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 불교

우리말 불교 - 명상과 바라밀, 집단과 개인주의

통융 2022. 2. 2. 05:36

불교는 개인주의 명상에서 출발한다.

부처님이 생로병상의 괴로움에서 출발한 개인의 행복 추구를 목적으로 수정주의며 행동적 작용주의다.

그런데 직접 명상 수행을 통해 깨달은 것은

 

우주 전체가 하나로 서로 연결되어 있는 전체주의다.

이 세상에 모든 것은 연기된 작용으로 일어남을 알아차린다.

 

모든 것은 연기작용으로 모든 것은 나타남과 동시에 없어져 무상하며

그런데 모든 것은 고정되어 있고 머문다고 착각하여 탐진치의 영생을 꿈구다 이루지 못해  괴로움을 갖는다.

나타난 모든 것은 절대의 개체로 닮은 것은 하나도 없다.

각의 나타남과 쓰임이  다를 뿐, 있는 그대로 인정하지만

그 모든 것은 서로서로 연결되어 하나로 이어져 있다.

그래서 나라고 할 만한 것이 없어 무아이다. .

 

그 진리를 이해하고 알아차리는 것이 교학이라면

그러한 이치를 실제로 작용하는 것임을 깨닫고 그렇게 실천하는 것이 수행이다.

 

부처님이 수행은 6년이고 포교는 45년이다. 

수행적 명상과 이론적 교학을 동시에 해야한다고 중생들에게 전도한 것이다. 

 

이론적인 연기의 이론의 경전이 화엄경이고

수행적인 명상을 가르친 것이 반야부경전이다.

이 것들을 접목하여 동시에 가르친 것이 법화경이다.

 

이론적인 깨달음이 없이 수행만 한다면 개인 행복을 추구하는 명상주의로 빠지고 이웃을 돌보는 바라밀 행이 부족할 수있다.

수행없이 이론 중심의 교학적 깨달음은 논리와 설명만 있을 뿐 이원론적인 바라밀만 강조할 뿐 실재가 없는 개인적인 행복이 없다.집단주의 인 보살주의로 전환한다

 

소승과 대승을 구분짓는 원인이다.

진리의 접근을 어디에 관점을 맞출 것이냐의 차이다.

 

소승도 모두가 오직 깨어 있는 삶이면 그 사회는 극락이다.

대승도 깨어있지 못하면 그 사회는 지옥이다. 오히려 지식의 격차만 생긴다.

 

우리는 모두가 동일시하는 공동체 사상이다.

명상은 지극히 개인적 깨달음의 피안을 추구하는 개인성찰에 있다.

 

인류의 문화와 역사 속에서

사화적인 흐름이 그것을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