茶와 禪
-趙州스님의 「喫茶去」를 중심으로
정기웅
Ⅰ. 들어가는 말
차와 선은 밀접한 관계가 있다. 우리 나라에 차가 전래된 후 이를 즐겨 마신 것은 스님들이고, 오늘날에도 사찰 주변에 야생차나무가 많이 서식하고 있다. 스님들이 참선을 하면서 차를 마시면 머리가 맑아지고 졸음이 없어지기 때문에 차를 즐겨 마시었다. 그러다가 보니 스님들이 불법의 진리를 차를 이용하여 쉽게 나타난 사례도 많다. 그 대표적 사례가 조주스님의 「喫茶去」다. 그리하여 본고에서는 조주스님께서 「끽다거」를 말한 사례와 조주스님의 불법에 관한 것을 검토하고 후세에 다른 스님들이 조주차에 관한 언급을 고찰하여 조주스님의 「喫茶去」의 의미를 탐구해 보려고 한다.
Ⅱ. 趙州스님의 喫茶去
스님께서 새로 온 두 남자에게 물었다.
"스님들은 여기에 와 본 적이 있는가?"
한 스님이 대답했다.
"와 본 적이 없습니다."
"차를 마시게."
또 한 사람에게 물었다.
"여기에 와 본적이 있는가?"
"왔었습니다."
"차를 마시게."
원주가 물었다.
"스님께서는 와 보지 않았던 사람에게 차를 마시라고 하신 것은 그만두고라도, 무엇 때문에 왔던 사람도 차를 마시라고 하십니까?"
스님께서 "원주야!" 하고 부르니 원주가 "예!" 하고 대답하자
"차를 마셔랴!" 하셨다.
"스님들은 여기에 와 본 적이 있는가?"
한 스님이 대답했다.
"와 본 적이 없습니다."
"차를 마시게."
또 한 사람에게 물었다.
"여기에 와 본적이 있는가?"
"왔었습니다."
"차를 마시게."
원주가 물었다.
"스님께서는 와 보지 않았던 사람에게 차를 마시라고 하신 것은 그만두고라도, 무엇 때문에 왔던 사람도 차를 마시라고 하십니까?"
스님께서 "원주야!" 하고 부르니 원주가 "예!" 하고 대답하자
"차를 마셔랴!" 하셨다.
師問二新到上座曾到此間否 云不曾到 師云 喫茶去 又問 那一人曾到 此間否云不曾到 師云 喫茶去 院主問 和尙不曾到敎伊喫茶去 卽且置曾到爲什 敎伊喫茶去 師云院主 院主應諾 師云 喫茶去
「喫茶去」는 「차를 드셔요」의 의미이다. 喫 마실 끽, 茶 차 다, 去 갈 거이니 「차를 들고 가셔요」로 번역한 것이 있으나 去는 허사로서 의미가 없는 말이므로 「차를 드셔요」로 번역하는 것이 옳다.
조주스님께서 관음원에 이전에 오지 않은 사람에게 "차를 마시게", 온 사람에게 "차를 마시게" 그리고 이에 대하여 의문을 제기한 원주에게도 "차를 마시게"라고 대답하였다.
이렇게 똑같이 「끽다거」라고 대답한 조주스님의 깊은 뜻을 헤아리는 의문은 이것 자체가 선의 화두가 되어 버렸다. 「喫茶去」의 뜻을 알기 위해서는 조주스님의 생애와 수행에 대한 연구와 조주스님이 평소 차생활을 어떻게 했는지도 알아야 할 것이다.
Ⅲ. 趙州스님의 生涯와 修行
「喫茶去」는 「차를 드셔요」의 의미이다. 喫 마실 끽, 茶 차 다, 去 갈 거이니 「차를 들고 가셔요」로 번역한 것이 있으나 去는 허사로서 의미가 없는 말이므로 「차를 드셔요」로 번역하는 것이 옳다.
조주스님께서 관음원에 이전에 오지 않은 사람에게 "차를 마시게", 온 사람에게 "차를 마시게" 그리고 이에 대하여 의문을 제기한 원주에게도 "차를 마시게"라고 대답하였다.
이렇게 똑같이 「끽다거」라고 대답한 조주스님의 깊은 뜻을 헤아리는 의문은 이것 자체가 선의 화두가 되어 버렸다. 「喫茶去」의 뜻을 알기 위해서는 조주스님의 생애와 수행에 대한 연구와 조주스님이 평소 차생활을 어떻게 했는지도 알아야 할 것이다.
Ⅲ. 趙州스님의 生涯와 修行
1. 趙州스님의 生涯
조주스님은 남전(南泉: 748년-835년)스님의 문하이다. 스님은 속성은 학( )씨이며, 본시 조주(曺州) 학향( 鄕)사람으로 법명은 종심(從諶)으로서 120세를 살았다(서기 778년-897년).
조주스님의 생애 중에서 진면목을 알 수 있는 두가지 예를 보면 다음과 같다.
스님께서 처음 은사스님을 따라 행각하다가 남전스님 회하에 이르렀다. 은사스님이 먼저 인사를 드리고 나서 조주스님이 인사를 드렸는데, 남전스님은 그때 방장실에 누워 있다가 스님이 오는 것을 보고는 불쑥 물었다.
"어디서 왔느냐?"
"서상원(瑞像院)에서 왔습니다."
"상서로운 모습(瑞像)은 보왔느냐?"
"상서로운 모습은 보지 못하였습니다만 누워 계신 여래를 보옵니다."
남전스님은 이에 벌떡 일어나 물었다.
"너는 주인 있는 사미냐, 주인 없는 사미냐?"
"주인 있는 사미입니다."
"누가 너의 주인이냐?"
"정월이라 아직도 날씨가 차갑습니다. 바라옵건대, 스님께서는 기거하심에 존체 만복하소서."
남전스님은 이에 유나(維那)를 불러 말씀하셨다.
"이 사미에게는 특별한 곳에 자리를 주도록 하라."
그리하여 조주스님은 남전스님에게서 구족계를 받으셨다.
그 후 물병과 석장을 지니고 제방을 두루 다니면서 항상 스스로에게 말씀하셨다.
"일곱 살 먹은 어린아이라도 나보다 나은 이는 내가 그에게 물을 것이요, 백 살 먹은 노인이라도 나보다 못한 이는 내가 그를 가르치리라."
스님께서는 나이 80이 되어서야 조주성(趙州城) 동쪽 관음원(觀音院)에 머무셨는데, 돌다리(石橋)에서 10리 정도 되는 곳이었다. 그 때부터 주지살이를 하셨는데, 궁한 살림에도 옛사람의 뜻을 본받아 승당에는 전가(前架: 승당 앞에 설치된 좌선하는 자리)나 후가(後架: 승당 뒤쪽에 설치된 세면장 등)도 없었고, 겨우 공양을 마련해 먹을 정도였다. 선상은 다리 하나가 부러져서 타다 남은 부지깽이를 노끈으로 묶어 두었는데, 누가 새로 만들어 드리려 하면 그때마다 허락치 않으셨다. 40년 주지하는 동안에 편지 한 통을 시주에게 보낸 일이 없었다.
조주스님의 생애를 보면 남전스님과의 첫만남에서 알 수 있듯이 사미시절부터 안목이 열려 있었으나 80세까지 오로지 수행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80세가 되어서 조주성 관음원의 주지가 되었으나 오로지 수행정진에만 열심이고 절의 살림살이에는 신경을 쓰지 선상이 다리가 부러지면 타다 남은 부지깽이를 노끈으로 묶어 둘 정도였다.
"어디서 왔느냐?"
"서상원(瑞像院)에서 왔습니다."
"상서로운 모습(瑞像)은 보왔느냐?"
"상서로운 모습은 보지 못하였습니다만 누워 계신 여래를 보옵니다."
남전스님은 이에 벌떡 일어나 물었다.
"너는 주인 있는 사미냐, 주인 없는 사미냐?"
"주인 있는 사미입니다."
"누가 너의 주인이냐?"
"정월이라 아직도 날씨가 차갑습니다. 바라옵건대, 스님께서는 기거하심에 존체 만복하소서."
남전스님은 이에 유나(維那)를 불러 말씀하셨다.
"이 사미에게는 특별한 곳에 자리를 주도록 하라."
그리하여 조주스님은 남전스님에게서 구족계를 받으셨다.
그 후 물병과 석장을 지니고 제방을 두루 다니면서 항상 스스로에게 말씀하셨다.
"일곱 살 먹은 어린아이라도 나보다 나은 이는 내가 그에게 물을 것이요, 백 살 먹은 노인이라도 나보다 못한 이는 내가 그를 가르치리라."
스님께서는 나이 80이 되어서야 조주성(趙州城) 동쪽 관음원(觀音院)에 머무셨는데, 돌다리(石橋)에서 10리 정도 되는 곳이었다. 그 때부터 주지살이를 하셨는데, 궁한 살림에도 옛사람의 뜻을 본받아 승당에는 전가(前架: 승당 앞에 설치된 좌선하는 자리)나 후가(後架: 승당 뒤쪽에 설치된 세면장 등)도 없었고, 겨우 공양을 마련해 먹을 정도였다. 선상은 다리 하나가 부러져서 타다 남은 부지깽이를 노끈으로 묶어 두었는데, 누가 새로 만들어 드리려 하면 그때마다 허락치 않으셨다. 40년 주지하는 동안에 편지 한 통을 시주에게 보낸 일이 없었다.
조주스님의 생애를 보면 남전스님과의 첫만남에서 알 수 있듯이 사미시절부터 안목이 열려 있었으나 80세까지 오로지 수행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80세가 되어서 조주성 관음원의 주지가 되었으나 오로지 수행정진에만 열심이고 절의 살림살이에는 신경을 쓰지 선상이 다리가 부러지면 타다 남은 부지깽이를 노끈으로 묶어 둘 정도였다.
2. 趙州스님의 修行
가. 조주스님의 깨침
조주스님께서 남전스님께 물으셨다.
"무엇이 도입니까?"
"평상시의 마음이 도이다(平常心是道)."
"그래도 딱아 나아갈 수 있겠습니까?"
"무엇이든 하려 들면 그대로 어긋나버린다."
"하려고 하지 않으면 어떻게 이 도를 알겠습니까?"
"도는 알고 모르고에 속하지 않는다. 안다는 것은 헛된 지각(妄覺)이며 모른다는 것은 아무런 지각도 없는 것(無記)이다. 만약 의심할 것 없는 도를 진정으로 통달한다면 허공같이 툭 트여서 넓은 것이니, 어찌 애써 시비를 따지겠느냐?"
스님께서는 이 말 끝에 깊은 뜻을 단박 깨닫고 마음이 달처럼 환해졌다(師於言下頓悟玄旨心如朗月).
"무엇이 도입니까?"
"평상시의 마음이 도이다(平常心是道)."
"그래도 딱아 나아갈 수 있겠습니까?"
"무엇이든 하려 들면 그대로 어긋나버린다."
"하려고 하지 않으면 어떻게 이 도를 알겠습니까?"
"도는 알고 모르고에 속하지 않는다. 안다는 것은 헛된 지각(妄覺)이며 모른다는 것은 아무런 지각도 없는 것(無記)이다. 만약 의심할 것 없는 도를 진정으로 통달한다면 허공같이 툭 트여서 넓은 것이니, 어찌 애써 시비를 따지겠느냐?"
스님께서는 이 말 끝에 깊은 뜻을 단박 깨닫고 마음이 달처럼 환해졌다(師於言下頓悟玄旨心如朗月).
조주스님은 남전스님께서 말씀하신 「평상시의 마음이 도(平常心是道)」라는 한 마디에 깨달음을 얻는다. 조주스님의 깨달음은 돈오(頓悟)의 경지로서 마음이 달처럼 환해졌다고 표현하였다.
나. 趙州스님의 修行
나. 趙州스님의 修行
1) 한결같은 마음
"형제여! 오래 서 있지 말라. 일이 있거든 거론해 볼 것이요, 일이 없거든 자기 자리에 앉아 도리를 캐는 것이 좋다. 노승은 행각하면서는 죽 먹고 밥 먹는 두 때만 잡된 마음에 힘을 썼을 뿐 나머지는 별달리 마음을 쓴 곳이 없었다. 만약 이와 같지 못하면 출가란 몹시 먼 일이 될 것이다."
"형제여! 오래 서 있지 말라. 일이 있거든 거론해 볼 것이요, 일이 없거든 자기 자리에 앉아 도리를 캐는 것이 좋다. 노승은 행각하면서는 죽 먹고 밥 먹는 두 때만 잡된 마음에 힘을 썼을 뿐 나머지는 별달리 마음을 쓴 곳이 없었다. 만약 이와 같지 못하면 출가란 몹시 먼 일이 될 것이다."
2) 말하지 않음
"만약 한 평생 총림을 떠나지 않고서 5년이고 10년이고 말을 하지 않아도 누구도 그대들을 벙어리라고 부르지 않는다면, 그런 다음에는 부처님도 너희를 어쩌지 못할 것이다. 내말을 믿지 못하겠거든 내 목을 베어라."
"만약 한 평생 총림을 떠나지 않고서 5년이고 10년이고 말을 하지 않아도 누구도 그대들을 벙어리라고 부르지 않는다면, 그런 다음에는 부처님도 너희를 어쩌지 못할 것이다. 내말을 믿지 못하겠거든 내 목을 베어라."
3) 부리는 주체
"하루 스물 네 시간을 어떻게 마음을 써야 합니까?"
"그대는 스물 네 시간의 부림을 받지만 나는 스물 네 시간을 부릴 수 있다. 그대는 어느 시간을 묻느냐?"
"하루 스물 네 시간을 어떻게 마음을 써야 합니까?"
"그대는 스물 네 시간의 부림을 받지만 나는 스물 네 시간을 부릴 수 있다. 그대는 어느 시간을 묻느냐?"
4) 조주의 일
"내 그대들에게 말하는 법을 일러주겠다. 만약 누군가 묻거든 다만 '조주에게 왔다'고만 하라. 갑자기 '조주스님은 무슨 법문을 하시던가'라고 묻거든, 그저 '추우면 춥다 하고 더우면 덥다고 하더라'고 하여라. 그래도 다시 '그런 일을 물은 것이 아니다'하고 묻는다면, 다만 '무얼 묻는 게냐?' 하여라. 그래도 다시 '조주스님은 무슨 법문을 하시던가?'라고 묻는다면, 그에게 '스님께서 오셨을 때, 그대에게 전하신 말씀이 없었다. 그대가 만약 조주의 일을 알고자 하거든 직접 가서 묻도록 하라'고 말해 주어라."
"내 그대들에게 말하는 법을 일러주겠다. 만약 누군가 묻거든 다만 '조주에게 왔다'고만 하라. 갑자기 '조주스님은 무슨 법문을 하시던가'라고 묻거든, 그저 '추우면 춥다 하고 더우면 덥다고 하더라'고 하여라. 그래도 다시 '그런 일을 물은 것이 아니다'하고 묻는다면, 다만 '무얼 묻는 게냐?' 하여라. 그래도 다시 '조주스님은 무슨 법문을 하시던가?'라고 묻는다면, 그에게 '스님께서 오셨을 때, 그대에게 전하신 말씀이 없었다. 그대가 만약 조주의 일을 알고자 하거든 직접 가서 묻도록 하라'고 말해 주어라."
위의 내용은 조주스님의 수행 태도를 알 수 있는 내용이다. 1)에서 조주스님은 밥먹는 시간 외에는 수행정진에 몰두할 것을 강조하였고, 2)에서 수행에서 말을 많이 하지 않는 것, 3)에서 스물 네시간 자기를 부릴 수 있는 주체가 되어야 한다고 한다. 4)에서 조주스님의 법문은 특별한 것이 아니라 다만 '추우면 춥다 하고 더우면 덥다'가 전부다. 그래도 더 궁금한 것이 있으면 직접 가서 물어 보라고 한다.
3. 趙州스님의 말씀과 話頭
3. 趙州스님의 말씀과 話頭
조주스님이 말씀하신 것 중에는 선(禪)의 화두(話頭)가 된 것이 많다. 그 중 유명한 것을 보면 앞에서 본 "끽다거" 외에 "개도 불성이 있습니까?"에 "무(無)"라고 대답한 것과, "무엇이 조사가 서쪽에서 오신 뜻입니까?"에 "뜰 앞의 잣나무다."라고 한 것이다.
가. 개도 불성이 있습니까
가. 개도 불성이 있습니까
한 스님이 물었다.
"개도 불성이 있습니까?"
"없다."
"위로는 모든 부처님에서 아래로는 개미까지 모두 불성이 있는데, 어째서 개에게는 없습니까?"
"그에게 업식의 성품이 있기 때문이다."
"개도 불성이 있습니까?"
"없다."
"위로는 모든 부처님에서 아래로는 개미까지 모두 불성이 있는데, 어째서 개에게는 없습니까?"
"그에게 업식의 성품이 있기 때문이다."
나. 뜰 앞의 잣나무
스님께서 상당하여 대중에게 말씀하셨다.
"이것은 너무나 분명하여 격을 벗어난 장부라도 여기를 벗어날 수는 없다. 노승이 위산( 山)에 갔을 때 한 스님이 위산스님에게 '무엇이 조사가 서쪽에서 오신 뜻입니까?' 하고 묻자 위산스님은 '나에게 의자를 가져다 주게' 하였다. 종사라면 모름지기 본분의 일로 납자를 지도해야 한다."
그 때 한 스님이 물었다.
"무엇이 조사가 서쪽에서 오신 뜻입니까?"
"뜰 앞의 잣나무다."
"스님께서는 경계를 가지고 학인을 가르치지 마십시오."
"나는 경계를 가지고 학인을 가르치지 않는다."
"무엇이 조사가 서쪽에서 오신 뜻입니까?"
"뜰 앞의 잣나무다."
Ⅳ. 趙州스님의 茶에 관한 다른 글
"이것은 너무나 분명하여 격을 벗어난 장부라도 여기를 벗어날 수는 없다. 노승이 위산( 山)에 갔을 때 한 스님이 위산스님에게 '무엇이 조사가 서쪽에서 오신 뜻입니까?' 하고 묻자 위산스님은 '나에게 의자를 가져다 주게' 하였다. 종사라면 모름지기 본분의 일로 납자를 지도해야 한다."
그 때 한 스님이 물었다.
"무엇이 조사가 서쪽에서 오신 뜻입니까?"
"뜰 앞의 잣나무다."
"스님께서는 경계를 가지고 학인을 가르치지 마십시오."
"나는 경계를 가지고 학인을 가르치지 않는다."
"무엇이 조사가 서쪽에서 오신 뜻입니까?"
"뜰 앞의 잣나무다."
Ⅳ. 趙州스님의 茶에 관한 다른 글
1. 십이시가(十二時歌)
공양 때의 진시(辰時)
사방 인근에서 밥짓는 연기만 부질없이 바라보노라
만두와 찐떡은 작년에 이별하였고
오늘 생각해보면 공연히 군침만 삼킨다
생각을 지님은 잠깐이요 잦은 한탄이로다
백 집을 뒤져봐도 좋은 사람 없어라
찾아오는 사람은 오직 마실 차를 찾는데
차 마시지 못하고 가면서는 발끈 화를 낸다.
사방 인근에서 밥짓는 연기만 부질없이 바라보노라
만두와 찐떡은 작년에 이별하였고
오늘 생각해보면 공연히 군침만 삼킨다
생각을 지님은 잠깐이요 잦은 한탄이로다
백 집을 뒤져봐도 좋은 사람 없어라
찾아오는 사람은 오직 마실 차를 찾는데
차 마시지 못하고 가면서는 발끈 화를 낸다.
오전의 사시(巳時)
머리 깎고 이 지경에 이를 줄을 그 누가 알았으랴
어쩌다가 청을 받아 촌중 되고 보니
굴욕과 굶주림에 처량한 꼴, 차라리 죽고 싶어라
오랑캐 장가와 검은 얼굴 이가는 공경하는 마음은 조금치도 내지 않고
아까는 불쑥 문앞에 와서 한다는 말이
차 좀 꾸자, 종이 좀 빌리자고 할 뿐이네.
머리 깎고 이 지경에 이를 줄을 그 누가 알았으랴
어쩌다가 청을 받아 촌중 되고 보니
굴욕과 굶주림에 처량한 꼴, 차라리 죽고 싶어라
오랑캐 장가와 검은 얼굴 이가는 공경하는 마음은 조금치도 내지 않고
아까는 불쑥 문앞에 와서 한다는 말이
차 좀 꾸자, 종이 좀 빌리자고 할 뿐이네.
해가 남쪽을 향하는 오시(午時)
차와 밥을 탁발하여 도는 데는 정한 법도가 없으니
남쪽 집에 갔다가 북쪽 집에 다다르고
마침내 북쪽 집에 이르러서는 그 수를 헤일 수 없다
쓴 가루소금과 보리 초장
기장 섞인 쌀밥에 상추무침
오로지 아무렇게나 올린 공양이 아니라며
스님이라면 모름지기 도심이 견고해야 된다고日南午 茶飯輪還無定度 行脚南家到北家 果至北家不推註 苦沙 大麥酢
蜀黍米飯 唯稱供養不等閑 和尙道心須堅固(조주록, 원문, 110면)
日南午 茶飯輪還無定度 行脚南家到北家 果至北家不推註 苦沙 大麥酢
蜀黍米飯 唯稱供養不等閑 和尙道心須堅固(조주록, 원문, 110면)
차와 밥을 탁발하여 도는 데는 정한 법도가 없으니
남쪽 집에 갔다가 북쪽 집에 다다르고
마침내 북쪽 집에 이르러서는 그 수를 헤일 수 없다
쓴 가루소금과 보리 초장
기장 섞인 쌀밥에 상추무침
오로지 아무렇게나 올린 공양이 아니라며
스님이라면 모름지기 도심이 견고해야 된다고日南午 茶飯輪還無定度 行脚南家到北家 果至北家不推註 苦沙 大麥酢
蜀黍米飯 唯稱供養不等閑 和尙道心須堅固(조주록, 원문, 110면)
日南午 茶飯輪還無定度 行脚南家到北家 果至北家不推註 苦沙 大麥酢
蜀黍米飯 唯稱供養不等閑 和尙道心須堅固(조주록, 원문, 110면)
해 저무는 신시
오늘도 향 사르고 예불하는 사람은 있어
노파 다섯에 혹부리 셋이라
한 쌍의 부부는 검은 얼굴이 쭈글쭈글
유마차라! 참으로 진귀하구나
금강역사여, 애써 힘줄 세울 필요없다네
내 바라보노니, 내년에 누에 오르고 보리 익거든
라훌라 아이한테 돈 한푼 주어 봤으면
오늘도 향 사르고 예불하는 사람은 있어
노파 다섯에 혹부리 셋이라
한 쌍의 부부는 검은 얼굴이 쭈글쭈글
유마차라! 참으로 진귀하구나
금강역사여, 애써 힘줄 세울 필요없다네
내 바라보노니, 내년에 누에 오르고 보리 익거든
라훌라 아이한테 돈 한푼 주어 봤으면
조주스님은 하루의 생활을 노래한 십이시가 중에서 진시, 사시, 오시, 신시 네 번이나 차에 관한 이야기를 한다. 가난한 절에서 수행하면서 끼니가 충분하지 않아도 차를 먹으면서 수행하는 조주스님의 모습이 그려진다. 신도들도 스님께 와서 차를 한 잔 마시고자 하고 심지어는 차를 빌려 가려고 하며, 스님께서도 유마차라는 좋은 차를 마시고 흐뭇해 하는 모습이 보니는 것 같다.
2. 未喫茶
2. 未喫茶
한 스님이 물었다.
"말을 꺼낸다거나 손발을 꿈쩍거린다거나 하면 그 모두가 저의 그물 가운데 떨어지게 됩니다. 스님께서는 이것을 떠나서 말씀해 주십시오."
"나는 점심을 먹고 아직 차를 마시지 않았다."
"말을 꺼낸다거나 손발을 꿈쩍거린다거나 하면 그 모두가 저의 그물 가운데 떨어지게 됩니다. 스님께서는 이것을 떠나서 말씀해 주십시오."
"나는 점심을 먹고 아직 차를 마시지 않았다."
Ⅴ. 다른 中國스님들의 차에 관한 글
선어록에 나오는 조주스님 외에 다른 중국 스님들의 차에 관한 내용을 검토하였다. 앙산스님과 중봉스님에 관해서만 검토하였다. 앞으로 다른 스님의 차에 관한 글도 계속 정리하려고 한다.
1. 앙산스님
1. 앙산스님
가. 생애
앙산(仰山)스님(803-887년)의 휘(諱)는 혜적(慧寂)이며 소주(소주) 회화 땅 섭씨의 아들로 9세에 광주 화안사의 통스님에게 출가하였다. 행각 중에 탐원스님을 뵙고 오묘한 진리를 알았고, 그 후 위산 영우(771-853년)스님을 뵙고서 깨쳤다. 위산스님과의 대화는 다음과 같다.
"너는 주인이 있는 사미냐, 아니면 주인이 없는 사미냐?"
"주인이 있습니다."
"주인이 어디 있느냐?"
스님이 서쪽에서 동쪽으로 와 서자 위산스님께서 이상하게 여기시니 스님이 여쭈었다.
"어디가 참된 부처가 계시는 곳입니까?"
"생각이 있는 동시에 없기도 한 묘함으로 끊없이 타오르는 신령한 불꽃을 돌이켜 생각하면 생각이 다하여서 본래자리고 되돌아가 성품과 형상이 항상하고 사와 이가 둘이 아니어서 참 부처가 여여할 것이다."
스님은 이 말씀 끝에 단박 깨닫고 이로부터 위산스님을 15년간 시봉하였다.
앙산(仰山)스님(803-887년)의 휘(諱)는 혜적(慧寂)이며 소주(소주) 회화 땅 섭씨의 아들로 9세에 광주 화안사의 통스님에게 출가하였다. 행각 중에 탐원스님을 뵙고 오묘한 진리를 알았고, 그 후 위산 영우(771-853년)스님을 뵙고서 깨쳤다. 위산스님과의 대화는 다음과 같다.
"너는 주인이 있는 사미냐, 아니면 주인이 없는 사미냐?"
"주인이 있습니다."
"주인이 어디 있느냐?"
스님이 서쪽에서 동쪽으로 와 서자 위산스님께서 이상하게 여기시니 스님이 여쭈었다.
"어디가 참된 부처가 계시는 곳입니까?"
"생각이 있는 동시에 없기도 한 묘함으로 끊없이 타오르는 신령한 불꽃을 돌이켜 생각하면 생각이 다하여서 본래자리고 되돌아가 성품과 형상이 항상하고 사와 이가 둘이 아니어서 참 부처가 여여할 것이다."
스님은 이 말씀 끝에 단박 깨닫고 이로부터 위산스님을 15년간 시봉하였다.
35세에 대중을 거느리고 세상에 나가시니 앞뒷 고을의 절사(節使)·찰사(察使)·자사(刺使)들이 앞을 다투어 귀의하였는데 그 중 열 한 사람이 스님을 스승으로 섬겼다.
나. 차에 관한 말씀
1) 앙산스님이 상공(相公) 육희성(陸希聲)에게
도도하여 계율도 지니지 않고
올올히 좌선도 하지 않네
그저 진한 차 서너 사발에
마음은 저 밭에 가 있도다.
2) 위산스님과 앙산스님의 대화
올올히 좌선도 하지 않네
그저 진한 차 서너 사발에
마음은 저 밭에 가 있도다.
2) 위산스님과 앙산스님의 대화
위산스님께서 차잎을 따시다가 앙산스님에게 말씀하였다.
"종일토록 차잎을 따도 그대의 소리만 들릴 뿐 그대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구나!"
앙산스님이 차나무를 흔들자 스님은 말씀하셨다.
"그대는 작용만을 얻었을 뿐 본체는 얻지 못하였다."
"그렇다면 스님께선 어찌 하시겠습니까?"
스님께서 잠자코 한참을 있자 앙산스님을 말하였다.
"스님께선 본체만을 얻었을 뿐 작용은 얻질 못하셨습니다."
"네놈에게 몽둥이 30대를 때려야겠구나."
"스님의 방망이는 제가 맞습니다만 저의 방망이는 누가 맞습니까?"
"네놈에게 몽둥이 30대를 때려야겠구나."
3) 앙산스님과 처미스님의 대화
"종일토록 차잎을 따도 그대의 소리만 들릴 뿐 그대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구나!"
앙산스님이 차나무를 흔들자 스님은 말씀하셨다.
"그대는 작용만을 얻었을 뿐 본체는 얻지 못하였다."
"그렇다면 스님께선 어찌 하시겠습니까?"
스님께서 잠자코 한참을 있자 앙산스님을 말하였다.
"스님께선 본체만을 얻었을 뿐 작용은 얻질 못하셨습니다."
"네놈에게 몽둥이 30대를 때려야겠구나."
"스님의 방망이는 제가 맞습니다만 저의 방망이는 누가 맞습니까?"
"네놈에게 몽둥이 30대를 때려야겠구나."
3) 앙산스님과 처미스님의 대화
앙산(仰山)스님이 건주(虔州)의 처미(處微)스님을 찾아가니 그 스님이 물었다.
"그대의 이름이 무엇인가?"
"혜적입니다."
"어느 것이 혜(慧)이며, 어느 것이 적(寂)인가?"
"눈앞에 있을 뿐입니다."
"오히려 앞이니 뒤니 하는 생각을 갖고 있군."
"앞이니 뒤니 하는 것 말고 스님께서는 무엇을 보십니까?"
"차나 마시게."
"그대의 이름이 무엇인가?"
"혜적입니다."
"어느 것이 혜(慧)이며, 어느 것이 적(寂)인가?"
"눈앞에 있을 뿐입니다."
"오히려 앞이니 뒤니 하는 생각을 갖고 있군."
"앞이니 뒤니 하는 것 말고 스님께서는 무엇을 보십니까?"
"차나 마시게."
2. 중봉스님
가. 생애
천목 중봉(天目中峰: 1243-1323년)스님은 항주(杭住) 전당(錢塘)사람으로 15세에 5계를 받고, 그로부터 법화경, 원각경, 금강경, 전등록 등을 두루 열람하였다. 후에 천목산(天目山) 사자원(獅子院)에서 고봉 원묘(高峰原妙)스님을 뵙고 그 이듬해 구족계를 받으시니 달마스님의 29세요, 임제스님의 15세 법손(法孫)이시다. 스님의 법력이 널리 알려지자 인종(仁宗)임금이 불자국조광혜선사(佛慈國照廣慧禪師)라 호를 내리고 금란가사를 보내었다. 영종(英宗) 3년에 열반에 드니 세수 61세요, 법랍은 37년이시다. 그후 북정 자적(北庭慈寂)스님에 의하여 유저로 천목중봉화상광록(天目中峰和尙廣錄) 30권이 편집되었다.
나. 차에 관한 말씀
나. 차에 관한 말씀
객승이 질문하였다.
"인도 땅에서 오신 달마스님의 가풍은 매우 엄격해서 말로 표현하기 이전에 알아버렸다고 해도, 그것은 이미 옆길로 빠진 것입니다. 그것을 어찌 수행을 해서 되는 일이겠습니까? 더구나 마른 고목처럼 방석에 앉아 참선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또한 선을 앉아서 하겠습니까? 이렇게 하는 것은 선대의 종지에 누를 끼치는 일이 아닐런지요?"
나는 말했다.
"누를 끼치는 것은 아닙니다. 그대는 말을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구료. 용담(龍潭)스님이 스승인 천황(天皇: 748-807년)스님에게 묻기를, '제가 오랫동안 스님 밑에서 공부를 했는데도 제게 심요(心要)를 보여주시지 않았습니다'라고 하자, 천황스님은, '그대가 차를 갖고 오면 나는 차를 받아 마셨고, 그대가 문안을 드리면 나는 머리를 끄덕였다. 이것이 그대에게 심요를 열어 보여준 것이 아니겠는가?'라고 하자, 용담스님이 드디어 깊은 뜻을 깨달았다고 합니다.
이 공안은 수행을 하는 입장에서 보면 매우 명쾌하고 쉬운 것인 듯 하지만 우리 종문(宗門)의 입장에서 보면 옆길로 샌 것에 불과합니다. 반면에 위산( 山)스님이 향엄(香嚴)스님에게, 부모가 그대를 낳아주기 이전의, 그대의 참 모습이 무엇이 무엇이냐고 묻자 향엄스님은 대답을 하지 못했습니다. 그는 도리어 위산스님이 설명해주기를 바랬는데, 위산스님이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향엄스님은 평소에 공부했던 것을 모두 버리고 남양(南陽) 땅으로 들어가 한 암자에 머물게 되었습니다. 그곳에서 얼마를 지내다가 갑자기 기왓장이 대나무에 부딪치는 소리를 듣고 담박 깨달았다고 합니다.
"인도 땅에서 오신 달마스님의 가풍은 매우 엄격해서 말로 표현하기 이전에 알아버렸다고 해도, 그것은 이미 옆길로 빠진 것입니다. 그것을 어찌 수행을 해서 되는 일이겠습니까? 더구나 마른 고목처럼 방석에 앉아 참선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또한 선을 앉아서 하겠습니까? 이렇게 하는 것은 선대의 종지에 누를 끼치는 일이 아닐런지요?"
나는 말했다.
"누를 끼치는 것은 아닙니다. 그대는 말을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구료. 용담(龍潭)스님이 스승인 천황(天皇: 748-807년)스님에게 묻기를, '제가 오랫동안 스님 밑에서 공부를 했는데도 제게 심요(心要)를 보여주시지 않았습니다'라고 하자, 천황스님은, '그대가 차를 갖고 오면 나는 차를 받아 마셨고, 그대가 문안을 드리면 나는 머리를 끄덕였다. 이것이 그대에게 심요를 열어 보여준 것이 아니겠는가?'라고 하자, 용담스님이 드디어 깊은 뜻을 깨달았다고 합니다.
이 공안은 수행을 하는 입장에서 보면 매우 명쾌하고 쉬운 것인 듯 하지만 우리 종문(宗門)의 입장에서 보면 옆길로 샌 것에 불과합니다. 반면에 위산( 山)스님이 향엄(香嚴)스님에게, 부모가 그대를 낳아주기 이전의, 그대의 참 모습이 무엇이 무엇이냐고 묻자 향엄스님은 대답을 하지 못했습니다. 그는 도리어 위산스님이 설명해주기를 바랬는데, 위산스님이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향엄스님은 평소에 공부했던 것을 모두 버리고 남양(南陽) 땅으로 들어가 한 암자에 머물게 되었습니다. 그곳에서 얼마를 지내다가 갑자기 기왓장이 대나무에 부딪치는 소리를 듣고 담박 깨달았다고 합니다.
Ⅵ. 우리 나라 스님들의 趙州茶에 대한 말씀
1. 나옹헤근(懶翁惠勤)(1320-1376)
가. 생애
스님은 1320년 출생하여 20세에 친구가 죽는 것을 보고 공덕산 묘연암 요연스님에게 출가하였다. 1344년에 회암사에 가서 4년 동안 수행하여 깨친 바를 얻은 후, 중국으로 건너 갔다. 1348년 중국 대도(大都) 법원사(法源寺)에서 지공스님을 친견하였다.
1350년에는 평산처림(平山處林) 스님을 친견하여 불법을 이어 받고 강남 등지를 행각하였다. 다시 지공스님을 찿아 뵙고서 스님으로부터 선지(禪旨)를 전해 받았다.
1358년에 고려에 돌아와 1371년에는 공민왕의 왕사가 되었다. 1376년 회암사를 중창한 후 밀양 영원사로 귀양가던 중 여주 신륵사에서 열반에 드셨다.
스님은 1320년 출생하여 20세에 친구가 죽는 것을 보고 공덕산 묘연암 요연스님에게 출가하였다. 1344년에 회암사에 가서 4년 동안 수행하여 깨친 바를 얻은 후, 중국으로 건너 갔다. 1348년 중국 대도(大都) 법원사(法源寺)에서 지공스님을 친견하였다.
1350년에는 평산처림(平山處林) 스님을 친견하여 불법을 이어 받고 강남 등지를 행각하였다. 다시 지공스님을 찿아 뵙고서 스님으로부터 선지(禪旨)를 전해 받았다.
1358년에 고려에 돌아와 1371년에는 공민왕의 왕사가 되었다. 1376년 회암사를 중창한 후 밀양 영원사로 귀양가던 중 여주 신륵사에서 열반에 드셨다.
나. 차에 관한 글
1) 지공스님과의 대화
하루는 지공스님이 말하였다.
"그대는 보경사(普慶寺)를 보는가?"
"벌써부터 보왔습니다."
"문수와 보현이 거기 있던가?"
"잘 있습니다."
"무슨 말을 하던가?"
"그런 말을 합디다."
"차를 마시게(喫茶去)."
하루는 지공스님이 말하였다.
"그대는 보경사(普慶寺)를 보는가?"
"벌써부터 보왔습니다."
"문수와 보현이 거기 있던가?"
"잘 있습니다."
"무슨 말을 하던가?"
"그런 말을 합디다."
"차를 마시게(喫茶去)."
2) 지공스님이 나옹스님께 법을 전함
지공스님은 스님을 방장실로 맞아들여 차를 권하고, 드디어 법의 한벌과 불자 하나와 범어로 쓴 편지 한 통을 주었다.
지공스님은 스님을 방장실로 맞아들여 차를 권하고, 드디어 법의 한벌과 불자 하나와 범어로 쓴 편지 한 통을 주었다.
백양(百陽)에서 차 마시고 정안(正安)에서 과자 먹으니
해마다 어둡지 않은 한결같은 약이네
동서를 바라보면 남북도 그렇거니
종지 밝힌 법왕에게 천검(千劍)을 준다.
스님은 답하였다.
스승님 차를 받들어 마시고
일어나 세 번 절하니
다만 이 참다운 소식은
예나 이제나 변함이 없다.
3) 지공화상 돌아가신 날에
스님께서 향을 들고 말씀하셨다.
해마다 어둡지 않은 한결같은 약이네
동서를 바라보면 남북도 그렇거니
종지 밝힌 법왕에게 천검(千劍)을 준다.
스님은 답하였다.
스승님 차를 받들어 마시고
일어나 세 번 절하니
다만 이 참다운 소식은
예나 이제나 변함이 없다.
3) 지공화상 돌아가신 날에
스님께서 향을 들고 말씀하셨다.
푸른 한 쌍 눈동자에 두 귀가 뚫렸고
수염은 모두 흰데 얼굴은 검다
그저 이렇게 왔다가 이렇게 갔을 뿐
기괴한 모습이나 신통은 나타내지 않았다.
혼자서 고향길 떠나겠다 미리 기약하고서
말을 전해 윤제궁(輪帝宮)을 알게 하였다
떠날 때가 되어 법을 보였으나 아는 이 없어
종지를 모른다고 문도들을 호되게 꾸짖었다
엄연히 돌아가시매 모습은 여전했으나
몸의 온기는 세상과 달랐다
이 불효자는 가진 물건이 없거니
여기 차 한 잔과 향 한 조각 드립니다.
수염은 모두 흰데 얼굴은 검다
그저 이렇게 왔다가 이렇게 갔을 뿐
기괴한 모습이나 신통은 나타내지 않았다.
혼자서 고향길 떠나겠다 미리 기약하고서
말을 전해 윤제궁(輪帝宮)을 알게 하였다
떠날 때가 되어 법을 보였으나 아는 이 없어
종지를 모른다고 문도들을 호되게 꾸짖었다
엄연히 돌아가시매 모습은 여전했으나
몸의 온기는 세상과 달랐다
이 불효자는 가진 물건이 없거니
여기 차 한 잔과 향 한 조각 드립니다.
그리고는 향을 꽂았다.
4) 산차(山茶)를 따며
4) 산차(山茶)를 따며
차나무를 흔들며 지나가는 사람 없고
내려온 대중들 산차를 딴다
비록 터럭만한 풀도 움직이지 않으나
본체와 작용은 당당하여 어긋남 없구나
내려온 대중들 산차를 딴다
비록 터럭만한 풀도 움직이지 않으나
본체와 작용은 당당하여 어긋남 없구나
나옹스님의 스승 지공은 1)에서 나옹의 공부가 되었음을 알아 보고 차를 들게 하며, 그 뒤 어느날 2)에서 지공은 나옹에게 차를 주면서 법을 전한고, 이에 나옹은 차를 받들어 마시고 세 번 절한다. 그리고 3)에서 나옹은 지공화상이 돌아 가신 날에 차와 향을 올려 스승을 추모한다.
다. 趙州茶에 관한 글
1) 백납가(百衲歌) 중에서
한 잔의 차
사람들에게 대접하고
한 잔의 차가운 차를 사람들에게 보일 때
아는 사람이야 오겠지만 만일 모르면
새롭게 새롭게 한없이 보여주리
사람들에게 대접하고
한 잔의 차가운 차를 사람들에게 보일 때
아는 사람이야 오겠지만 만일 모르면
새롭게 새롭게 한없이 보여주리
일곱 근 장삼이여
가풍을 드날리니
집안의 세밀한 일들이 지극히 영롱하다
이런 재미를 그 누가 알는지 모르겠구나
서역에는 음광(飮光: 가섭존자)이요 동토에는 조주(趙老)라네
가풍을 드날리니
집안의 세밀한 일들이 지극히 영롱하다
이런 재미를 그 누가 알는지 모르겠구나
서역에는 음광(飮光: 가섭존자)이요 동토에는 조주(趙老)라네
조주(趙州)스님 재삼 들어 보여 헛수고했나니
음광(飮光)이 제일 먼저 일어나 장삼 입었고
조주(趙州)가 거듭 일어나 동토에 전했나니
천하총림이 모두 백 번 기운 누더기네
음광(飮光)이 제일 먼저 일어나 장삼 입었고
조주(趙州)가 거듭 일어나 동토에 전했나니
천하총림이 모두 백 번 기운 누더기네
비록 천만 가지 현묘한 말씀 있다 한들
어찌하여 헌 누더기 해같이 맑은가
하늘을 미추고 땅을 비추며 공겁(空劫) 이전부터
홀로 신령한 빛을 비추어 만물을 일으켰네
어찌하여 헌 누더기 해같이 맑은가
하늘을 미추고 땅을 비추며 공겁(空劫) 이전부터
홀로 신령한 빛을 비추어 만물을 일으켰네
우리 집의 백납장삼만이야 하겠는가
비록 이 누더기가 다 헤졌다 해도
삼라만상이 한없이 말하나니
모든 법이 공(공)으로 돌아간다네, 백 번 기운 누더기여
비록 이 누더기가 다 헤졌다 해도
삼라만상이 한없이 말하나니
모든 법이 공(공)으로 돌아간다네, 백 번 기운 누더기여
2) 영주가(靈珠歌) 중에서
배고픔도 그것이요
배고프면 밥먹고 피곤하면 잠자기 조금도 어김없는데
어김없는 그것은 다른 데서 오는 것 아니라
인연 따라 작용하는 제 고향집이랴
배고프면 밥먹고 피곤하면 잠자기 조금도 어김없는데
어김없는 그것은 다른 데서 오는 것 아니라
인연 따라 작용하는 제 고향집이랴
몸마름도 그것이니
조주(趙州) 노스님 사람들에게 차 한 잔 대접했네
이 작용을 의심 않고 지 작용을 잘 알면
의심 않는 이 작용은 다른 것이 아니네.
조주(趙州) 노스님 사람들에게 차 한 잔 대접했네
이 작용을 의심 않고 지 작용을 잘 알면
의심 않는 이 작용은 다른 것이 아니네.
몸마름 알고 배고픔 아는 것 대단한 것 아니라
어떤 사람이 자기 스스로 자기 집에 사는가
여여(如如)한 것만이 여여한 이것이랴
여여하지 못하면 또 다시 어긋나리
어떤 사람이 자기 스스로 자기 집에 사는가
여여(如如)한 것만이 여여한 이것이랴
여여하지 못하면 또 다시 어긋나리
아침에는 죽먹고 재(齋)할 때는 밥먹으며
목마르면 아이 불러 차 한 잔 마시노라
문 밖에 해는 지고 산은 고요하나니
앞창에 달은 발고 흰 구름 흩어지네
목마르면 아이 불러 차 한 잔 마시노라
문 밖에 해는 지고 산은 고요하나니
앞창에 달은 발고 흰 구름 흩어지네
피곤하면 잠자기에 어긋남이 없어라
천 가지 세상 일 모두 다 어긋나지 않네
목동은 해를 향해 봄풀 위에서 자는데
어부는 저물어 와서 모래 언덕에 배를 대네
천 가지 세상 일 모두 다 어긋나지 않네
목동은 해를 향해 봄풀 위에서 자는데
어부는 저물어 와서 모래 언덕에 배를 대네
라. 공부에 관한 글
1) 休休庵 주인의 坐禪文
휴휴암은 나옹화상이 강남에 사서 행각할 때 여름결제를 한 철 보낸 곳이다.
좌선하는 이는 지극한 선(善)에 도달하여 저절로 또렷또렷해야 한다. 생각들을 완전히 끊어버리되 혼침에 떨어지지 않는 것을 좌(坐)라 하며, 욕심 속에 있으나 욕심이 없고 세속에 살면서도 세속에 떠난 것을 선(禪)이라 한다. 밖에서는 함부로 들어오지 않고 안에서 함부로 나가지 않는 것을 좌(坐)라 하고, 집착없이 함상한 빛이 나타나는 것을 선(禪)이라 한다. 밖으로는 흔들려도 움직이지 않고 안으로는 고요하여 시끄럽지 않는 것을 좌(坐)라 하고 빛을 돌이켜 되비추고 법의 근원을 철저히 깨치는 것을 선(禪)이라 한다. 좋고 나쁜 경계에 뇌란하지 않고 빛과 소리에 끄달리지 않음을 좌(坐)라 하고, 일월보다 밝게 어둠을 밝히고 천지보다 큰 힘으로 중생을 교화함을 선(禪)이라 한다. 차별 있는 경계에서 차별 없는 정(定)에 드는 것을 좌(坐)라 하고, 차별 없는 법에서 차별지(差別智)를 가짐을 선(禪)이라 한다. 종합하여 말하자면 불꽃같이 작용하나 본체는 여여하고 종횡으로 오묘하나 일마다 거리낌 없음을 좌선(坐禪)이라 한다. 간략히는 이렇게 말할 수 있지만 상세히 말하자면 글로써는 다하지 못한다.
나가대정(那伽大定: 부처님의 선정)은 동정(動靜)이 없고 진여의 묘한 바탕을 생멸이 없어셔, 바라보지만 볼 수 없고 귀기울이지만 들을 수 없으며 텅 비었지만 빈 것이 아니며 있으면서도 있는 것이 아니다. 크기로는 바깥 없을 정도로 큰 것을 감싸고 작기로는 안이 없을 정도로 작은 데에도 들어가며, 신통과 지혜는 그 광명이 무량하고 대기(大機)와 대용(大用)은 무궁무진한다. 뜻 있는 사람은 잘 참구하되 정신을 바짝 차려 확철대오하겠다는 마음으로 입문하여 와! 하는 한마디가 터진 뒤에는 수많은 신령함이 모두 본해 구족하리라. 이 어찌 마군이와 외도들이 스승 제자 되어 전수하는 것과 같겠으며, 유소득심으로 궁극의 경계를 삼는 것과 같겠느냐!
2) 공부십절목(工夫十節目)
나가대정(那伽大定: 부처님의 선정)은 동정(動靜)이 없고 진여의 묘한 바탕을 생멸이 없어셔, 바라보지만 볼 수 없고 귀기울이지만 들을 수 없으며 텅 비었지만 빈 것이 아니며 있으면서도 있는 것이 아니다. 크기로는 바깥 없을 정도로 큰 것을 감싸고 작기로는 안이 없을 정도로 작은 데에도 들어가며, 신통과 지혜는 그 광명이 무량하고 대기(大機)와 대용(大用)은 무궁무진한다. 뜻 있는 사람은 잘 참구하되 정신을 바짝 차려 확철대오하겠다는 마음으로 입문하여 와! 하는 한마디가 터진 뒤에는 수많은 신령함이 모두 본해 구족하리라. 이 어찌 마군이와 외도들이 스승 제자 되어 전수하는 것과 같겠으며, 유소득심으로 궁극의 경계를 삼는 것과 같겠느냐!
2) 공부십절목(工夫十節目)
1. 세상 사람들은 모양을 보면 그 모양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소리를 들으면 그 소리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어떻게 하면 모양과 소리를 벗어날 수 있을까.
2. 이미 소리와 모양에서 벗어났으면 반드시 공부를 시작해야 한다. 어떻게 그 바른 공부를 시작할 것인가.
3. 이미 공부를 시작했으면 그 공부를 익혀야 하는데 공부가 익은 때는 어떤가.
4. 공부가 익었으면 나아가 자취(鼻孔)을 없애야 한다. 자취를 없앤 때는 어떤가.
5. 자취가 없어지면 담담하고 냉냉하여 아무 맛도 없고 기력도 전혀 없다. 의식이 닳지 않고 마음이 활동하지 않으며 또 그때에는 허깨비몸이 인간세상에 있는 줄도 모른다. 이쯤 되면 그것은 어떤 경계인가.
6. 공부가 지극해지면 동정(動靜)에 틈이 없고 자고 깸이 한결같아서, 부딪쳐도 흩어지지 않고 움직여도 잃어지지 않는다. 마치 개가 기름이 끊는 솥을 보고 햝으려 해도 햝을 수 없고 포기하려 해도 포기할 수 없는 것 같나니, 그때에는 어떻게 대비해야 하는가.
7. 갑자기 120근 되는 짐을 내려놓는 것 같아서 단박 꺾이고 단박 끊긴다. 그때는 어떤 것이 그대의 자성(自性)인가.
8. 이미 자성을 깨쳤으면 자성의 본래 작용은 인연을 따라 맞게 쓰인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무엇이 본래의 작용에 맞게 쓰이는 것인가.
9. 이미 자성의 작용을 알았으면 생사를 벗어나야 하는데, 안광(眼光)이 땅에 떨어질 때에 어떻게 벗어날 것인가.
10. 이미 생사를 벗어났으면 가는 곳을 알아야 한다. 4대는 각각 흩어져 어디로 가는가.
2. 이미 소리와 모양에서 벗어났으면 반드시 공부를 시작해야 한다. 어떻게 그 바른 공부를 시작할 것인가.
3. 이미 공부를 시작했으면 그 공부를 익혀야 하는데 공부가 익은 때는 어떤가.
4. 공부가 익었으면 나아가 자취(鼻孔)을 없애야 한다. 자취를 없앤 때는 어떤가.
5. 자취가 없어지면 담담하고 냉냉하여 아무 맛도 없고 기력도 전혀 없다. 의식이 닳지 않고 마음이 활동하지 않으며 또 그때에는 허깨비몸이 인간세상에 있는 줄도 모른다. 이쯤 되면 그것은 어떤 경계인가.
6. 공부가 지극해지면 동정(動靜)에 틈이 없고 자고 깸이 한결같아서, 부딪쳐도 흩어지지 않고 움직여도 잃어지지 않는다. 마치 개가 기름이 끊는 솥을 보고 햝으려 해도 햝을 수 없고 포기하려 해도 포기할 수 없는 것 같나니, 그때에는 어떻게 대비해야 하는가.
7. 갑자기 120근 되는 짐을 내려놓는 것 같아서 단박 꺾이고 단박 끊긴다. 그때는 어떤 것이 그대의 자성(自性)인가.
8. 이미 자성을 깨쳤으면 자성의 본래 작용은 인연을 따라 맞게 쓰인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무엇이 본래의 작용에 맞게 쓰이는 것인가.
9. 이미 자성의 작용을 알았으면 생사를 벗어나야 하는데, 안광(眼光)이 땅에 떨어질 때에 어떻게 벗어날 것인가.
10. 이미 생사를 벗어났으면 가는 곳을 알아야 한다. 4대는 각각 흩어져 어디로 가는가.
3) 話頭工夫方法
스님께서 하루는 대중을 모아 각각에게 매일 매일의 공부를 물은 뒤에 대중에게 말씀하셨다.
"만일 그렇다면 반드시 대장부의 마음을 내고 기어코 하겠다는 뜻을 세워 평소에 깨치거나 알려고 한 일체의 불법과 사륙체(四六體)의 문장과 언어삼매를 싹 쓸어 큰 바다 속에 던지고 다시는 들먹이지 말아라. 그리하여 8만 4천 가지 미세한 망념을 가지고 한번 않으면 그대로 눌러 앉고, 본래 참구하던 화두를 한 번 들면 늘 들되, '모든 법이 하나로 돌아가는데 그 하나는 더디로 돌아가는가?(萬法歸一 一歸何處)'라든가, '어떤 것이 본래면목(本來面目)인가?'라든가, '어떤 것이 내 본성인가?'라든가 하라.
혹은 어떤 스님이 조주스님에게, '개에게도 불성이 있습니까?' 하고 물으니 조주스님은, '없다(無)' 하였다. 그 스님이 '꼬물거리는 곤충까지도 다 불성이 있다고 하였는데 무엇 때문에 개에게는 불성이 없다고 하십니까?'라고 한 화두를 들어라.
이 중에서도 마지막 한 구절을 힘을 다해서 다해 들어야 한다. 이렇게 계속 들다 보면 공안이 앞에 나타나 들러거 하지 않아도 저절로 들린다. 고요한 데서나 시끄러운 데서나 들지 않아도 저절로 들리는 것이다. 그 경지에 이르거든 의심을 일으키되 다니거나 서거나 앉거나 눕거나 옷을 입거나 밥을 먹거나 대변을 보거나 소변을 보거나 어디서나 온몸을 하나의 의심덩이로 하여야 한다. 계속 의심해 가고 계속 부딪쳐 들어가 몸과 마음을 한 덩어리로 만들어 그것을 분명히 캐들어가되, 공안을 놓고 그것을 헤아리거나 어록이나 경전에서 찾으려 하지 않고, 모름지기 단박 탁 터뜨려야 비로소 집에 이르게 될 것이다.
만일 화두를 들어도 잘 들리지 않아 담담하고 밋밋하여 아무 재미가 없거든, 낮은 소리로 세 번 외어 보라. 문득 화두에 힘이 생기는 것을 느낄 것이니, 그런 경우에 이르거든 더욱 힘을 내어 놓치니 많도록 하라.
여러분이 각기 뜻을 세웠거든 정신을 차리고 눈을 비비면서, 용맹정진하는 중에도 더욱 더 용맹정진을 하라. 그러면 갑자기 탁터져 백천 가지 일을 다 알게 될 것이다. 그런 경지에 이르면 사람을 만나 보아야 좋을 것이다. 그리고는 20년이고 30년이고 물가나 나무 밑에서 부처의 씨앗(聖胎)을 길러야 한다. 그러면 천룡(天龍)이 그를 밀어내 누구 앞에서나 용감하게 큰 입을 열어 큰 말을 할 수 있고 금강권을 마음대로 삼켰다 토했다 하며, 가시덤불 속도 팔을 저으며 지나날 것이며, 한 생각 사이에 시방세계를 삼키고 3세의 부처를 토해낼 것이다.
그런 경지에 가야 비로소 그대들은 노사나불(盧舍那佛)의 갓을 머리 위에 쓸 수 있고, 보신불·화신불의 머리에 앉을 수 있을 것이다. 혹 그렇지 못하거든 낮에 세 번, 밤에 세 번을 좌복에 우뚝이 앉아 절박하게 착안하여 '이것이 무엇인가?'하고 참구하여라."
그리고는 법좌에서 내려오셨다.
"만일 그렇다면 반드시 대장부의 마음을 내고 기어코 하겠다는 뜻을 세워 평소에 깨치거나 알려고 한 일체의 불법과 사륙체(四六體)의 문장과 언어삼매를 싹 쓸어 큰 바다 속에 던지고 다시는 들먹이지 말아라. 그리하여 8만 4천 가지 미세한 망념을 가지고 한번 않으면 그대로 눌러 앉고, 본래 참구하던 화두를 한 번 들면 늘 들되, '모든 법이 하나로 돌아가는데 그 하나는 더디로 돌아가는가?(萬法歸一 一歸何處)'라든가, '어떤 것이 본래면목(本來面目)인가?'라든가, '어떤 것이 내 본성인가?'라든가 하라.
혹은 어떤 스님이 조주스님에게, '개에게도 불성이 있습니까?' 하고 물으니 조주스님은, '없다(無)' 하였다. 그 스님이 '꼬물거리는 곤충까지도 다 불성이 있다고 하였는데 무엇 때문에 개에게는 불성이 없다고 하십니까?'라고 한 화두를 들어라.
이 중에서도 마지막 한 구절을 힘을 다해서 다해 들어야 한다. 이렇게 계속 들다 보면 공안이 앞에 나타나 들러거 하지 않아도 저절로 들린다. 고요한 데서나 시끄러운 데서나 들지 않아도 저절로 들리는 것이다. 그 경지에 이르거든 의심을 일으키되 다니거나 서거나 앉거나 눕거나 옷을 입거나 밥을 먹거나 대변을 보거나 소변을 보거나 어디서나 온몸을 하나의 의심덩이로 하여야 한다. 계속 의심해 가고 계속 부딪쳐 들어가 몸과 마음을 한 덩어리로 만들어 그것을 분명히 캐들어가되, 공안을 놓고 그것을 헤아리거나 어록이나 경전에서 찾으려 하지 않고, 모름지기 단박 탁 터뜨려야 비로소 집에 이르게 될 것이다.
만일 화두를 들어도 잘 들리지 않아 담담하고 밋밋하여 아무 재미가 없거든, 낮은 소리로 세 번 외어 보라. 문득 화두에 힘이 생기는 것을 느낄 것이니, 그런 경우에 이르거든 더욱 힘을 내어 놓치니 많도록 하라.
여러분이 각기 뜻을 세웠거든 정신을 차리고 눈을 비비면서, 용맹정진하는 중에도 더욱 더 용맹정진을 하라. 그러면 갑자기 탁터져 백천 가지 일을 다 알게 될 것이다. 그런 경지에 이르면 사람을 만나 보아야 좋을 것이다. 그리고는 20년이고 30년이고 물가나 나무 밑에서 부처의 씨앗(聖胎)을 길러야 한다. 그러면 천룡(天龍)이 그를 밀어내 누구 앞에서나 용감하게 큰 입을 열어 큰 말을 할 수 있고 금강권을 마음대로 삼켰다 토했다 하며, 가시덤불 속도 팔을 저으며 지나날 것이며, 한 생각 사이에 시방세계를 삼키고 3세의 부처를 토해낼 것이다.
그런 경지에 가야 비로소 그대들은 노사나불(盧舍那佛)의 갓을 머리 위에 쓸 수 있고, 보신불·화신불의 머리에 앉을 수 있을 것이다. 혹 그렇지 못하거든 낮에 세 번, 밤에 세 번을 좌복에 우뚝이 앉아 절박하게 착안하여 '이것이 무엇인가?'하고 참구하여라."
그리고는 법좌에서 내려오셨다.
차를 마시는 것(喫茶去)은 단순히 차를 마심에 그치지 않고 불교에서 깨달음의 문구가 되는 화두로 사용되므로 이에 나옹록에서 스님의 1) 좌선문, 2) 공부십절목, 3) 화두공부방법을 인용하였다. 1) 좌선문은 좌선에 관한 명확한 설명을 하며, 2) 공부십절목은 참선공부가 되어 가는 과정에 대한 설명이다. 3) 화두공부방법에 관한 것은 나옹스님의 「示衆」으로 분류된 어록에서 화두공부에 관한 글이다. 조주의 「無」자 화두를 어떻게 들 것인가에 관한 것이지만 어느 화두를 탐구하든 좋은 길잡이가 되는 법문이다. 이를 참고하여 열심히 수행하여 돈오의 기쁨을 누리길 바란다.
2. 청허휴정(淸虛休靜)(1520-1604)
2. 청허휴정(淸虛休靜)(1520-1604)
가. 生涯
청허스님은 1520년에 태어나 출가하여 부용영관(芙蓉靈觀)의 제자가 되었다. 나이 30세인 1550년에 승과에 응시하여 합격하여 대선(大禪)을 거쳐 선교양종판사(禪敎兩宗判事) 자리까지 올랐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제자 사명과 처영을 이끌고 구국항쟁에 나섰다. 평양탈환에 큰공을 세워 선조로부터 팔도선교도총섭(八道禪敎都摠攝)이란 최고의 승직에 임명되었다. 노령으로 인하여 제자 사명에게 그 직위를 물려주고 묘향산에 들어가 나라의 안녕을 기원하다 1604년에 열반에 들었다. 저서로는 선에 관한 선가귀감(禪家龜鑑), 선교석(禪敎釋), 선교결(禪敎訣), 스님들의 의식에 관한 제산단의문(諸山壇儀文) 등이 있다. 그리고 스님의 시문 등을 모은 청허당집(淸虛堂集)이 있다.
나. 茶에 관한 詩
1) 도운선자(道雲禪子)
납자가 한평생 하는 일이란
차를 달여 조주(趙州)에게 올리는 것
마음은 재가 되고 머리 이미 희었나니
어찌 다시 남주(南州)를 생각하리요
차를 달여 조주(趙州)에게 올리는 것
마음은 재가 되고 머리 이미 희었나니
어찌 다시 남주(南州)를 생각하리요
2) 두류산의 내은적암(頭流山內隱寂庵)
스님 대여섯 명이
내 암자 앞에 집을 지었네.
새벽 종 치면 함께 일어나고
저녁 북 울리면 같이 자네.
내 암자 앞에 집을 지었네.
새벽 종 치면 함께 일어나고
저녁 북 울리면 같이 자네.
시냇물 속의 달을 함께 길어
차 달여 그 푸른 연기 나누네.
날마다 무슨 일 의논하는가 했더니
염불과 참선일세.
3. 설암추봉
차 달여 그 푸른 연기 나누네.
날마다 무슨 일 의논하는가 했더니
염불과 참선일세.
3. 설암추봉
가. 生涯
설암추봉(설암추봉)(1651-1706)스님은 조선 중기 대둔사의 13대종사 중 다섯 번째로 손꼽히는 고승이다.
나. 茶에 관한 詩
1) 가을흥취(秋興)
앓고 난 후라 가을 꽃이 더 향기롭고
한낮의 그윽한 곳, 흐드러진 흥이 더 하네.
산과일은 소석의 떡으로 족하고
들샘(野泉)은 마음으로 조주차(趙州茶)를 허락하네
한낮의 그윽한 곳, 흐드러진 흥이 더 하네.
산과일은 소석의 떡으로 족하고
들샘(野泉)은 마음으로 조주차(趙州茶)를 허락하네
2) 오계찬의 운을 따라(次吳季纘)
작은 암자는 그윽하고 고요한데 층층히 봉우리가 옹호하고
일없는 한도인(閑道人) 녹색나무 그늘에서 가부좌하고 있네.
잔 속의 자줏빛 차가 술을 대신하여 향기롭고
문 앞의 푸른 물이 거문고 소리를 내네.
일없는 한도인(閑道人) 녹색나무 그늘에서 가부좌하고 있네.
잔 속의 자줏빛 차가 술을 대신하여 향기롭고
문 앞의 푸른 물이 거문고 소리를 내네.
4. 초의선사
가. 生涯
초의 의순(草衣意恂)스님은 정조 10년(1786년) 4월 5일에 전남 무안군 삼향면에서 태어났다. 15세에 나주 운흥사(雲興寺) 벽봉민성(碧峰敏性)스님을 은사로 출가하였다. 선사는 19세인 1804년, 영암 월출산에 혼자 올라갔다가 때마침 해가 지면서 보름달이 바다 위로 솟아오르는 것을 바라보고 일순가 가슴이 확 트이는 것을 경험하면서 깨달음을 얻었다. 그 후 해남 대흥사 완호윤우(玩虎倫佑)스님를 계사로 구족계를 받고 법맥을 이었으며 초의(草衣)라는 호를 받았다. 22세 때부터 제방의 선지식을 두루 탐방하여 경율론 삼장에 통달하였으며 연담유일(蓮潭有一)선사의 선지(禪旨)를 이어받고, 대은(大隱), 금담(金潭) 율사의 계맥(戒脈)을 전수받았다.
24세 때(1809년) 강진에 와서 유배생활을 하던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과 처음 교류하고, 30세 되던 해(1815년)에 처음으로 한양에 올라 와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 다산의 아들 정학연(丁學淵), 자하(紫霞) 신위(申緯) 등과 교유하였다. 이름이 알려지자 은거의 뜻을 갖고 39세에 일지암(一枝庵)을 지어 그 후 일생을 보내는 근거지로 삼았다. 43세(1828년)에 지리산 칠불암(七佛庵)에서 다신전(茶神傳)을 초록했다. 52세(1837년) 봄에 초의선사는 정조의 사위인 홍현주(洪顯周)의 부탁으로 동다송(東茶頌)을 저술하였다. 58세(1843년) 봄에 유배중인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 1786-1856년)를 위로하기 위하여 바다 건너 제주도로 찾아 갔다. 초의선사는 고종 3년(1866년) 8월 2일 입적하였다. 세수 81세, 법랍 65년이다.
초의선사는 대둔사의 13대 종사로서 선문사변만어(禪門四辯漫語), 초의선과(草衣禪課) 등을 저술하였으며 시(詩), 서(書), 화(畵), 차(茶)에 모두 능해 4절이라 한다. 그 밖에도 초의선사는 범패, 원예, 단방약에도 능했다.
나. 茶에 관한 詩
24세 때(1809년) 강진에 와서 유배생활을 하던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과 처음 교류하고, 30세 되던 해(1815년)에 처음으로 한양에 올라 와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 다산의 아들 정학연(丁學淵), 자하(紫霞) 신위(申緯) 등과 교유하였다. 이름이 알려지자 은거의 뜻을 갖고 39세에 일지암(一枝庵)을 지어 그 후 일생을 보내는 근거지로 삼았다. 43세(1828년)에 지리산 칠불암(七佛庵)에서 다신전(茶神傳)을 초록했다. 52세(1837년) 봄에 초의선사는 정조의 사위인 홍현주(洪顯周)의 부탁으로 동다송(東茶頌)을 저술하였다. 58세(1843년) 봄에 유배중인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 1786-1856년)를 위로하기 위하여 바다 건너 제주도로 찾아 갔다. 초의선사는 고종 3년(1866년) 8월 2일 입적하였다. 세수 81세, 법랍 65년이다.
초의선사는 대둔사의 13대 종사로서 선문사변만어(禪門四辯漫語), 초의선과(草衣禪課) 등을 저술하였으며 시(詩), 서(書), 화(畵), 차(茶)에 모두 능해 4절이라 한다. 그 밖에도 초의선사는 범패, 원예, 단방약에도 능했다.
나. 茶에 관한 詩
1) 수종사에서 석옥화상의 시의 운을 따서(水鍾寺次石屋和尙韻)
꿈에 누가 앙산차를 바치니
게으르게 남은 경전 잡고 있다 눈꽃을 씻어 내리네.
다행히 산 아래 지음이 있어
인연을 따라와 백운가에 머무네.
2) 청한하여 마음이 깨이다(淸寒心惺: 東茶頌 제17송)
게으르게 남은 경전 잡고 있다 눈꽃을 씻어 내리네.
다행히 산 아래 지음이 있어
인연을 따라와 백운가에 머무네.
2) 청한하여 마음이 깨이다(淸寒心惺: 東茶頌 제17송)
대숲 소리 솔 물결 모두 다 서늘하니
맑고도 찬 기운 뼈에 스며 마음을 깨워주네
흰 구름 밝은 달만 두 손님 되라 하니
도인의 자리에는 이것이면 훌륭하네
맑고도 찬 기운 뼈에 스며 마음을 깨워주네
흰 구름 밝은 달만 두 손님 되라 하니
도인의 자리에는 이것이면 훌륭하네
5. 범해각한
가. 生涯
범해 각안(梵海覺岸)스님은 1820년 전남 완도군 범진(梵津) 구계(九階)(지금의 완도군 군내면)에서 태어났다. 14세에 대둔사에 출가하여 16세에 호의 시오(縞衣始悟)스님에게서 사미계를 받았다. 범해스님은 27세에 호의스님의 법을 이어 대둔사 13대강사 중 마지막 열세 번째 강사가 되어, 이후 22년간 경전을 강론했다. 1896년 세수 77세, 법랍 65년으로 대둔사에서 입적하였다. 저술로는 동사열전, 경훈기(警訓記) 등이 있으며, 시문집으로는 범해선사시집(梵海禪師詩集), 범해시집보유, 범해선사문집(梵海禪師文集)이 있다.
나. 茶에 관한 詩
나. 茶에 관한 詩
1) 다가(茶歌)
책을 편 지 오래이니 정신이 혼미하여
차 생각 간절하여 참기 어렵구나.
꽃 핀 우물은 물맛도 달고
두레박으로 떠 화로에 차 끊이는 소리 기다리네.
한 번, 두 번, 세 번 끊이니 맑은 향기 떠오르고
넷, 다섯, 여섯 주발 마시니 땀이 솟아나는 듯.
상저(桑苧)의 다경(茶經)도 이제야 옳은 줄 알겠고
옥천(玉泉)의 다가(茶歌) 대체를 알겠도다.
보림사(寶林寺) 작설은 감영에 실어가고
화개동(花開洞) 좋은 차 대궐에 바치네.
함양·무안의 토산차는 남방의 진품이요
강진·해남의 법제 방법은 북경에서 배웠다네.
잡된 생각은 일시에 없어지고
맑고 밝은 정신 한나절도 더 가네.
졸음은 물러가고 밝은 빛이 생기면서
식곤증 내려가니 가슴속 시원하네.
괴로움과 욕심 없애는 것 경험했고
감기도 나아 통명(通明)해졌다네.
공자님 사당 배알에는 술을 올리고
부처님 법당 공양에는 정성을 바친다네.
서석(瑞石)의 좋은 차, 그 맛 시험하고
백양사의 작설차, 마음을 흘리누나.
덕용(德龍)의 용단(龍團)을 사절하고
월출(月出)에서 오는 차 막아 버렸네.
중부(中孚)의 옛집, 이미 언덕으로 변하고
이봉( 峯)이 살던 산에 물병이 있다네.
조화(調和)하기 무위실(無爲室)의 법과 같이하고
잘 간수하기 옛 예암(禮庵)의 법을 따랐네.
좋고 나쁨 따지지 않음은 남파(南坡)의 끽다법이고
많고 적음 사양치 않음은 영호(靈湖)의 뜻일세.
풍속을 살펴보고 차 즐기는 이 많은데
당(唐)·송(宋)의 성현에 뒤지지 않도다.
선가(禪家) 유풍은 조주(趙州)의 화두
진미(眞味)는 제산(霽山)이 먼저 얻었구나.
만일암(挽日庵)의 일 마치고 달 구경하는 밤에
차 공양하고 피리 불며 서로 이끌어 차를 끊이네.
정사(正 )와 언질(彦 )은 섣달에 차를 얻고
성학(聖學)은 물을 긷고 태련(太蓮)을 부르네.
만병과 온갖 걱정 모두 흩어지고
임의로 노니나니 신선과 같도다.
차 끊는 동안 차 문헌 살펴보니
별 하나가 무변천에 떨어지네.
어찌하여
귀하고 좋은 책 나에게 전해졌는가.
차 생각 간절하여 참기 어렵구나.
꽃 핀 우물은 물맛도 달고
두레박으로 떠 화로에 차 끊이는 소리 기다리네.
한 번, 두 번, 세 번 끊이니 맑은 향기 떠오르고
넷, 다섯, 여섯 주발 마시니 땀이 솟아나는 듯.
상저(桑苧)의 다경(茶經)도 이제야 옳은 줄 알겠고
옥천(玉泉)의 다가(茶歌) 대체를 알겠도다.
보림사(寶林寺) 작설은 감영에 실어가고
화개동(花開洞) 좋은 차 대궐에 바치네.
함양·무안의 토산차는 남방의 진품이요
강진·해남의 법제 방법은 북경에서 배웠다네.
잡된 생각은 일시에 없어지고
맑고 밝은 정신 한나절도 더 가네.
졸음은 물러가고 밝은 빛이 생기면서
식곤증 내려가니 가슴속 시원하네.
괴로움과 욕심 없애는 것 경험했고
감기도 나아 통명(通明)해졌다네.
공자님 사당 배알에는 술을 올리고
부처님 법당 공양에는 정성을 바친다네.
서석(瑞石)의 좋은 차, 그 맛 시험하고
백양사의 작설차, 마음을 흘리누나.
덕용(德龍)의 용단(龍團)을 사절하고
월출(月出)에서 오는 차 막아 버렸네.
중부(中孚)의 옛집, 이미 언덕으로 변하고
이봉( 峯)이 살던 산에 물병이 있다네.
조화(調和)하기 무위실(無爲室)의 법과 같이하고
잘 간수하기 옛 예암(禮庵)의 법을 따랐네.
좋고 나쁨 따지지 않음은 남파(南坡)의 끽다법이고
많고 적음 사양치 않음은 영호(靈湖)의 뜻일세.
풍속을 살펴보고 차 즐기는 이 많은데
당(唐)·송(宋)의 성현에 뒤지지 않도다.
선가(禪家) 유풍은 조주(趙州)의 화두
진미(眞味)는 제산(霽山)이 먼저 얻었구나.
만일암(挽日庵)의 일 마치고 달 구경하는 밤에
차 공양하고 피리 불며 서로 이끌어 차를 끊이네.
정사(正 )와 언질(彦 )은 섣달에 차를 얻고
성학(聖學)은 물을 긷고 태련(太蓮)을 부르네.
만병과 온갖 걱정 모두 흩어지고
임의로 노니나니 신선과 같도다.
차 끊는 동안 차 문헌 살펴보니
별 하나가 무변천에 떨어지네.
어찌하여
귀하고 좋은 책 나에게 전해졌는가.
2) 태연의 시운을 따서(次泰演)
불문에 들어와 시비를 끊으니
차 마시고 강 하는 자리엔 비웃음이 없구나.
견해가 분명하니 은해(銀海)가 고요하고
가슴속 시원하니 보광( 光)이 빛나네.
참됨을 좋아하여 배움의 자리에 참여하고
속세의 인연을 싫어하여 사립문을 닫았네.
월출산 앞에 자리를 떨치고 일어나 서니
동풍 천리가 모두 귀의하네.
6. 금명보정
차 마시고 강 하는 자리엔 비웃음이 없구나.
견해가 분명하니 은해(銀海)가 고요하고
가슴속 시원하니 보광( 光)이 빛나네.
참됨을 좋아하여 배움의 자리에 참여하고
속세의 인연을 싫어하여 사립문을 닫았네.
월출산 앞에 자리를 떨치고 일어나 서니
동풍 천리가 모두 귀의하네.
6. 금명보정
가. 생애
한말부터 일제 강점기 중반까지 활동한 금명보정(錦溟寶鼎)(1861-1930)스님은 15세 때 송광사 금련(金蓮)화상에게 출가하였다. 1916년 해남 대둔사에 가서 강원에서 7년 동안 후학을 가르쳤다. 1930년 송광사에서 입적하였다. 저서로 다송시고(茶松詩稿), 다송문고(茶松文庫), 조계고승전(曹溪高僧傳), 염불요해(念佛要解) 등이 있다.
나. 차에 관한 시
1) 차를 달이다(煎茶)
한 스님이 와서 조주의 빗장문을 두드리니
조주차의 선풍에 스스로 부끄러워하며 뒤뜰로 나갔네.
일찍 해외의 다서를 살핀 초의 선사의 송을 보고
다시 당나라 육우의 다경을 참고했네.
정을 기르려면 응당 경뢰소를 달여야지.
손님을 맞이해 찻잔 기울이니 자용 향기 서리네.
흙 화덕, 구리 병을 갖추어 놓은 중에 빗소리 멈추었네.
한 잔의 작설차는 제호보다 좋구나.
조주차의 선풍에 스스로 부끄러워하며 뒤뜰로 나갔네.
일찍 해외의 다서를 살핀 초의 선사의 송을 보고
다시 당나라 육우의 다경을 참고했네.
정을 기르려면 응당 경뢰소를 달여야지.
손님을 맞이해 찻잔 기울이니 자용 향기 서리네.
흙 화덕, 구리 병을 갖추어 놓은 중에 빗소리 멈추었네.
한 잔의 작설차는 제호보다 좋구나.
2) 대지전(大智殿)
고요함 속에 세월은 흐르고
집안에서는 세월을 재촉하네.
솔 따니 향기가 바리때에 가득하고
차 달이니 달(月)에 찻잔이 생기네
집안에서는 세월을 재촉하네.
솔 따니 향기가 바리때에 가득하고
차 달이니 달(月)에 찻잔이 생기네
Ⅶ. 「喫茶去」를 통해 趙州스님의 본 茶生活
1. 平常心이 道다.
조주스님께서 조주스님이 거처하는 관음원에 온 적이 있는 스님이나. 온적이 없는 스님이나 심지어 그곳에 머무르는 원주에게도 "차를 마시게(끽다거)"로 하였다. 이는 조주스님이 남전스님의 말씀 중 깨우침을 얻은 "평상시의 마음이 도다(平常心是道)"를 실천적으로 잘 나타낸 것으로 보인다. 차를 마시는 것은 단순히 머리를 식히고, 건강증진을 위하는 의미 이상으로 진리 그 자체를 펼쳐 보인 것이다.
2. 日常性의 强調
차는 특별한 날 마시는 것이 아니라 밥 먹듯이 매일 매일 마시는 일상적으로 차를 마시는 것이다.
조주스님의 「십이시가」 중에 진시(辰時)편에 보면
"찾아오는 사람은 오직 마실 차를 찾는데
차 마시지 못하고 가면서는 발끈 화를 낸다."
는 표현에서 이를 잘 알 수 있다.
조주스님의 「십이시가」 중에 진시(辰時)편에 보면
"찾아오는 사람은 오직 마실 차를 찾는데
차 마시지 못하고 가면서는 발끈 화를 낸다."
는 표현에서 이를 잘 알 수 있다.
3. 素朴性
차는 화려한 것을 자랑하거나 비싼 것을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다만 소박하게 마시는 것이 중요하다. 오늘날 다구를 비싼 것을 쓰는 것을 자랑하거나 고급차를 마시는 것을 자랑하는 것은 조주차의 정신에는 반하는 것일 것이다.
조주록의 「십이시가」에 보면 조주스님의 생활을 묘사한 것 중 자시(子時)편에 보면
"흙 자리 침상 낡은 갈대 돗자리
늙은 느릅나무 목침에 덮개 하나 없다네
부처님 존상에는 안식국향 사르지 못하고
잿더미 속에서는 쇠똥냄새만 나는구나."
조주록의 「십이시가」에 보면 조주스님의 생활을 묘사한 것 중 자시(子時)편에 보면
"흙 자리 침상 낡은 갈대 돗자리
늙은 느릅나무 목침에 덮개 하나 없다네
부처님 존상에는 안식국향 사르지 못하고
잿더미 속에서는 쇠똥냄새만 나는구나."
시를 통하여 본 조주스님의 생활은 "흙 자리 침상 낡은 갈대 돗자리"로 상징하는 소박한 생활이다. 그렇다면 조주스님이 즐긴 차생활은 화려한 고급다관, 고급찻상이 아니라 저렴하면서도 품위 있는 다관, 찻상일 것이 분명하다.
4. 茶禪一味의 典型
4. 茶禪一味의 典型
조주스님의 「喫茶去」는 다와 선이 하나가 되는 도리를 표현한 것으로서 다선일미의 전형이 되어 후래의 많은 스님과 일반인에게 전해지고 있다. 차를 마시면서 선을 수행하고, 목마르면 차 한 잔 마시는 그것 자체가 바로 불법의 진수를 보이는 것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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