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진등 草觀(마음이 머무는 곳)

참선으로 깨달은자의 상태

통융 2017. 12. 1. 21:17

전의(轉依) 즉 식()이 지()로 변형되는 것을 달리 표현하여 전통적인 용어로 전식득지(轉識得智) 또는 전식성지(轉識成智)라고도 한다.[8][9] 전식득지의 문자 그대로의 뜻은 '()을 바꾸어서 지()를 득한다'이다. ()은 전변(轉變) 또는 능변현(能變現)의 뜻으로 능동적으로 바꾸고 변화시키는 것을 말하고, ()은 심불상응행법 가운데 하나로 획득(獲得)과 성취(成就)를 말한다. , 수행자가 수행이라는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실천을 통해 자신의 8식을 지혜로 변형시키는 것을 말한다. 달리 말하면, 자신의 기체(基體, basis) 즉 자신의 존재 기반 자체를 허망한 상태(변계소집성)로부터 진실한 상태(원성실성)로 변형시켜 완전한 깨달음을 성취하는 것을 말한다.[10][11]

 

전식득지는 구체적으로는 제8식인 아뢰야식이 대원경지(大圓鏡智), 7식인 말나식이 평등성지(平等性智), 6식인 의식이 묘관찰지(妙觀察智), 나머지 전5식이 성소작지(成所作智)로 완전히 변형되는 것을 말한다. 이 가운데 특히 대원경지는 일체종지(一切種智) 즉 우주의 모든 것을 아는 부처의 지혜[佛智] 즉 진여의 무분별지(無分別智)를 말한다. 그리고 평등성지(平等性智)는 모든 것을 알게 됢으로써 자타(自他)가 평등하며 둘이 아니라[不二]는 것을 여실히 아는 지혜로서, 이 지혜에서 발현되는 마음은 평등(平等)과 불이(不二)의 앎에서 조건 없이 일어나는 대자비심(大慈悲心), 즉 무연대비(無緣大悲: 인연이 없어도 자비를 베풀음, 즉 유위법이 아닌 무위법으로서의 자비심),[12][13][14] 즉 모든 유정의 성불을 염원하고 실천하는 모든 부처와 여래의 대자비(大慈悲)와 대비원(大悲願)의 마음이다.[15][16][17]

 

열반과 보리[편집]

 

불교 일반에서는 대체로 열반(涅槃)과 보리(菩提)와 깨달음[]이 같은 뜻으로 사용되지만, 유식유가행파에서는 열반(, 해탈)과 보리를 엄격히 구분한다.[18][19] 이 둘을 통칭하여 다소 느슨히 정의된 용어로 깨달음이라고 하며, 엄격히 완전한 깨달음 즉 구경각의 의미에서의 깨달음이라고 할 때는 유식유가행파의 용어로는 보리(菩提)가 구경각을 뜻한다. 따라서 유식유가행파의 교학에서는 전의(轉依)도 크게 번뇌장 즉 아집을 끊고 열반(, 해탈)을 증득할 때의 전의와 소지장 즉 법집을 끊고 보리를 증득할 때의 전의로 나뉘고, 열반(, 해탈)과 보리를 통칭하여 2전의과(二轉依果) 또는 2전의묘과(二轉依妙果) 또는 간단히 2전의(二轉依, 영어: two kinds of transformation of the basis[20])라 한다.[7][21][22][23][24]

 

후자의 전의 즉 소지장 즉 법집을 끊고 보리를 증득할 때의 전의가 곧 부처의 상태이며, 진실한 전식득지(轉識得智)의 상태이다.

마음을 멈추지 못하고 대상을 따라 변한다면 응무소주이생기심이 안되겠지요.

 

'멈춘자는 고요하다' 

세존께서 앙굴마라에게 쫓겨서 뛰어가시면서도 "나는 멈춘지 오래다"

涅槃은 寂靜입니다.

 

몇일전 미국 유학갔다 왔다는 요즘 유명해진 젊은 스님께서 tv에서 말하길

유리 어항에 흙을 넣고 물이 맑아지라고 두손을 넣고 흙을 아래로 누르면

더욱 흙탕물이 되고, 가만히 내버려 두고 바라 보면 흙탕물이 저절로 가라

앉아 맑아지게 된다고 하며 이때 어항을 바라보듯 나를 관찰하라 하더군요.

 

이런 상태가 참선입니다. 이론은 맞는데 실제 앉아보면 쉽지가 않습니다.

많은 분들이 안된다는 것을 경험했고 알고 있습니다. 고요히 앉아 있으면

오히려 평상시보다 생각치도 못했던 온갖 망상들이 더 많이 떠오릅니다.

마음은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가라 앉는 흙탕물과 다릅니다. 그러나 오랫

동안 반복하다 보면 가능해집니다. 저는 이러한 習禪을 말하지 않습니다.

고로 억지 참선을 권하지도 않습니다.

 

마음은 대상에 부디쳐도 작용을 하고 가만히 놔두면 제홀로도 작용합니다.

六識은 당장 눈 귀 코 앞에서 펼쳐지고. 七識의 기억들은 제홀로 作用 하고,

八識은 나도 모르게 作用 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확인하는 것이 불교입니다.

 

다시

平安이란 平等할 때를 말하고, 평등이란 일체 것이 균일하게 작용할 때를

말합니다. 조사들이 말하는 평상심에 해당하고 이때의 작용을 平等成地라

합니다. 만물은 이와 같이 평온한 상태에서 이루워지며 변해가고 있습니다.

이때, 변하는 대로 받아들이면 平安이고, 거스르면 헐떡이는 不安이 됩니다.

 

평등성지란 法의 平等을 말하고 法의 平等이란 주어진 조건에 의하여 균일

하게 이루어지는 것을 말합니다. 소를 잡아 먹었으면 소로 값아야 하고, 애꾸

짓을 했으면 애꾸가 되어야 합니다. 행한대로 이루어지는 因果法을 말합니다.

이와 같이

이루워 지는 것을 발견하는 것이 묘관찰지입니다. 고로 평등성지를 대원경지

라 하고 經에서 찾아보니 대원경지를 다른말로 '무등무륜 최상승지' 라고 되어

있더군요. 무등무륜에서 無等이란 등수가 없다는 뜻이니 平等을 말하고 無輪은

돌지 않는 것을 말하기에 멈췄다는 뜻이 됩니다.

 

고로 '무등무륜 최상승지'란 아미타세계, 연화장세계, 화엄세계를 말하며 일체

존재가 빛으로 오는 것이 보여지는가?. 불에 타버린 후, 밝게 비쳐지는 사물들이

照見되는가?. 照見, 明照, 觀照등은 모두 삼매에 들었을때 가능한 단어입니다.

 

고로 무등무륜 최상승지란 '마음을 멈추고 비춰보는 세계'를 뜻하는 것이 되고

자연스럽게 무량수경은 이러한 경지(삼매)에서 설하게 될수 밖에 없겠지요.

이것은 삼라만상의 실상으로 사람은 물론 소, 돼지등 짐승도 볼수가 있습니다.

 

다만 축생은 모르는 상태(無知)로 보고 사람은 자기 생각(편견)으로 볼뿐입니다. 

고로 짐승은 보고도 모르고, 사람은 보여줘도 모릅니다.

 

선정을 체득한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말하길

"풀, 꽃, 나무, 등이 이토록 새록새록 비쳐지는 것을 예전에는 몰랐습니다."

신기하지요 늘상 보던 것들인데 모든 사물들이 새롭게 보이다니... 

비로서 내가 자연이고 자연이 나로구나 하는 자연의 실상을 터득하게 됩니다.

꽃을 보면 꽃속에서 덩실대고, 숲을 보면 숲으로 들어가 덩실대고...

화두타파시 법열에 감싸져서 저절로 너울너울 춤을 추는 현상과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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