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하다는 것으로 깊은 산중에 밤이 느껴지련 지요. 하얗게 쌓인 눈 위로 삼경의 달빛이 내려앉고 조심스레 댓 닢을 만지는 바람들이 길손의 심정을 아는지 숨죽이며 속살거리고 있소. 몇 굽이 눈길을 돌고 산을 넘어 달려왔을 따스한 그대 마음이 고맙고 소중해서 몇 번이나 만져보고 안아보고 있소. 그 마음들을 하나씩 세워 길손 옆에 앉혀놓고 긴 겨울밤의 이야기를 나누고 있소. 참 진리로 깨어있는 천상의 아이와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하고 아름다운 그리움(眞面目)을 찾아다니는 나그네의 이야기들을....
소복이 쌓인 눈 위로 우루루 별들이 몰려와 귀를 세우고 문지방에 턱을 괴고 있는 감나무들 달빛마저도 마당을 어슬렁거리며 삽짝을 넘지 못하고 있소. 문 뜻 처마 밑으로 쏟아져 내리는 눈들, 그들도 아마 몰래 방안의 이야기를 기웃거리다 처마 끝으로 미끄러졌나 보오. 산밤은 이렇게 깊어가고 있소.
<눈 온 뒤의 지리산 잔설과 달밤>
또 아침이면 산 까치들도 간밤에 두런두런 흘러들었던 이야기를 물어다가 이웃들에게 전하느라 야단일 것 같으오. 늘 아침이면 그들이 분주하니 말이오.
이 눈 덮인 산골에서 그대 마음 만남은 길손의 생에 길목에서 가장 고귀하고 뜻깊은 순간이었소. 긴 겨울밤의 깊이만큼 사랑의 마음이 깊어져 그대 눈빛 만져보고도 몰록 하나된 밝은 빛으로 길을 함께 걸어갈 수 있는 마음이 열린다면 그 보다 더한 사랑(觀音)이 어디 있겠소.
분명 그대는 나의 길을 안내했고 그리고 어떤 님은 나의 참모습(頓悟)에 눈을 뜨게 했고 다른 님은 길을 가면서 인내와 사랑하는 것을 또 다른 님은 자연(本性)이 되는 것을 더러 귀한 님들도 삶을 기웃거리며 걸어가게 해주었소. 이 모두가 너무나 고맙고 고마운 마음들이라 내생에서 빛을 다 갚을까 염려되기도 하오.
아침이면 바삐 할 일이 많을 것 같으오. 마당에 쌓인 눈을 치우는 일, 아침밥을 짓는 일, 눈밭을 걸으며 발자국을 내어보고 그 옆에다 그대 발자국도 나란히 함께 만들어 보겠소. 하얀 연미복을 입고 선 솔나무 벗들이 들려주는 천상의 음악을 들으면서 말이오. 그리고 그대 마음을 닮은 솔들을 그려볼까 하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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