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을 신앙으로 믿어라
진실이 종교이다.
진실은 말이 아니라 행동이다.
자신에게 진실하다면 이 세상에 모든 자유를 얻는다.
이 세상에서 그 어떠한 힘보다도 어떤 무서운 무기보다도 강한 것이 진실이다.
그 어떠한 화도 슬픔도 진실 앞에서는 무너진다.
진실 앞에는 모두가 복종하게 된다.
그러한 진실을 스스로 자신에게 신앙하라.
온전히 복종하는 진실의 종이 되어라.
자신의 참 자아에 진실하라.
외부적인 조건에 의한 진실이 아니라 스스로 자신의 본성에서 진실이 되어야 한다.
양심에 비추어 아니면 환경이나 조건에 따라서 혹은 진리이니까 라고 하는 모든 것은 분별심의 대상이지
참 진실이 아니다.
왜냐면 그러한 것들은 자신의 본성에서 이차적인 학습된 마음들 業 혹은 習이기 때문이다.
즉 분별하는 마음이라고 한다.
우리가 나라고 알고 있고 나라고 쓰고 있는 모든 생각 마음들이 착각하는 분별심에서 일어나는 것이다.
그러한 분별심은 몸과 정신인 5온(5蘊=色受想行識)에 의거한 조작된 것들이 자신의 본성인냥 착각하는 것이다.
불교에서는 이러한 마음들을 밝혀 놓은 것이 유식(唯識)이라 한다.
부처님은 나라고 착각하는 마음들은 모두가 괴로움을 만드는 조건이며 그 조건들을 바로 알고 제거한다면
우리는 늘 참 자아를 바로 깨달아 살아간다고 했다.
그러한 마음 작용들을 4성제로 구분하여 설법 했고
그러한 마음을 밝혀서 깨달아 가는 방법을 4념처와 8정를 통해 바른 마음챙김을 설명하고 있다.
이라한 마음들을 체계적으로 이해하고 알지 못해도
스스로 직감하는 본성을 누구나 알아차리고 늘 쓰고 있다.
그러한 자신이 보고 듣고 느끼고 생각하는 마음들을 조건 없이 챙겨보면 된다.
나무를 보면서 그냥 나무만 보는 것이지 무슨 나무이지, 왜 저렇게 생겼지, 나이는 얼마나 되었을까 등등
나무를 보는 순간 만이 1차적인 본성의 자리라면 그 외에 나타나는 모든 분별심은 이차적인 생각이고
참 나가 되지 못한다.
머리 굴리는 순간 자신에게 진실은 천리만리 멀어진다.
양심이니 환경이니 상황이니 하는 것이 바로 이러한 머리 굴리는 조건들이다.
이러한 조건을 가지고 자신을 변명하고나 합리화 하려는 조작된 진실인 것이다.
오직 바라볼 뿐, 오직 할 뿐, 모두를 조건 없는 대화일 때 그 순간이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절대의 상태이다.
시공간을 초월한 순간순간이 연속되면 생사도 뛰어 넘는다.
왜 그러한 찰나만이 가장 순수한 진실일까?
우리는 시간과 공간을 정지할 수 없는 세계에 살고 있다.
즉 모든 시간은 찰나생 찰나멸하는 순간만이 존재한다.
특히 보고 있는 물체도 사실은 그러한 찰나의 존재로 고정된 것이 있을 수 없다.
왜냐면 어떤 조건인 원인과 인연된 과정을 통해 형상이 나타는 동시에 변해가는 과정인데 워낙 빠른 생멸을 하다보니 영화를 보는 것처럼 착시 현상으로 고정되어 있어 보인다.
그러한 현상을 연기緣起 실상이라하는데 우주 속에 존재하는 유무상의 모든 것은 이러한 연기법을 벗아날 수가 없다.
이러한 연기법은 우주속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서로서로 그물처럼 연결되어 있는 거대한 일원체이다.
다만 각기 다른 형상을 가지니까 각각의 이름을 붙여서 너와 나를 구분 할 뿐이다.
그렇듯 모든 존재는 성주괴공(成住壞空)하고 생주이멸(生住異滅)하는 것인데 우리는 존재하지 않는 허상을 고정되어 있다고 착각하는 것이 분별상이고 분별심인 것이다.
모든 견해를 그렇게 바로 알고
바라보는 순간들을 볼 뿐, 할 뿐, 등의 찰나 순간에 전부임을 알아차리면
그것이 자신의 본성이고 그러한 순간이 가장 진실한 순간이 되는 것이다.
즉 그 순간이 자신에게서 가장 거짓없는 진실한 행동과 마음을 쓰는 것이다.
이러한 순간을 깨달아 쓰는 것이 '내가 누구인가'를 알아 차리는 순간이라 한다.
내가 누구인가를 알아차리고 깨어서 사는 순간 순간
늘 이렇게 염염불리 하게 산다면 자신에게 가장 완벽한 진실된 삶이다.
그러한 삶 속에서는 두려움과 희비의 마음들이 존재할 수 없고 늘 선명하고 밝고 당당하게 자유롭다.
그래서 진실이 우리의 삶에서 가장 큰 보배이면서도 가장 큰 위신력이라고 하는 것이다.
인간에게 공통된 괴로움인 생노병사에서도 생사를 초월하게 된다.
나아가 연기법의 이치를 확철히 알게되면 이 세상은 나와 인연되어 있지 않는 것이 없다는 것을 알게되고
모두가 또 다른 나이기 때문에 내 이웃을 내 몸 같이 분별없는 자비와 사랑으로 삶의 전부가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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