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는 중인 자료

어둠을 어둠으로 몰아 낼 수 없다.

통융 2018. 6. 25. 09:24

 

어둠은 어둠으로는 절대 몰아낼 수 없다.

오히려 어둠만 더 짙게 만든다.

 

증오나 원한도 그와 같아서 증오를 증오로 원한을 갚는다고 해결되지 않는다.

오히려 증오와 원한은 더욱 골 깊게 쌓여만 간다.

 

一燈能除千年闇 일등능제천년암

一智能滅萬年愚 일지능멸만년우

한 등불이 능히 천년의 어둠을 없애고

한 지혜가 능히 만년의 어리석음을 없앤다는 말처럼

 

그러면 어떻게 어둠을 걷어낼까?

밝음이다.

 

불빛이 비치면 어둠은 한순간에 살아진다.

천년이나 된 동굴도 하나의 횃불로 한 찰나에 동굴 전체를 밝히듯이 말이다.

증오나 원한도 용서와 자비가 그 고리를 끊는 활인 검이 되는 것이다.

 

우리가 세상을 살면서 누구나 겪는 마음에 고통과 증오 어둠이 있을 수 있다.

그러한 마음이 일으키는 것들을 단박에 끊어 해결하는 방법이

마음의 본성을 알아차리는 깨달음인 것이다.

 

깨달음이 인연 연기의 작용 속에서

우주는 무한하여 고정되어 있지 않고 늘 변한다는 무상과

독립된 자아는 절대 없다는 무아의 사실

모든 존재는 하나로 연결돼 있어 내가 우주라는 우리라는 사실을 알아차리는 것이다.

 

우리의 마음도 이와 같이 연기작용으로 만들어지고 소멸함을 알아차리는 것.

그래서 마음의 본바탕이 공한 이치를 알아차리는 것.

 

마음이 본래 공함을 알아차리면 시시비비의 분별심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

공한 마음인 내가 무아임을 알고

 

그 무아의 한마음이 내가 우주라는 것을 안다.

너와 내가 둘이 아님을 알게 되고

 

온 세상은 내가 주인공인 것을 안다.

 

이러한 진리를 직접 체험하여 깨달으면 내가 우주의 중심이고 내가 세상 전부임을 알기 때문에

자비와 사랑이 그냥 일어난다.

 

행하되 행함이 없는 작용성이 되고 무루의 공한 마음이 된다.

이러할 때 나타나는 모든 마음이 참된 의미의 빛과 자비와 용서라 할 수 있다.

 

물론 행하는 그 행위에 대해서 내가 자비를 베푼다, 용서를 해 준다 등의 마음에 담아두지 않는다.

단지 말이 그렇다는 것이며 그냥 빌려 쓰는 언어일 뿐이지 특별한 의미는 없다.

 

그냥 할 뿐이다.

온전히 밝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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