가 저 꽃이 왜 햇빛을 봐야 열매를 맺는지 알고 있느냐.

그것을 알려고도 하지 말고 가만히 관조를 하라.

세상 이치를 너무 어렵게 분별하려고 하지 말라.

가만히  마음에  문을 열어 놓아라.

마음에 문 또한 생각이며 식견인 것도 알아차려야 한다.

너의 생각과 모든 식견을 가두려하지 말고 열어놓고 자유롭게 해방 시켜라.

너는 너의  꽉 채워진 상념들로 마음이 무겁고 몸이 시끄러울 뿐이다.

그들을 가두려 하지 말고 자유를 줘라.

들고남이란 의식일 뿐 숨 쉬는 모든 공기에 무슨 정기와 탁기가 있겠는가.

다시 말한다면 우리 몸은 분리된 소우주가 아니라 원래 대우주의 부분인 대 우주인 것이다.

그래서 우주의 기운 속에 몸을 그냥 풍덩 담궈 놓으면 된다.

물론 몸의 구조적 특성으로 기운이 들고나는 길이 있으면

그 길인 몸의 경혈을 풀어서 문만 열어 놓으면 대 우주의 기운()이 들고남이며

참 자아(本性)와 함께 하는 것이며 그 것이 온전한 단전 호흡법이다.

그런 상태일 때를 들어 육식의 주인인 몸이 본성에 듬이라 하나

그 몸에 기운이 들고나면서도 몸인 자아를 잃어버리고 그 기운들만 존재할 때

참 자아를 앎이며 참 자아가 밝아지며 걸림 없는 맑음이 되는 것이다.

결국 들고남이 없는 하나가 되는 것이며

체와 용은 온전한 하나가 되어 우주가 되는 상태를 一如,見性이라 한다.



 

조선시대 대학자인 퇴계 선생은 활인심방(活人心方)이라는

독특한 기체조법을 통해 평생토록 건강을 유지했다.

기체조의 원리는 전통 한의학의 생명론적 몸 이해에 뿌리를 두고 있다.

한의학에서는 우리 몸 속에 '경락'이라는 기()의 통로가 있고,

이 경락을 통해 오장육부와 갖가지 신체 기관들이 서로 유기적으로 상호작용 한다고 파악한다.

 

(몸의 경락들) 열면 몸도 밝아진다.

우주의 기운들과 소통이 원만하면 병도 스트레스도 없어진다.

굳이 기운을 말한다면 기운을 따로 모아서 나누려 하지 말라.

기운을 교감하는 지혜를 터득하라.

모든 체조는 기운을 동기화 하는 것이며 순환하는 것이다.

우주가 쉼 없이 움직이고 돌고 있듯이 우리 몸의 기운들도 쉼 없이 운행하고 있다.

그 운행의 어느 하나라도 이상이 생기면 순환에 장애가 와서 막힘이 되고 막힘이 후유증으로 장애가 되는 것이다. 이 장애를 우리는 병이라 한다.

그래서 우리 몸은 모든 생물적 새포(기운)로 하나하나 조합된 구성체로써

고도의 질서를 유지하는 조직순환체이다.

이 조직들은 물질로써 서로의 유기적 관계를 유지하다가 흩어지는 것이다.

이런 조직의 연관성 속에서 나타나는 六識에 의해서 생각이 나타남이며

그 식과 체가 또 하나로 이루어지면서 자아 의식인 7식 말라식을 갖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의식인 생각은 몸을 떠나서는 일어나지 못한다.

사람이 죽으면 그러한  7식 까지의 의식은 살아지고  마지막 남은 8식의 함장식인 아뢰야식만 남아서  윤회를 하게 된다.

이 8식은 윤회의 씨앗인 업장이며 우리 인간이 業소생이라는 말이 그래서 하는 말이다.  8식까지 알아차림을 한다 해도 완전한 깨달음이라 할 수 없으며 만약 8식을 완전히 소멸 한다면  9식인 근본식인 아타나야식의 본성 구경각이 되어 우주 본체가 된다.

이것을 해탈이라하고 부처라 한다.

결국 호흡을 통해  의식을 원통하는 수단이 되는 것이다.

생각을 담는 그릇이 몸이니 만큼 그 그릇을 너무 집착하다 보면 그릇이 주인공이 될 수 있으니 유념하라

그렇듯이 우리 몸은 우리의 의념에서 생긴 것이니

몸 자체에 너무 상을 의념화 하지 말라.

그릇은 회전하는 원리인 원두리로 시작과 끝이 있는 만큼 사용하고 있을 때만큼은 잘 관리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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