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 불교/통융스님의 반야심경 해석

26. 우리말 반야심경 - <본문>사리자 색불이공 공불이색 색즉시공 공즉시색-1

통융 2022. 6. 13. 12:08

26. 우리말 반야심경 <본문>-1

 

<바른 깨달음을 이루는 참된 말씀(摩訶般若波羅蜜多心經)

 

범어 : रूपा न व्रत सुनयता। सुन्यतय न व्रत सा रूपम, यद्रूपंयद्रूपं सा शून्यता या शून्यता तद्रूपं ।

rupa na vrtta sunyata. Sunyataya na vrtta sa-rupam,

yad rūpaṃ sā śūnyatā yā śūnyatā sa-rūpaṃ

 

루파 나 바르타 수니타. 순야타야 나 브리타 사루팜 야드

루팡 사 슌야타 야 슌야타 사드-루팜

 

영어 : to form is not different from emptiness emptiness does not differ from form

is emptiness emptiness is form whatever is form, that is emptiness, whatever is emptiness, that is form

 

한문 : 舍利子 色不異空 空不異色 色卽是空 空卽是色

한글 : 사리자 색불이공 공불이색 색즉시공 공즉시색

 

우리말 : 사리자여! 색이 공과 다르지 않고 공이 색과 다르지 않으며,

색이 곧 공이요 공이 곧 색이니,

 

순우리말 : 사리자야, 나타나 있는 모든 것들은 머물지 않고 변하기 때문에 ‘있다(色)’라고 할 만한 것이 없어서 ‘비었다’(空)고 한다. 즉 나타나 보이는 것은 빈 것이고 비어 있는 것 같지만 나타나 보인다. 그래서 이것을 거짓나툼(가상)이라 한다.

 

 

색불이공(色不異空) 공불이색(空不異色)을 구마라집 역에서는

비색이공(非色異空) 비공이색(非空異色)으로 번역되어 있다.

 

공은 색이 아니며 색도 공이 아니다.

즉 색은 색으로 공하고 공은 공으로 공하다는 뜻으로

각각 존재 그 자체로 공하다는 뜻이 된다.

 

현장스님은 색불이공(色不異空) 공불이색(空不異色)으로 번역한 뜻은

색과 공은 서로 다르지 않다는 것은 색이 공이고 공이 색이라는 뜻이 된다.

 

예를 들어 나무와 그림자는 같으냐 다르냐의 질문에 대한 답을

구마라집은 나무는 나무이고 그림자는 그림자이다라는 해석이다.

 

모든 현상 그 각각의 자체를 그대로 보이는

진리의 실상(實相)이 공함을 해석하고

 

현장스님은 나무가 그림자이고 그림자가 나무라는 뜻으로

나타난 현상의 모든 진리의 실체(實體)는 모두가 공하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즉 구마라집은 진리의 실상을 설명한 것이라면

현장스님은 진리의 실체를 설명하고 있다.

 

실상은 실체를 포함한 것으로 용수의 <중론>에서

연기법을 공가중(空假中)으로 구분하여 설명하는데

 

실체는 공()으로 공함을 그대로 나타내고

실상은 나타난 현상은 공한 실체를 가지고 있어 가상(假相)임을 설명한다.

 

즉 현장스님은 반야 진리의 실체인 공()

먼저 설명하고자 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색즉시공에서 색()은 빛에 의해 나타난 형상의 조건들로

눈으로 볼 수 있고 만질 수 있는 것들이다.

 

색이란 빛이 어떤 대상에 반사될 때 나타나 현상을 색이라 한다.

빛이 없는 밤에는 물체를 식별하지 못하는 이유가 그것이다.

 

그래서 보이는 모든 것을 색으로 설명하고

모든 형상(形像)은 연기작용으로 나타난 것이 제법실상(諸法實相)이라 한다.

 

그 형상은 한순간도 머물지 않고 변하기 때문에

고정된 실체가 없어() ()하다.

 

우리가 색으로 보이고 나타난 형상은 찰나에 생멸하여

고정된 실체가 없지만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가상현상이다.

 

영화를 볼 때처럼 빈 스크린 위에 수십 장의 연속된 필름이

겹쳐지면서 실상이 있는 것처럼 보이듯이

 

우리가 보고 존재하는 모든 것들이 그와 같은

착시와 착각의 존재들이라는 것이다.

 

눈 뜨고 꿈꾸는 세상이며 메타버스와 같은 가상의 세계일 뿐이다.

그래서 보이는 것은 텅 빈 공()이라고 한다.

 

있다가도 없어지고 없다가도 나타나는 것이 공이다.

그래서 색이 공하고 공도 공하다는 말로

 

텅 빈 것 같으나 보이고 그렇다고 없어진 것도 아니다.

색불이공 공불이색 색즉시공 공즉시색을

 

진공묘유(眞空妙有)라 말이다.

 

그런데 연기작용의 진리는 이론적으로

()하다는 것에서 끝나면 안 된다.

 

이론적으로 '나는 공하여 무아(無我)'라 나는 없다고 했는데

누가 내 몸을 때리면 아프지 않아야 하는데 아프다.

 

무아의 이론이 맞는다면 나는 없기 때문에 아프지 않아야 하는데

실제에서는 왜 아플까?

 

이론과 실제를 구분 못 하는 오류 혹은 착각 때문이다.

즉 공이라는 이론으로 만들어진 실체 현상을 완전히 깨닫지 못한 것이다.

 

공은 반야의 진리인 연기작용에서

겨우 진리의 기본을 알았다는 말이다.

 

자칫 공을 깨달았다고 진리를 다 알아차린 것처럼 멈추면

반쪽짜리 소식이고 막행막식하는 우를 범하게 된다.

 

공을 이해하고 나면 다음은 그 공의 작용으로 나타난 현상

즉 실상이 있어 삼라만상이 나타나는데 왜 거짓으로 존재하는지를 알아차려야 한다

 

그러고 나면 중도실용(中道實用)의 나타나 있는 그대로의 쓰임을 알게 된다.

이러한 원리를 좀 더 구체적으로 다음에 설명해 보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