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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빛바다에 띄우는 편지

통융 2014. 12. 9. 17:18

 

달빛바다에 띄우는 편지

 

 


봉황산 아래
달빛바다 출렁이고
三世를 넘나들며 수백 세월을 향해 해 온
배 한 척.
                       -무(無)량(量)수(壽)전(殿)-


달은 말 없이 서성이다
산을 넘어가네.

                      - 선정(禪定)

                 <영주 부석사에서 내려다 본 전경>


정월 보름달이 봉황(鳳凰)산을 넘어와
부석사 무량수전을 훤히 세우더니
발아래 세상을 온통 은빛 출렁이는 달빛 바다를 만들고 있소.
부석사 달밤에 내려다 뵈는 선경(仙境)이 어찌 이리도 아름다운 지요.
띄엄 솟아있는 산들이 바다에 섬처럼 놓여있고
그 사이로 구름들 출렁이며 파도치고
산골을 휘돌아 쓸어오는 솔바람은 잔잔한 파성(破聲)으로 노래 부르고
저 수평선 너머에 마을 불빛들이 밤바다에 떠 있는
고기잡이배들처럼 껌벅거리며
달빛바다를 지키고 있소.
이 모든 자연의 진실은 그 어느 것 하나라도 어색함이 없고 꾸밈없이
조화롭게 나투고 있으니 참 경의(敬意)로 울 뿐이요.
이런 아름다운을 함께 마음 열고 눈빛 나누며
바라볼 수 있었으면 얼마나 좋겠소.
하지만 곳이 다르니 어쩌 하겠소.
함께 못한 안타까움을 마음 배에 실어
달빛바다에 띄워 보내리다.

                <화선지 수묵채색 30*60>


지금 나는 무량(無量)수전(壽殿)에서 새벽 참선을 마치고 나왔소.
수 백년의 세월 속에 수많은 납자(衲子)들이
한 마음 거둬 삼보(三寶)에 귀의하며
참 진리에 눈뜨고자 했던 그 자리에서
나 또한 마음 내고 앉아 무량수를 나눠 봤소.
그런 귀한 경험 도중에 낮선 길손을 반기는 마음인지 아니면
먼 옛날의 연기(緣起)의 끈에서인지
이름 모를 새 한 마리가 삼세(三世)를 헤아릴 수 없다는 무량수전을
한바퀴 돌아 울며 지나갔었소.
그 새소리가 턱 마음을 물고는 아직도 놓아주질 않는 구료.

큰 법(法)안에는 무릇 모든 뜻(心)이 서로 상통하듯이
서로의 몸이 다르지만 같은 시공간(時空間)을 나누며
서로를 느낄 수 있다는 것이
막연한 우연 만이 아닐 것 같다는 느낌을 갖게 했소.
덕분에 가장 소중한 님들에게 편지를 쓰고 있소.
이렇듯 맑은 새벽에
현 생에서 마음 내어 누구에겐가 마음 나눠 줄 수 있는
인연이 있다는 것도 고마운 일이지만
서로가 한마음 되어 바라보는 사이라면 얼마나 귀한 인연이며
그 고귀하고 소중함이야 어찌 말로 다 할 수 있겠소.
내가 오늘 이렇게 행복한 느낌을 갖고 즐거운 삶을 만들어 가는 것도
모두가 나와 인연된 님들 덕이라 생각하오.

너무나 고맙고 고마운 일이고 감사할 뿐이요.

이렇듯 나의 모든 마음을 실은 배가
날이 밝기 전에 님들 머리맡에 도착했으면 좋겠소.
혹 배가 가다가 몰래 편지를 기웃거리던 별들 몇 개 떨어져
배에 실린다면 덤으로 좋구요.
아무쪼록 늘 건강함이 봄 햇살 같기를 빌면서
너무나 고요한 산사의 새벽을 깨기 싫어서
가만히 좌선하고 이만 마음을 내리겠소.

 

영주 부석사의 달빛 바다에서
나와 인연된 모든 님들에게 마음 배를 띄우며.

                       <부석사에서 내려다 본 달빛 바다의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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