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엄경

능엄경의 7처징심

통융 2020. 9. 5. 21:30

칠처징심의 내용과 개요

1) 내용

칠처징심이란 능엄회상에서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마음의 소재를 물으시매 아난이 일곱 번에 걸쳐 일곱 군데에 마음이 있다고 내보인 것으로

부처님께서 차례로 망답(妄答)을 파(破)하시고 오류를 지적하여 마음은 그 어느 곳에도 있지 아니한 상주진여(常住眞如)이며, 성정명체(性淨明體)임을 가리키시고 객진 번죄(客塵 煩惱)를 설명하여 진견(眞見)으로 이끌어 가는 과정으로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① 내재(在內) -「몸 속에 있다고 하다」

일체중생(一切衆生)이 모두 마음은 몸 안에 있고, 눈은 얼굴에 있습니다 라고 하나, 몸 안에 있다면 '방(房)안에 있으면서 먼저 방 안의 것들을 보지 않고 바깥을 볼 수 없는 것과 같이 몸 안에 있는 마음이 먼저 몸 속을 보아야 하나 안을 보지 못하므로 몸 안에 있다는 것을 인정할 수 없다.'

② 재외(在外) -「몸 밖에 있다고 하다」

마치 등불을 방안에 켜 놓으면 방안부터 비춘 다음 창문을 통해 마루, 뜰, 마당을 차례로 비추듯이 우리의 마음도 몸안을 보지 못하고 몸 밖을 보는 것이 마치 등불을 방밖에 켜 놓으면 방안을 비추지 못함과 같이 마음이 몸밖에 있는 것 같이 생각된다면, 한 사람이 밥먹음에 여러 사람이 따라 배부를 수 있겠는가? 그렇지 못하나니 너의 각료능지(覺了能知)하는 마음이 실(實)로 몸 밖에 있다고 하면 밖(外)인 몸(身)과 안(內)인 마음(心)과는 하등의 상관(相關)이 없어 마음의 대상을 몸이 느끼지 못할 것이며, 반면 감각(感覺)이 신제[身際(몸과 바깥경계와의 연접선(連接線))]에 있을진댄 마음이 또한 알지 못할 것이다. 그러므로 네가 나의 손을 볼 때에 마음이 따라서 작용(分別)하나니 몸과 마음이 서로 알 것 같으면 어찌 마음이 몸 밖에 있겠는가? 몸 밖에 있다고 하는 것이 옳지 않느니라.

③ 잠근(潛根) -「눈 속에 있다고 하다」

마음이 오근(五根)속에 있는 것이 마치 안경을 쓰면 비록 물질(質碍)의 물(物)이 눈과 합(合)하였으나 외경(外境)을 보는데는 장애(障碍)가 없어서 낱낱이 분별하여 알게되므로 몸 안을 보지 못하는 것은 오근(五根)뒤에 있기 때문이요, 바깥을 보는 것은 근내(根內)에 잠재해 있기 때문이라 하니 너의 눈이 안경을 통하여 바깥을 볼 때에 안경을 먼저 보는 것처럼 마음이 눈을 통하여 외물(外物)을 볼 때에 자기의 눈을 먼저 보아야 하리니 어째서 보지 못하는고?
만일 억지로 본다고 하면 능견(能見)인 눈이 소견(所見)인 경(境)이 되었으니 따라서 분별한다(隨卽分別)는 말이 성립되지 않고 만일 자기의 눈을 스스로가 보지 못할진댄 어찌 근(根)속에 잠재한 것이 유리(琉璃)를 눈에 댄 것과 같다고 하리요. 그러므로 근(根)속에 잠복(潛伏)하고 있는 것이 유리를 댄 것과 같다고 한 말이 옳지 않느니라.

④ 장암(藏暗) -「어두운 몸 속에 있다고 하다」

중생의 부장(腑臟)이 몸 안에 있고 구멍(通關)이 밖의 표면에 있은 즉 오장육부(五臟六腑)에 있어서는 어둡고 통규(通窺)에 있어서는 밝아서 눈을 감고 어둠을 보는 것은 몸 안을 보는 것이고 눈을 뜨고 밝음을 보는 것은 바깥을 봄이라고 하니, 눈을 감고 어둠을 볼 때에 어두운 경계(境界)가 너의 눈과 상대[相對(前對)]하였는가? 상대했다면 어둠이 눈 앞에 있는 것이니 어떻게 내대(內對)를 이룰 수 있을 것인가? 만일 억지로 안을 이룬다고 고집(固執)한다면 밝음이 없는 방안에 있을 때에 이 암경(暗境)이 다 모두 너의 초부[焦腑(三焦六腑)]일 것이며, 반면에 너의 눈이 그 어둠과 상대하지 않았다고 하면 어떻게 그 어둠을 볼 수 있겠는가? 만일 외견(外見)을 떠나서 내대(內對)가 성립되어 눈감고 어둠을 보는 것이 바로 몸 안을 보는 것이라고 하면 눈뜨고 밝음을 볼 때에 어찌 너의 얼굴을 보지는 못하는가? 내대(內對)가 성립되지 못하리라.
또 만일 얼굴을 본다고 할진댄 안근(眼根)이 허공(虛空)에 있는 것이니 안을 이루지 못할 뿐 아니라 너의 몸이 아니며 너와는 하등의 관계가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너의 눈은 지각(知覺)하는 작용(作用)이 있지만 너의 몸은 감각(感覺)의 작용(作用)이 없을 것이다. 만약 네가 눈과 몸 모두가 감각이 있다면 너의 한 몸에 신지(身知)와 안지(眼知)인 이지(二知)가 있어 양불(兩佛)을 이룰 것이니 네가 말한 눈 감고 어둠을 보는 것이 곧 신내(身內)를 보는 것이라고 함이 옳지 않느니라.

⑤ 수합(隨合) -「합(合)하는 곳을 따라 있다고 하다」

사유(思惟)하는 체(體)가 실(實)로 나의 심성(心性)이므로 법(法)을 반연(攀綠)할 때에(생각이 미친곳) 마음이 따라 있다 하니 이 사유심(思惟心)이 체(體)가 없다면(경계가 없어져서 반연하지 아니할 때에) 따라서 합(合)할 바가 없을 것이요, 만약 억지로 체(體)가 없으되 합(合)할 바가 있다고 하면 이는 19계(界)가 7진(塵)을 인(因)하여 합한다는 말과 같으리라. 또한 사유심이 체가 있다고 한다면 몸을 누를 때에 마음이 안에서 나오겠는가? 밖으로부터 들어가겠는가? 안으로부터 나온다면 마땅히 내장(內臟)을 보아야 할 것이요, 밖으로부터 들어온다면 네 얼굴을 보아야 하리라.
또한 사유심이 체가 있다면 일체(一體)냐, 다체(多體)냐,  體냐,  體가 아니냐, 만약 일체(一體)라면 몸을 누를 때 누르는 처소가 없을 것이니, 누르는 처소가 있다면 일체(一體)가 성립되지 아니하고 만약 다체(多體)라면 많은 사람을 이루리니 성립되지 아니하고  體라 하면 일체의 비유와 같고 체에 두루하지 않는다 하면 머리를 만지고 다리를 만질 때에 머리는 느끼는 바가 있고 발은 아는 바가 없어야 하리니 또한 두루하지 않다 하는 것도 불성립(不成立)이라.

⑥ 중간(中間) -「근(根)과 진(塵)의 중간에 있다고 하다」

몸 안을 알 수 없으므로 몸 안에 있다고도 할 수 없고 몸과 안의 마음이 서로 연관(連關)하므로 밖에 있다는 말도 할 수 없으니 마땅히 육근(六根)과 육진(六塵)의 중간(中間)에 있다고 하나니 그 중간의 지점이 어디인가? 몸에 있는가? 경계에 있는가? 몸에 있다면 몸이 전후좌우의 변(邊)이 아닐 것이요, 중간에 있다면 안에 있음(在內)과 같다. 중간이란 지점을 뚜렷이 표시할 수 있는가? 없는가? 없다면 이는 아주 없는 것이고, 있다면 이는 일정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푯말을 중심으로 하여 보는 사람의 위치변경에 따라 푯말 자체가 사방(四方)과 상하(上下)로 변(便)하여지기 때문이다.
근(根)과 진(塵)이 대합(對合) 하는 가운데 식(識)이 생(生)하므로 그것을 중간이라 하니 근진의 중간에 있는 마음은 근과 진 두 가지를 겸섭(兼攝)했는가? 않았는가? 만일 양변(兩邊)을 겸하였다면 진(六塵-境)은 그 자체가 지각(知覺)의 작용이 없는 것이고, 근은 수촉(受觸)의 감각이 있는 것이다. 유지(有知)인 근과 무지(無知)인 진이 서로 합하였으니 이는 물에 기름을 섞은 듯 하여 양립한 것이지 어찌 중내(中內)가 성립될 수 있겠는가? 겸이(兼二)가 성립되지 않으면 네가 말한 그 마음의 자체는 육근과 합하지 않았기 때문에 지적작용이 없을 것이요. 육진과 합하지 않았기 때문에 불지(不知)인 무정도 아닐 것이다.
이와 같이 자체성(自體性)을 찾아 볼 수 없으니 중(中)이란 것이 어떤 것이겠는가? 마음이 근경(根境)의 중간(中間)에 있다는 말이 옳지 않느니라.

⑦ 무착(無着) -「안 밖, 중간 어디에고 있지 않다고 하다」

분별심성(分別心性)이 주(住)하는 바가 없다고 하니 우주안에 존재한 삼라만상을 일체라고 한다. 네가 착(着)함이 없다고 하는 말은 대상(對象)이 있는데 착하지 않는다는 말인가? 본래 아무 것도 없어서 착할 것이 없다는 말인가? 없다면 귀모토각(龜毛兎角)과 같아서 착하지 않는다고 할 것도 없으며, 착하지 않는다고 하면 벌써 대상(對象)이 있음을 뜻하니 이것은 무(無)라고 할 수 없다.
현상(現象)이 없으면 없는 것이고, 없는 것이 아니면 곧 있는 것이니 상(相)이 있으면 곧 착함이니 어찌 착이 없으랴. 일체(一切)에 착하지 않는 것이 마음이라 함이 옳지 않느니라.

2)개요(槪要 )

참된 마음과 눈에 관하여 힐문한 것이니, 곧 재내, 재외, 잠근, 장암, 수합, 중간, 무착 등이다.

전장으로는 위신력을 나투고 후장으로는 사마타의 이종근본(무시생사근본, 무시보리열반원청정체)을 일으키는 참 마음의 소재에 관한 문답으로, 부처님께서는 유(有)에 집착한 것을 상견(常見), 무(無)에 집착한 것을 단견(斷見)이라 파하시어 진심과 진견을 단상이견으로 파악하려는 것을 견제 하셨다.

위의 칠처중에 ① 재내, ③잠근, ④ 장암 등은 곧 식의 체가 육근의 내에 있다는 말이니 有의 상견이고, ② 재외는 육근의 밖에 있다는 말이니 또한 有의 상견이다.

⑤ 수합, ⑥ 중간은 육근 육진이 상대하는 가운데 있다는 말이니 이것도 有의 상견이다. ⑦ 무착은 식의 체가 무착에 집착함이 되므로 무의 단견이 된다 파하시고 단견과 상견의 불합리성을 이종근본으로 간택하고, 객진번뇌로 망상의 편국과 진성의 보편원융을 밝히시어 진성을 읽게 되는 것은 외경에 대하여 생멸심을 내는데 있음을 비유로 밝혀 근, 진의 집착에서 멀리 여의기를 권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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