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지금 허공중에 있어요
몸뚱이도 허공성 때문에
자꾸 변하는 거예요.
생사 문제를 풀려면
허공 문제 해결해야
이제부터 허공부터 설명하겠습니다. 여러분들, 허공 속에서 살면서 허공을 생각해 본 일이 있습니까? 우리 불자들은 생각을 합니다. 그러나 불교를 안 믿는 사람들은 전혀 생각을 안 합니다.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죠? 육신이 허공 속에 살고 있어요. 허공을 여의지 않고 있어요. 그런데 허공 그만 무시하고 있거든. 또 허공 뿐 아니라 이 땅덩어리도 무시하고 있어요. 이 지구덩어리가 허공에 둥둥 떠 있는데 도대체 어디로 흘러가느냐 말이야. 이거 하나도 생각 안 해. 왜 그러냐. 바로 내가 허공에 있거든. 그래서 내가 여러분에게 색신으로서인 여러분이 아니고 허공으로서인 여러분이다 하는 말이 그 말이에요. 그런데 이거 참 중요한 일인데, 허공을 그만 무시해 버려. 우리가 허공으로 더불어서 같이 나가는데 허공을 무시하니 도대체 이건 상식 밖의 일이에요.
그러니까 가만히 생각해 봅시다. 참말로 인간 이상 어리석은 것이 없습니다. 왜 어리석냐. 허공 속에 있으면서 허공을 무시해 버려. 땅에 발을 거닐고 있으면서 집도 짓고 하면서 무시해 버리거든. 우리가 직접 관계가 있는, 절대 관계가 있는 엄연한 사실. 이 허공, 이거 엄연한 사실이거든. 엄연한 사실을 갖다가 무시해 버리고 어찌 우리의 생사문제가 해결이 되겠느냐 말이여.
따라서 허공에 대해서 우리가 생각 안 해 볼 도리가 없거든요. 하니까 허공부터 구체적으로 얘기해 봅시다. 지금 우리가 허공 속에 있어요. 지금 이 자리가 허공이에요. 알고 보면. 이 집은 허공성 아닌가? 이 지구, 이거는 허공성 아닌가? 또 우리 몸뚱이 이건 허공성 아닌가? 우리 몸뚱이도 허공성이기 때문에 자꾸 변하는 거예요. 어머니 뱃속에서 떨어져서 나중에 한 살 두 살 세 살 열 살 스무 살, 이래서 국민학교도 가고 대학도 가고 사업도 하다가 흰 머리털도 나고 쭈글쭈글 해서 나중에 흙구덩이로 가고 불구덩이로 가는 거예요. 허공성이기 때문에 그래요.
이것이 허공성이 아니고 그대로 있다면 어린애는 영원히 어린애, 늙은 사람은 영원히 늙은 사람, 변하는 것이 없어요. 눈도 뜬 대로 가만히 바람도 불다가 가만히 구름도 가다가 가만히 손도 이래 든 채로 가만히. 손 이래 이래 하는 것도 전부 변하는 도리 아니에요? 눈 깜빡깜빡 하는 것. 내가 성품이 없는 이 입을 통해서 허공성이 지금 얘기하고 있거든요.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이 입이 얘기한다 이리 하고 있어요. 입이 얘기하는 걸 여의지 않기는 했어. 허나 입이 어떻게 얘기를 하느냐 말이에요. 혓바닥이 무슨 성품이 있던가요? 이 입이 성품이 있던가요? 이거는 무형무색인 진짜 나. 진짜 나는 법신자리니까 아무 것도 없어요. 그 놈이 들어서 눈이라는 기관을 통해서 뭘 보고 귀라는 기관을 통해서 뭘 듣고 입이라는 기관을 통해서 허공이 생각한 것을 의사 발표할 뿐이지. 이거 내가 말하는 건 아니거든.
그러니까 이 허공이 도대체 얼마나 크냐 적냐 이것부터 생각합시다. 모습 있는 거. 지구도 모습이 있는 것 내 몸도 모습이 있는 것 태양도 모습이 있는 것. 이런 모습이 있는 걸로 비한다면 허공 제일 큰 거예요. 여기 크다고 써 놨어요. 다른 말을 하기 위해서 써놨는데, 실은 허공 큰 거 아니에요. 그러나 큰 거예요. 만약 크다는 말마디에 우리가 달려들면 얼만큼 크다는 말이 딱 나와야 됩니다. 크다 적다 하면 얼만큼 크다. 얼만큼이란 이것이 있어야 크다는 말이 딱 적합해요. 적다 하면 얼만큼 적다는 것이 있어야 딱 적다는 말이 되는데. 실은 허공이란 것은 얼만큼이란 것을 지났어요.
그러기 때문에 가도 가도 끝없는 것이 제일 크다 이렇게 하겠는데, 실에 있어서는 크다는 말을 떠난 자립니다. 크다 적다 하는 걸 떠나서 큰 거예요. 크다 하면 얼만큼 크다 하는 것이 딱 그대로 수치가 나옵니다. 요새말로 서양말 많이 쓰대. 어느 미리쯤 적다는 말이 딱 나와요. 그러나 이 허공은 크다 적다는 말이 이미 떨어졌어. 그것도 붙지 안 해. 크다는 말도 붙지 않고 적다는 말도 붙질 안 해. 한정이 없이 큰 거예요. 이 허공이.
여러분들 생각해 보세요. 우리가 지금 허공중에 있어요. 솔직한 말로 색신 이거 성품 없는 것이거든요. 아무것도 아니에요. 이 집, 나무, 전부 허공성이에요. 그래서 이리 부서지고 갈라지고 이래 되는 거예요. 나중에 없어지고. 이 지구 허공성, 우리가 지금 허공에 앉아 있거든요. 진짜 주인공. 이건 가짜예요. 이거 하나의 똥주머니에요. 가는 곳이 흙구덩이 불구덩이 뿐이라. 세상 사람들은, 어리석은 사람들은 이거 내라 하고 있거든. 물론 내가 쓰고 있어. 내가 쓰고 있긴 있지만 이건 내가 아니고 이건 가짜여. 내가 쓰고 있어도 이건 앞으로 오십 년이나 백년이면 우리가 흙구덩이 불구덩이 집어넣는 그거에요. 불구덩이 속에 집어넣어서 태우면 한 줌 흙밖에 안 돼. 흙구덩이 속에 집어넣어서 썩히면 한 삼태기 흙밖에 안 되는 거예요. 이거 그거예요.
하기 때문에 보고 듣고 말하는 이놈, 지금 우리가 허공중에 있거든. 우리가 늘 그릇된 생각으로 이거 내다 할 때 여기 있는 것 같지만 여기 어디 있나요? 어디 있나요? 자, 뇌에 있다든지 눈에 있다든지 코에 있다든지 가슴에 있다든지 어디에 있나요. 없어요. 없어. 없으면서 이걸 여의지 않을 따름이에요. 그런데 이러한 허공이 어느 정도 크냐. 간단하게 말하겠어요. 구체적으로 말해서 가도 가도 끝없는 거예요. 위로 가도 가도 끝없는 거예요. 밑으로 가도 가도 끝없는 거예요. 그러나 여러분들이 생사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불법공부를 하는데, 이 허공문제를 해결 안 하면 생사문제가 해결이 안 돼. 그러기 때문에 허공 말을 하는 거여. 이리 가도 가도 끝이 없고 이리 가도 가도 끝없는데, 자 이걸 어떻게 처리해야 되겠느냐 말이여. 여러분들이 허공을 처리할 권리가 있어. 색신은 여러분이 아니에요. 색신은 성품이 없는데 처리고 뭣이고 할 거 뭐 있어요? 보고 듣고 말하는 진짜 여러분, 하늘과 땅이 생기기 전의 여러분, 태양계가 부서지고 욕계 색계가 막 부서져서 다 날아가 버려. 날아간 후에도 뚜렷하게 있는 여러분. 이 여러분이 허공을 처리할 문제거든. 이러한 그 자리를 여러분들이 가지고 있어요.
어찌해야 본래의 그 자리 알 수 있느냐
작용하는 방편을 알기 위한 것이
불교 공부 아닙니까?
본래의 절대성 자리를 아는 것이
바로 방편을 공부하는 것입니다.
자운 선생, 서운 선생. 여러분 많은데 내가 미안한 것이 있어요. 사실로 여러분을 생각한다면 방법이 하나 있습니다. 여러분을 생각한다면은. 나 여러분 생각 안 합니다. 여러분을 생각한다면 이 문 그대로 닫아야 됩니다. 여기 화로 하나 갖다 놓고 숯 두어 가마니 갖다 놓고 숯불 피워야 됩니다. 이 문 다 닫고. 그리해서 여러분하고 같이 공부를 하면 훨씬 다를 겁니다. 여러분 달라. 하하하. 어떻겠습니까. 문을 떼지 않고 여기 큰 화로 갖다 놓고 숯불을 이글이글 해서 팥죽 같은 땀을 빡빡 내서 그리 해서 공부를 하는 것이 내가 여러분을 생각하는 겁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십시오. 어느 것이 여러분을 생각하는 겁니까? 여러분 오신다고 해서 문 다 떼고 이것이 여러분을 생각하는 겁니까? 아닙니다.
왜 그러냐. 우리는 한 고개 넘어야 되거든요. 넘어야 되기 때문에 그러한 방법으로 하는 것이 도리어 여러분에게 깊은 인식을 주는 것이 아니냐 이겁니다. 그런데 오늘 마침 숯장사가 없어요. 숯장사도 없고 그래서 못 했습니다만도 모르겠습니다. 금년 겨울이나 명년 여름쯤 되면 말이죠 숯을 몇 가마니씩 사서 그렇게 할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것이 여러분을 생각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리고 내가 이번에 한 시간에 한 번 설법하는데 십분간 시간 제한을 받았습니다. 너무 무정해요. 그래도 한 삼십분 해야 되는데 하루에 세 번 할라면 십분이다 이것이거든요. 내가 또 시킨 대로 안 할 수가 있습니까? 하하하.
그러기 때문에 요점만 들어서 얘기를 하겠습니다. 실은 우리가 불법 이러지만, 어디 불법이 일 년 이태만 됩니까? 적어도 수천 년 되지 않습니까. 그런데 요새 우리의 입처에서 생각을 할 때에 불법의 대의는 조금도 변해지는 것이 아닙니다. 머리털만치도 변해지는 것 아닙니다. 그런데 공부를 한다는 것은 이 불법이 작용을 해. 방편을 써. 사람도 있고 짐승도 있고 한데 주로 사람을 본위로 해서, 사람은 어떻게 해야 되느냐. 어찌 해야 본래의 그 자리, 영생한 그 자리를 알 수 있느냐. 방편입니다. 작용하는 방편. 이거를 알기 위한 것이 불교 공부 아닙니까? 사실로 우리는 지금 난 것도 아니고 죽은 것도 아닙니다. 여러분이 그렇습니다. 바로. 그런데 나는 났다. 나이가 많으니 지금 죽을 날이 얼마 남지 안 했다 이렇게 생각을 하는데, 그런 작용 밑에서 본래의 그 자리, 본래의 소식, 본래의 절대성 자리, 이 자리에서 우리가 이런 작용을 해서 어떻게 하면은 잘 살게 되느냐, 어떻게 하면 알게 되느냐. 이런 방편, 이걸 지금 공부하는 겁니다 바로.
그러하니 이 방편이 이전과는 달라져야 합니다. 그런데 어떤 걸 가만 보니 다를 수가 없어요. 사실은. 다를 수가 없긴 없는데 여러분들이 공부를 하는 분(分)으로서 가만히 생각을 해본다면 영 방편이 달라져야 되거든요. 그런데 구태의연하게 방편을 달리 안 하는 분들이 있어요. 그건 모르기 때문에 그런 겁니다. 실은 모르기 때문에 그런 건데, 방편을 달리 안 하는 사람들은 별 문제로 하고. 이전 어른들은 공부를 하는데 어떤 시대에 처해 있었느냐. 제일 첫째 우리가 사는 지구, 이것도 가도 가도 끝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위에는 하늘이다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요샌 그거 아니에요. 지구가 허공중에 떠 있는 도리를 압니다. 이전에 만약 우리가 사는 지구가 허공중에 떠 있다 이 도리를 알았다면 대오 견성한 사람입니다. 이만 저만한 견성이 아닙니다. 그런데 그런 분들이 좀 드물었죠. 그러나 일반인들은 가도 가도 끝없이 땅은 있다 이렇게 생각하고 그리 알았습니다. 그런데 요새는 중학교 일학년만 되면 벌써 지구가 허공중에 떠 있는 도리를 압니다. 그렇다면 여러분도 알 거 아니겠습니까? 그러면 여기에 대한 방편이 달라져야 되거든요. 요새는 우리 몸뚱어리 이것이 내의 소유물이 아니라는 걸 대개 압니다. 내의 관리물은 될지언정 소유물은 아니다 이걸 압니다. 많이 아는 건 아니에요. 공부하는 분들은 압니다.
왜 소유물이 아니냐. 소유물 같으면, 이거 내 물건 같으면 언제라도 내한테 있어야 되거든요. 어머니 뱃속에서 뚝 떨어졌어. 지금까지 자꾸 변하면서 가거든요. 그럼 그 때 내 몸뚱어리는 뭣이냐 말이여. 요새 몸이 아프면 병원에 가서 수술을 합니다. 서울 카톨릭 병원인가 거기선 말이죠 어머니의 콩팥을 아들에게 이식하지 않았습니까? 내 소유물이라 할 테면 이거 변하는 법이 없습니다. 그러나 관리는 해. 이걸 압니다. 요새 이걸 아는 것을 많지 않다는 그거 뿐이지 대개 아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렇다면은 아, 그렇구나. 나는, 이 몸뚱어리는 내의 소유는 아니다. 그럼 나는 뭣고. 이겁니다. 나는 뭣고? 몸뚱어리가 내의 소유물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이놈이거든요. 이놈이 뭣인지 나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니까 여기에 대해서 방편이 달라져야 됩니다. 우리 도반들이니까 이렇게 얘기합니다. 견성하는 것, 견성하는 것 쉽습니다. 내 이렇게 말합니다. 이거 남이 들어보이소. 여러분 바깥에 나가서 이런 말 하지 마이소. 욕 듣습니다. 미쳤다고 이래 합니다. 아무 것도 모르고 그거 미친 사람 말이다 이래 합니다. 이렇게 따져 들어가면 견성 안 할래야 안 할 도리가 없어. 이걸 가지고서 바탕을 삼아서 하는 얘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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