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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복은 탐욕과 서원이 다르다.

통융 2020. 1. 5. 09:42

부처님은 “중생의 이익과 행복과 안락을 위해 가르침을 편다.”고 말씀하셨다.

기복이 모두가 나쁜것은 아니다.

기복의 목적이 무엇이냐에 따라 다르다.

 

기복은 탐욕과 서원으로 나눈다.

탐욕은 개인적인 욕심의 기복 최소한 기복의 목적이 남을 위한 기복이라면 다행이다. 하지만 갈애의 목적은 기복이다.

서원은 개인이 아닌 모두 함께 혹은 내가 아닌 남을 위한 기복이다.

탐욕은 내가 존재하는 것이고

서원은 내가 존재하지 않는 상태이다.

모든 인연된 것에 감사하며 회향하는 것이 발원이다.

불교의 서원과 유일신앙의 서원은 무엇이 다른가

 

불교의 서원은 나와 남이 하나라는 생각으로 모두가 함께 행복한 삶을 말한다.

선악이 존재하지 않는 분별없는 서원이다.

그래서 지옥 중생들도 살생성인으로 기독교의 서원은 오직 하나님을 믿고 따르는 자들이 천국에 갈 수있는 것을 서원한다.

선악이 분별된 서원이다. 그들도 모든 약에서 가하옵소서 하고 서원을 하지만 현실은 유일신을 부정하는 것을 악으로 간주하여 물리치는 서원이다.

 

발사홍서원(發四弘誓願) 

중생무변서원도(衆生無邊誓願度) 번뇌무진서원단(煩惱無盡誓願斷)

법문무량서원학(法門無量誓願學) 불도무상서원성(佛道無上誓願成)

자성중생서원도(自性衆生誓願度) 자성번뇌서원단(自性煩惱誓願斷)

자성법문서원학(自性法門誓願學) 자성불도서원성(自性佛道誓願成)

 

원(願)은 서원(誓願)이라고 한다.

하나의 목적을 세우고 그 목적을 기어코 달성하겠다고 하는 서약적인 결의를 말한다.

발원은 어리석고 나쁜 마음을 모두 버리고 부처님처럼 크고 넓고 맑은 마음으로 살아가려고 다짐하는 불자의 바람이라고도 할 수 있다.

불자에게는 누구나 원이 있다. 원은 우리의 삶에 목표를 두고 중심을 이루며, 지혜와 용기가 나오는 것이다.

먼저 불자가 갖는 대표적인 근본 원이 4가지 있다.

그것은 "첫째, 가엾은 중생을 다 건지오리다."

"둘째, 끝없는 번뇌를 다 끊으오리다."

"셋째, 한없는 법문을 다 배우오리다."

"넷째, 위없는 불도를 다 이루오리다." 라고 하는 사호서원(四弘誓願)이 그것이다.

불자들의 모든 생각과 행동은 언제나 이 원을 여의지 말아야 하겠다.

우리는 온갖 어리석음 속에서 한없이 어려운 괴로움을 겪고 있는 많은 사람들을 올바른 깨달음의 길로 이끌어 맑고 밝은 삶을 누리도록 하기 위하여 꾸준히 노력해야 한다.

이 서원력으로 인하여 모든 불자는 번뇌에서 벗어나며 악도를 벗어나고 중생을 제도하며 불국 정토를 성취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서원은 자신의 이익만을 얻으려는 욕심이 아니라, 남도 이롭게 하려는 생활 태도다.

원(願)은 곧 희망(希望)이며 이상이다. 사람이란 참된 희망과 영원한 이상을 지님으로써 전진이 있고 향상이 있게 된다.

참된 보리 열반의 불과(佛果)를 성취하려는 불자로서 어찌 넓고 큰 희망과 이상을 지니지 않겠는가.

그 이상과 희망이 크면 클수록 그 활동과 노력도 큰 것이요, 그 노력이 클수록 그 결과도 클 것이니 불자로서 넓고 큰 서원을 세워 굳게 그 원을 닦아 나간다는 것은 참으로 거룩한 행이라고 하겠다.

우리 불자들은 이 땅에 태어난 다행스러움과 부처님 법문을 만난 경사스러움에 큰 감사와 용기를 일으켜 발원을 하고 그것을 실천할 것을 굳게 맹세하여야 겠다. 원을 세우기는 쉽지만 지속하기는 역시 쉬운 일이 아니다.

적어도 십년, 이십 년은 자기가 세운 원대로 행할 수 있는 각오가 서 있지 않으면 안된다. 우리가 세운 원을 지속적으로 실천할 때 그 원은 반드시 이루어지게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