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진등 草觀(마음이 머무는 곳)

무념이란

통융 2017. 12. 1. 20:30

자성의 마음자리가 지혜로써 관조하여 안팎이 사무쳐 밝으면 자기의 본래

마음을 알고, 만약 본래마음을 알면, 이것이 곧 해탈이며 이미 해탈을 얻으면

이것이 곧 반야삼매며, 반야 삼매를 깨치면 이것이 곧 무념이니라

自性心地 以智慧觀照 內外明徹 識自本心 若識本心

卽是解脫 卽得解脫 卽是般若三昧 悟般若三昧 卽是無念

 

위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문장은, [반야삼매를 깨치면 이것이 곧 무념이다.]

앞뒤가 안맞는 것 아닙니까?

본래마음을 알면 이것이 곧 해탈이고, 해탈을 얻으면 이것이 곧 반야삼매며,

비로서 반야삼매를 깨쳐야 무념이다 라는 논지가 됩니다.

총체적으로


쉽게 갑시다.

무주 무념 무상은 글자는 다르나 셋으로 나누어 지는 것이 아닙니다.

쉽게 말해서 體 相 用을 설명하기 위하여 구분하는 것입니다.

 

안이비설신 다섯가지 감각기관이 색성향미촉이라는 대상에 부디치면 그것이

무엇인지 알수가 있습니다. 이때, 눈이 있어도 보이는 대상이 없다면 눈은

쓸모가 없고, 귀가 있어도, 들리는 소리가 없다면 귀 또한 쓸모가 없습니다.

 

즉, 눈 귀 코가 있으나 마나 입니다.  즉 無眼耳鼻舌身意가 된다 이겁니다.

당연히 생각도 없습니다. 無念이지요.

즉, 내가 없고, 대상이 없으면, 생각도(작용도) 없다,  體 相 用입니다.

 

반야란 텅빈 것을 말하기에 나와 대상이 없는데 무슨 마음이 있겠느냐?.

고로 무주, 무념, 무상이 되는 겁니다.  반야를 마음이라해도 어긋나고

마음이 아니라고 해도 어긋나니 그저 空이라고 하는 겁니다.




無念(생각 없다)라는 단어를 쓰다보니 무념의 해석이 難解해지고

진여본성이라 했다가 결국에는 반야삼매를 깨치면 무념이라 했습니다.

 

반대로 되었습니다. 無念을 깨쳐야 반야삼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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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명하지요 반야삼매를 깨쳐야 무념이 아니고

無念을 깨쳐야 반야이고 반야가 완성되어야 반야바라밀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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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생각 이전, 생각이 끊어진 곳이 無念입니다.

수보리등 아란한이 깨친 것, 요즘으로 말하면 화두타파에 해당하고

반야의 '텅빈 마음' 空을 체득했습니다. 이곳에 중도는 없습니다.

 

空이 밝아지면 현상계가 밝아지고, 존재의 실상인 중도가 발견되니

반야바라밀이란 無念이 아니고 照見을 말합니다.

 

만일 윗 글에서 반야삼매를 깨치면 무념이다 가 아니고

반야삼매를 깨치면 중도를 발견(照見)한다고 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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