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락 맞은 놈
우리가 못된 짖을 하면 흔히들 ‘저 벼락 맞아 죽을 놈’이라고 한다.
사실 벼락이라는게 그리 흔한 것은 아니다.
특히 사람이 벼락을 맞는다는 것은 더욱 희귀할 뿐 아니라 확률 또한 쉽지 않다.
벼락이라는 것은 낙뢰(落雷)라하며 번개와 천둥을 동반하는 급격한 방전현상이다. 일반적으로 강한 소나기를 내리며, 우박을 동반하는 경우도 있다. 낙뢰는 주로 적란운 안에서 발생한다. 공중의 전기와 땅 위의 물체에 흐르는 전기와의 사이에 방전 작용으로 일어나는 자연현상.
금강경의 마지막 구절에도 여로역여전이라는 말이 나온다. 세상은 이술같고 번개같이 찰나에 지나가는 현상이라는 것이다.
오늘날 전기는 번개의 이치를 활용한 인류 최고의 선물이다.
"갑아 들에 가제이..."
어머니가 상방에서 낮잠을 자는 나를 깨우셨다.
팔월의 후덥지근한 기온 탓인지
나는 땀에 젖어 몸에 붙어있는 교련복 윗도리를 등에서 떼어내며 벽에 걸린 달력을 본다.
속살을 훤히 드러낸 한 여자가 야릇한 미소를 지으며 잠이 덜 깬 눈 속으로 달려온다.
1975년이라는 붉은 고딕체와 (株)금복주 라는 먹색의 문자가 커다란 달력 안에서
서성인다.
"짐난짓골 깨밭이 지난 비에 어찌 됐나 보고, 깨밭에 풀도 뽑고, 가보자."
어머니는 헛간에서 연장들을 주섬주섬 챙기고 데레끼(싸리나무로 엮어 만든 망태기의 일종)을 어깨에 메고 나오셨다.
멍청하게 방안에 그냥 앉아 있는 나를 보고
"하늘에 먹구름이 몰려오는걸 보니
우이(우비) 챙기고 소 몰고 어여 따라 나서거라.." 하시며
어머니는 늘 관절염으로 불편한 오른다리를 절뚝거리시며 대문을 나가셨다.
나는 바소구리(지게위에 얹는 소쿠리) 하품을 늘어지게 하고 나서 하늘을 처다 봤다.
잔뜩 찌푸린 하늘에는 검은 먹구름들이 이리저리 바삐 몰려다니고 있었다.
"비가 올라면 일찍 와뿌리지...."
투덜거리며 방에서 나와 소 마구간으로 갔다.
껌벅거리는 커다란 눈에 눈물을 질질 흘리고 입은 맷돌 돌리듯이 돼 새김질하며
누워있는 소를 보며 꽥 소리를 질렀다.
"일러 일러..."
소 이까리(소에 고삐를 해서 묵어놓은 끈)를 풀고 이까레로 소 엉덩이를 한 대 후려친다.
내가 사는 마을은 70여 호의 집들이 모여 있는 산골 마을이지만
못(작은 저수지)뜰이 세 개와 산골 골마다 천수답과 산 비알(비탈)밭들을 일구어 농사를 짖는 그리 넉넉지 못한 동네이다.
마을을 벗어나면 못 뜰이 나오는데 아직 경지 정리가 되지 않은 곳이라
거랑(개울)을 따라 니아까(니어커) 한데 겨우 지나갈 정도의 구불텅 거리는
좁은 길로 20여분 걸어가면 절골산의 4부 능선쯤에 짐난짓골이 있다.
밭이라야 300평도 되지 않는 냇떼기(밭이 네개의 숫자)가 전부이다.
목에 달린 핑경을 딸랑거리며 산을 오르는 소 뒷 꽁무니를 따라 헐떡거리며
밭에 도착하니 벌써 어머니는 깨밭에 김(잡초을 뽑는 일)을 제법 많이 매고 계셨다.
"왜그래 꿈지락 거렸노."
"소는 밭둑에 풀어놓고 밭가에 양대콩이 강냉(옥수수)이 타고 올라가는 거 비껴(볏겨)내고
풀도 좀 뽑거라..."
하늘이 더 가까운 산 중턱이라서 그럴까 잔뜩 비를 몰고 올 것 같은 먹구름들이
낮게 낮게 바삐 움직이고 간간이 천둥소리도 먼 산을 넘어오고 있었다.
나는 소를 풀어놓고 몇 분간 일을 했을까....
요란해 지기 시작한 하늘에서 번쩍거리는 불춤도 잦아졌다.
"아무래도 비 한줄기 하겠제."
어머니는 혼잣말로 중얼거리시며 호미를 쥔 손이 더 빨리 움직이기 시작했다.
번쩍...
"하나, 둘, 셋, 넷"
우루~룽 쾅 쾅 쾅아~앙
번개가 칠 때마다 마음속으로 숫자를 세던 어린 시절에 습관이 아직도 남아 있어서
번개만 치면 늘 숫자를 세어본다.
빛의 속도와 소리의 속도가 다르기 때문에 번개가 치고 몇 초 뒤에 천둥이 치느냐에
따라 번개 치는 곳의 거리를 가늠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늘을 무너트리고 찢기라도 하듯 번개와 천둥소리가 산골 안을 쩌렁쩌렁
울리고 천지를 흔들고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굵은 빗줄기가 웃자란 깨 순들 머리를 후둑후둑 때리기 시작했다.
"어매요, 아무래도 소낙비 올라 카니더 대강하고 내려 가시더.."
귓청을 찢어지게 때리던 천둥소리와 함께 빗줄기가 몰려오더니 깨밭 위로
우두둑 융단 폭격을 하기 시작했다.
천둥소리에 소도 놀랐는지 목청을 돋우더니 성큼성큼 달아나고 있었다.
나는 얼른 우산을 쓰고 소를 잡으러 뛰어가는
찰나!
번쩍 하는 느낌을 감지하는 순간 예리하고 기인 불 칼이
나를 향해 내려 꽂혔다.
엄청난 폭발 소리와 함께 어떤 초인적인 무거운 힘이 팔목을 후려쳤다.
순간 내 손에 쥐어져 있던 우산이 허공으로
파-팍 팅겨저 수 미터의 허공으로 솟구쳐 날아 올랐다.
그렇게 큰 힘에 눌린 순간,
나는 용수철처럼 팅겨나간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내몸은 새털처럼 팅겨나갔다.
나는 텅 넋을 잃고 .......
찰나(刹那)를 몇 억겁 시간의 반대라 했던가 그렇게 짧은 순간이었지만
내 귀로 들어본 소리 중에 그렇게 큰 소리는 처음 들었고
아무리 비명을 지르려 해도 소리보다 더 빠른
거대한 힘이 나를 순간 이동과 수만 볼트의 전류에 감전되었다가
다시 풀려나는 시공간을 넘나들게 했다.
내 눈앞엔 그렇게 세차게 몰아치던 빗줄기도 봄날 벚꽃이 바람에 흩날리듯 하늘거리며
소리 없이 스쳐 날리고
내 어릴적 작은 연못가에 무지개 위를 걸어보던 기억 속으로
다시 내가 무지개 위를 사쁜사쁜 걷고 있었다.
시공간이 정지된 세계
나라는 존재 의식에서 벗어난 무아와 공의 세계일까.
얼마나의 시간이 흘렀을까?
나는 엄청나고 거대한 불지옥과 소리의 터널을 빠져 나왔다는 생각이 들면서
내가 지금 누구이지.
벼락 맞은 전과 맞은 후의 시간은 현실과 비현실의 틈 사이를 왕래한 것 같은 순간에 일어난 찰나지만 나는 수백생의 겁을 넘어와 있다는 착각이 들었다.
내가 벼락을 맞았다.
그리고 죽지 않고 살아있다.
주위에 보이는 나무와 풀들 그리고 멀리서 으르릉 거리는 천둥소리까지
눈과 귀에서 나타나는 모든 것이 살아 있다는 존재와 생각하게 하는 자의식이 일어났다.
나는 습관 되로 사물을 인식하는 정상인인가.
머리가 어떻게 되지는 않은 거지,
순간 가슴이 쿵쿵거리기 시작했다.
몸둥이는 괜찮은가? 의식했다.
엉덩방아를 찢고 앉아있는 내 몸둥이가 보였다.
흠뻑 젖은 내 몸을 인식하는 순간 다리가 후들거리기 시작했다.
사지는 멀쩡했다. 다행이다.
차츰 인식되는 평상심이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우산을 찾았다.
우산은 20여 미터 떨어진 곳에서 휴지를 구겨놓은 것처럼 나딩굴어져 있었다.
아직까지 우산에는 벼락이 살아 퍼덕이고 괴성을 지르고 있는 것 같아서
두려움과 공포에 가급적 멀리 멀리
우산에서 달아나려고 뒷걸음을 쳤다.
멀리서 어머니는 눈앞에 펼쳐지는 광경을 보고 밭고랑 사이에
풀썩 주저앉아서 입만 떡 벌리고 계시다가
내가 움직이는걸 보고 그제 서야 입을 떼시는 것 같았다.
"야야, 괜찮나..."
어머니도 얼마나 놀라셨는지 서둘러 일손을 챙기시고 어여 가자며
당신이 직접 소를 몰러 가셨다.
어떻게 산을 내려왔는지 허겁지겁 산을 내려와서도 내내 가슴은 쿵쿵거리고 있었다.
멀리서 일하던 사람들이 몰려왔다.
"아이고 서원댁 아들 벼락 맞아 죽는 줄 알았는데
어쩨 괜찮능교."
"내사 멀리서 보이 니가 벼락에 큰일나는 줄 알았다."
"그래 갑이 니 참말로 괜찮나."
"예 괜찮심더."
어른들끼리 '다행이라'는 둥 '조상이 도왔다'는 둥 한마디씩
서로 주고받는 말이 멀어질 때까지
나는 소 이까리를 고삐에 묵고 소를 잡아끌다시피 빨리 집으로 달렸다.
딸랑거리는 핑경 소리가 내 귀에 모기소리처럼 그렇게 작게 들리는 적은 없었다.
마른하늘에 왠 날벼락!
돈벼락!
죄를 많이 지으면 벼락 맞는다. 등등 벼락에 관한 뜻이 많이 있지만
내가 고등학교 시절이니까 그 당시만 해도 벼락 맞은 것이 왠지 부끄러웠다.
내가 잘못을 많이 해서 하늘이 벌을 내린 것이라 생각이 들어서인지
늘 착하게 살려고 내 스스로 노력했던 것 같다.
그런데 나이 사십이 되어가니까 인생의 삶과 자연과 우주의 섭리를 조금 안다고 할까
모든 것이 기이하고 아름다운 현상으로
내가 젊었을 때 '벼락 맞은 사람인데 돈벼락 한 번 더 맞고 싶소 '라고 말하고 싶어졌다.
그래서 로또 복권을 사기로 했다. 열손가락 집을 만큼도 복권을 사보지 않았지만 아직 한 번도 돈벼락은 맞지 못했다.
하하하.....
<말씨가 경상도 사투리라 몇 개는 표준어를 달았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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