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 불교/통융스님의 반야심경 해석

29. 우리말 반야심경 - <본문> 짝! 색불이공 공불이색 색즉시공 공즉시색의 실제-4

통융 2022. 8. 7. 09:31

29. 우리말 반야심경 - <본문>  짝! 색불이공 공불이색 색즉시공 공즉시색의 실제-4

 

색불이공 공불이색 색즉시공 공즉시색

에 대해 아직 확실한 이해가 어렵다면

 

직접 체험하면서 살펴보도록 하자.

다 같이 손뼉을 쳐보십시오.

 

! 손뼉을 쳤는데

그 소리는 무엇이 만든 것입니까?

 

'손이 만들었다'면 손은 색으로 본 것이고

'내 생각이 손뼉을 친다'라고 했다면 생각도 색으로 본 것이 된다.

 

'두 손이 부딪쳐서 소리를 만드는 작용이다'라고 하면

그 작용은 공을 설명한 것이다.

 

즉 소리 나게 하는 그 순간이 연기작용으로

그 순간은 두 손이 부딪치는 찰나에 숨어서 작용하기 때문에

 

멈추지도 않고 볼 수도 없으므로

공하다고 한다.

 

그러면 소리는 어떻습니까?

소리는 순간에 나타났다가 금방 사라진다.

 

이 순간을 찰나(刹那), 탄지(彈指), 청정(淸淨) 등으로

불교에서는 설명한다.

 

소리를 멈출 수가 없다.

그래서 소리도 공하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두 손과 생각이 색이고

부딪치는 작용과 소리가 공이라면

 

이 둘은 각각 따로 작용하여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동시에 작용해야 만이 소리가 난다.

 

그래서 색이 공과 다르지 않고

색이 곧 공이다. (색불이공 색즉시공)

 

반대로 소리 나게 하는 순간의 작용이 공이라면

작용은 두 손의 작용에 숨어서 동시에 나타남으로

 

공이 색과 다르지 않으며 공이 곧 색이 된다. (공불이색 공즉시색)

 

두 손과 부딪치는 작용 중에 감춰진 것이 쌍차(雙遮)인데 쌍쌍(),

감출 차()이 없다가 아니라 보지 못할 뿐이고,

 

쌍조(雙照)는 쌍쌍(), 비출 조())인 드러남인데

드러남 또한 드러난 것만 볼 뿐 감춰진 것을 보지 못할 뿐이다.

 

하지만 이 둘은 동시에 있다고 해서

쌍차쌍조(雙遮雙照) 차조동시(遮照同時)라 한다.

 

드러남은 상즉(相卽)이요 감춰짐은 상입(相入)이다.

감춰짐은 지()이고 드러남은 관()이다.

 

감춰짐은 지혜(智慧)와 문수(文殊)

드러남은 자비(慈悲)의 보현(普賢)이다.

 

감춰짐은 관세음(觀世音)이요

드러남은 대세지(大勢至)이다.

 

시간(時間)과 공간(空間), ()과 양(), ()와 상()이며

둘은 각각으로 드러나지만 둘은 동시에 존재한다.

 

즉 색과 공은 각각의 하나로는 절대 존재할 수 없다.

 

온 우주의 진리가 이처럼 드러남과 감춰짐은 각각으로

나타나지만 이 둘은 동시에 작용하는 중도인 것이다.

 

두 손과 생각이 색이고 부딪치는 작용과 소리가 공으로

각각으로 보지 않으며 동시에 일어남을 알아차린다면

 

실제로 깨어있는 중도 법의 진리를 체험할 수 있게 된다.

 

제가 다시 질문하겠습니다.

손뼉을 다시 한번 쳐 보십시오.

 

색불이공 공불이색 색즉시공 공즉시색이 손뼉 소리라 했는데

'무엇이 그 소리를 만듭니까?'

 

'색즉시공 공즉시색이 무엇입니까?' 라 하는 질문이기도 하고

공한 이치는 어떤 것입니까? 라는 질문이기도 하다.

 

'손인 색과 작용하는 공이 동시에 작동하는 것'입니다.

말은 맞는 설명이다.

 

하지만 말로써 소리를 만들 수는 없다.

한 단계 더 나아가 어떻게 해야!

 

공한 실지의 참된 이치를 말도 아니고 문자도 아닌(언어도단 불입문자)

곧바로 공한 진리(즉견여래)를 나타낼 수 있겠는가?

 

그냥 손뼉을 쳐 보십시오.

''

 

설명이 필요 없이 있는 그대로의 작용을 나타내는 것이

색불이공 공불이색 색즉시공 공즉시색의 진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