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은 어떻게 일어날까?
무엇인가를 보고, 듣고, 냄새 맏고, 맛보고,느끼(受)는 것과 생각(想)이 일어난다.
이것을 의지(意志)가 일어나는 것이 의식(意識)이다.
의식은 몸과 마음을 일으킨다.
즉 조건인 원인遠因과 일어나는 과정인 연결됨과 그로 인해 나타난 결과가 몸과 마음을 작용하게 하는 순서이다.
이것을 연기의 법칙이라고 한다.
因인 조건과 緣인 관계와 果인 결과를 인연과인 緣起 혹은 因緣法이라 한다.
마음은 마음의 주인인 왕과 그 왕을 도와주는 신하가 있다.
심왕과 마음부수라 한다. 혹은 심과 심소로 나누기도 한다.
심왕은 스스로 마음을 이르키지 않는다. 공한 진성이다.
우리가 마음이라고 하는 것들은 마음부수들의 작용을 말한다.
그래서 조건된 부수들의 조합이지 자아라는 존재는 없다.
그래서 마음부수들만 제거되면 마음은 비존비성이 된다. 제거된다는 것은 없에버리는 것이 아니라 마음부수에 끄달려 가지 않는 것을 말한다.
내면의 집중과 롱찰,평온은 따로 분리되는 것이 아니다. 마음의 본성을 가르키기 위한 용어 방편어일 뿐이다.
왜냐면 시작과 끝은 동시에 일어나기 때문이다.
걷는 행위 자체에는 의지와 몸의 작용인 바람,불,물,땅의 요소들에 의해서 움직인다.
무엇이 뚜렷이 걷는 행위인가?
이러한 조건들이 모여서 걷는 것이다.
그러면 무엇이 걷게 하는가? 라고 질문을 한다면 어떻게 대답을 해야 합니까?
말로 할 때 마음이라는 모든 부수들과 조건들을 이해 시키는 설명을 우리는 진실이라고 믿는다.
그렇지 않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설명리 뿐이다. 목마른 자가 물을 먹으면 갈증ㅇ ㅣ해소된다는 것을 아는 것이고 아무리 설명을 해도 갈증은 해결되지 않는다. 직접 물을 먹어야 한다.
진리의 핵심은 실지에 있듯 것이듯 걷는것도 다르지 않다.
그래서 임제선사는 걷는 것이 기적이라는 말을 쓴다.
기적이 유루법이 아닌 무루법이기 때문이다.
어떤 말이나 표현으로도 답이 되지 않는다.
그냥 걷는 것이 정답이다.
그렇듯 마음도 같은 것이다.
마음의 색깔은 무엇입니까? 질문을 한다면 어떻게 답을 하시겠습니까?
마음이 존재하지 않는다며 어떻게 색깔이 있습니까?라고 반문할 것이다.
그렇다.마음은 설명이나 존재로 나타낼 수 없다.
하지만 마음은 한 순간도 우리가 보고 듣고 냄새맏고 맛보고 느끼는 것에서 벗어나 있지 않다.
즉 몸과 마음은 동시에 존재한다.
그렇다면 마음의 색깔도 알수 있지 않을 까?
마음은 즉견(卽見)하는 것이 마음이니까!.
실지실견(悉知悉見)인 모두보고 모두안다고 했던 부처님의 말씀처럼
일체가 유심조다. 즉심시불, 심일경, 심법,
보는 마음 듣는마음, 등등
마음이 일어나면 바른 생각과 상황, 바른 행동인 판단 그리고 바른 쓰임인 삶이 따른다.
그것을 불수자성 수연성이라한다.
마음이라는 것이 이렇게 만들어진다는 설명을 했다.
하지만 마음은 설명으로 알아치리는 것은 아니다.
지금 그대가 입고 있는 옷의 색깔이 무슨 색인가?
보고 아는 찰나!
그것이 그대 마음의 색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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