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융의 이야기

無心과 唯心과 明心

통융 2018. 7. 27. 21:11

無心과 唯心과 明心

 

무심은 자연심이다. 무위자연의 대표적 마음이다. 바보가 무심이다. 행하되 행함을 모르는 것이다. 개나 소도 무심을 가지고 있다. 

잠오면 잠자고 배고프면 밥을 먹는다. 평상심이 도다는 말을 곡해하지 말아야 한다.

무질서, 즉 죄의식 없는 무개념을 주장하는 無心을 道라 말하는 사람들은 마치 눈을 감고 '아무 것도 없다' 하는 것과 같고, 귀를 막고 소리치며 '조용하다고' 하는 사람과 같다.

무심도인이라는 말도 자칫 오해소지가 있다.

그래서 무심이라는 무기로 자신을 위장하는 막행 막식의 안타까운 무심도인들이 생기는 것이다.

 

유심은 일체유심조다. 다양하게 아는 통찰지로 마음이라는 존재에 대해서 설명한 학론이다.

유식학으로 풀어보면 마음이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다. 조건 따라 만들어진다.

 

명심은 꿰뚫어 아는 지혜의 마음이다. 중도지며 반야심이다.

마음이 불수자성 수연성을 깨달은 마음이다.  

물들지 않는 청정한 마음이다.

 

부처님이 법을 깨달아 설명한 최초 법문경인 초전법륜경에 보면  바른 지혜의 법의 깨달음을 5단계로 구분했다.

지혜의 눈이 생겼다. 아는 지혜가 생겼다, 다양하게 아는 통찰지가 생겼다, 꿰뚫어 아는 명지가 생겼다.,   지혜-통찰지라는 광명지가 생겼다. 그 모든 것이 하나로 모일 때가 유심이다.

 

 

명심이 되어야 유심이 되고 다므에 무심이 되는 것이지 무심이 명심이 되지는 못한다.

무심도인도 유심과 명심인 무심도인이 있고 그야말로 무심한 도인이 있다.

자연도 중도의 도임은 틀림이 없다.

다만 과을 얻느냐 그렇지 않느냐에 따라 무심한 것인지 유심한 것인지 명심한 것인지를 알 수 있다.

 

 

광명지는 일체유심의 자비광명이라 한다.

화엄법화의 보살행이라 해인 삼매의 불도행이라 한다.

이 도가 참 무심도라 한다.

마음 없는 것이 아니라 마음 있는 것 전부가 되는 것이다.

일체 모든 마음을 있는 그대로 알아차릴 때가 유심한 무심이다. 

 

있는 그대로 알아차림 할 때

늘 지금 여기서 분별하는 마음이 일어나지 않는 것이 참 유심의 무심이라 한다. 

 

배 고프면 밥 먹고

잠이 오면 잠을 잔다. 

 

한 찰라도 무심함을 놓치지 않고 알아차리는 유심한 것이 참 무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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