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화경 대강좌 2강 - 1
一心頂禮 盡十方三世 一切諸佛
일심정례 진시방삼세 일체제불
一心頂禮 盡十方三世 一切尊法(일체존법)
一心頂禮 盡十方三世 一切賢聖僧(일체현성승)
我弟子等 講論三藏 唯願三寶 爲作證明
아제자등 강론삼장 유원삼보 위작증명
南無本師釋迦牟尼佛(나무본사석가모니불)
南無本師釋迦牟尼佛 南無本師釋迦牟尼佛
無上甚深微妙法 百千萬劫難遭隅
무상심심미묘법 백천만겁난조우
我今聞見得受持 願解如來眞實義
아금문견득수지 원해여래진실의
지난 시간에 전개된 내용을 간단하게 간추려서 말씀드리면 법화경 전체의 서론에 해당되는 서품을 우리가 공부하고 있는 중입니다. 법화경이 方便品부터가 본론인데요. 본론이 제대로 갖추어질 수 있도록 분위기조성이라고 할까? 그런 서론적인 내용이 상당히 장황합니다. 부처님께서 문득 상서를 나투셨는데, 상서는 이 국토에서 6가지 상서. 그 중에서 광명을 놓았는데 광명에 비친 다른 국토에서의 6가지 상서가 있었지요? 거기에서 미륵보살이 그 상서의 연유를 자비의 발로로 문수보살에게 묻게 됩니다. 문수보살이 그 상서의 연유를 과거경험에 의해서 쭉 설명을 해 나가는 과정이지요.
설명에 의하면 문수보살은 과거에 수많은 부처님을 섬겼던 분이어서 과거 수많은 세월 전에 일월등명 부처님이란 분이 계셨고, 그 일월등명 부처님이란 분의 내력을 쭉 이야기 해가는 그런 내용이지요. 그러면서 그 안에 사이사이에 우리가 늘 공부해왔고, 또 일상에서 실천해 왔고 들어왔던 내용들이 사이사이에 많이 나타나 있습니다.
법화경이 대승경전 중에서 정말 중요한 경전으로 자리매김하고 있기 때문에 대개불교가 화엄경에 근거하거나 법화경에 근거하거나 또는 반야경에 근거하거 하는 것. 반야부경전. 법화부경전. 화엄부경전을 “대승 삼부경” 이라고 하는데 거기에 근거해서 어떤 사상의 토대가 마련되었고, 그 사상의 토대위에 우리의 신행생활과 수행이 비로소 전개 된다는 점입니다.
법화경이라고 하더라도 전혀 새로운 이야기는 아니고, 단 이 시대를 우리가 살면서, 이 시대에 오늘을 살면서 우리의 상식과 우리의 수준에 용납이 되고 소화가 되는 입장으로 법화경을 보고, 풀이를 하고 해석을 하는 것이 우리들의 과제입니다.
이것은 다음 달에는 다음 달에 맞는, 내년에는 내년에 맞는, 다음 세대라면 다음 세대에 그 시대 상황에 맞는 새로운 해석들이 부단히 이어져야 되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여러 스님들은 여기서 저의 강의를 참고로 듣지만, 이 강의를 참고로 해서 여러분의 안목과 여러분의 견해에 의한 강의가 진행이 되어야 되고, 더욱 더 빛나고 새롭고 발전된 해석이 반드시 나와야 되리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스님들에게 부여된 과제라고 저는 늘 그런 생각을 합니다. 이왕 우리가 법화경을 공부하니까 메모를 하시는 것도 좋지만, 사경을 하시는 것이 좋습니다. 한번 정도가 아니라 최소한도 세 번에서 10번쯤 사경을 하면 아주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62. 日月燈明佛 於六十小劫 說是經已
일월등명불 어육십소겁 설시경이 일월등명부처님이 60소겁 동안 이 경전을 설하셨다고 그랬어요.
이것 역시 문수보살이 과거 일월등명부처님 시절에 보신 내용입니다. 그리고는
卽於梵 魔 沙門婆羅門 及天人阿修羅衆中 而宣此言
즉어범 마 사문바라문 급천인아수라중중 이선차언 범천들에게 마들에게 사문들에게 바라문들에게 천신들에게 사람들에게 아수라 대중들에게 아주 중요한 선언을 하셨다고 그랬어요.
63. 如來於今日中夜 當入無餘涅槃
여래어금일중야 당입무여열반 여래가 今日 한 밤중에 마땅히 무여열반에 들리라. 열반에 대한 설명이 많지만, 여기에 표현된 내용으로 볼 때 무여열반은 죽음입니다.
살아있으면서 번뇌가 사라진 상태를 유여열반이라고 하고, 이 몸마저 없어진 상태를 무여열반, 다른 뜻은 여기서 거론할 필요가 없고, 여기서 무여열반이란, 물론 부처님은 번뇌가 사라진지 오래고 이 몸마저 사라져 버리는 상황을 표현하고 있지요.
마땅히 무여열반에 들리라. ←이렇게 했다는 말이지요. 그리고 최후로
64. 時有菩薩 名曰德藏(시유보살 명왈덕장) 그 때에 한 보살이 있었는데 이름이 덕장보살이다.
日月燈明佛 卽授其記 告諸比丘
일월등명불 즉수기기 고제비구 일월등명부처님이 그에게 곧 其記를 주시고, 授其記하고 그랬어요. 그 기를 줬다. 其記라는 것을 재대로 표현하면 佛記라고 말 할 수가 있습니다. 우리가 몇 년, 몇 년 하는 그 “기”가 아니고, 이것은 부처가 된다는 분명한 기록.
이것은 불교용어로 記莂(기별)이라고 표현합니다. 이 莂자는 씨를 뿌릴 별. 모종 낼 별입니다. 그러면 이것은 씨를 뿌리는 별자라고 하면 벌써 이해가되실 겁니다. 구체적으로 하면 “기별을 주시다.” 이렇게 되거든요. 우리가 수기라고 하는 말을 잘 쓰지만, 그 글자를 확실하게 이런 기회에 익혀둘 필요가 있습니다.
“기별을 주다.” 또는 불기를 주다.” 그러는데 불기도 역시 기별을 이야기 하는 것이지요. 부처가 될 것이라는 예언이니까 씨를 뿌릴 별자가 딱 맞는 것이지요. 여기에서 나오는 상식적인 이야기는 “부처가 될 것이다.”하는 기록을 줄 것이다.
법화경은 부처님 최후의 설법이기 때문에 수기 주는 내용이 대단히 많습니다. 앞으로 만나게 되겠지만 대단히 많으므로 수기에 대해서 확실히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는 것이지요. 정확하세 하면 “기별을 주다.” 기별은 부처의 씨앗이 되는 기록을 남겨준다는 뜻이지요. 기록은 꼭 글로 써야만 기록이 아니라 설법을 통해서, 말씀을 통해서 해도 여기서는 하나의 기록이 됩니다. 그래서 其記라고 하는 것은 佛記. “부처가 되는 기별을 주다.” 그랬습니다. 그러면서 어떤 형식을 취하는가 하면 告諸比丘. 여러 비구들에게 고 하시기를
65. 是 德藏菩薩 次當作佛 號曰 淨身多陀阿伽度 阿羅訶 三藐三佛陀
시 덕장보살 차당작불 호왈 정신다타아가도 아라하 삼먁삼불타 이 덕장보살은 다음에 마땅히 부처가 되리니, 號를 淨身여래. 응공. 정변지라하리라.
“정신여래. 응공. 정변지” 여기는 아주 간략하게 했습니다. 본격적으로 수기를 주는 장면에 나오면 아주 구체적인 설명이 나오고, 여래 10호가 다 등장 합니다. 여기는 10호 가운데 3호만 등장이 됐는데요.
66. 佛 授記已 便於中夜 入 無餘涅槃
불 수기이 변어중야 입무여열반 부처님이 기를 주어 마치시고, 한 밤중에 무여열반에 드시니라.
67. 佛 滅度後(불 멸도후) 부처님이 멸도한 후에, 여기서滅度라고 하는 것도 열반이지요. 滅度라고 하는 것을 제도한다는 의미로도 잘 쓰지만, 여기서는 滅度後라고 했으니까 달리 다른 뜻이 나올 수가 없습니다. 이것은 그대로 열반입니다. 죽음입니다. 정확하게 표현하면 “돌아가신 뒤”라는 뜻이지요. 그러나 이것을 번역을 없애고, 깨달음을 이룬 상태를 滅度라고 표현한 경전도 자주 볼 수 있습니다. 참고 하시고요. 부처님이 열반에 드신 뒤에 묘광보살이 있었지요.
妙光菩薩 持 妙法蓮華經 滿八十小劫 爲人演說
묘광보살 지 묘법연화경 만팔십소겁 위인연설 묘광보살이 妙法蓮華經을 가지고 80소겁이 차도록 사람들을 위해서 연설했다. 이 劫이라고 하는 말도 사전에 보면 여러 가지 설명이 있습니다. 그런데 큰 가로세로 높이가 40리 되는 석곽 안에다 겨자씨를 넣었다가 다시 들어내는 그 시간을 1년에 하나씩 하는데 그 시간을 1겁이라고 하기도 하고, 또 가로세로 높이가 40리 되는 큰 반석에 하늘에서 선녀가 1년에 한 번씩 내려와서 그 가벼운 옷을 스치고, 놀다가 가는데 그 바위가 다 닳아 없어진 시간을 1겁이라고 한다는 설명도 있고, 겁에 대해서 이야기가 많습니다.
그런데 참고로 열반경에는 이런 말이 나옵니다. 이것이 상당히 겁에 대한 타당성이 있는 증거인데, 부처님이 열반에 드시니까 제자들이 탄식하기를 “부처님이 왜 1겁을 못 채우시고 저렇게 가시는가?” ←이런 탄식이 나옵니다. 그럼 거기는 1겁이라는 것이 100년입니다. 100년을 1겁이라고 하는 것이 상당히 타당성이 있고, 또 우리 상식에 매우 근접한 표현입니다. 열반경에 나오는 이야기니까요.
“왜 1겁을 못 채우시고 저렇게 가시는가? 우리에게 반 겁을 설법해 주시고” 49년 설법했으니까 50년. “겨우 우리에게 반 겁을 설법해 주시고 왜 가시는가?” ←이런 표현으로 봐서 분명히 100년을 1겁이라고 보았던 근거가 되겠습니다.
日月燈明佛 八子 皆師妙光(일월등명불 팔자 개사묘광) 일월등명불의 여덟 아들이 묘광법사를 다 스승으로 삼았다.
妙光 敎化 令其堅固阿縟多羅三藐三菩提
묘광 교화 영기견고아뇩다라삼먁삼보리 그때 묘광이 교화해서 그들로 하여금 최상의 깨달음. (길어서 저는 아주 줄여서 말해버립니다. 금강경에서도 최상의 깨달음이라고 그래 버립니다.) 최상의 깨달음을 견고하게 했느니라. 無上正覺. 얼마나 좋습니까? 無上正覺을 견고하게 했다. 아주 요지부동으로 만들어 줬다는 말입니다.
是諸王子 供養 無量百千萬億佛已 皆成佛道 其 最後成佛者 名曰燃燈
시제왕자 공양 무량백천만억불이 개성불도 기 최후성불자 명왈연등
이 모든 왕자들이 한량없는 백천만억 부처님들께 공양해 마치매 다 불도를 이루고, 그 최후 성불한 사람은 이름이 연등불이었다.
여기에 諸佛. 無量無數. 不可思議 ←이런 표현을 대승경전에서는 무수히 봅니다. 무수히 봐요. 그런데 정작 부처님이라고 하는 분이 우리가 생각하는 석가모니부처님 같은 그런 분들이 과연 이와 같은 숫자로 있었겠는가? 이것은 의문이지요. 이런 문제도 사실은 우리가 요즘 사람들의 상식에 정말 이해가 되도록 해석을 해야 됩니다. 덮어놓고 無量諸佛. 無量無數. 不可說不可說佛刹微塵數. ←이것이 무슨 뜻이냐?
저는 불교를 공부하면서 보니까 대개 그렇대요. 공부를 많이 하신 분들이 中道중심으로 불교를 해석하는 분이 있고, 또 緣起중심으로 불교를 해석하는 분이 있고, 모든 것을 연기에다 맞추어서 해석하는 분이 있고, 중도에다 맞추어서 해석하는 분이 있고, 空에다 맞추어서 해석하는 분이 있고 그래요. 저는 人佛思想. 사람이 부처님이라는 人佛思想에 맞추어서 이해를 하고, 늘 그것을 주장합니다.
無量百千萬億부처님이라고 하는 것이 人佛思想이아니면 어떻게 해결할 수가 없습니다. 도대체 해석이 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럼 모든 사람 모든 생명이 전부 부처님이라는 그 사상에 입각해서 無量百千萬億부처님. 이라는 표현이 가능하지, “석가모니부처님이다.” “아미타불이다.” ←이런 식으로 우리가 계산해가지고는 도저히 계산이 나오지가 않습니다. 그래 조사스님들이나 법화경의 말씀이 따지고 보면 거의 인불사상입니다. 사람이 부처님이라는 거기에 근거를 두고 이야기가 됐다는 것을 여실히 알 수가 있습니다. 그것은 이제 법화경을 공부하면서 누차 드러날 문제입니다.
그 여러 왕자들 중에 마지막 부처님이 연등불이다.
연등불이 석가모니부처님의 스승이라고 경전에 전부 그렇게 되어 있지요. 그런데 사실은 언제 스승이었는지 알 수가 없는 겁니다. 경전에서 그냥 우리에게 이해시키기 위한 하나의 설화일 뿐입니다. 서문에 부처님시대의 역사적인 상황도 우리가 정확하게 알지 못하는데, 인류 역사가 사실 얼마 안 되지 않습니까? 이 지구상에 생물이 생긴 것이 기껏해야 60억년 밖에 안 되거든요. 그러니까 여기에 담고 있는 의미가 분명히 있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전번에도 연등불이니 일월등명불이니 하는 그런 이야기를 조금 언급을 하기는 했습니다.
초파일도 머지않아 다가오는데, 우리가 “연등행사” 그러지요? “燃燈” ←이렇게 써야지, 蓮燈 ←이렇게 쓰면 틀립니다. 그거 아셔야 돼요. 조계종에서도 큰 착오를 법하고 있는 것이 그렇게 국제적인 연등행사를 하면서 영어로 번역하기를 “lotus lantern festival” ←이렇게 번역을 했어요. 여기 전부 주지스님들이니까 참고 꼭 하시라고요. 그것은 틀린 해석입니다. 행사에서 보거나 여러 스님들이 사찰에서 등을 달지만, 연꽃등이 몇 개나 됩니까? 그리고 우리 불교 전래, 신라 때부터 고려로 성했던 행사는 등불을 밝히자는 뜻이지 연꽃등이라는 뜻은 아니거든요.
많은 등 중에 연꽃등이 그저 한 가지로 있을 뿐인데, 그걸 가지고 행사의 명칭으로 쓰고 있다니까요. 그것을 수 없이 논의 했는데도 처음에 누가 잘 모르고 그렇게 썼다는 겁니다.
“연등”하니까 ‘아, 연꽃등이구나.’이렇게 알고, 영어로 그렇게 “lotus lantern festival” ←이렇게 했는데 그것이 잘 못된 줄 나중에 몇 년 뒤에야 알고 보니까 이거 어떻게 고치지도 못하고 세계에 다 공포가 된 일이고요. 그래 버리면 역사성은 전혀 없는 것입니다.
“燃燈” ←이렇게 써야 되는 겁니다. 그리고 이것이라야 등불을 다는 의미가 살아납니다. 그래서 영어 전문가에게 제가 수없이 자문을 했거든요. 영어로 꼭 번역하고 싶거든 “lantern festival”이라고 하라는 겁니다. “lantern festival”이라고 하면 아주 좋다는 겁니다. 그렇게 하면 세계적으로 아주 훌륭하게 소개가 될 텐데 그렇게 연꽃등 축제라고 해놔서 뜻이 축소돼 버렸고, 또 역사성이 없어져 버렸다는 논란이 지금 상당히 일고 있습니다.
행사할 때 스님들이, 또 우리가 외국인들에게 소개하기 위해서 안내문을 쓰는데 꼭 참고 하시기 바랍니다.
우리 역사서에 보면 “燃燈”이라고 썼지, “蓮燈(연꽃등)”이라는 말 없습니다. 이런 것들도 스님들끼리 모였으니까 우리가 참고로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68. 八百弟子中 有一人 號曰求名
팔백제자중 유일인 호왈구명 8백 제자 가운데 한 사람이 있었는데 이름이 구명이라고 그랬어요. 그런데 그 구명이라고 하는 사람의 이름이 구할 求자 이름 名자입니다. 명예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뜻이지요. 그리고 그 사람은 貪着利養(탐착이양) 이양에 탐착한다. 그리고
雖復 讀誦衆經 而不通利(수부 독송중경 이불통리) 비록 경전을 독송하기는 해도 통달하지는 못한다. 通利라고 하는 것이나, 통달라고 하는 것이나, 達(달)자보다도 오히려 더 강한 표현이 通利입니다. 통달하지는 못하고,
多所忘失(다소망실)이라. 그냥 까먹어요. 법문 들을 때는 훤할 것 같은데 돌아서면 다 잊어버리고요. 억지로, 억지로 몇 줄 외워 놓으면 그만 또 잊어버리고요. 그래서 故號求名(고호구명)이라. 이름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지어졌다 이것이지요.
是人 亦以 種諸善根因緣故 得値無量 百千萬億諸佛 供養恭敬 尊重讚歎
시인 역이 종제선근인연고 득치무량 맥천만억제불 공양공경 존중찬탄
이 사람은 또한 여러 가지 선근인연을 심은 까닭으로 한량없는 百千萬億 여러 부처님을 만나서 공양하고 공경하고 존중하고 찬탄하였느니라. 이것이 꼭 필요한 일이라고 제가 그랬지요?
供養. 恭敬. 尊重. 讚歎. 사실 이것이 따르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부처님을 존경하게 되면 供養. 恭敬. 尊重. 讚歎이 저절로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중요한 것이지요.
69. 彌勒 當知 爾時妙光菩薩 豈異人乎 我身 是也
미륵 당지 이시묘광보살 기이인호 아신 시야 미륵 마땅히 알아라. 그 때 묘광보살이 어찌 다른 사람이겠는가? 내가 바로 그 사람이다. 그 때 묘광보살이 800제자들을 가르치고, 또 8왕자를 가르쳤지요?
求名菩薩 汝身 是也(구명보살 여신 시야) 구명보살은 네가 바로 그였느니라. 미륵보살은 좀 창피하겠지요?
今見此瑞 與本無異(금견차서 여본무이) 지금 이 상서를 보니 근본으로 더불어 하나도 다름이 없더라.
是故 惟忖 今日如來 當說大乘經
시고 유촌 금일여래 당설대승경 그런 까닭으로, 생각하건대 今日如來가 마땅히 대승경전을 설할 것이다. 그러니까 그 훌륭한 상서를 보았는데, 그 상서의 연유를 미륵보살이 물었고, 미륵보살이 물은데 대해서 문수보살이 자세하게 옛날이야기를 하면서 그 때 그 일과 오늘 석가모니부처님이 상서를 보인 것과 딱 맞아 떨어진다. 그래서 대승경전을 설할 것이다.
名 妙法蓮華(명 묘법연화) 이름은 “묘법연화”라고 할 것이다. 그리고 그 경전을 한 마디로 표현하면 뭐라고요?
敎菩薩法 佛所護念(교보살법 불소호념) 이것은 늘 따라 다닙니다. 항상 따라 다니지요.
妙法蓮華는 敎菩薩法이고 佛所護念이다. 이것은 무슨 말인가 하니, 실제 하든 안 하든 간에 수다원. 사다함. 아나함. 아라한. 4과가 있고 또 성문. 연각. 보살. 불. ←이렇게 되어 있잖아요. 이것이 四聖六凡 할 때 성인에 들어가는 것이 성문. 연각. 보살. 불이고, 육범은 지옥. 아귀. 축생. 인도. 천도. 아수라. ←이렇게 되어 있는데, 성인 가운데서 부처님 말고는 보살이 제일 높은 수준 아닙니까? 최고 수준이거든요. 그러면 불교에 있어서 최고 수준에 이른 사람들을 가르치는 교과서라는 말입니다이것이, 법화경이요. 敎菩薩法 이라고 하는 것이 그 말입니다. 최고 수준에 이른 사람들을 가르치는 것이다. 최고 수준이 누군지 가늠할 바는 없습니다만 어쨌든 표현은 그래요.
보살이라고 하는 것은 또 뭡니까? 최고 수준이라는 것을 복잡하게 생각할 것 아무 것도 없습니다. 보살은 대승적인 심성을 가진 사람. 大乘心이 있는 사람. 菩薩心이 있는 사람이라는 말입니다. 무슨 문자를 많이 알고, 무슨 지식이 대단한 사람이 아닙니다. 사실 참 중요한 것입니다. 보살심이 있는 사람. 대승적인. 아주 대중적인. 마음이 툭 트인 사람. 불교는 사실은 얼굴보고 가르치는 것도 아니고, 僧俗을 나누어서 가르치는 것도 아니고, 요는 그 마음 크기입니다. 우리가 불교공부 하자는 것은 마음 키우자는 일이지요.
佛所護念. 부처님이 호렴 하는바 다. 이 護자는 보호한다. 마음속에 아주 간직하고 있는 것. 아끼는 것. 그러면서 늘 생각하고 있는 것. ←念. 護念. 이것을 떼놓고 보면 그런 뜻입니다. 예를 들어서 우리가 아주 값진. 자기 재산을 통 털어서 뭘 하나 샀다합시다. 그것이 카메라가 됐든지 시계가 됐든지 보석이 됐든지 고려청자가 됐든지, 하나 사 놓으면 얼마나 아끼겠습니까? 쉽게 보여주지도 않습니다. 어디 가도 그 생각 때문에 멀리 못 갑니다. 갔다가 얼른오고 문 탁탁 잠 구워 걸고는 농 안에 그것이 있는가? 확인 하지요. 이 법화경의 가르침이라고 하는 것은 부처님에게 있어서 최소한도 그런 정도라는 말입니다. 그런 정도로 아끼던 것이다. 이 佛所護念 이라는 것을 그렇게 이해해야 됩니다. 아무에게나 보여주지 않는다. 가족들에게도 함부로 못 보여줘요. 그것을 정말 이해해줄 만한 사람. 10년 지기. 100년 지기의 서로 가슴을 터놓고 이야기할 수 있는 그런 사람에게만 이 보물을 보여준다. 안 그러겠습니까? 아무에게나 보여주겠습니까? 그러니까 그것은 뭐냐? 敎菩薩法이다. 이 말입니다.
여러분들도 더 건사한 해석이 있으면 또 더 멋지게 해석하십시오. 이것은 그 다음의 스님들 몫입니다.
敎菩薩法佛所護念. 이것을 그냥 넘기면 넘어 가겠지만 이 속에 담고 있는 뜻이... 저 앞에서 무량의경도 그렇다고 이야기가 한 번 있긴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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