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엄경

화엄의 세계

통융 2020. 3. 28. 07:12

화엄의 세계

 

 

우리가 보통 「화엄경」이라고 부르는 불경의 본래 이름은 「대방광불화엄경」으로, '대방광'이란 대승 곧 진리를 의미하고 '불화엄'이란 아름다운 연꽃으로 옥대()를 장식하듯 보살이 여러 가지 꽃으로 부처님의 연화장 세계를 장식한다는 뜻을 담고 있다.

이 경의 부처님은 비로자나부처님으로서, 바이로차나(Vairocana)라는 범어를 발음대로 음역한 것이다. 광명변조(), 대일변조(), 변일체처(), 변조왕여래()로도 의역되는데, 뜻은 태양이 온 세계와 우주를 비추듯 진리의 빛을 비추는 '광명의 부처님'이다. 태양처럼 일체 세간의 어둠을 없애고 일체 만물을 생장시키며, 우주에 두루 가득하여 무한한 빛을 비추는 우주의 통일체를 상징한다.

그 종류에는 세 가지가 있는데 모두 「대방광불화엄경」이라는 똑같은 제목이 붙어 있기 때문에 구별하기 어렵다. 그 첫째는 불타발타라가 418년에서 429년 사이에 한역한 것으로, 모두 60권 34품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세칭 60화엄이라고 부른다. 불타발타라는 구마라집보다 15세 정도 연하였으며, 장안에서 라집을 만나게 되었지만 그와는 달리 왕실을 멀리하다 보니 그 문하로부터 배척을 당해 혜원()을 찾아가 역경사업에 종사했다고 한다. 이 불타발타라의 60화엄이 예로부터 화엄종의 소의경전()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으며, 구역()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두 번째는 실차난타가 7세기 말에 한역한 것으로 모두 80권 39품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흔히 80화엄이라고 하며, 신역()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실차난타는 695년에 낙양에 범본 화엄경을 가지고 와서 의정, 보리유지와 함께 번역하기 시작하여 699년 복례()와 법장()과 같이 번역을 끝마쳤다. 이 신역은 구역보다 내용이 비교적 완비되어 있고 구역의 '입법계품()'에서 일부 빠진 구절들을 보충하고 품을 세분화했으며, 특히 구역에서는 볼 수 없는 '십정품' 같은 내용을 보충하고 있다.

세 번째는 계빈국 출신의 반야가 번역한 것으로, 40권 1품으로 되어 있어 보통 40화엄이라고 부른다. 이 40화엄은 60화엄과 80화엄 속에 있는 '입법계품'의 내용을 다른 범본에 따라 번역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40화엄의 1개품 이름은 '입불사의해탈경계보현행원품'이다.

우리나라에 「화엄경」이 전래된 것은 신라시대로, 원효나 의상 같은 고승들에 의해 해동화엄으로서 신라불교의 중심을 이루었다. 고려시대에는 화엄교학을 중심으로 하나의 종파로 성립하여 융성함을 더하였고, 천태종과 함께 쌍벽을 이루었다. 팔만대장경을 책임 편찬한 수기대사와 일군의 학승들도 화엄계 승려들이었다. 모든 불교종파가 선종과 교종으로 통합된 조선시대에 들어와서도 화엄은 교종의 중심교학으로 장장하게 계승되어 한국불교 교학의 중추적인 역할을 수행해왔다.

「화엄경」에 펼쳐진 장대한 보살행의 정서는 우리 문화에도 지속적인 영향력을 끼쳐서, 「화엄경」의 부처님인 비로자나불을 본존으로 모시는 화엄사찰들이 전국 방방곡곡에 별처럼 벌려 있고, 그 절집을 껴앉고 있는 산의 가장 높은 봉우리는 보통 비로봉이라 불릴 정도다. 화엄사상은 그 장대하게 체계화한 비로자나불의 세계에다 다양하게 전개되어온 다른 대승사상들을 수용하면서, 통불 교적인 해동불교의 이념을 국토에도 접목시켰던 것이다. 신라 중흥기의 통일이념은 바로 화엄적인 국토 이념에서 나온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며, 이러한 흐름은 지금까지 면면히 이어져 우리 문화의 기층을 이루고 있다.

「화엄경」의 구성 형식과 내용
「화엄경」은 석가모니 부처님이 보리수 아래에서 성도한 뒤, 그 두 번째 되는 7일 그러니까 14일째 되는 날 금강보좌를 떠나지 않고 바로 그 자리에서 해인삼매()에 든 채, 문수보살이나 보현보살 같은 상근기 보살들을 위해 스스로 깨달은 내용을 설한 것이라 한다. 그러므로 사리불이나 목건련 같은 부처님의 제자들은 그 자리에서 함께 들었는데도 이해할 수 없었고, 최초의 설법을 담았다는 「아함경」에서도 기록되지 못했다고 한다. 언어로 묘사할 수 없는 부처님의 깨달음의 경지를 표현한 것이 바로 「화엄경」인 것이다.

일설에 의하면, 불멸 후 700년쯤에 나타나 대승사상을 크게 고취한 용수보살이 대룡궁 수정방( )에서 삼 년 동안 좌선정진하던 중에 용궁에 들어가서 「화엄경」을 열람하고 외워냈다고 한다.

「화엄경」의 특징은 부처님 자신이 설하는 것이 아니라 부처님 주위에 모인 수많은 보살들이 삼매에 들어가 부처님이 깨달은 내용을 감득하여, 부처님의 가피력으로 설하는 형식으로 되어 있다는 점이다. 일곱 장소(7처) 여덟 번의 법회(8회) 형식을 빌어 마치 한편의 장대한 대하 드라마를 전개해가는 듯한 웅대한 구상 속에, 광대하고도 황홀한 부처님의 세계와 그로 향하는 보살들의 여정()을 그려내고 있다. 특히 제8회 '입법계품'은 어린 선재동자가 열렬한 구도정신으로 53명의 스승들을 찾아 여행을 떠나는 이야기로서, 지극히 애독되는 부분이다.

「화엄경」 가운데 80화엄이 내용상 가장 빠진 것이 없고 역문도 유려하지만 화엄교학에 결정적인 영향력을 미친 법장의 「화엄경탐현기」가 60화엄에 바탕을 두고 있으므로, 여기에서는 이 60화엄을 통해 화엄의 세계를 구경해 보기로 한다. (「화엄경탐현기」는 고려팔만대장경의 거의 끝부분에 들어 있는 것으로, 보유잡장의 해당 항목에서 거론될 것이다.)

60화엄은 7처 8회 34품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크게 전반부와 후반부로 나눌 수 있다. 무한히 전개되는 「화엄경」의 내용들은 지상에서 천상으로 그리고 다시 지상으로 장소를 옮겨가면서 우주적인 규모로 펼쳐지지만, 장소로 요약하면 7처에서 8회 법회를 연 것으로 볼 수 있다.

제1품인 '세간정안품()'에서 제33품인 '이세간품()'까지가 전반부에 해당되고, 마지막인 '입법계품'은 후반부에 해당한다. 7처에서 8회가 열렸다고 하는 법회를 간략하게나마 알아보자.

먼저 법회 장소를 분류해보면 첫째 법회는 마가다국 적멸도량이고 둘째 법회는 보광법당으로, 이 두 곳은 모두 지상이다. 셋째 법회는 수미산정의 제석천, 넷째는 야마천의 보장엄전, 다섯째는 도솔천궁의 일체보장엄전 그리고 여섯째는 타화자재천궁의 마니보전으로 모두 천상에 해당한다. 불교의 세계관에서 보면 낮은 천계에서 점차 높은 천계로 옮겨가는 구성방식을 취하고 있다. 그런데 일곱번째와 여덟번째 법회는 다시 지상으로 자리를 옮겨 각각 보광법당과 기수급고독원의 중각강당이 되고 있다. 이 법회 장소의 이동은 그저 우연이 아닌 듯 하다. 지상에서 천상으로 갔다가 다시 지상으로 돌아오는 구성은 세간에서 출세간으로 그리고 다시 세간으로 돌아오는 것과 마찬가지로 부처님의 가르침은 결국 지상에 살고 있는 현실의 인간들을 목표로 하고 있음을 상징하고 있다.

다음으로 각 법회의 내용을 보면, 첫째 법회는 부처님께서 마가다국에서 성도하는 장면으로 시작되고 있다. 그때 부처님은 화엄경의 교주인 비로자나불과 일체를 이루고 있다. 그리하여 수많은 보살들이 저마다 일어나 부처님을 찬양 한다. 둘째 법회에서 부처님은 보광법당의 사자좌로 자리를 옮긴다. 여기에서 문수보살은 사성제를 설하고 10인의 보살은 각각 10심심()을 문답식으로 설한다. 여기서 10심심이라는 것은 연기(), 교화(), 업과(), 설법, 복전, 정교(), 정행, 조도(), 일승(), 불경계()를 말한다.

셋째 법회는 제석천에서 열린 것으로 여기에서는 10주()의 법이 설해지고 있다. 10주는 초발심주, 치지()주, 수행주, 생귀()주, 방편구족주, 정심()주, 불퇴주, 동진()주, 법왕자주, 관정()주를 말한다.

넷째 야마천궁 보장엄전의 법회에서는 10행이 설해진다. 10행은 환희행, 요()행, 무에한행, 무진()행, 이치난()행, 선현()행, 무착()행, 존중()행, 선법()행, 진실행이다.

다섯째 법회에서는 10회향()이 설명되고 있다. 10회향은 다음과 같다. 구호일체중생리중생상()회향, 불괴()회향, 등제불()회향, 지일체처()회향, 무진공덕장()회향, 수순평등선근()회향, 중생을 위해 널리 복전이 되는 것, 상()회향, 무박무착해탈()회향, 법계무량()회향이다.

여섯째 법회에서는 10지()의 법이 설해진다. 10지란 보살이 수행해가는 열 가지 단계를 말한다. 10지는 다음과 같다. 첫째는 열 가지 큰 목표를 내걸고 열 가지 곧은 마음을 닦아서 처음으로 대승불도의 수행을 닦는 단계인 환희지(), 둘째는 계율에 대한 수행을 중심으로 열 가지 선행을 닦는 단계인 이구지(), 셋째는 꾸준히 노력하여 나아가려는 수행을 통하여 교리를 체득 하는 단계인 명지(), 넷째는 네 가지 이치를 체득하고 차별없는 마음을 닦는 성문()의 경지인 염지(), 다섯째는 평등의 법을 닦는 단계인 난승지(), 여섯째는 12가지 인연을 관찰하고 공의 이치를 깨닫는 연각()의 단계인 현전지(), 일곱째는 10바라밀의 법을 닦는 단계인 원행지(), 여덟째는 보살 수행의 높은 경지에 이르는 부동지(), 아홉째는 세상의 일반적인 이치와 개별적인 사물들의 성질을 깨닫는 단계인 선혜지(), 열째는 부처와 같은 경지에 이르러 보살의 최고 지위를 성취하는 단계인 법운지()이다. 이 부분은 「화엄경」안에서도 매우 중요한 부분으로 여겨지고 있다.

이 열 가지 내용을 살펴보면, 제1지는 10가지 수행의 내용을 개괄한 것이고, 제2지부터 제4지까지는 자기 자신을 위한 수행으로 되어 있으며, 제5지부터 제 7지까지는 다른 사람을 교화하기 위한 준비단계이고, 제8지부터 제10지까지는 사람들을 교화하고 구제하기 위하여 실천하는 단계로서, 이러한 것은 「화엄경」에서만 볼 수 있는 수행방법이다.

지상으로 돌아온 일곱째 법회에서는 지금까지 설한 것을 요약하고 있다.

여덟째 법회는 '입법계품'으로 선재동자가 보리심을 내어 선지식들을 두루 찾아다니며 가르침을 받아 수행을 완성하여 마침내 깨달음에 이르는 과정을 담고 있다. 이 '입법계품'은 「화엄경」의 마지막 품이지만 60권 가운데 16권을 차지할 만큼 '십지품'과 함께 중요한 부분으로 여겨지고 있다. 위에서 제시된 10지의 수행과정과 완성을 설화의 형식을 빌어 설명한 것이 바로 이 '입법계품'인 까닭이다.

선재동자가 만난 53인의 선지식은 여러 계층으로 이루어져 있다. 처음에 그를 구도행으로 이끌어 진리로의 여행을 떠나도록 인도하는 문수보살을 시작으로, 세 사람의 비구와 좋은 의사인 미가, 재가 여신도인 휴사, 비목다라 선인, 방편명 바라문, 미다라니 소녀, 감로정 장자, 만족왕, 일체중생을 이끄는 외도, 뱃사공 자재, 비구니, 바수밀다 여인, 관세음보살, 바사바타 야신, 동자 등 비천한 신분의 사람에서부터 보살과 천신에 이르고 있다.

그리하여 그는 '삶과 죽음은 모두 다 꿈과 같고, 오온은 모두 헛깨비 같다'는 미륵보살의 가르침을 이해하고, '비유하면, 밝고 맑은 해가 세상의 어둠을 비추어 없애는 것같이, 부처님의 맑은 지혜의 해는 과거, 현재, 미래의 어둠을 모두 없앤다'는 보현보살의 가르침을 끝으로, '이 법을 듣고 환희하며, 마음으로 믿어 의심하는 일이 없는 사람은 위없는 도를 빨리 성취하여 모든 부처님과 동등해진다'고 맺음하고 있다.

 화엄의 세계 (한 권으로 읽는 팔만대장경, 2007. 6. 10., 영담, 진현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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