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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열면 밝은 세상 텅!

통융 2014. 12. 9. 17:16

 

 

 

5, 텅

 

 


       <문경 봉암사 뒷편의 희양산>


길에서 만난 마음 하나씩
주워 담아 무겁더니만
희양산 아래 서니
큰산 하나로 텅 비워 버리네.
          -텅-

큰 산이 눈앞을 턱 막는다.
거대한 바위산(岩山)이 하나 높은 준령들 속에서 우뚝 솟아있다.
희양(希陽)산이다. 그 품안에 한국 최고의 선원(禪院)이 있다.
충북과 경북을 경계하는 산이며 수없이 많은 납자(衲子)들이 정진했고 한 소식들 물고 춤추며 크게 웃는 모습을 묵묵히 묵언(默言)하며 지켜보던 거대한 봉황이었다.
그 큰 봉황 옆에는 넌지시 봉암사를 건너보며 스님들의 죽비(竹扉) 소리를 듣고 있는 이만봉(二萬峰)과 구왕봉(九王峰)이 앉아있고 불 보살의 화신인 관음봉(觀音峰)은 봉암사 앞을 굽어보고 있었다.
그런 큰 존자(尊者)들 앞에서 눈을 내리깔고 시방(時方)삼세(三世)를 안아내고 있는 석가모니 부처님을 위시로 깨어 있는 화신들이 제각기 모습을 나투어 참 진리의 등불을 밝히고자 법당을 지키고 있는 대웅전이 있다. 그 주위에 나비의 나래 짓처럼 사뿐사뿐 요사 채(절 집)들이 앉아서 큰 산골 안을 화엄의 세상을 만들고 있었다.

      <한국 최고의 선(禪)원인 문경 봉암사의 전경>


세인들 입에 오르내리는 봉암사는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일반인은 절대 출입을 할 수 없다고 알려져 있다. 특히 스님들 결제 (참선 공부시기)에는 일반인들 발자국 소리를 낸다는 것은 백두산 천지에 얼음 깨기만큼 어렵다고 한다.
다행히 내가 찾은 봉암사는 *동안거(冬安居)결제 해제 일을 이틀 앞둔 터라 절 문간 빗장이 느슨하게 열려져 있어서 문안으로 발을 들어 놓을 수 있었다.
물론 들어가는 과정에서 당연히 지킴이 분한테 거절당했지만 참 좋은 인연의 도o스님이 마침 봉암사 선방에 계셨어 오늘의 부처님이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내친김에 하룻밤까지 청하고 보니 길 다니면서 얻은 넉살이 효과를 봤다.

봉암사는 우리나라 최고 선(禪)불교의 요람이라 할 수 있을 만큼 스님들 공부가 잘 되는 도량이며 조계종 스님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공부하고 싶어하는 곳이기도 하다. 특히 외부와 단절되고 철저하게 선(禪)공부만 하는 선원으로 유명 한 곳이다.
스님들 선방(禪房)공부 한철을 나는데 우리나라 선원 중에 가장 많은 인원인 100여명이 넘게 공부하는 곳이기도 하다. 그리고 현재 봉암사 조실 큰스님이신 서암(西庵)스님의 법력이 익히 알려져 있기도 하다. 지금은 노옹이라서 주장자를 잡기 힘들 정도로 몸이 편찮다고 하시니 꼭 한번 뵈고 싶었는데
아쉽지만 한 마음 풀어놓고 기분을 달랬다.

무수한 납자들이 곳곳에 숨겨놓은 인연의 고리를 찾아 봉암사의 밤은 깊어가고 있었다.
큰 산골에서 내리는 물소리 방안 가득 들어와 앉아 있고 간간이 산새 소리들 문을 두드리고 있다.

'희양산 아래
서암(西庵)의 집이 낡아서
이사를 할 때가 되었다니'
                        -집-

산 뻐꾸기 객방 문고리 잡는걸 보면
그 놈은 쉬어 가는 맘들을 알련 가.
                       -객방-

     <화선지 먹 채색 / 시화 (장작)30*30>


그 긴 세월 동안 얼마나 많은 승속(僧俗)들이 저 산물소리와 밤 벗들 인연되어 세상을 들었다 놨다 했을까. 먼 어느 날 또 다른 내가 이곳에서 마음 내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니 참 인연이라는 고리가 무엇인지 의심덩어리로 한마음 채워졌다.
서암 스님이 대중들 해제 때 늘 하시는 법문이 있다고 한다.
' 너희들이 알고 있다는데 알기는 뭘 알아, 다 모르는 것이여.'
참 그럴 수 있다고 본다. 우리 인간이 뇌를 사용하는 것은 불과 몇 퍼센트(약5%)밖에 사용하고 있지 않다는 것은 사실이다. 실지 일백 퍼센트를 기준 한다면 사실 모르는 것이 맞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모든 것을 아는 것처럼 분별하고 옳고 그름을 따지고 있으니 정말 우스운 이야기가 된다. 그 일백 퍼센트를 깨닫는 것이 곧 우리의 본성(本性)을 확철히 아는 것이며 돈오(頓悟) 즉 참 깨달음이 아닐까 생각 해본다.
그런 미진한 우리 인간들의 삶을 일찍이 간파한 석가는 스스로 그 백퍼센트를 얻기 위해서 공부했고 결국 중도(中道)를 정(正)득(得)각(覺) 했던 것이 아니겠는가.
또한 여기 선방에도 수많은 대중들이 그 완전한 자리에 들기 위해 오직 일념으로 화두(話頭)를 틀고 앉아 부모(父母) 미생전(未生前)의 본래성품을 ' 이뭣꼬' 하며 찾으려고 정진(精進)을 하고 있지 않는가.
그런 생각 중에도 나의 마음 하나는 속리산를 품고 육백년 세월을 안고있는 정이품(正二品) 솔과 부인인 정부인(貞夫人) 솔을 만나 함께 나누었던 이야기에 가 있고
또 다른 마음 하나는 도0스님과 함께 나눈 찻잔 위에 앉아있으니
이런 마음들 싸잡고 오직 한 생각으로 흔들리지 않으며 하루를 산다는 것
그리 쉽지는 않을 것 같다.
벌써 오늘 만나 인연들과 함께 한 시간들이 나의 귀중한 삶이라고 생가하고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순간 벌써 그 귀중한 시간은 떠나버리고 존재치 않는데도 말이다.
내가 나의 존재를 인식 할 때는 벌써 나는 순간의 내가 아니라 또 다른 나이기 때문이듯
내가 보는 산이 그렇고 산이 보는 봉암사가 또 한 그럴 것이다.
눈 덮여 있던 산들이 벌써 봄맞이하느라 산 빛이 화사해 지며 모습이 변하고 있는 것을 보고 있으니 말이다.
그렇지만 큰마음으로 바라보면 천년전이나 지금이나 그 산은 그 산이요.
그 절 집은 그 절이듯 나 또한 수년전의 나이지만 오늘에 나는 겉모습 좀 다르게 변했을 뿐 나는 김동삼 이란 본래 이름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앞으로도 다르지 않을뿐더러 내가 외형적으로 어떻게 변해 가도 나의 본래 성품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이런 것을 석가는 불생불멸(不生不滅) 부증부감(不增不減)이라고 했지 않았던가.
그런데 우리는 더러 변해 가는 겉모습에만 끄달려 참 나의 성품을 놓치고 있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여기 봉암사에는 그런 참 법에 허리기둥 세우고 있는 눈빛들이 많이 있기에 석가의 불법은 꺼지지 않을 것이며, 저기 큰 산들이 묵묵히 내려다보고 주장자를 들고 있는 한 역시 큰마음들이 한바탕 놀고 갈 꺼다.

          <봉암사 객방 추녀 끝에 메달린 달>

<화선지 수묵 채색 30*60>

언뜻 희양산 위로 차 오르는 滿月이 화엄의 산골을 비추이니
잠시 머물던 산 그림자들 계곡물 소리에 흩어지고
오늘 인연되어 오가던 마음들
핑경 소리에 귀를 열어주네.
                      -관음(觀音)-

문 밖에 발자국 소리만 들어도 사람인 것을 안다.
                      -跡搖(적요) -

문밖에 찾아온 산밤이 이렇게 고요할 수 있다니
곳이 곳이라서 그럴까
가만히 좌선을 해본다.
솔거가 그린 솔을 찾아 길 다니다가
문경 희양산 아래 봉암사에서 하룻밤을 보내며...松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