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 불교

우리 말 불교 - 성불이란

통융 2022. 2. 7. 09:49

성불(性佛)

 

그대가 지금 보고 있지 않는가!

....

이미 성불을 

보고 듣고 느끼고 알아차리고 있다.

 

덧말을 한다면

무엇을 성취한다거나 얻어서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

본래 있는 것을 알아차리는 견불성(見佛性)이다.

일어난 그대로 있는 그대로를 알아차리는 것이다.(제법실상 실지실견, 여실지견, 견성성불) 

 

이 세상에 모두는 이미 있는 그대로가 완전함이기에

서로가 다를 뿐, 좋고 나쁘고 옳고 그름이 없다.(원융무애)

 

그것이 법계연기의 작용이며

그 진리를 바르게 앎이 깨달음이며 성불이다.

 

행복을 얻고 열반을 얻으려고 노력하지 말라

만약 얻어지고 만든 행복이고 열반이라면 언젠가 무너지고 사라질 것이니

 

얻고 버리는 것, 옳고 틀리다는 분별심만 내지 않는다면

모두는 각각의 꼴과 일어나는 그대로가 이미 완벽한 성불이다.

 

모든 존재는 똑 같은 꼴, 똑 같은 나타남은 절대 있을 수 없지만 

서로서로 이어져 한 우리를 만들고 또다른 나(자기)가 된다.(하화중생, 자비희사) 

 

다만 각자의 분별심인 알음알이(괴로움과 번뇌라고 생각하는 것)만 내지 않는다면

여실지견한 평상심으로  즉심시불(卽心是佛)이라 하고 번뇌(煩惱)즉 보리(菩提)이다.

 

법화경에서는 일대사 인연으로 개시오입하여

일념이 삼천이고 삼제가 원융하여 즉견여래이다.

 

깨달음이란 생각으로 만드는 것도 반복된 수행이나 지식으로 연습된 것도 아니다.

일어난 그대로 있는 그대로를 알아차리는 것이다.

 

아무 생각도 없이 일으키는 한 마음

하되 함이 없이 하는 그러함이 불법이다.(응무소주 이생기심(應無所住 而生其心)

 

그러한 한 마음을 내는 모든 것은

꼴이 다르고 쓰여짐이 다르다고 다른 것이 아니라 모두가 각자가 부처이다.

 

다만 그 모든 것은 서로서로 하나로 이어져 있어 또 다른 나 임을 안다면

그대는 하되 함이 없이 하는 모든 것은 나를 위하여 하듯이 모두를 자애로 자비하게 된다.

 

한 생각 한 마음 내는 순간에 이미 깨달음이다.

손 한번 들어 올리는 것이 깨달음이고 걷기 위해 발 한 발이 떼는 순간이 깨달음이다.

 

이것이 부처의 삶이고 법계의 진리를 쓰는 깨달은 자다.

그 어느 것 하나 나타나 있는 모든 것은 이미 부처이다.

 

내가 깨닫는 순간 이 세상은 불국토이고 열반이기에 모든 중생이 구제된 것이다.

너와 내가 크고 작은 좋고 나쁨 대소승은 차별이 없다.

 

모든 존재는 각자가 이미 완전한 존재로 다를 뿐이다.

내가 깨달으면 이미 일체중생을 다 구원한 것이다.

 

불국토를 만들고 구원의 자비를 행하는 것만이 수행이고 불자가 아니라.

스스로 깨달음을 얻으면 모든 세상은 이미 불국토요 모든 중생을 다 구원한 것이다.

 

내는 마음이 이미 성불이기 때문에 모든 세상은 불국토이다.

불교는 현실주의다. 실용주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