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은 슈리라마나 마하리쉬의 명상 센터에서
수행을 한다는 두 내외분이 절에 찾아 왔다.
나도 마하리쉬선생님의 '나는 누구인가? '라는 책을 통해 출가의 계기가 되었고
선생님과 꿈속에서 사제의 연을 맺고 영적 제자 이기도 하다.
그러니 찾아온 손님들이 반갑기도 했다.
두 분은 열정적으로 마하리쉬 선생님의 말씀에 빠져 있었다.
우리가 공부를 하다보면 경계가 오고 체험 되는 것들을 직접 느끼면
이제 뭔가 다된 것 같은 환희스러움이 올 때가 있다.
두 부부는 많은 이야기를 쏟아내고 갔다.
대화중에 거사님이 제에게 질문을 했다.
스님은 제가 무엇으로 보입니까?
제가 머뭇거리는 것을 보고
그것도 아직 못보면서 뭘? 하는 식으로 핀잔을 받은 기억이 난다.
거사님의 질문의 의도는 충분히 읽고 있었다.
무학대사와 이성계와의 대화가 있듯이 말이다.
거사는 자신을 부처로 봐주기를 바랐던 것이다.
그래야 내가 부처공부를 하는 수행자이니까.
그런데 나는 거사님의 의도를 파악하고 있었기 때문에
질문에 말려들지 않으려고 다른 행동을 했던 것으로 기억된다.
문듯 오늘 강변을 운동하다가 그 생각이 났다.
어떻게 답을 하면 거사님의 의도에 따라가지 않으면서
질문자가 아직 부족하다는 것을 지적 할까?
1, "거사님이 부처로 보인다고 하면 거사님은 뭐라고 답하시겠습니까?"
공격구로 다시 질문하면서
상대의 살림살이를 확인 해 보는 것이다.
2, 거사님을 뚫어지게 처다 보다가 주장자로 한 대 친다.
거사님의 동태를 봐서
'방광은 하는데 영험이 부족한 부처이네요.'.
아직 남을 테스트하려는 의도와 분별심으로 아만이 가득한 것이다.
그러니 부처의 영험한 자비심이 부족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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