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융의 이야기

철저히 알라

통융 2017. 6. 1. 14:48



내가 누구인가를 철저히 알라.



내가 누구인가를 명확 하게 알라.

내 몸은 무엇으로 되어 있는지를 정확하게 알라.

내가 보고 듣고 냄새 맞고 맛보고 만지고 느끼는 것이 어떤 작용인지를 명확하게 알라.

내가 생각이라는 마음들, 화 내고 욕심 내고 어리석은 마음들이 어떻게 만들어 지고 쓰이는지를 정확하게 알라. 

내가 누구를 사랑하고 이별하고 즐겁고 슬프고 하는 생각들이 어떻게 일어나는지 명확히 알라.
내가 무엇이 이렇게 숨 쉬고 걷고 살았다고 하는지를 적확하게 알 라.
내가 늘 깨어 있는 놈 이 주인공을 분명하게 느끼며 알라.

내가 누구인가를 철저하게 확인하라.

내가 누구인가를 찰 챙김하라는 뜻이다.



참 나는 오직 모른다는 그 때 그 것을 참 나라고 생각한다.

모른다는 것은 모든 생각 분별심인 알음알리 의식을 버리는  때이다.

하지만 그 모르는 가운데 우리는 앎의 행동을 한다.

그 앎의 쓰임을 하는 그 주체는 무엇인가?

그것을 참 자아나 불성이라 한다.

그 것은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상태이다.

움직이는 상태를 어떻게 말로 붙잡을 수 있겠는가.

그래서 언어도단이니 불입문자라는 말로 말이나 글로 나타 내기가  불가능하다 한다.



그래서 그 모른다는 생각보다는 참 되게 바로 알아치리는 것 확철하는 것이 유리하다.

확철대오라는 말을 쓴다.

확철이란 철저하게 앎에 있는 것이다.

내가 누구인가를 확실하게 바로 알아차리는 것을 깨달음이다.

그 알아차림은 모른다는 것과 같다.

모른다는 것을 아는 것이기 때문이다.


소크라테스가 '너 자신을 알라"고 할 때

누가 '당신은 당신 자신을 알고 있습니까?' 라고 하니

소크라테스가 ' 나는 내가 누구인지를 모르는 것을 안다' 고 했다.

모르는 것을 알아차리는 것, 인지하는 것이 있다는 말이다.


모른다는 것은 철저히 선禪 적인 접근이다.

알아치리는 것은 적확한 교敎 적인 접근다.

선과 교는 둘이 될 수 없는 것이 선 속에 교가 있고 교 속에 선이 있다.

'내가 누구인가'를 확철히 깨달은 자는  돈오頓悟니돈수 頓修니 하는 것도 같다고 한다.

이 우주 속에는 모든 것이 함께 있듯 내가 체험하는 모든 것은 우주와 동등하기 때문이다.

나는 우주이다.

나로 통해서 일어나는 모든 것은 인연연기되어 있기 때문에 한 순간도 실체로 머뭄 없을 뿐이고 변하는 상태(狀態)인 것이다.

그래서 모든 것은 통알하게 되며 한 그물(인드라망)처럼 움직인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내가 누구인가를 확철히 체험하지 못한  사람들은 그 뜻을 이해하는 지식으로 분별하여 나누려고 한다.

왜냐면 내가 있고 다른 대상(對象)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깨달음의 답을 찾으려 하지 말고 직접 깨달음을 체험하라.


일부 사람들이 그냥 모른다고 만 하면 그 때 참 나라고 한다.

자신의 이름도 모른다고 하라.

내가 누구인가를 모른다고 하라.

내가 생각하고 느끼는 모든 생각들을 내려 놓고 오직 모른다고만 하라고 한다. 

그것은 한 방편이 될 수는 있지만 참 나를 확철히 알아차리는 데는 한계가 있다.

공한 상태로 남을 수 있다.

나도 없고 너도 없고 모둔 것이 공함 뿐이다는 것은 무기에 집착하는 것이다.


이러한 사람에게는 실상의 존재를 알게 해야 한다.

왜냐면 나는 이렇게 성성 하게 숨 쉬고 밥먹고 잠자며 살아 있기 때문이다.

진리는 모른다고 다 해결되지는 않는다.

그가 모른다고 할 때도 그 모르는 것을 알아차리는 주인공은 성성하게 살아 있기 때문이다.



이름도 있고 나도 생각도 느낌도 있다.

다만 그 존재 자체가 나의 앎과 전부일 때는 그 자체 하나로 융통하게 된다.

그럴 때는 실상이라는 뚜렸한 존재가 있다.

오직 일뿐 상태가 이다.


모른다는 것을 아는 그놈은 무엇인가?

늘 깨어 있는 이 주인공은 무엇인가?

내가 누구인가를 명확히 챙겨보라.


그리고 나면 나는 늘 그 자리 있다.

배고프면 밥먹고 피곤하면 잠을 잔다.

아침에 출근하고 저녁에 집으로 태근하는 내가 있다.

이웃과 함께 울고 웃는 내가 있고 우리가 있다.

오직 할 뿐인 상태

나는 그렇게 성성하게 두 눈을 뜨고 있다.

 

그렇게 될 때에야 참 모른다는 것을 알게 된다.

오직 모를 뿐입니다.

참 나가 깨어 있는 상태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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