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화경

천태 지자대사 선문구결(天台 智者大師 禪門口訣)

통융 2020. 3. 16. 15:16

자료출처 : www.samkwangsa.or.kr


스님은 말씀하셨다. 

고요히 숨소리를 헤아리며 뜻을 지키면, 색심(色心)의 모습이 곧 멎게 됨을 알게 될 것이다. 이는 타오르던 불길이 땔감으로 인연하여 연기가 나는데, 그 연기의 맑고 탁함으로써 땔감의 마르고 젖은 형상을 알 수 있듯이, 숨소리의 부드럽고 거친 상태를 살펴서 진실하고 사악한 징후를 거울에 비추어 보아 알 수 있는 것과 같다.
뜻을 지키는 사람은, 그로 하여금 뱃사공이 구름을 바라보면서 포구에 이르려고 해안이 다가오기를 기다리며 노(櫓)를 잡고 그 기틀이 되는 길을 앎으로써 배가 무사히 바다를 건널 수 있는 것처럼 할 수 있게 된다.

또, 스님은 말씀하셨다.

몸이 편안하면 뜻이 바르게 된다.
그것은 마치 기름이 맑으면 등불이 밝은 것과 같다. 그러므로 자기의 뜻을 지키려는 사람은 먼저 몸을 편안히 하는 데 그 방법이 있다. 몸을 편안히 한다는 것은 몸의 바람[身風]을 하여금 바람이 할 일에[風事]에 어긋나고 다투지 않게 하는 것을 말한다.

무엇을 바람이 하는 일이라 하는가?
우리의 몸에는 지나가는 바람과 멋대로 일어나는 바람[橫起風], 여러마디에서 생기는 바람[諸節風]과 모든 혈맥의 바람[百脈風], 힘줄의 바람[筋風]과 힘의 바람[力風], 뼈 사이의 바람[骨間風]과 허리의 바람[腰風], 등뼈의 바람[背風]과 위의 바람[上風], 아래의 바람[下風]이 있다.
이와 같은 여러 가지 바람은 각각 그 위치가 정해져 있는데, 서로 자리를 어지럽게 해서는 안 된다. 어지럽게 되면 몸의 적(賊)이 되고, 그것이 커지면 미치고 폐인이 된다. 적은 경우에도 허한 것과 알찬 것이 서로 몸을 침범하는데, 허한 것이 침범하면 몸아 가볍고, 알찬 것이 침범하면 몸이 아프다.

몸이 가렵고 아프면, 어느 틈에 생각을 한 곳에 매어 둘 수가 있겠는가? 미친 사람은 그런 까닭에 함부로 말한다.
모든 일에 있어서 동정(動靜)과 시위(施爲)에는 마땅히 이러한 생각을 먼저 해야 하고, 그 생각이 눈앞에 나타난 다음에 일에 몸담아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아니하는 사람은 거칠고 미세한 것이 서로 거슬려 새 것과 묵은 것이 서로 역류(逆流)하게 된다. 예를 들면, 예의(禮儀)로 간음을 금하고 있지만, 그것으로 간음이 멈춰지게 할 수 없는 것과 같다.
여기서는 간략하게 한 가지 예를 들었지만, 그 나머지 일도 모두 이와 비슷하다. 가령, 좌선할 때에도 먼저 이런 생각을 해야 한다. 
즉, '나는 마땅히 저 곳에 앉아야 하니, 저 곳에 가려면 이 곳에서 몇 발자국을 걸어가야 할 것이다. ′라고 하고, 발을 옮겨 내려놓음에 따라 한 발자국마다 조금씩 그 기운을 펴고, 차차 몸의 바탕을 내려놓으면 멈출 때의 바람이 조금씩 불어 오고, 걸어갈 때의 바람은 차차 몸의 바탕을 내려놓으면 멈출 때의 바람이 조금씩 불어 오고, 걸어갈 때의 바람은 차차 떠나게 된다.
이 밖에, 다른 생활에서의 행동도 이와 같다. 이러한 생각을 몸을 편안하게 한다[安身]고 하는 것이다.

스님은 게(偈)를 지어 말씀하셨다.

나아가고 멈춤에 순서가 있고,
굵고 가는 것이 어긋나지 아니하니,
비유컨대, 말을 잘 다루는 사람은
가고자 하는 것이 멈추고자 하는 것과 같으니,
늘 이 일에 조심하고 삼갈 수 있다면,
편안한 몸으로 마음은 선정에 든다.

進止有次第면 추細不相違이니라
譬如善調馬의 欲去如欲住니
常能謹愼此면 安身心入禪이라 하니라.

스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걷고 서고 앉고 누울 때, 늘 생각을 한 곳에 매어 두어야 한다. 
다만, 누웠을 때가 많으면 정신이 가라앉아 혼미해지고, 섰을 때가 많으면 극도로 피로해진다. 걸을 때가 많으면 마음이 분분하게 움직여, 마음을 한 곳에 모으기가 어렵다. 그러나 앉았을 때에는 이러한 허물이 없다.
그래서 앉아 있는 일을 많이 쓴다.

수행하는 사람은 마땅히 고요하고 한적한 곳에 머물러 가부좌 (跏趺坐)를 맺고 앉아야 한다. 여자의 경우에는 반가부좌(半跏趺坐)로 앉는다. 앉을 때 몸을 편평하고 곧게 하고, 몸이 편한 자세로 하여 팔다리를 느긋하게 풀고, 긴장된 뼈가 풀려 관절과 상응하게 하며, 기대지도 아니하고 굽히지도 아니한다. 옷을 풀고 허리띠를 느슨하게 하여, 조금이라도 불편하고 미세한 동요가 있으면, 편안한 요령을 취하여 적절히 조정해야 한다.
그리하여 편안하고 자상한 마음으로 왼손을 오른손 위에 놓고, 두 손의 엄지손가락 끝을 내려 서로 닿게 버려두며, 입술은 가볍게 닫아 이가 미미하게 보이게 열고, 혀를 들어올려 네댓 번 입 안 천장에 닿게 한 수, 길게 숨을 내쉰다. 그 다음, 차차 앞쪽을 보며 천천히 가늘게 눈을 감고 눈시울이 크거나 급하게 움직이지 않도록 하며, 마땅히 눈 안이 몽롱한 듯하게 해야 한다.

스님은 이어, 게(게)를 지어 훈계하셨다.

선정에 들고 머무르고 나올 때의 세 시각은 
마치 겁(겁)에서의 성겁과 주겁 및 괴겁과 같으니, 
빨리 이루고자 하는 사람은 도달하지 못하고,
도달한 사람일지라도 양을 조절할 줄 알아야 한다.

入住出三時는 如劫成住壞이니라.
欲遠者不達이며 達者는 知節量이니라.


또, 스님은 말씀하셨다.

숨쉬는 일에는 네 가지가 있으니, 마땅히 가려서 골라야 한다. 그 하나는 풍(風)이고, 그 둘은 기(氣)이며, 그 셋은 천(喘)이고, 그 넷은 식(息)이다.
숨쉬는 데 소리가 나는 것을 풍이라 하고, 맺히고 막히는 것을 기라 하며, 내쉬고 들이쉬는 데 숨결을 다하지 못하는 것을 천이라 하고, 소리도 나지 않고 막히지도 아니하며 들이쉬고 내쉬는 데 숨결을 다하는 것을 식이라 한다. 이 숨결은 가늘게 가늘게 이어져 있는 듯 없는 듯한 숨결이다.
헐떡이는 숨을 지키면 고단하고, 막히는 숨결을 지키면 응어리지며, 소리가 나는 숨결을 지키면 정신이 산란해지고, 식을 지키면 안정된다.
온(溫) 스님의 집안에서는, 참선할 때에 온 생각을 자기 배꼽의 한복판 콩꼬투리 같은 곳에 모은 다음, 옷고름을 풀고 밝게 내다보고 그 모습을 취한다. 그리고 눈을 감고 입을 다물되, 이[齒]사이를 열어 혀를 들어올려 천장에 닿게 하고 숨결을 고르게 조절하여 마음을 한 곳에 모아 밝게 진리를 내다본다. 만약 다른 외부의 생각이 이를 감싸려 하면, 도로 원점으로 되돌아가게 하고, 생각이 나타나지 아니하면 다시 옷고름을 풀고 이를 보고 익숙히 그 모습을 취하여, 다시 앞에서와 같은 상태로 되돌아가게 하였다.

[문] 왜 배꼽을 생각했습니까?

[답] 그의 숨결은 배꼽에서 나와 들이쉬면 배꼽에 이르러 없어진다. 배꼽은 숨이 나오고 없어지는 작용이 말미암는 곳으로, 이로써 숨의 무상(無常)함을 알 수 있으므로 배꼽을 염두에 둔 것이다. 또, 배꼽은 장(腸)과 위(胃)의 근원으로서, 원천을 따라 길을 찾아가면 자연히 더러운 것을 보게 된다. 더러운 것을 보게 되면 탐욕이 멎는데, 이는 4염처(四念處)에 있어서는 몸이 더럽다고 보는 염처[身不淨念]가 되며, 육묘문(六妙門)에 있어서는 지(止)의 묘문이 된다.
또, 식신(識神: 정신 작용)이 처음에 생명체에 기탁할 때 정혈(精血)과 뿌리가 합쳐져 배꼽에 있게 된다. 그리하여 사람이 태어날 때, 오직 배꼽에 탯줄을 본다면 자연히 생명체가 싫고, 거기서 떠나고자 하는 생각이 생겨나 얽매임[繫]을 면하게 된다. 경(經)에 "이르는 곳마다 마음을 모아 밝게 관찰하라.”라고 한 것은, 숨을 내쉬고 들이쉬는 일이 배꼽에 뿌리를 두고 있음을 뜻한다.

[문] 모든 생각을 한 곳에 모았을 때에는 어떻습니까?

[답] 경우에 따라서는 바늘로 찌르듯이 아프기도 하고, 오랏줄에 끌려가듯이[繩牽] 다급하기도 하며, 벌레가 물 듯이 가렵기도 하고, 냉수로 씻듯이 차갑기도 하며, 불로 지지듯이 뜨겁기도 하다. 이와 같은 여러 가지 감촉은 때에 따라서는 신광(神光: 영감)이 마침내 사라지듯이 적멸해질 때가 있으니, 이것은 전광정(電光定): 전광석화처럼 잠깐 동안에 일어나는 선정)이다. 이 때에는 헤아릴 수 없이 엇비슷한 깨달음이 있게 되니, 수행하는 사람은 모든 현상에 집착하지 말고, 오직 마음을 한 곳으로 모으는데 힘쓰면 자연히 제도될 것이다. 이 때, 더욱 정진하지 아니하면, 도로 물러가 함정에 떨어지고 말 것이다.

[문] 왜 숨소리를 헤아릴 때, 홀연히 숫자를 잊어버리고 오직 숨소리만 알게 됩니까?

[답] 마음이 조금씩 미세해지면, 오직 한마음에 응하게 된다. 그래서 헤아리는 숫자를 잊어버리게 된다. 그 앞의 숨소리는 한 번 헤아리는 것이 하나의 경계를 이루어 두 가지가 함께 진행되는 것이니, 이는 거친 경지이다.

[문] 왜 다시 숨소리도 잊고 오직 경계만 알게 됩니까?

[답] 수행하는 사람이 거칠고 엉성한 관(觀)이 제거되면, 숨소리가 미세해지기 때문에 숨소리를 보지 못한다. 어떤 사람은 "털구멍이 다 열린 곳으로 모든 숨결이 나가므로 숨소리가 없어 질 따름이다.”라고 하였다.

스님은 말씀하셨다.

숨이 미세하여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을 털구멍으로 다 흩어져 나가기 때문이라고 말하는 것은, 이미 나가는 것을 허락했다면 어찌 콧구멍으로만 홀로 나가지 아니할 수 있겠느냐? 미세하여 나타나지 아니한다고 한 것은 염(念)이 한 곳에 매여 있는 것에 근거하여 말한 것이고, 털구멍으로 흩어져 나간다고 한 것은 화통하게 통한 점을 말한 것이다.
또, 어떤 사람은 "숨소리가 얽매여 행해지지 아니할 때, 마음의 눈이 홀연히 잠깐 번갯불처럼 밝아지는 것이 전광정(電光定)이 아닌가 생각된다.”라고 하였다.
선정(禪定)을 익힌 사람이 말하기를 "만약 숨소리만 나타나지 아니한다면, 이는 숨결이 미세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홀연히 눈이 밝아지는 것을 흔히 묵연정(默然定: 선종에서 말하는 묵조선)이라 한다. 마음은 이런 현상이 있기 이전부터 조금씩 조금씩 몸에 편한 느낌이 있게 되는데, 이것을 사람들은 흔히 선(禪)의 기쁨이요 즐거움이라 한다.”고 하였다.

스님은 말씀하셨다.

이는 열 가지 거룩함[十善]이 상응하는 마음이고, 높은 경지는 아니다. 이 한 곡절만 건너면 선정(禪定)의 경계에 들어가게 되는데, 얼음을 밟고 깊은 못에 임하여[履氷臨淵] 그대는 그 곳을 지나갈 수 있게 될 것이다.

또, 스님은 말씀하셨다.

감촉(感觸: 느낌)이란 스스로 아는 것이므로, 꼭 말할 필요는 없다. 여러 스님은 이것으로 사람들의 공부의 허실을 감험(勘驗)하지만, 그들이 알았다고 말하는 것은 아마도 망상에 사로잡힌 것으로, 이는 도리어 선(禪)의 공부에 해가 될까 두렵다.

스님은 말씀하셨다.

갑자기 숨소리가 멀어져 보이면 하나에서 열까지 앞에서의 방법대로 다시 헤아려야 한다. 오래 좌선하던 사람이 선정에서 벗어나야 할 때, 숨소리가 나타나면 곧바로 숨소리를 따라가는 둘째 번 방법으로 열 번쯤 숨쉴 시간이 지나도록 숨소리를 따르다가, 다시 숨소리를 헤아려 열 번쯤 숨쉴 시간이 지나면 손발을 미미하게 움직이고, 그 다음에는 가늘게 눈을 뜨고, 크게 뜨기에 이르거든 일어서면 된다. 이 시간이 경유하는 중간에서는 항상 어렴풋이[방불] 숨소리를 헤아림을 알고 있을 따름이고, 다시 정신을 오로지 하여 숨소리를 헤아리지 아니한다.
스님이 훈계의 가르침을 내리실 때에는 항상 "선정에 들고 나는 순서가 있다[出入有次第].”라는 게(偈)를 말씀하셨다.
좌선하는 사람이 선(禪)에서 발생하는 갖가지 병을 물었을 때, 스님은 "오직 마음을 경계에 묶어 두고 다른 곳에 인연하지 아니하도록 하면, 병은 스스로 낫게(差) 된다. 이 방법을 쓰는 사람은 멀어도 사흘이면 낫지 않는 병이 없다.”라고 하셨다.

[문] 마음이 어지러워 사물을 잘못 볼 때에는 어떻게 합니까?

[답] 생각[念]을 거둬들이면 고칠 수 있다.

[문] 4대(4대 : 地, 水, 火, 風)가 불어나고 줄어들고 하는데, 어떻게 다시 병이 나을 수 있습니까?

[답] 마음이 움직이고 도는 것은 부채질하는 바람이 있기 때문이다. 지(止)에 머무르는 이치나 숨소리를 헤아리는 일도 그렇다.
스님은 늘 훈계하시되, "진실한 마음을 실경(實經)에 매어 두면 진실한 인연으로 차례차례 진실이 생겨나고, 진실이 쏟아져 들어오면 자연히 진실한 진리에 들어간다.”라고 하셨다.

[문] 오직 선정을 얻기만 하면 곧 진리의 문에 들어간다는 것은, 거기에 경지와 위계가 있기 때문입니까?

[답] 근기(根機)가 영리한 사람은 마음이 안정되면 곧 진리에 들어가지만, 거기에 확실한 위계는 없다. 근기가 둔한 사람은 9계단 선정의 순서를 겪으면서 모든 선정이 다 끝나야 비로서 진리와 만나게 된다.

[문] 외도(外道)도 선정을 닦으면 비상천(非想天)의 경지에까지 이르는데, 어찌하여 그들은 진리를 알지 못합니까?

[답] 외도가 선정을 닦는 것은 아집에 사로잡힌 마음[我心] 속에 머물러서 마음이 장애가 되기 때문에 진리를 알지 못한다.

무릇, 선정 중에 몸이 아픈 것은 어지러운 바람[亂風]이 일어나 외부의 세계와 싸우기 때문이다. 어떤 것이 외부와 싸우는 일인가? 
그것은 마음이 몸을 떠날 때 끌고 갈 뜻을 나타내는 것을 말한다. 
예를 들면, 어린아이에게 걸음마를 가르칠 때, 아이가 하는 대로 내버려 둘 것이지, 손을 잡아 이끌어 주어서는 안 되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높은 경지에 도달하고자 하는 사람은 어찌 삼가지 아니하랴.
다음으로 다급해지는 것은 교풍(絞風: 목을 조르는 바람)이 일어나는 일이다. 이는 수행하는 사람의 전심(專心)이 너무 지나치기 때문에 생기는데, 바람 기세의 몫을 다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지나치거나 미치지 못하는 일은 그 잘못되는 점에서는 같다.
선정을 닦을 때에 몸이 가려워지는 것은, 수행자가 숨결이 생겨나는 것을 숨결이 사라지는 것이라 생각하고, 숨결이 사라지는 것을 숨결이 생겨나는 것이라 생각하여, 생각과 숨결이 서로 어긋나기 때문이다. 그래서 "밝게 깨닫지 못하고 밝히지 못하면, 도적이 내부에서 생겨난다[不諦不明 賊從內生].”라고 한다.
선정을 닦을 때에 몸이 차가워지는 것은, 수행자가 애착이 일어나는 곳[味所]을 염처(염처: 念處)로 삼지 아니하여, 몸 안의 물기운이 크게 불어나기 때문이다.
선정을 닦을 때에 몸이 뜨거워지는 것은, 수행자가 늘 희구하고 바라는 것이 있어서, 몸의 불기운이 크게 불어나기 때문이다. 

스님은 말씀하셨다. 

무릇, 수행하고자 하는 사람은 반드시 수행할 만한 자격이 있어야 한다. 자격이 없는 사람에게는 일을 마련해 줄 수가 없다. 어떤 것을 자격이 있다고 하는가? 이른바 네 가지 마음을 뜻한다. 그 하나는 견고한 신념이니, 이는 스승을 깊이 믿는 것을 말하고, 그 둘은 발아들이고 활용하는 일이니, 이는 스승의 법을 따르는 것을 말한다. 그 셋은 정성과 부지런함이니, 늘 스스로 힘쓰고 갈고 닦음을 말한다. 그 넷은 방편이니, 이는 미세하게 회전시키는 것을 말한다.

또, 스님은 말씀하셨다.

몸 안의 맥은 마치 모든 강물이 바다로 돌아가는 것과 같고, 마음은 사물을 붙잡는 우두머리와 같다. 네 조각의 맥이 서로 합쳐져 한 조각이 되고, 한 조각의 맥에는 각각 열 벼리(十紀)의 맥이 있는데, 이것이 함께 조르고 얽혀서 마음 끝에 40가닥의 맥이 있게 된다. 그 아래의 한 맥은 바로 배꼽으로 달려가니, 이를 우다나풍(優陀那風)이라 한다. 우다나(優陀那)란 가운데[中]라는 뜻으로, 그리하여 이 맥을 중맥(中脈)이라 한다.
수행하는 사람이 처음 좌선을 닦을 때, 이밖에 갖가지 변형이 눈앞에 나타난다. 부모의 모습이 나타나기도 하고, 스승의 모습, 임금의 모습, 미녀의 형상, 사자와 호랑이 등의 모습이 나타나기도 한다. 이와 같은 것을 마귀(魔鬼)라 한다. 이 때, 수행하는 사람은 마음의 힘을 빌려 금강도(金剛刀)로써 그들에게 겨누면, 그 마귀는 곧 떠나간다.
무릇, 병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그 첫째는 몸이 만드는 병이고, 둘째는 귀신이 만드는 병이며, 셋째는 마귀가 만드는 병이고, 넷째는 숨결이 고르지 못하여 이뤄지는 병이며, 다섯째는 업장(業障)의 병이다.

특히, 

첫째의 몸이 만드는 병에 대하여 잘 알아야 한다. 수행하는 사람이 좌선할 때, 벽에 기대거나, 옷깃을 바로잡은 채 대중이 나오지 아니하였다고 눕거나 하면, 이 사람은 마음이 게으른 사람인지라 마귀가 그 편익을 얻어 몸에 들어와 병을 이루어 등과 척추, 뼈마디가 아프게 한다. 이를 주병(注病: 쏟아져 들어온 병)이라 하는데, 고치기 어려우므로 조심해야 한다. 이 병을 고치려면, 숨결을 이용하여 머리에서부터 기운을 흘려 보내 등과 척추, 뼛가로 기운을 쏟아 내리고, 마음의 작용을 잘 조절해야 한다.
둘째의 귀신이 만드는 병이란, 수행하는 사람이 좌선할 때, 마음에 갖가지 일을 생각게 되는 일이다. 즉, 남이 알아 주기를 바라거나, 다른 사람의 앞날의 길흉(吉凶)을 알고자 하면, 도해라(兜醯羅)라는 귀신이 와서 그의 몸 안에 들어가 갖가지 현괴를 나타내게 된다. 혹은 다른 사람의 몸의 길흉사를 보게 되고, 혹은 한 집안, 한 마을, 한 집단촌, 한 고을, 한 군(郡), 한 국토 안의 길흉과 선악 등을 알게 되어, 마치 성인을 닮은 것 같지만 성인이 아니다. 모두 도해라라는 귀신이 만든 일로서, 누구도 이를 취해서는 안 될 병이다. 
이 병을 고치지 아니하고 오랜 세월을 경과하면, 능히 사람을 죽일 수도 있게 된다.
셋째의 마귀가 만드는 병이란, 수행하는 사람이 좌선할 때, 마음으로 물질적인 이익을 생각하면, 마귀가 나타나 갖가지 옷과 음식, 7보배 등으로 공양하게 되는 것을 말한다. 깨닫게 되면 급히 고쳐야 한다. 고치지 아니해 마음 속에 들어가 병이 되면 매우 어렵게 된다.
넷째의 숨결이 고르지 못하여 이뤄지는 병이란, 수행하는 사람이 좌선할 때, 숨결을 고르게 할 줄 몰라 병을 이루게 되는 경우이다. 
이 병은 피가 마르고 혈맥이 닫혀 여위고 수척하게 되는데, 이는 이 사람에게 죄가 있어서 생긴 것이 아니므로 고치기가 쉽다. 고치는 방법은 온 몸으로 두루 숨쉬는 방법을 써서 마음으로 숨쉬는 숨을 사용해야 하는데, 이를 편만식(遍滿息)이라 한다. 
이는 마음이 숨결에 머무르게 하는 방법이다. 머리에서부터 기운을 모았다가 팔다리에 골고루 가득 차게 하는 것은 숨쉬는 법을 사용할 줄 모르는 사람이다. 이렇게 하면, 힘줄과 혈맥이 불기운에 타고 말라서 몸에 윤택이 없어진다. 
그러므로 이 두 가지 숨쉬는 방법을 위에서 아래로 흘려 보내 숨결이 온 몸에 두루 퍼지게 해야 한다. 그래서 이를 편만식이라 한 것이다. 숨결이 두루 가득히 퍼지기 때문에 몸이 편하며, 숨길을 멈추는[止息]방법도 쓸 수 있다. 어떻게 하는 것을 숨결을 멈춘다고 하는가? 편한 마음으로 한 곳에 머물러 흔들리지 아니하는 것을 말한다. 
다섯째의 업장(業障)으로 생기는 병이란, 온 몸에 종기가 나고, 얼굴빛이 허약하면서 살이 찌고, 누런 것을 말한다. 이 사람은 업장이 무거워 고치기가 어려우니, 마땅히 참회해야 한다. 그 고치는 방법에는 초식(焦息)과 조식(조息)이 있다. 
어떻게 하는 것을 초식 또는 조식이라 하는가?
이 두 가지 숨결도 별다른 것이 아니다. 불똥 등의 물건을 잡아와 몸 가운데 붙여 놓고, 문득 마음으로 숨을 쉬면서 몸이 불에 타 불똥이 되는 상상을 마음 속으로 하게 되면, 두 가지 숨결이 머리에서 발끝까지 퍼져 뜨거운 기운이 사지(四肢)에 괴게 된다. 
그것이 두루 퍼져 화통하게 되면, 부어 오른 종기 등이 사라지고, 마음으로 숨을 쉬면 편안한 마음이 곧 몸 안에 머무르게 된다. 숨결이 평상으로 되돌아갈 수 있게 되면, 다시 참회해야 한다.
이밖에, 사지가 허약하고 힘이 없는 사람도 있다. 이러한 사람은 양팔 또는 한쪽 팔이 떨어져 나갈 듯한 통증을 느끼게 된다. 이를 고치는 방법은 편만식(遍滿息)의 숨을 쉬어 기운이 사지에 가득 흐르게 하면, 한참 후에 스스로 낫게 된다.
또, 입 왼쪽이 움푹 패어 들어가는 듯할 때에는 숨을 왼쪽으로 주입해 가게 하고, 입 오른쪽이 움푹 패어 들어 가는 듯할 때에는 숨을 오른쪽으로 주입해 가게 한다. 또는, 만약 입의 오른쪽 모서리나 왼쪽 모서리가 움푹 들어가는 듯할 때에도 위에서 말한 방법과 같이 한다.
또, 오래 된 뾰루지나 냉(冷), 열(熱) 등의 병이 있을 때에는 숨을 작용시켜 아래로 흘러가게 하여 병을 단멸시킨다. 이와 같이, 몸 안의 아주 작은 병들도 숨쉬는 방법을 사용하면 고치게 된다. 냉증이 있을 때에는 뜨거운 숨을 흘려 보내고, 열병이 있을 때에는 차가운 숨을 흘려 보낸다. 상대적인 치료 방법으로는 이 두 가지 숨쉬는 방법을 쓴다.
또, 길을 걸어갈 때에도 숨쉬는 방법을 쓴다. 발은 가볍고 머리가 무거운 것은, 마음이 고만(高慢)한 망상 때문에 그런 것이니, 고만한 마음을 멎어야 하는데, 아래쪽을 향하여 마음을 보는 것이 좋다.
또, 발은 무겁고 머리가 가벼운 것은, 슬픈 사람이 그리움에 시달리기 때문이다.
또, 길을 걸어갈 때에는 마음의 작용이 높지도 낮지도 않게 하여 숨결을 조화시켜 숨쉬면서 몸과 마음에 두루 퍼지게 하면, 곧 통명(通明)한 관(觀)에 들어가 심성삼매(心性三昧)와 신상삼매를 관조(觀照)할 수 있는데, 심상(心相)이 그 근본이 된다.
경에는 "식심(識心: 마음이 六識이나 八識으로 작용 하는 일)이 본원에 달하는 것은 허망하고 가상(假想)이 없기 때문이다.”라고 하였다.
이증(痢症)은 마음을 배꼽 아래에 두어 고치고, 냉리(冷痢)는 따뜻한 숨을 쉬어야 하며, 열병을 앓을 때에는 차가운 숨을 쉬되, 차도가 나면 그만두어야 한다.
기침과 가래가 날 때에는 기침과 가래가 나오려고 할 때에 숨을 세 번 토해 낸 다음, 마음을 중도의 관[中觀]에 안정시킨다. 기침이 나오려 하면 숨을 토해 내어 밖으로 나가게 하고, 도로 먼저 상태대로 마음을 편하게 가지면 차도가 난다.
종기를 치료하는 방법은, 숨을 쉬어서 종기가 단멸되게 한다. 숨결을 한 곳에 모이게 하여 그것이 두루 퍼지려 하거든 종기 위에 해당되는 곳에 마음을 멈추어 고정시킨 다음, 종기에 마음으로 구멍을 하나 뚫어 숨결이 그 구멍으로 나고 들게 하면 차도가 나서 낫게 된다. 종기에 고름이 가득할 때에는, 마음을 구멍밖에 안치시키고 아주 가늘게 끌어당겨 그 끌어당긴 기운으로부터 숨결이 나오게 하면, 잠깐 사이에 차도가 나서 고치게 된다.
사람이 앉아 있을 때, 갑자기 목구멍 안에 한 치나 두치쯤 되는 물건이 있는 듯 하는데도 나오려고 하지 아니하면, 그 물건 위에 마음을 안치하여 마음이 머무르고 안정되게 한 다음, 마음을 네 방향으로 나누어 가슴 밑바닥으로부터 말하기를 "안팎이 다 비었는데, 병이 어디에서 생기겠느냐?”라고 하고, 또 공(空)의 본성을 알아서 이를 제거하면 병이 제거된다. 
또, 좌선하는 중에 홀연히 성질이 급해질 때에는, '후우'하고 숨을 크게 내쉰 후에 코를 따라 숨이 도로 들어오게 하여 숨결의 기운이 몸에 가득하게 하여 내쉰다. 그런 다음, 마음을 손바닥 손금 가운데 두게 되면, 오래지 아니하여 병이 떠나간다.
그런 다음, 마음을 이끌어 뼛속을 따라 곧바로 아래로 내려가 똥구멍 밖에 나가서 머무르게 하고, 잠을 잘 때에는 숨결을 이끌어 안다리의 중심에 머무르게 한다. 행(行), 주(住), 좌(坐), 와(臥) 일상 생활에 항상 이 마음을 사용한다. 4처(四處: 慧處, 諦處, 捨處, 寂靜處)에 잡병이 있을 때에는, 이 숨쉬는 방법을 사용하여 숨결을 통하게 한 다음, 병이 생긴 곳에 따라 기운과 숨결을 인도하여 병이 난 곳으로부터 숨결이 들고 나게 해 텅 비고 가장자리가 없게 하면 병이 낫게 된다.

냉병에는 따뜻한 숨결을 사용하고, 열병에는 차가운 숨을 쉰다. 골수의 병을 고치려면, 칼날 같은 숨[刀息]을 쉬어 다리의 10개 발가락을 열어 모두 함께 숨을 쉬며, 복사뼈[趺骨]를 허물고 그 위로 숨결이 나오게 한다.
사람의 몸에 나누어져 있는 종기는 칼날숨[刀息]으로 발의 10개 발가락을 허물어 그 중에서 홀수의 발가락으로 숨결이 나오게 하고, 몸의 종기가 팽창하여 몸에 가득할 때에는 숨결을 발바닥 중심 아래에 둔다.
몸이 무거울 때에는 가볍게 숨을 쉬고, 몸이 가벼울 때에는 무겁게 숨을 쉰다.

처음 좌선하는 중에 숨소리의 기록 짧음을 헤아릴 때, 외부의 귀신이 코에 와 닿으면 그의 마음이 곧바로 위로 올라가 정수리에 이르러 찌는 듯이 뜨거워진다.
이를 물리치는 방법은, 입을 굳게 다물고 숨을 움츠려 기운이 위로 올라가 정수리에 이르면, 도로 아래를 향하여 기운을 끌어당겨 머무르게 한다. 그것을 치료하지 아니하면, 두 눈이 모두 캄캄하게 어두워진다. 이것은 무엇 때문에 생기는 병인가? 귀신이 하는 짓이라고 한다면, 그 귀신의 이름은 발위다(跋違多: 원본의 주에, 南藏에는 提違多라고 쓰여 있다고 했음)라는 귀신이다. 이 귀신이 손을 펴서 눈을 덮어 소경이 되게 한 것이다. 이 때에는 다음과 같이 주문을 외어야 한다. 
"인지바주(人之波晝), 비니야바주(比尼若波晝), 우수바주(憂藪波晝)" 즉, "사람의 세계도 대낮처럼 밝고, 계율의 세계도 대낮처럼 밝고, 얽힌 근심의 세계도 대낮처럼 밝아라!"라는 뜻이다. 이 주문을 세 차례 외우면, 눈이 밝아지고 처음 좌선할 때와 같아진다. 
미세하게 멈춘 마음이 되었을 때에 외부 사람이 이를 건드리면, 기운이 위로 치솟아 가슴을 막고 배가 부어 편히 앉아 있을 수 없게 된다. 이는 몸 가운데 6신(六神: 六腑의 신)이 모두 달려와 가슴에 남아 있기 때문이다. 이를 고치려면 옷고름과 허리띠를 푼 다음, 내보내는 기운은 길게 하고, 들어오는 기운은 짧게 하여 열 번 숨을 내쉬고 들이쉰다. 
그 다음, 앞에서 말한 주문을 외고 숨소리를 헤아리게 하여 열까지 헤아리면 차도를 얻게 된다.
또, 처음 좌선하여 미세하게 멈춘 마음이 되었을 때에 다른 사람이 이를 건드리면, 기운이 위로 치솟아 허파를 찔러 병이 된다. 즉, 허파가 부어 올라 100일이 지나면 구역질이 나고, 음식을 먹을 수 없게 된다. 이것은 외부의 나쁜 귀신이 몸 안에 들어온 것으로, 그 이름은 발다신(跋多神)이라 한다. 붉은빛의 6개의 눈과 8개의 구멍이 있고, 그 형체는 크기도 하고 작기도 하다.
이밖에, 3개의 작은 귀신이 있다. 그 하나는 호수혜(呼蒐醯)로, 어떤 때에는 어린 아이로, 어떤 때에는 구렁이로 변하는데, 그 형체는 검붉은 빛을 띠고 있다. 둘째의 것은 도라혜(兜羅醯)로, 그 형체는 크거나 작다. 이것들이 3번 몸 안을 돈다.
또, 좌선하는 중에 몸의 뼈마디나 허리와 등이 쑤시고 아플 때가 있는데, 이를 물리칠 귀신의 이름[벽注]을 부르게 된다. 이것은 6근(六根)이 온 몸에서 장난을 치는 일(六根通身遊戱)이다. 
이 병은 오래지 아니하여 온 몸이 정수리까지 뻣뻣해진다. 이런 증세가 3번 지나가면 몸을 펴서 숨소리를 헤아려 낫게 한다.
또, 처음 좌선하는 중에 6신(六神)이 무겁게 가라앉아 기분이 음산할 때에 외부 사람이 건드리면, 육신이 함부로 몸 밖으로 튀어 나가고, 털구멍 안에 각각 한 신(神)이 있다가 몸 안으로 달려들어가 버려서 일어서는 일이 있다. 이렇게 되면, 몸에 푸른 종기가 생겨, 이것이 방해가 되어 앉아 있을 수 없게 된다. 이를 고치려면, 입을 굳게 다물고 기운을 움츠려 위로 올라가게 하여 2번 온 몸 안을 돌게 하고, 도로 기운을 끌어당겨 아래로 내려오도록 한다. 그 다음, 앞에서 말한 주문을 외고 숨소리를 헤아리라고 명한다. 
그리고 나쁜 귀신, 즉 호수헤, 발위다(跋違多) 등의 이름을 열거하면 차도가 생긴다.        



또, 스님은 말씀하셨다.

숨을 내쉬는 것을 안(安)이라 부른다. 안반(安般: 숨소리를 헤아리는 수행)을 수행하는 사람은 내쉬는 숨소리를 헤아린다. 처음 좌선하는 중에 마음이 흔들리게[掉動] 되면, 오래지 않아 그것이 병이 된다. 이것을 고치려면, 숨소리를 헤아리라고 명하면 된다. 왜 수다스러운 말을 하겠는가? 흔들리는 마음이 쉬면 병은 그친다.
또, 처음 좌선하는 중에 몸 안에 불기운이 일어나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병이 아니다. 이를 고치려면, 밖이 어두울 때에 불을 가지고 들어와 아무도 알지 못하게 한 다음, 불을 담은 그릇에 뚜껑을 닫고 그 사람은 앉아 있게 한 후, 옆 사람이 큰 소리로 외치기를 "여기 큰불이 일어났다."라고 한다. 그 사람이 눈을 뜨고 보아도 불이 보이지 아니하면, 3번을 외치고 나면 그 증세가 멎게 된다. 
또, 처음 좌선하는 중에 몸 속에서 물이 나오는 듯한 느낌이 있는데, 이것은 병이 아니다. 이것을 고치려면 동이에 물을 가득 담아 아무도 알고 듣지 못하게 한 다음, 입 안에 물을 머금고 있다가 얼굴에 뿌린다. 그가 눈을 뜨고 보아도 물이 보이지 아니하면, 3번을 하고 나면 그 증세가 멎게 된다.
또, 처음 좌선하는 중에 무거운 감촉을 마음에 얻어, 사람이 올 때에 놀라서 마음 속이 짜는 듯 압박을 받은 수가 있다. 이 때, 가슴을 손으로 문질러[摸문] 병이 내려가게 해야 한다.
대소변이 잘 나오지 아니하는 병 은, 몸 안의 육신(六神)이 모두 아래로 나갔기 때문이다. 이를 고치려면 기운을 오므려들여 아래쪽으로 향하게 하다가 도로 위로 끌어 올린 다음, 주문을 외고 숨소리를 헤아리도록 명한다.
그러면 차도가 나서 한계점에 이른다. 변소에 가서 똥을 눌 때의 마음 쓰기는, 대소변이 나올 때에 모든 병이 그것과 함께 나온다고 생각하면 된다.
또, 수행하는 사람이 그 깊은 뜻에 깨달음의 문을 조금 열고 차차 알음알이가 있게 되면, 그의 마음이 기쁨에 넘쳐 생각하고 헤아림이 분수를 넘게 되어 고단함을 참아야 하는 병을 얻게 된다. 그러므로 수행하는 사람은 항상 지혜로 그 가부(可否)를 헤아려, 지(止)를 해야 할 때에는 지를 닦고 관(觀)을 닦아야 할 때에는 관을 닦아야 한다.
지와 관이 적합하게 순조롭게 되면, 오래 선정을 얻을 수 있게 된다.
생각하는 고달픔의 형상도 매우 많다. 이는 두통의 기운이 가득한 병을 얻게 되니, 모두 숨쉬는 방법을 사용하여 치료한다. 두통을 고치는 방법은, 코 안으로 기운이 들어오게 하고, 입 안으로 미세하게 천천히 순조롭게 조절되면 3번 기운을 끌어 당겨 내보낸 다음, 입을 크게 벌리고 하품을 한다[欠거].이와 같이 기운을 끌어당겨 하품을 하면, 10번을 넘지 아니하여 두통이 낫게 된다.
또, 배 안에 기운이 가득한 병을 고치는 방법은, 코 안으로 기운을 들여 마셔 입으로 미세하게 기운을 내보내면서 가슴으로 생각하기를 '배 안의 답답한 기운을 입으로 내보내게 하고 있다.'라고 한다. 병이 났을 때에는 목구멍으로 기운을 토해 내고, 뱃속에 응어리가 맺혀 극도로 포만할 때에는, 반듯이 위를 보고 누워 손발을 쭉 펴고 손으로 가볍게 뱃가죽 위를 5∼10번 안마를 하면, 토해 내려는 기운이 있게 된다. 그러면 다시 일어나 앉아서 기운을 끌어당기는 법을 앞에서 설명한 것과 같이 한다.
마음이 순조롭게 조절되어 미세해져 10∼20년에 이르러 기운이 가득 뭉쳐 병이 생겼을 때에는, 하루 낮과 밤을 마음과 숨소리를 순조롭게 조절한 다음, 기운과 숨쉬는 것이 조화되어 느리지도 급하지도 아니하며, 거칠지도 가늘지도 아니하여 조화가 올바른 길을 얻으면 모두 낫게 된다. 그러나 숨소리의 거칠고 가늘며, 느리고 급한 것으로 알맞게 조절하지 못하면, 끝내 고칠 수 없다. 숨을 내 쉴 때에 소리가 나면 이를 "거칠고 급하다."라고 하고, 숨을 내쉬는 것이 끊어질 듯 이어지면 이를 "가늘고 느리다."라고 한다. 가늘고 느린 것이 훌륭한 것이다. 
또, 배 안에 기운이 가득하여 답답할 때에 길게 기운을 끌어들여 내보내면, 그 병을 더하게 한다. 숨을 내쉴 때에는 길지도 짧지도 않게 알맞게 조정하여 조화가 이뤄지면 병은 낫는다.
숨쉬는 것을 조화시키면, 모든 장(腸) 안의 병을 고칠 수 있다. 
그리고 좌선이 알맞게 조화되어 올바른 길을 얻게 되면, 병은 모조리 낫게 된다. 좌선할 때에 좋고 미세한 마음으로 선정에 들면, 근심과 노여움 또는 괴로움을 품어서는 안 된다. 그렇게 되면 기운의 병을 얻기 때문이다. 그리고 들이마시는 숨을 헤아릴 때에 들이쉬는 숨을 헤아리는 일도 기운의 병을 이루는 인연이 된다.
또, 오장(五臟) 중에 어떤 경계를 만들어 놓고 선정을 닦아도 병이 된다. 그리고 경을 욀 때, 글이 이어지고 구절이 접속되는 데서 내쉬던 숨을 갑자기 내쉬는 것도 병을 이룬다. 이럴 때에는 앞에서의 방법으로 치료한다.
또, 머리기 아플 대에 복통 치료 방법을 써서도 안 되고, 복통에 두통 치료 방법을 써서도 안 된다. 한꺼번에 두 가지 병을 치료하면 그 병이 더해진다. 머릿속에 기운이 극도에 달하여 병이 났을 대에는, 콧속으로 기운을 들이마시면서 입을 크게 열고 미세하게 기운을 끌어당겨 내보낸다.
또, 알뜰하게 좌선하는 사람은 흔히 기운이 있는 것을 기뻐한다. 이 때, 기운의 병이 생기면 입 안에서 기운을 내보내는 방법을 써서 오래도록 치료해야 한다.
또, 이가 시리고 마음이 미세하게 조정되었을 때에는, 콧속으로 기운을 들이마셨다가 콧속으로 미세하게 기운을 끌어당겨 내보면서 치료해야 한다. 마음이 미세하게 조절된 상태에서의 기운의 병은, 코로 숨을 들이쉬고 내쉬는 방법으로 치료한다.
숨소리를 헤아리는 방법을 쓰다가 이로 말미암아 병이 생겼을 때에는 숨소리를 따라가는[隨] 방법을 쓰는 것도 좋다. 병은 숨을 들이쉴 때에 연유하지 않고, 내쉴 때에 연유한다.
또, 관(觀)을 닦는 일이 분수에 넘치는 일이면 그 때문에 마음이 들뜨고 어지러워지며, 공(空)을 느긋하게 즐기는 일이 분수에 지나치면 그 때문에 마음이 가라앉게 된다. 둔한 근기를 지닌 수행자는 늘 이를 살피고 깊이 생각하여 이 병을 고쳐야 한다.
또, 좌선하는 사람이 마음을 조정하여 몸 안의 5장(五臟) 중에서 오는 인연의 경계에 있게 하면, 5장 안의 선정의 마음[定心]이 와서 경계와 인연하게 되었다고 생각하게 된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 좌선하는 사람은 오래지 아니하여 병이 난다.
그리하여 수행하는 사람이 5장에의 경계에서 생긴 기운이 경계와 서로 이어지게 하여, 급하게 근육이 벌벌 떨리는 병을 얻게 한다.
이 병을 치료하는 방법은 마음 속으로 관조하기를, 몸 안의 아래위를 마치 나무통처럼 뻥 뚫려 텅 비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좌선에 임하거나 땅에 이르기까지 모두 텅 비게 해야겠다고 생각하면서 몸 안의 기운과 숨결을 모두 아래쪽으로 내려가 땅 속으로 들어가게 해야 한다.
그렇게 하여 마음이 조절되어 순탄해지면, 오래지 않아 병이 낫게 된다. 그렇게 함으로써 병이 다 나으면, 발의 복사뼈 위의 경계를 관조해야 한다. 또, 환자에게 "네가 이 병을 얻은 것은 마음이 잘못된 때문이다."라고 하고, "몸 가운데 있는 마음의 법은 몸 밖에도 몸 안에도 있지 않으니, 인연한 곳에 따라 생김을 너는 마땅히 알아야 한다."고 말해 준다.
또, 좌선하는 사람이 마음 속으로 경계를 생각할 때, '눈으로 모습을 본다.'라고 생각하는 수가 있다. 또는, 선정에 머무르게 되었을 때, 광명이 경계 위를 비친 경우가 있다. 이를 마음의 광명인 줄 모르고 '광명이 밝음 속에서 나와 경계 위에 머무르고 있다.'라고 생각하는 수가 있다. 이런 사람은 오래지 않아 눈동자가 쑤시고 아픈 병을 앓게 되어, 눈이 어둡고 아프게 된다.
이 병을 고치려면, 마음이 눈과 인연하게 하여 마음으로 보는 것을 눈과 합치시켜 다음과 같이 생각하게 한다. '관조하는 법에는 눈도 몽땅 뜨고 된다, 지금, 마음으로 본 것과 눈으로 본 것이 합치된 것은 눈으로만 본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라고. 또, 마음이 눈과 인연하였을 때에 경계 위의 광명을 보나, 최상의 경지에 인연한 눈은 곧 마음으로, 마음 따라 광명이 그 가운데에서 나온다. 
이 마음의 법은 몸 안에도 몸 밖에도 있지 않으며, 중간에 있는 것도 아니다. 눈이 곧 마음의 법이므로, 마음의 작용[心所]이 인연 하는 곳에 따라 광명이 생긴다. 그것은 몸 안에 있는 것도 밖에 있는 것도 아니며, 또는 두 중간에 있는 것도 아니다. 이와 같은 관(觀)을 지었을 때에는 잘못된 가심(假心)으로 인한 병은 모두 제거되고 단멸되어 눈병이 낫게 된다.
또, 좌선할 때에는 옷과 허리띠를 죄어 답답하게 해서는 안 된다. 
그렇게 하면 좌선하는 사람의 기운을 충만하게 한다.
또, 좌선하는 사람이 높은 경지의 선정을 얻었을 때, 좌선 중에 좋고 나쁜 마음의 작용을 일으켜서는 안된다. 
두통을 않게 되므로 삼가야 한다. 이러한 여러 가지 병은 위에서 말한 방법과 같이 치료한다.
또, 좌선하는 사람이 경계 위에 먼지가 일어나 응어리져서 물레바퀴처럼 도는 것이 보인다면, 그에게 풍환(風患)이 있다. 이 사람은 높은 경지의 선정을 배우지 말아야 하는데, 그러하면 사람이 미치기 때문이다. 다만, 4염처(四念處) 중에서 신염처(身念處: 몸은 더러운 것이라고 보는 일)만 배울 수 있을 뿐이다. 이 때, 관(觀)의 수행을 방편삼아 풍환(風患)을 치료해 병이 낫게 되면, 이어 높은 경지의 선정을 배울 수 있다.
얕은 선정에 들었을, 외부 사람이 건드리거나 어떤 일이 생겨 몸에 부딪거나 하면, 그것을 깨닫고 선정에서 벗어 나오면 그로 인해 병이 생기지는 않는다.
마음으로 원한과 노여움 또는 괴로움 등을 싫어하여, 그로 인해 기운이 충만한 병이 생기기도 한다. 또, 깊은 선정에 들었을 때에 큰 소리로 부딪치는 일이 생기면, 그 소리가 비록 외부에서 일어났을지라도 몸 안에 남게 되고, 경우에 따라서는 경계 위에 남는다. 
이 때, 이 사람이 선정에서 깨어 나오려 해도 나올 수 없게 된다. 
마음이 몸 안에 있어 겁이 나고 두려워 정신이 황당하고 아득해 진다. 그 후에 선정에서 나온다 할지라도 배가 붓는 병을 얻게 된다. 
몹시 하혈(下血)하는 수도 있다. 소리 외에, 어떤 것이 몸에 부딪칠 때에도 이와 같이 된다.
이런 병을 치료하려면 숨결을 조정하는 방법을 사용하는데, 앞에서 설명한 바와 같다. 그러나 이 때, 심하게 노여운 마음이 일어나면 고칠 수 없고, 경우에 따라서는 사람이 죽게 된다.
또, 처음 좌선할 때에 대소변이 나오지 않으면, 기운을 위로 차 올렸다가 아래로 끌어내리며, 주문을 외고 숨소리를 헤아리면 낫게 된다.
또, 처음 좌선할 때 갖가지 좋은 일이 생겨 사람들이 찾아와 건드리고 괴롭히거나, 불법(佛法)을 비방하거나, 오랑캐말인지 중국말인지 모를 말을 걸어 오면, 이는 도혜라는 악귀가 몸 안에 들어온 것이다. 이 때에도 앞에서 말한 주문을 외면 낫게 된다. 도혜라는 형체가 노랗고, 커졌다 작아졌다 한다. 이 귀신을 만나면, 숨을 들이 쉴 때에도 헤아리고 내쉴 때에도 헤아리게 명한다.
몸이 갑자기 아픈 병을 고치는 방법에 대하여 어떤 사람이 "숨소리를 헤아리는 사람이 무슨 까닭으로 몸이 갑자기 아픕니까?”라고 물었다. 한 스님이 대답하기를 "밥을 너무 많이 먹고 그것이 아직 삭지 않았는데도 문득 염(念)을 거둬들이니, 기운은 거칠고 염(念)은 미세하기 때문에 그렇게 된다. 
이것을 치료하려면, 2∼3일 밥을 굶고 숨결을 조절하여 길게 숨쉬고 올바르게 숨을 내쉬는 모습에 연유하게 한 다음, 2∼3일간 좌선을 하면 낫게 된다.”라고 하였다.
또, 한 스님은 "염(念)"을 거둬들이는 일을 서두르면 기운이 맺혀 병이 된다. 이를 고치려면, 몸의 상왕이 시루 위에 피어 오르는 밥의 김 같다고 생각한 다음, 어떤 바람이 배꼽 안에서 일어나 면문(面門: 입)으로 나오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 바람이 맹렬히 불어 몸의 기운을 흩으면, 아픈 증세는 낫는다. 나은 후, 며칠 간은 밥을 먹되 기름진 것은 삼가고, 바람을 보지 말아야 한다. 다른 치료법으로, 밥을 먹지 않았을 때, 밀실(密實)에서 어떤 소리도 듣지 말고 팔다리를 느긋하게 뻗고, 입으로 숨소리를 조화하면서 5회 되풀이한 후에 2∼3일 좌선하면 낫는다.”라고 하였다.
어떤 스님은 말하기를 "이는 처음 좌선할 때, 아직도 몸 안을 지나가는 바람[行風]이 왕성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방편을 마련하지 않으면, 급히 신체를 사로잡아 마치 체내에 머무르고 있는 바람과 같아진다. 체내에 머무르고 있는 바람이 지나가는 바람과 힘을 다투기 때문에 병이 생긴다. 
이것을 고치는 방법은 걸음을 걸어야 한다. 천천히 걸어가다가 점점 빠르게 걷고, 약 5리쯤 가서 도로 되돌아오면서 빠르게 걷다가 천천히 걸어와 좌선에 들어간다. 그리고 천천히 4∼5번 숨을 내쉬고, 팔다리를 느긋하게 뻗어 모든 것을 쏟아내리듯이 모든 생각을 버린다. 두세 번 반복하고, 귀로 아무 소리도 듣지 못하게 한 다음, 모든 생각을 버린다. 앞에서 한 방법과 같이 되풀이 하면서 한 끼 밥을 먹을 만한 시간이 지나면, 염을 거둬들여 한 번 좌선하면 낫게 된다.”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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