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진등 草觀(마음이 머무는 곳)

견문각지와 자각

통융 2017. 12. 3. 16:18

마지막으로 마음의 작용들의 소멸, 니르바나, 번뇌의 불꽃이 완전히 끊어진 경계

이 경계는 言說不思義, 三界火宅은 思惟도 아니고 智解도 아닌 실제 상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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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를 비단같이 풀어도 불속에서 살아나오지 못하면 中道涅槃이 아닙니다.

 

[정사유의 이론과 지해로 풀리지 않는 경계를 설명합니다. 상수멸이란 앞에서도

말했듯이 여래의 사선정에 해당합니다. 四禪定은 火宅에서 살아나온 妙色如來의

不思義境界로서  證知소지비여경(如來(색=물질)의 境界를 證하여 아는 것(知))

 

니르바나가 되지 않고 열반을 말하면 想像또는 지해열반이지 실제 涅槃自覺과는

천지현격입니다. 그렇다면 마음작용이 끊어진 상태에서 어떻게 열반을 自覺한다는

말인가?. 역시 言說不思義 입니다. 그러나 힘껏 설명해 봅니다.

 

나는 상수멸에 든다 거나, 이미 상수멸에 들었다 는 그런 생각이 없다고 하면서

어떻게 상수멸처를 아는가?.

 

설합니다.

마음작용이 끊어진 寂滅을 어떻게 아는가 는, 첫문에서 진공을 체득하고 보니 

진공속에 아무 것도 없습니다. 이곳을 상수멸처로 착각하고 돈수를 주장하나

표상없는 감각의 접촉(法空)을 알기 위하여는 공을 체득한 순일한 마음(선정)

으로 대상을 보고 느끼고 아는 見聞覺知 수행(신수심법)을 해야 합니다.

마음챙김이고 비파사나에 해당하겠지요.

 

공한 감각을 모르고 비파사나를 하면 최면 空이 됩니다. 참선역시 습선으로

이와 비슷한 경계를 체험할수 있습니다.  오래전 法器 강ㅇㅇ거사의 글을 보면

정수리의 육계가 솟는다, 육계가 올라와야 한다 했는데, 이러한 현상은 습선의

일종으로 氣에 해당할 겁니다. 정수리에서 전류가 솟아 나오듯 쭈뼛쭈볏한 느낌

들어 마치 육계가 솟아 오르는 듯합니다.  전에도 말했지만 저는 어떠한 수행에

어떠한 결과가 나타나는가에 많은 체험이 있었기에 누가 말하면 곧 바로 경험에

비추어 認知할수가 있습니다.  이 門은 말과 생각의 단절에서 시작합니다.

 

마지막으로 마음작용의 소멸이란 번뇌가 끊어진 상태(니르바나)를 말합니다.

여기서 자신의 번뇌가 끊어졌는가를 아는 체득은 中道의 發見, 노사나불입니다.

 

여래의 四禪定은 노사나불의 지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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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로는 적멸처를 자각하고

아래로는 사천하를 관하니

 

須彌頂山은 정수리의 고요함이요

마음이 일어나고 소멸하는 작용을

관하는 곳은 백호 미간이라.

 

三神(法身 保身 化身)이 하나로

돌아 감을 모르면 涅槃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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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같이 空도 아니고 色도 아닌 곳..  (法身(空)도 아니고 化身(色)도 아닌)

禪定이 밖에 있어도 안되고 안에 있어도 안됩니다. 안과 밖을 떠나야 합니다.

戒도 그렇고, 마음도 그렇습니다. 모든 것은 이 길(中道)로 통합니다.

 

이와같이 禪과 내가 따로 있어도 안되지만, 둘이 하나가 되어도 문제가

생깁니다. 즉, 물이 물을 모르고, 허공이 허공을 모르듯, 선정에 들었던

당시를 알수가 없습니다. 둘이 하나가 되면 멸정의 죽은 선정이 됩니다.

이러한 무주무념이 중도가 맞기는 하지만, 그 상태에는 自覺이 없습니다.  

 

고로 삼라만상이 무주무념으로 돌아 가기에

법화삼매를 깨쳐도 법과 함께 윤회합니다.

 

법화삼매에서 손가락(色)이 바람 따라 흘러가는 것이라면 

굳이 손가락을 왜 들고 있는가. 손가락을 접어라 (던져라)

爲法忘軀를 다른말로 백척간두 진일보 하라 했는데 그냥 던지면 됩니다.

 

결국, 自歸依로 我空,  法歸依로 法空,  不他歸依로 兩俱空을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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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不他歸依를 집고 갑니다.

我空 法空을 체득한 보살에게 불타귀의를 "다른 신을 믿지마라" 고 하면 초등생

수준이 됩니다. 여기서 不他歸依란 空과 色에 의지하지 말라는 中道를 말합니다.



강물에 뜬 달에 속더니 허공 달에 또 속누나.  달 가르키던 손가락을 움켜쥐고...  

 

다시 처음으로

홀연히 깨치고 보니 몸은 가볍고 세상을 보는 지혜는 생겼는데 스스로는 무엇인지 

모릅니다. 그래서 다시 찾으려 하지만 생각으로는 찾아지지가 않습니다. 그렇다고 

뭐라고 말할 수 있는 실체가 없으니 어데가서 물어 볼수도 없습니다. 

모르는 것을 깨치고, 모르는 것을 自覺하는 것이 見聞覺知 입니다.

 

'무엇을 알았다'는 생각이 선정을 장애하기 때문에 번뇌가 끊어지는 만큼 반비례

로 自覺도 됩니다. 다른 말로 무주무념을 인지하는 상태를 말하고 이것이 깨어있는

禪定이라고 할수가 있습니다. 이러한 自覺(禪定)으로 對相(범소유상)을 편견없이

觀照하는 것이 正思惟입니다.  보이는 대로 들리는 대로 보고 아는 것을 말하며,

세존께서 "나는 다보고 다안다" 다른 말로 見聞覺知가 뚜렸한 상태를 말합니다.

생각이 일어나면 일어나는 구나를 알아채고, 사라지면 사라지는 것을 알아 채는 것,

비파사나는 이제부터 해당합니다.  삼매와 비파사나(마음챙김)의 결합, 止와 觀의

결합, '번뇌가 끊어진 상태에서 보고 듣는다'  세존께서 "나는 멈춘지 오래다.

노사나불이 백호로 자신(業)을 自覺하고, 위로는 정수리의 적멸처를 自覺하고

아래로는 안이비설신으로 중생속에서 함께 살아가는 지금 그대로의 현상계을

自覺하는 것, 空과 色사이... 空과 色에도 물들지 않는 곳(作用)을 自覺하는 것.


 .....草觀님의 블로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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