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서 선(善, 꾸살라)과 불선(不善, 아꾸살라)의 근본의미를 어원에 입각해서 음미해본다면 선·불선의 불교적인 근본의미를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되리라 생각한다.
꾸살라(kusala, Sk. kus#ala)라는 단어는 인도의 전통에서는 kusa +la로 분석하고 있는데 여기서 꾸사는 꾸사라는 풀을 의미한다. 그리고 √la는 ‘자르다, 베다(to cut)’는 의미가 있다. 그래서 꾸살라는 꾸사풀을 꺾는 것을 뜻한다. 왜 선이 이 의미와 연결되어 있나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좀더 고찰해 볼 필요가 있다.
이 꾸사풀은 우리 나라의 억새풀과 비슷하다 할 수 있는데 인도의 전통적 제사에 반드시 있어야 하는 중요한 의미를 가진 풀이다. 그런데 이 풀이 아주 억세고 날카로워서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잘못 꺾게 되면 손이 베이게 된다. 우리 어릴 때도 억새풀 꺾다가 손이 베인 그런 경험이 있지 않은가. 그래서 이 중요한 풀을 베려면 아주 마음을 기울여서 조심해서 꺾어야 한다. 이와 마찬가지로 어떤 것이 선이기 위해서는 지혜로운 주의(yoniso manasikaara, 16-1장 1번, 2번 주해 참조)를 기울임이 필요하다는 뜻에서 이 말이 유래되었다고 보는 것이다.
그러니 엄밀한 의미에서 선업과 불선업을 구분하는 객관적인 기준이 따로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예를 들면 칼을 들어서 사람 몸에 상처를 주는 행위 그 자체는 그냥 하나의 행위지만 여기에 작용하는 의도에 따라서 선·불선으로 나누어진다고 봐야 할 것이다. 의사가 칼을 들고 환자의 배를 가르는 것은 살리기 위한 의도이니 선 혹은 선업이 될 것이고, 강도가 금품 탈취를 위해서 행인의 배를 그리 하는 것은 불선 혹은 불선업이 될 것이다.
그렇지 않고 ‘선이다. 불선이다’라고 무엇을 세운다면 그것이야말로 극복되어야 할 산냐가 되고 그렇게 되면 그 선 아니 선이라는 산냐를 위해서 목숨 바친다 운운하는 극단적인 사고나 행위를 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선, 선업(kamma), 선근(muula), 선법(dham ma)과는 거리가 멀게 되고 만다.
굳이 선·불선의 기준을 초기경에서 찾자면 저 유명한 깔라라경을 들 수 있을 것이다. 탐·진·치가 증장하는 것은 불선이고 반대로 탐·진·치가 줄어들고 소멸되는 것은 선이라고 부처님께서는 말씀하고 계신다. 우리 범부는 매순간 어떤 식으로든 의도를 하지 않고서 살 수는 없으니 항상 그 의도가 선이 되도록 노력해야겠고 그래서 우리의 삶이 향상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아무튼 선·불선을 판단하려면 그만큼 지혜로운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고 본다.
이 선불선을 판단해서 선은 증장시키고 불선은 없애려는 노력이 사정근(26장 7번 주해 참조)이요, 팔정도에서는 6번째인 정정진이다. 이런 끊임없는 노력에 의해서 바른 마음챙김은 확고하게 되고 바른 선정을 얻어 평온과 마음챙김이 지극히 청정해져서[捨念淸淨, 우뻬카사띠빠리숫디] 이 힘으로 저 번뇌를 멸절하여 완전히 해탈하고 해탈했다는 지견[解脫知見]을 증득하는 것이 초기경에 나타나는 부처님께서 고구정녕히 말씀하고 계신 해탈의 길 저 팔정도인 것이다.
그래서 본 경의 23장에서도 “그 무상 정등각은 자아 없음, 중생 없음, 영혼 없음, 개아 없음으로 평등하나니 모든 선법(꾸살라 다르마)들로 철저하게 깨달아지는 것이다.” 라고 하여 꾸살라 다르마는 아주 중요하게 다루어지고 있다. 선·불선 ― 꾸살라·아꾸살라 ― 의 철저한 간택, 이런 노력을 통해서 위없는 깨달음은 성취되는 것이라고 대승 경전인 본 경도 힘주어 말하고 있음을 분명히 알아야 하겠다. 한편 영어로는 꾸살라는 wholesomeness로 아꾸살라는 un-wholesomeness로 옮겨져서 정착이 되고 있는데 아주 좋은 번역이라 하겠다.
......
<성선설(性善說)> <성악설(性惡說)> <성무선무악설(性無善無惡說)>.
맹자(孟子 : BC 372?~BC289?)의 성선설
《중용(中庸》에서는 ‘천명을 성이라 이른다(天命之謂性)’고 하였습니다. 성(性)은 하늘이 사람에게 부여한 것으로 사람이 날 때부터 갖추고 있는 본성으로 규정했는데, 맹자는 이것을 선(善)이라고 본 것입니다. 맹자는 이것을 근거로 사람이 누구나 남의 불행을 차마 내버려두지 못하는 마음(不忍人之心)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주장을 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모두 선한 성을 타고나지만 모두 선한 사람이 되지 못하고 인의예지(仁義禮智)의 사덕(四德)을 이루지 못하는 것은, 사람의 본성에 차별이 있어서가 아니라 선의 실마리를 힘껏 배양하고 확충하지 않은 결과라고 보는 것입니다.
순자(荀子 : BC 298~BC 238)의 성악설
맹자의 성선설과 대립되는 이론입니다. 순자는 사람은 누구나 다 관능적 욕망과 생(生)의 충동이 일고 개인의 이익을 추구하게 되는 것이라고 보았습니다. 그래서 도덕 질서가 파괴되어 이를 가리켜 인성(人性)이 악(惡)하다고 규정지은 것이지요.
순자가 말하는 인성은 욕망을 의미하고 선악은 사회적 치란(治亂)을 의미합니다. 순자는 인성이 비록 악하지만, 그러나 인간의 후천적 노력에 의해 얼마든지 선한 방향으로 그것을 교정(矯正)할 수가 있다고 보았습니다. 이것을 일러서 ‘위(僞)’를 쌓는 일이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위’는 우리가 일상 말하는 거짓이라는 뜻의 허위(虛僞)가 아니고 ‘인위(人爲)’를 가리킵니다. 인위는 사람이 선천적으로 가지는 자연스러운 감정이나 욕망과는 명확하게 구분이 되는 개념입니다.
고자(告子 : ?~?)의 성무선무악설(性無善無惡說)
인간의 본성은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으며, 욕구(食慾, 色慾)만 가지고 태어났고, 인간 외의 동물도 동일하다는 주장을 고자의 성무선무악설이라고도 부릅니다. 고자는 사람이 가지고 있는 자연적인 욕구를 성(性)이라고 보았습니다. “성은 흐르는 물과 같아 동쪽으로 터놓으면 동쪽으로 흐르고, 서쪽으로 터놓으면 서쪽으로 흐른다. 이것은 인성에 선과 불선의 구별이 없는 것과 같다”고 했습니다. .....김덕권시인
<사리불과 코오티>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라자가하 성에 노니시면서 죽림 칼란다 동산에 계시었다. 그때에 존자 사리풋타는 오후에 연좌에서 일어나 존자 마하 코오티라가 있는 곳으로 가서 문안하고 물러나 한쪽에 앉았다.
사리풋타 존자는 말하였다.
"어진 이, 코오티라여! 묻고 싶은 일이 있는데 들어 주겠소" 코오티라 존자는 사뢰었다 "사리픗타 존자여! 마음대로 물으시오 나는 들은 뒤에 생각해 보리다. "존자 사리풋타가 물었다. "어진 이, 코오티라여! 착하지 않은 것[不善]은 착하지 않다고 말하고 착하지 않은 뿌리[不善根]는 착하지 않은 뿌리라고 말하는데 어떤 것이 착하지 않는 것이며 어떤 것이 착하지 않은 뿌리인가요?"
"몸의 악한 행과 입과 (신구의)뜻의 악한 행은 착하지 않은 것이요,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은(탐진치) 착하지 않은 뿌리요. 이것을 착하지 않은 것이라 하고 이것을 착하지 않은 뿌리라 하오."
"착하고 착하오, 어진 이, 코오티라여!" 존자 사리풋타는 이렇게 찬탄한 뒤에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그리고 그는 다시 물었다.
"어진 이, 코오티라여! 착한 것은 착하다 말하고 착한 뿌리는 착한 기관이라 말하는데, 무엇이 착한 것이며 무엇이 착한 기관인가요?"
"몸의 묘한 행과 입과 뜻의 묘한 행은 착한 것이요 탐욕과 어리석음이 없는 것이 착한 뿌리요 이것을 착한 것이라 하고 이것을 착한 뿌리라 하오."
"착하고 착하오, 어진 이, 코오티라여!" 사리풋타는 이렇게 찬탄한 뒤에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그리고 그는 다시 물었다.
“어진 이, 코오티라여! 지혜는 지혜라 말하는데 어떤 것이 지혜인가요?”
"이러한 것을 알기 때문에 지혜라 하오. 어떤 것을 아는 것인가. 괴로움의 진리를 알고 이 괴로움의 집기를 알며 이 괴로움의 멸함을 알고 이 괴로움의 멸함에 이르는 길을 아는 것이니, 이러한 것을 알기 때문에 지혜라 하는 것이오."
“착하고 착하오, 어진 이, 코오티라여!” 존자 사리풋타는 이렇게 찬탄 한 뒤에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그리고는 그는 다시 물었다.
“어진 이, 코오티라여, 식별(識別)은 식별이라고 말하는데 어떤 것이 식별인가요?”
코오티라 존자는 대답하였다. "식별은 식별하기 때문에 식별이라고 말한다. 어떤 것을 식별하는가, 색을 식별하고 소리를 식별하고 냄새를 식별하고 맛을 식별하고 촉감을 식별하고 법을 식별하는 것이다. 식별은 식별하기 때문에 식별이라 하는 것이오."
"착하고 착하오, 어진 이, 코오티라여!" 사리픗타 존자는 이렇게 찬탄한 뒤에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그리고 그는 다시 물었다.
"어진 이, 코오티라여! 지혜와 식별의 이 두 법은 합해지는 것[合]인가, 갈라지는 것 [別]인가. 또는 이 두 법을 따로 주장할 수 있는 것인가요?"
"이 두 법은 합해지는 것으로서 갈라지는 것이 아니요. 또 이 두 법은 따로 주장할 수 없는 것이요."
"착하고 착하오, 어진 이, 코오티라여! "사리풋타 존자는 이렇게 찬탄한 뒤에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그리고 그는 다시 물었다.
"어진 이, 코오티라여! 아는 것을 당신은 무엇으로써 아는가요?"
"아는 것을 나는 지혜로써 아오.(알아차림이 지혜(반야)의 전주곡이다.)
"착하고 착하오. 어진 이, 코오티라여!" 사리푼타 존자는 이렇게 찬탄한 뒤에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그리고 그는 다시 물었다.
"어진 이, 코오티라여! 지혜는 어떤 뜻이 있고 어떤 훌륭함이 있으며 어떤 공덕이 있는가요?"
"지혜는 싫어하는 뜻이 있고 욕심이 없는 뜻이 있으며 진리를 보는 뜻이 있소."
"착하고 착하오, 어진 이, 코오티라여!" 사리풋타 존자는 이렇게 찬탄한 뒤에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그리고 그는 다시 물었다.
"어진 이, 코오티라여! 어떤 것이 바른 소견인가요?"
"괴로움을 참답게 알고 괴로움의 집기를 알며 괴로움의 멸함을 알고 괴로움의 멸함에 이르는 길을 알면 이것을 바른 소견이라 하오." (정념(알아차림)에서 정견(正見)이 나온다. 정념은 8정도를 내포한다.)
"착하고 착하오, 어진 이, 코오티라여!" 사리풋타 존자는 이렇게 찬탄한 뒤에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그리고 그는 다시 물었다.
"어진 이, 코오티라여! 몇 가지 인연으로 바른 소견이 바른 소견이 생기는 가요? 두 가지 인연으로 바른 소견이 생기오. 어떤 것이 둘인가. 첫째는 남에게서 듣는 것이요. 둘째는 자기 마음으로 생각하는 것이요. 이것을 두 가지 인연으로 바른 소견이 생기는 것이라 하오."
"착하고 착하오, 어진 이, 코오티라여!" 존자 사리풋타는 이렇게 찬탄한 뒤에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그리고 그는 다시 물었다.
"어진 이, 코오티라여! 몇 가지 거둠이 있어 바른 소견을 거두어 마음해탈의 결과와 슬기 해탈의 결과를 얻고 마음 해탈의 공덕과 슬기 해탈의 공덕을 얻는 가요?"
"다섯 가지 거둠이 있어 마음 해탈의 결과와 슬기 해탈의 결과를 얻고 마음 해탈의 공덕과 슬기 해탈의 공덕을 얻소. 어떤 것이 다섯이오. 첫째는 진리의 거둠이요 둘째는 계의 거둠이며 셋째는 널리 들음의 거둠이오, 넷째는 그침의 거둠이며, 다섯째는 관찰의 거둠이오, 이것을 다섯 가지 거둠이 있어 바른 소견을 거두어 마음 해탈의 결과와 슬기 해탈의 결과를 얻고 마음 해탈의 공덕과 슬기 해탈의 공덕을 얻는 것이오."
"착하고 착하오, 어진 이, 코오티라여!" 사리풋타 존자는 이렇게 찬탄한 뒤에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그리고 그는 다시 물었다.
"어진 이, 코오티라여! 어떻게 미래의 존재 [有]가 생기는 가요?"
"어리석은 범부는 무지하고 들은 것이 적고 무명에 덮이고 애욕에 얽매이고 착한 벗을 만나지 못하고 거룩한 법을 알지 못하며 거룩한 법을 모시지 못하고 그러므로 미래의 존재가 생기는 것이오."
"착하고 착하오, 어진 이, 코오티라여!" 사리풋타 존자는 이렇게 찬탄한 뒤에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그리고 그는 다시 물었다.
"어진 이, 코오티라여! 어떻게 미래의 존재가 생기지 않는 가요?"
"만일 무명(無明)이 이미 다하여 혜명(慧命)이 생기면 반드시 괴로움이 다할 것이니 그러므로 미래의 존재가 생기지 않을 것이오.
"착하고 착하오, 어진 이, 코오티라여!" 사리풋타 존자는 이렇게 찬탄한 뒤에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그리고 그는 다시 물었다.
"어진 이, 코오티라여! 몇 가지 느낌이 있는 가요?
"세 가지 느낌이 있소. 곧 즐거운 느낌과 괴로운 느낌과 괴롭지도 않고 즐겁지도 않은 느낌이 있소. 이것들이 무엇을 인연하여 있는가 하면 부딪침을 인연하여 있소"
"착하고 착하오, 어진 이, 코오티라여!" 사리풋타 존자는 이렇게 찬탄한 뒤에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그리고 그는 다시 물었다.
"어진 이, 코오티라여! 느낌[受]과 생각[想]과 의도[思]의 이 세 가지 법은 합해지는 것인가. 갈라지는 것인가. 또 이 세 가지 법은 따로 주장할 수 있는 것인가요?"
존자, 코오티라는 대답하였다. "느낌과 생각과 의도의 이 세 가지 법은 합해지는 것이오. 갈라지는 것이오. 또 이 세 가지 법은 따로 주장할 수 없는 것이오. 무슨 닭인가. 느낌이 느끼는 것은 곧 생각이 생각하는 것이고, 의도가 의도하는 것이오. 그러므로 이 세 가지 법은 합해지는 것이오. 갈라지는 것이 아니요. 또 이 세 가지 법은 따로 주장할 수 없는 것이오."("가지 법은 합해지는 것이다"라고 했다. 사념처(위빠싸나)는 동시에 작용한다는 것을 경전에서 설명한다. 몸의 움직임이든 호흡이든 마음이든 하나를 관찰하면 신·수·심·법이 동시에 수행된다. 이것의 극치가 마하반야바라밀이다.)
사리풋타 존자는 듣고 기뻐하며 말하기를 "착하고 착하오, 어진 이, 코오티라여!" 사리풋탸 존자는 이렇게 찬탄한 뒤에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그리고 그는 다시 물었다. "어진 이, 코오티라여! 멸(滅)은 어떤 상대가 있는가요?" 코오티라 존자는 대답하였다. "멸은 상대가 없소" "착하고 착하오, 어진 이, 코오티라여!" 사리풋타 존자는 이렇게 찬탄한 뒤에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그리고 그는 다시 물었다. "어진 이, 코오티라여! 다섯 가지 감각기관[五根]은 제각기 다른 행과 다른 대상이 있어서 각각 제 대상을 느낀다. 곧 눈·코·귀·혀·몸 이 다섯 가지 감각기관은 제각기 다른 행과 다른 대상이 있어서 각각 제 대상을 느끼는데 무엇이 그들 때문에 그 대상을 다 느끼며 무엇이 그들의 의지[依]가 되는 가요?"
"다섯 가지 감각기관은 제각기 다른 행과 다른 대상이 있어서 각각 제 대상을 느낍니다. 곧 눈·귀·코·혀·몸이 다섯 기지 감각기관은 제각기 다른 행과 다른 대상이 있어서 각각 제 대상을 느끼는데, 의지에 의하여 그 대상을 다 느끼며 다섯 가지 감각기관은 의지에 의존하게 되는 것이오."
"착하고 착하오, 어진 이, 코모티라여!" 사리풋타 존자는 이렇게 찬탄한 뒤에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그리고 그는 다시 물었다.
"어진 이, 코오티차여! 의지는 무엇을 의지하여 머무르는 가요?"
"의지는 목숨을 의지하고 목숨을 의지하여 머무르오."
"착하고 착하오, 어진 이, 코오티라여!" 사리풋타 존자는 이렇게 찬탄한 뒤에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그리고 그는 다시 물었다.
"어진 이, 코오티라여! 목숨은 무엇을 의지하여 머무르는 가요?
"목숨은 따뜻한 기운을 의지하여 머무르오."
''착하고 착하오, 어진 이, 코오티락여!" 사리풋타 존자는 이렇게 찬탄한 뒤에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그리고 그는 다시 물었다.
"어진 이, 코오티라여! 목숨과 더운 기운, 이 두 법은 합해지는 것인가 갈라지는 것인가요. 또 이 두 법은 따로 주장할 수 있는 것인 가요?"
"목숨과 더운 기운, 이 두 법은 합해지는 것이요 갈라지는 것이 아니며 또 이 두 법은 따로 주장할 수 없는 것이요. 무슨 까닭인가 목숨으로 인하여 더운 기운이 있고 더운 기운으로 인하여 목숨이 있으며 만일 목숨이 없으면 곧 더운 기운이 없고 더운 기운이 없으면 곧 목숨이 없기 때문이오. 마치 기름과 심지로 인하여 등불을 켤 수 있는 것과 같소. 거기에 불꽃으로 인하여 빛이 있고 빛으로 인하여 불꽃이 있으며 만일 불꽃이 없으면 곧 빛이 없고 빛이 없으면 곧 불꽃이 없소. 이와 같이 목숨으로 인하여 더운 기운이 있고 더운 기운으로 인하여 목숨이 있으며, 만일 목숨이 없으면 곧 더운 기운이 없고 더운 기운이 없으면 곧 목숨이 없는 것이오. 그러므로 이 두 법은 합해지는 것이요. 갈라지는 것이 아니며 또 이 두 법은 따로 주장할 수 없는 것이오."
"착하고 착하오, 어진 이, 코오터티여! 사리풋타 존자는 이렇게 찬탄한 뒤에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그는 다시 물었다.
"어진 이, 코오티라여! 몇 가지 법이 있어 산몸이 죽은 뒤에 몸이 무덤 사이에 버려져 나무처럼 무정한가요?"
"세 가지 법이 있어 산몸이 죽은 뒤에는 몸이 무덤 사이에 버려져 나무처럼 무정해지오. 어떤 것이 셋 인가. 첫째는 목숨이오. 둘째는 더운 기운이며, 셋째는 식별이오. 이 세 가지 법이 있어 산몸이 죽은 뒤에는 몸이 무덤 사이에 버려져 나무처럼 무정해지는 것이오."
"착하고 착하오, 어진 이, 코오티라여! 사리풋타 존자는 이렇게 찬탄한 뒤에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그리고 그는 다시 물었다.
"어진 이, 코오티라여! 죽음과 멸진정(滅盡定)에 듦과는 어떤 차별이 있나요?"
"죽음은 목숨이 이미 끝나고 더운 기운이 이미 떠나며 모든 감각기운이 무너지는 것이요. 비구가 멸진정에 든 것은 목숨이 끝나지 않고 더운 기운이 떠나지 않으며 모든 감각기관이 무너지지 않소. 죽음과 멸진정에 듦과는 이러한 차별이 있소."
"착하고 착하오, 어진 이, 코오티라여!" 사리풋타 존자는 이렇게 찬탄한 뒤에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그리고 그는 다시 물었다.
"어진 이, 코오티라여! 멸진정에 든 것과 무상정(無想定)에 든 것과는 어떤 차별이 있는가요?"
"비구가 멸진정에 들면 생각과 느낌이 멸하오. 그러나 비구가 무상정에 들면 생각과 느낌이 멸하지 않소. 멸진정에 든 것과 무상정에 든 것과는 이러한 차별이 있소."
"착하고 착하오, 어진 이, 코오티라여!" 사리풋타 존자는 이렇게 찬탄한 뒤에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그치고 그는 다시 물었다.
"어진 이, 코오티라여! 멸진정에서 일어나는 사람과 무상정에서 일어나는 사람은 어떤 차별이 있는가요?"
"비구가 멸진정에서 일어날 때에는 ‘나는 멸진정에서 일어난다.’라고 생각하지 않소. 그러나 비구가 무상정에서 일어날 때에는 나는 생각이 있다. 나는 생각이 없다. 이렇게 생각하오, 멸진정에서 일어나는 사람과 무상정에서 일어나는 사람과는 이러한 차별이 있소."
"착하고 착하오, 어진 이, 코오티라여!" 사리풋타 존자는 이렇게 찬탄한 뒤에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그리고 그는 다시 물었다.
"어진 이, 코오티라여! 비구가 멸진정에 들어갈 때에는 몸의 행과 입과 뜻의 행 가운데서 어느 법이 먼저 멸하는가요?"
"비구가 멸진정에 들어갈 때에는 먼저 몸의 행이 멸하고 다음에 입의 행이 멸하며 나중에 뜻의 행이 멸하오."
"착하고 착하오, 어진 이, 코오티라여!" 사리픗타 존자는 이렇게 찬탄한 뒤에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그리고 그는 다시 물었다.
"어진 이, 코오티라여! 비구가 멸진정에서 일어날 때에는 입과 뜻의 행 가운데서 어느 법이 먼저 생기는가요?"
"비구가 멸진정에서 일어날 때에는 먼저 뜻의 행이 생기고 다음에는 입의 행이 생기며 나중에 몸의 행이 생기오."
"착하고 착하오, 어진 이, 코오티라여!" 사리풋타 존자는 이렇게 찬탄한 뒤에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그리고 그는 다시 물었다.
"어진 이, 코오티라여! 비구가 멸진정에서 일어날 때 몇 가지 부딪침에 부딪치는가요?"
"비구가 멸진정에서 일어날 때에는 세 가지 부딪침에 부딪치오. 어떤 것이 셋인가? 첫째는 움직이지 않는 부딪침이요, 둘째는 소유가 없는 부딪침이며, 셋째는 모양이 없는 부딪침이오. 비구가 멸진정에서 일어날 때에는 이 세 가지 부딪침에 부딪치는 것이오."(오매일여·무상정·멸진정을 구체적으로 점검, 탁마하는 과정이다.)
"착하고 착하오, 어진 이, 코오티라여!" 사리풋타 존자는 이렇게 찬탄한 뒤에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그리고 그는 다시 물었다.
"어진 이, 코오티라여! 공(空), 원이 없음, 모양이 없음의 이 세 법은 뜻도 다르고 말도 다른가요. 혹 뜻은 하나인데 말이 다른가요."
"공(空)과 원이 없음과 모양이 없는 이 세 법은 뜻도 다르고 말도 다르오." (평등지(平等智) 아닌 차별지(差別智)를 설명하는 대목이다. 법 거량은 이렇게 서로의 체험담을 진솔하게 나누는 것이 진정한 탁마일 것이다. 서로의 경계를 문자로만 거량하다가 뒤에서 비판하는 일은 지양되어야 할 것이다. 그보다는 차라리 오매일여가 되는지 동정일여가 되는지를 진실하고 냉정하게 살려보는 것이 나을 것이다. )
"착하고 착하오, 어진 이, 코오티라여!" 사리풋타 존자는 이렇게 찬탄한 뒤에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그리고 그는 다시 물었다.
"어진 이, 코오티라여! 몇 가지 인연이 있어 움직이지 않는 정(定)이 생기는 가요?"
"네 가지 인연이 있어 움직이지 않는 정이 생기오. 어떤 것이 넷 인가? 만일 비구가 탐욕을 떠나고 악하고 착하지 않은 법을 떠나 내지 제사선(四禪)을 얻어 성취하여 노닐면, 이것을 네 인연이 있어 움직이지 않은 정이 생기는 것이라 하오."
"착하고 착하오, 언진 이, 코오티라여!" 사리풋타 존자는 이렇게 찬탄한 뒤에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그리고 그는 다시 물었다.
"어진 이, 코오티라여! 몇 가지 인연이 있어 무소유정(無所有定)이 생기는가요?"
"세 가지 인연이 있어 무소유정이 생기오. 어떤 것이 셋 인가? 만일 비구가 일체의 색이라는 생각을 지나 내지 무소유처(無所有處))를 얻어 성취하여 노닐면 이것을 세 가지 인연이 있어 무소유정이 생기는 것이라 하오."
"착하고 착하오, 어진 이, 코오티라여!" 사리풋타 존자는 이렇게 찬탄한 뒤에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그리고 그는 다시 물었다.
"어진 이, 코오티라여! 몇 가지 인연이 있어 무상정(無想定)이 생기는 가요?"
"두 가지 인연이 있어 무상정이 생기오. 어떤 것이 둘인가. 첫째는 일체의 생각을 하지 않는 것이오. 둘째는 생각이 없는 계층을 생각하는 것이오, 이것을 두 인연이 있어 무상정이 생기는 것이라 하오."
"착하고 착하오, 어진 이 ,코오티라여!" 사리풋타 존자는 이렇게 찬탄한 뒤에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그리고 그는 다시 물었다.
"어진 이, 코오티라여! 몇 가지 인연이 있어 무상정에 머무르는가요?"
"두 가지 인연이 있어 무상정(無想定)에 머무르오. 어던 것이 둘인가? 첫째는 일체의 생각을 하지 않는 것이오. 둘째는 생각이 없는 계층을 생각하는 것이오. 이것을 두 가지 이연이 있어 무상정에 머무르는 것이라 하오."
"착하고 착하오, 어진 이, 코오티라여! "사리풋타 존자는 이렇게 찬탄한 뒤에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그리고 그는 다시 물었다
"어진 이, 코오티라여! 몇 가지 인연이 있어 무상정에서 일어나는가요?"
"세 가지 인연이 있어 무상정에서 일어나오. 첫째는 일체의 생각을 생각하는 것이요 둘째는 생각이 없는 계층(無想界)을 생각하지 않는 것이며, 셋째는 이 몸과 여섯 가지 감각기관(六處)을 인으로 하고 목숨기관(命根)을 연으로 하는 것이오. 이것을 세 가지 인연이 있어 무상정에서 일어나는 것이라 하오." 이와 같이 그 두 분은 착하고 착하오, 라고 서로 찬탄하고 서로 말한 바를 기뻐하며 받들어 행한 뒤에 자리에서 일어나 떠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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