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각스님 금강경해

현각스님 금강경6-9

통융 2016. 11. 15. 21:29

6

 

 

'상을 떠난 적멸' 14장은 꽤 긴데요.

 

내용은 사실 아주 간단합니다.

 

바로 상에 집착하지 않는 것입니다.

 

상에 집착하지 않는 것입니다.

 

상에서 부처 자유로워지는 것입니다.

 

당신의 '''공포'등 모든 종류의 상으로 부터 말입니다.

 

모든 사람들은 느낌을 가지고 있고, 감정이 있고, 반응, 기억, 선입견,

 

믿음, 이해하는 능력이 있지요.

 

그런데 금강경은 여기서 이 모든 것들을 다 놓아버리라는 것입니다.

 

완전한 평화는 이런 머릿속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내려놓았을 때 얻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실 이 모든 것이 진짜가 아니거든요.

 

자 그럼 제가 빨리 읽어내려 가겠습니다.

 

아주 길지만 요점은 아주 간단하기 때문입니다.

 

 

 

 

"그 때 수보리가 이 경전을 듣고 그 뜻을 깊이 깨닫고는

 

눈물을 흘리며 부처님께 아뢰옵니다.

 

 

 

 

수보리는 자기 자신이 얼마나 자유로운 이미 얼마나

 

자유로운 자인지 깨닫고는 너무나 감사했습니다.

 

머릿속에 들어있는 모든 개념들을 내려놓으면

 

그는 이미 대 자유를 얻게 되는 것입니다.

 

위대한 이 가르침에 너무나 감사 할 뿐입니다.

 

예를 들어 한 직장인이 부자가 되기 위해서

 

뼈 빠지게 하루 종일 일을 하고 사는데,

 

부처님이 오셔서, '자 여기 너의 은행 계좌가 있다.

 

이미 너의 계좌에 1조원이 들어있구나.' 하시는 것과 같습니다.

 

누군가가 자신이 아주 가난한 사람인 줄 알고

 

살았는데, 부처님께서 그가 이미 빌게이츠 보다 부자라고

 

하시는 것과 같습니다.

 

~ 그리고 눈물을 흘리겠죠. 너무나 감사해서 말이죠.

 

부처님께서 진짜 돈을 줘서가 아니죠.

 

대신 부처님은 '야 멍청아, 니 계좌를 봐라.

 

너는 이미 부자인이야. 너는 이미 큰 부자라니깐,

 

그러니깐 그냥 다 내려놓아라~ 이미 다 갖추고 있느니라.'

 

그러자 수보리가 눈물을 흘리는 겁니다. 그리고 감격에 말을 잇습니다.

 

 

 

 

'드무신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 이렇게

 

깊고도 깊은 가르침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저는 옛 부처 얻은 혜안으로도 이런 가르침을 얻어들은 적이 없습니다.

 

'세존이시여! 만약 다시 어떤 사람이 있어 이 경전을

 

얻어듣고 신심이 청정하여 신심이 생겼다면,

 

마땅히 이 사람이 제일 드문 공덕을 성취했음을 알겠습니다.

 

세존이시여! 이 실상은 상[허상]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여래께서는 단지 그 이름이 실상이라고 하신 것입니다.

 

 

 

 

모두 다 내려 놓으라는 [방하착] 것입니다.

 

진리에 대한, 그리고 법에 대한

 

개념등 이 모든 것을 다 내려 놓으라는 말씀입니다.

 

대신 이런 모든 것을 우리가 이미 완전히 갖추고 있다는 것이지요.

 

그리고 바로 이것을 지혜라고 합니다.

 

지혜는 당신이 어떻게 얻는 것이 아니라, 이미 당신이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아주 심플합니다. 그리고 파격적입니다.

 

신도 필요하지 않고, 부처도 필요하지 않습니다.

 

당신은 이미 지혜 그 자체이기 때문입니다. 바보님들~~

 

수보리가 계속해서 말합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이제 이 경전을 얻어들어 믿고 이해하고

 

수지하는 데 어려움이 없습니다.

 

만약 이 후 오백 년 뒤에 중생이 있어 이 경전을 얻어 듣고

 

믿고 이해하고, 수지한다면, 이 사람은 제일 드문 사람입니다.

 

왜냐하면, 이 사람은 아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이 없기 때문입니다.

 

왜 그런가 하면, 아상은 상이 아니며, 인상, 중생상, 수자상도

 

상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당신의 어떠한 정신적인 문제도 정신과 의사도 필요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런 모든 정신병이 사실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당신의 공포와 화, 무지 등을 소멸시키는 데에 거창한

 

종교도 필요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런 것들이 사실은 다 없기 때문입니다.

 

본래 존재하지 않습니다.

 

 

 

'아상은 상이 아니며 인상, 중생상, 수자상도 상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일체의 상을 떠난 것을 부처라 하기 때문입니다.

 

 

 

 

일체의 상을 떠한 것을 부처라고 합니다.

 

좋고 나쁜 것을 내려놓는 사람을 부처라고 합니다.

 

정확한 것과 그렇지 않는 것을 내려놓는

 

사람을 부처라고 합니다.

 

순수한 것과 그렇지 않는 것을 내려놓는 사람을 부처라고 합니다.

 

좋고 나쁜 것~을 내려놓는 사람을 부처라고 합니다.

 

부처와 부처 아닌 것을 내려놓는 사람을 부처라고 합니다.

 

다 내려놓으면 당신이 이미 완전한 존재임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의 본성은 아무것도 필요치 않습니다.

 

있는 그대로 완벽합니다.

 

우주와 같이 이미 완전한 것에 어떻게 뭔가 더

 

필요하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이 점을 깨달으면 이미 완전함이 됩니다.

 

부처님이 수보리에게 말씀하십니다.

 

 

 

 

"그래 바로 그렇다! 다시 어떤 사람이 있어

 

이 경전을 듣고 놀라지 않고, 공포에 젖지 않으며, 두려움이

 

지속되지 않는다면

 

 

 

 

[대단합니다.]"

 

이 가르침을 듣고 놀래 자빠지지 않으면, 무서워하지 않으면...

 

어떤 사람들한테는... 아주 무서운 말이거든요.

 

이 가르침은 '가르침'이 아닙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무언가에 의지하려고 하죠.

 

'..... 난 내 종교에 의지해야 돼...

 

내 신, 내 믿음, 내 교회, 교리, ....

 

이제 그들은 진정한 가르침, 다른 종교와 스스로 구분 시키는

 

그런 류의 가르침이 아닌 진짜 가르침을 들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초조해 집니다.

 

걱정이 되겠죠.

 

그런데 만약 이 가르침을 듣고도 놀라거나 걱정이 되지 않는 다면,

 

어떤 사람은 '! 그래 그럼 모든 것이 공 하니깐,

 

아무 것도 없네~ 아무 것도 할 필요가 없잖아, 관심 가질 것도

 

하나도 없고 아무 노력도 안 해도 되겠네" 하고 합니다.

 

완전 잘못 이해한 사람이죠.

 

이 가르침을 듣고 이렇게 되지 않는다면, [공 에 집착하지 않는다면]

 

당신은 공덕과 불연[진리와의 인연]을 두루 갖춘 사람입니다.

 

당신은 이미 아주 좋은 업을 많이 지었거나 씨앗을 심어 놓은 것입니다.

 

아마도 전생부터 말이죠.

 

부처께서 말씀하십니다.

 

 

 

 

"여래가 말한 제 1바라밀[보시]은 제1바라밀이 아니라,

 

그것의 이름이 제1바라밀이기 때문이다."

 

 

 

 

~ 걱정하지 마세요.

 

그냥 내려놓으세요. 그리고 오직 행하십시오.

 

하늘을 볼 때는 그냥 파란 하늘을 보시고요.

 

선풍기 소리를 들을 때는 그냥 들으세요. ------

 

이게 전부입니다. 이게 바로 삶입니다.

 

이렇게 행하는 데에 따로 특별한 이해가 필요 없자나요.

 

단지 있는 그대로 보고, 듣고, 냄새 맡고, 맛보고, 만지고, 생각하세요.

 

그럼 이미 충분합니다.

 

그런데 모든 중생은 무언가에 집착하려고 하지요.

 

어떤 종교나 믿음의 체계, 도그마나 이데올로기를 말입니다.

 

어떤 수행~ 에 말이죠.

 

 

 

 

"수보리여! 인욕바라밀은 여래가 인욕바라밀이 아니라 말하니,

 

그것의 이름이 인욕바라밀이다.'

 

 

 

 

아주 아름다운 이야기가 나오는데요.

 

짧게 전하겠습니다.

 

부처님께선 당신의 전생에 대해서 이야기 하시는 데요.

 

인욕에 관한 일 말이죠,

 

전생에도 수행자[산티]로 사셨는데,

 

숲 속에서 참선을 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그 나라의 왕이 20명의 아리따운 무인들과 함께 소풍을 나왔더랬습니다.

 

숲 속에서 맛있는 음식과 함께 춤을 추며 파티를 열었는데요.

 

왕은 피곤해서 잠시 잠이 들었습니다.

 

그 때 여인들은 정말 멋지게 잘 생긴 한 스님이 명상을 하고 있는 것을

 

보고 다가와서 말을 걸었습니다.

 

그러자 수행자는 인욕에 대해서 설법을 하기 시작했죠.

 

인내에 대해서 말이죠.

 

그러자 여인들은 매우 기뻐했는데, 그때 왕이

 

잠에서 깨어나 이 광경을 보고 질투를 느꼈습니다.

 

그 잘생긴 스님이 여인들과 대화 나누는 것을 보고 큰 질투심이 난 거겠죠.

 

'어 그래? 니가 인내에 대해서 가르친다고?

 

그럼 내가 니 코를 잘라 버리면 어떻겠냐?

 

니 귀, 입술, 니 팔 모두를 다 잘라버리면 넌 어떨까?'

 

부처님은 그냥 가만히 듣고 있었습니다.

 

그러자 왕은 그의 코와 귀, 입술을 모두 잘라 버렸답니다.

 

그런데 부처님은 꼼짝하지 않고 오히려 왕을 귀엽게

 

여기셨다고 합니다.

 

 

 

 

'내가 이전에 가리왕에게 신체를 갈가리 찢길 때는

 

나에게 아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이 없었다.

 

예수님도 이렇게 십자가에 박혀 사람들에게 고문을 많이 당하셨죠.

 

왜 그런가? 내가 옛적에 신체를 갈가리 찢길 때 화가 나거나 원망하는

 

마음이 조금도 없었기 때문이다.'

 

'수보리여! 또한 내가 과거 오백생에 또한 인욕선인이었을 때도

 

모든 아상이 없었다. 그러므로 수보리여! 보살은.....

 

 

 

 

보살은.... 보살은.... 보살은.... 보살은.....

 

여러 모든 보살님들은 말이죠.

 

마땅히 모든 일체의 상을 떠나고, 모두 버리고....

 

자신 스스로에 대한 상을 말이죠.

 

'상을 떠나 아뇩다라삼약삼보리의 마음을 일으키고,

 

형체에 머물러 마음이 생겨서는 안 되며,'

 

당신 머릿속에서 이는 그 어떤 생각에도 집착하지 말라고 말씀입니다.

 

좋은 생각, 나쁜 생각, 행복한 생각, 슬픈 생각, 기가 막힌 생각,

 

걱정하는 생각, 초조한 생각, 불교 생각, 기독교 생각, 여자의 생각,

 

한국적인 생각, 미국적인 생각 등

 

그 어떠한 생각에도 의존 하지 마십시오.

 

이 모든 생각들이 진짜라고 믿지 마십시오.

 

왜냐하면 진짜가 아니거든요~

 

그게 얼마나 강력한 생각이라 하더라도 말입니다.

 

그런데 만약 진짜라고 생각하시면 그 순간 다른 이와 스스로를

 

분리시키게 됩니다.

 

오직 나만 이해할 수 있어, 넌 못해~'

 

 

 

 

이렇게 아상을 만들어서 세상의 고통을 참아낼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형체에 머물러 마음이 생겨서는 안 되며, 소리, , 촉감, 법에

 

머물러 마음이 생겨서도 안 되며, 마땅히 이렇게 머무름이

 

없는 마음이 생겨야 한다.

 

 

 

 

!

 

육조 혜능 대사가 바로 이 구절을 듣고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마음은 이렇게 머무름이 없이[집착] 간직해야 한다'는 구절을

 

듣고 말입니다.

 

만약 여러분이 침대 바로 옆에 딱 한 구절을 적어서

 

부쳐 놓으신다면, [꼭 그렇게 하시라는 것은 아니고요.

 

그런 거 좋아하시는 분들 많잖아요.]

 

금강경에서 가장 중요한 가르침이 바로 이 구절입니다.

 

아주 많은 분들이 이 구절을 듣거나 염불할 때,

 

! 깨달음이 터졌습니다. 이 경전을 한 문장으로 다시 말하면,

 

'마음은 이렇게 머무름이 없이 간직해야 한다.'

 

만지지 마세요, 머릿속에 드는 그 어떤 생각도 건드리지 마세요.

 

의존 하지도 말고요, 집착하지도 마십시오.

 

그럼 당신은 이미 대 자유인 입니다.

 

그냥 내버려 두세요.~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그 어떤 생각에도 집착하지 마세요.

 

누군가 이 구절을 염송할 때 육조 혜능이 듣고

 

! 깨달음을 얻으셨다니깐요. 아시겠죠?

 

만약 마음에 집착이 생긴다면....

 

단 한 생각에도 집착을 한다면, 그 어떠한 느낌이나 감정이나,

 

기억이나, 그 어떤 생각이라도 움켜쥐면 당신은

 

더 이상 안전하지 않습니다.

 

당신 스스로를 고통에 노출시켰습니다.

 

정말 대단한 가르침입니다.

 

 

 

 

'이런 까닭에 부처는 보살심을 형체에 머물지 않고

 

보시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부처님은 어떠한 댓가도 바라지 말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수보리여! 보살은 일체 중생의 이익을 위해 마땅히 이렇게 보시해야 한다.

 

 

 

 

당신의 큰 노력에 대한 고마움의 인사를 받거나 말거나 말이죠.

 

집착하지 마세요.

 

우리는 보시할 때 무엇을 준다고 말하지만, 사실은

 

그건 그들과 바로 하나가 되는 순간인 것입니다.

 

그런데 만약 '저 사람이 감사해 할까'라고 생각하면

 

그 순간 당신은 죽었습니다.

 

왜냐면 언젠가 그들이 감사해 할지 모르거든요.

 

그게 충분한 감사함의 표현인지 어떨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사실 보상을 하지 않을 경우가 훨씬 많겠죠.

 

어쨌든, 뭔가 바라면 고통을 받을 겁니다.

 

그러니깐 보시하는 마음에 그 어떠한 보상을 기대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단지 돈을 주는 것뿐이 아니라, 남을 위해서 뭔가 하는 것,

 

봉사를 할 때 말입니다.

 

아주 간단하지만 분명한 가르침입니다.

 

'마음속에 일어나는 그 어떠한 생각에도 집착을 하지 말아라!'

 

아주 간단합니다.

 

 

 

 

'수보리여! 여래는 참 진리의 말을 하는 자이고,

 

근본을 말하는 자이며, 궁극을 말하는 자이며, 허황된 말을 하지

 

않는 자이고, 거짓을 말하지 않은 자이니라.

 

수보리여! 여래가 얻은 법은 진리이지만 또한 진리가 아니니라.'

 

 

 

 

부처님이 얻으신 진리는 혹은 여러분이 방금 밖에서 들리는

 

공사소리나 옆 선풍기 소리를 듣는 진리의 경험은

 

그 진리는 진짜가 아닙니다. 그렇다고 가짜도 아닙니다.

 

그냥 듣기만 하세요. 그냥 보기만 하시구요, 그냥 냄새만 맡으시고요.

 

그냥 만지기만 하세요.

 

 

 

 

"수보리여! 만약 보살의 마음이 법에 집착해서 행을 한다면,

 

마치 사람이 어두운 곳으로 들어가 아무것도 볼 수 없는

 

것과 같으나, 만약 보살의 마음이 법에 집착하지 않고 보시를 행한다면,

 

마치 사람이 눈이 있어 밝은 햇빛아래 온갖 영체를 보는 것과 같다.'

 

 

 

 

테레사 수녀님 같은 분을 말하는 것이죠.

 

테레사 수녀님이나, 간디, 혹은 여러분 어머님들요.

 

당신의 어머님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당신의 어머님께서 당신을 위해 얼마나 많은 것을 주셨습니까?

 

여러분을 낳으시려고 얼마나 많은 고통을 겪으신 줄 아십니까?

 

죽음을 무릅쓰고 말입니다.

 

개인적인 시간도 없고 얼마나 힘 드셨는지 아세요?

 

여러분의 멍청한 입에 음식을 먹이려고 당신은 드실

 

시간도 없으셨어요. 여러분의 똥도 닦아주시고요.

 

그런데 아무 것도 바라지 않으십니다.

 

바로 진정한 보살이십니다.

 

 

 

 

"수보리여! 미래에 만약 선남자 선여인이 있어

 

능히 이 경전을 듣고 실천할 수 있다면 그는 머지않아 곧 여래가

 

될 것이다. 부처의 지혜로서 이들을 모두 보나니, 그들은 모두

 

한없는 공덕을 성취할 것이니라."

 

 

 

 

이 뜻은 부처는 부처를 본다는 말입니다.

 

부처는 부처를 봅니다. 바로 그렇습니다. 부처는 부처를 봅니다.

 

어떻게 아냐고요? 부처는 모두를 부처로 보는 지 어떻게 증명할 수 있냐고요?

 

불교에서는 이것을 증명할 수 있습니다.

 

부처는 부처를 본다는 말입니다. 자 보십시오.

 

!

 

이렇게 말입니다.

 

여러분 모두 이 소리를 들으셨죠?

 

부처는 부처를 봅니다. 여러분 모두 보셨습니다.

 

여러분 모두는 똑같은 경험을 공유했습니다.

 

여러분 모두는 방금 전 밖에서 들리는 공사소리를 들으셨습니다.

 

부처는 부처를 봅니다.

 

굉장히 쉽지요?

 

여러분도 듣고 저도 들었습니다. 부처는 부처를 보니깐요.

 

부처는 부처를 봅니다. 정말 아름다운 가르침입니다.

 

이 불성, 여러분의 경험과 제 경험은 완전히 똑 같습니다.

 

똑같은 경험, 똑같은 순간을,

 

똑같은 소리를[바보같이 더 말할 필요가 없겠죠.]들었습니다.

 

부처는 부처를 본 것입니다.

 

 

 

 

15, '이 가르침의 위대한 가치'로 넘어가겠습니다.

 

이 전장들의 내용이 다시 반복됩니다.

 

전에는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공덕은 스님이 되는 것이었지만,

 

사실 굉장히 대단한 일이지만요,

 

열심히 수행하고 진리를 깨닫는다면 말이죠.

 

바로 지금 이 순간을 믿은 다면 말이죠.

 

이것도 굉장하지만요.

 

부처님이 지금부터 설하시는 대승의 가르침은

 

'그래, 소승도 나쁘지는 않아, 그런데 좋지도 않지,

 

, 가장 위대한 공덕은 탕탕탕탕....

 

이 가르침을 깨달은 것이지.'

 

, 가장 위대한 공덕은 탕탕탕탕....

 

이 가르침을 깨달은 것이지.'

 

당신이 머리털이 있거나 없거나 상관없습니다. 이것이 가장 위대한 공덕이며,

 

가장 위대한 불[부처], [가르침], [승가]입니다.

 

아시겠죠? 아주 간단합니다.

 

 

 

 

수보리여! 만약 선남자 선여인이 아침에 몸을 희생하여

 

많은 보시를 하여도....'

 

 

 

 

매일 새벽에 일어나서 삼천 배를 하고, 모든 재산을 보시하고

 

도량[사찰]을 청소하고, 불쌍한 사람들에게 음식을 나눠주고,

 

수행을 하는 것 등 이렇게 하는 모든 보시들은 확실히

 

위해한 공덕입니다.

 

그런데 만약 이 가르침의 네 구 절 만이라도 깨닫는 다면,

 

그 정수를 말이죠.

 

이러한 선명한 경험을 한다면, 바로 이 순간의 경험을 얻는다면,

 

선명하게 보고, 듣고, 냄새 맡고, 선명하게 느낄 수 있다면,

 

이 순간의 이 모든 경험, 그러나 본래 공한 이 경험들을

 

분명하게 한다면 말이죠. 순수하고 순수하지 않은 것, 가깝고 먼 것,

 

불교와 기독교, 남자와 여자, 한국과 미국이란 이런 개념에서

 

벗어난다면, 오히려 단지 스님이 되는 것보다 더 낫다는 말씀입니다.

 

자 다음 구절은 더 재미 있습니다.

 

 

 

 

'수보리여! 요약해서 말하면, 이 경전은 불가사의 하고

 

헤아릴 수 없는 무한한~ 공덕이 있어...'

 

 

 

 

굉장합니다. 이 경전의 가치는 헤아릴 수 없습니다.

 

너무 위해합니다.

 

~~ [하늘을 보며] 이런 위대한 것이 아니라요. 정말 멋진 가르침입니다.

 

우주와 같이 무한합니다. 그래서 그 양을 헤아릴 수가 없지요.

 

 

 

 

수보리여! 누구든지 이 가르침을 얻은 자는 여래의

 

아뇩다라삼약삼보리를 짊어진 사람이다. 왜냐하면 수보리여!

 

만약 그가 좁은[결여된]교리를....'

 

 

 

 

흥미로운 대목입니다.

 

제한된 교리를 공부하는 자는....

 

'이건 좋은 거고 저건 나쁜 거야. 이건 순수한 거고,

 

저건 불순한 거야, 이건 옳고 저건 옳지 않아.'

 

이렇게 하면 천국으로 가고, 하지 않으면 지옥가지.' 잘 들어보세요.

 

 

 

 

"제한된 교리를 공부하는 자들은....'

 

제한된 이란 뜻은 '꼭 이렇게 믿어야 어디로 간다' 는 이런 뜻입니다.

 

이런 교리는 절대적인 [우주적인] 가르침이 아닙니다.

 

그런 작은 상자 안에 갇혀 있으면, 상자 안 밖에 볼 수 없습니다.

 

그런데 만약 상자 밖으로 나오면, 기독교 상자, 공화당 상자,

 

미국 스타일 상자, 현대적인 상자, 진보적인 상자나 보수적인 상자

 

등에서 말입니다.

 

이런 제한된 상자 안에 갇혀 이에 따라 모든 행동을 한다면,

 

이게 좋고 나쁘고, 믿어야 천당가고...

 

이런 것을 제한된 교리라고 하는 것이죠.

 

제한된 교리입니다. 스스로를 제한 시켜버리는 것입니다.

 

 

 

 

"만약 제한된 교리를 자라면 아견, 인견, 중생견, 수자견에 사로잡혀,

 

이 경전을 듣고 독송하지 못하여 다른 사람을 위해 이 가르침을

 

펼치지 못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제한된 종교를 믿는 자는 이것이지 저건 아니다.'

 

라는 식으로 가르침을 받습니다.

 

불교에는 '이것이지 저건 아니다.'라는 것이 일체 없습니다.

 

이건 불교적이고, 저건 불교가 아니지~ 불교는 이런 식으로

 

가르치지 않습니다. 우주적인[절대적인]진리이기 때문입니다.

 

우주 모든 것을 포옹하기 때문입니다.

 

만약 여러분이 아주 조금만 이해를 하셔도 방금 말한 내용을

 

아주 조금만 이해를 하셔도, 이것에 대해서 박사학위를 딸 필요 없어요.

 

제한된 종교와 우주적인 종교가 있음을 볼 수 있으면,

 

선과 악을 초월한 불교와 기독교도 초월한, 이 모든 것을

 

초월한 이런 가르침의 쌀 한 톨 만큼이라도 이해하신다면,

 

'~ 맞는 말 같아' 라고 느끼신다면, !

 

당신의 공덕은 믿을 수 없을 만큼 큽니다. 왜냐고요?

 

처음 이 가르침을 듣고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지금 아주 조금이라도 가슴에 와 닿으신다면, 아주 조금~~ .

 

그 뜻은 이 전 많은 생에 이 가르침을 공부하신 적이 있는 것입니다.

 

법문을 단 한번만 듣고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부처님이 말씀하시길.

 

'~ 말이 되긴 된다. 작은 상자 안에 갇혀서 좁은 소견을 가르치는

 

다른 종교들 하고는 뭔가 틀리구나.' 라고 느낀다면,

 

[부처님께서 말씀하시는 겁니다.]

 

당신은 전생에 이미 많은 공덕을 쌓은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이미 많은 수행을 하셨던 것입니다.

 

예를 들어 간단한 이야기를 하나 해 드릴게요.

 

제가 며칠 전에 홍콩에 있을 때인데요.

 

수학을 아주 잘하는 7살짜리 소년이 있었어요.

 

벌써부터 방정식을 알더라구요.

 

그래서 제가 물었습니다. '어떻게 벌써 방정식을 공부하게 되었니?'

 

라고 묻자, 모르겠어요. 어떤 수학 논리를 들어도 다 이해가 가요.

 

선생님이 가르쳐주시면, 왠지 모르게 벌써 다 배운 적이 있는

 

것 같이 느껴져요.'

 

전생이 있기 때문입니다.

 

모차르트도 보세요.

 

태어나자마자 바이올린을 켰잖아요.

 

아 죄송합니다. 바이올린이 아니라 하프시코드라는 건반악기죠.

 

조금이라도 이해가 가시면요. 축하드립니다.

 

여러분은 전생에 많은 공덕을 쌓으셨습니다.

 

사실 그거 자체로는 좋지도 않고 나쁘지도 않지만요.

 

수보리여! 어느 것이든 이 경전이 있다면 일체 세간의 천, , 아수라가

 

응당 공양할 것이다. 마땅히 알아야 한다.

 

그곳은 곧 탑으로서 모두 응당 공경하며, 에워싸 절하고,

 

온갖 꽃과 향을 뿌릴 것이다.'

 

이 뜻은~~

 

성스러운 사찰보다 성지보다, 어떤 사리탑이나 파고다보다,

 

또는 팔만대장경 보다 더 중요한 것이, 한 순간 당신이

 

'아하~ 무슨 뜻인지 알겠다~ 완전히 이해는 안 되지만.... 하고,

 

느끼는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우리 마음이 '~ 바로 이거다~'하고 열리는 그 곳이 진짜 성지입니다.

 

세상을 보세요. 이렇게 할 수 있는 사람이 참 드뭅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그를 종교의 작은 상자 안에서

 

나올 수 있는 지 말입니다.

 

작은 한국적 생각 상자, 작은 미국적 생각 상자,

 

우리당 이라는 생각 상자, 또 뭐가 있죠?

 

한나라당 생각 상자, 보수적인 생각 상자,

 

누구든지 이 상자 밖으로 나와 이 우주의 진리를 볼 수 있다면,

 

'좋고 나쁜' 것이 당신을 건드릴 수 조차 없습니다.

 

이렇게 볼 수 있고 행동 할 수 있는 당신이 성스러운 존재인 것입니다.

 

이런 사람이 너무나 드물거든요!

 

거의 불가능할 정도에요. 누가 이렇게 살고 있습니까?

 

뉴스를 보세요. 아무도 없습니다.

 

특히 종교인들이 그렇습니다.

 

이 경전은 바로 이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당신의 마음이 '~ 하고 열리는 그 순간이 참 드문 것이라고요.

 

개나 고양이 또는 다람쥐나 물고기는 못합니다.

 

당신이 그렇게 할 수 있다면, 바로 그 곳이 존경을 받을

 

만한 장소가 되어 버립니다.

 

 

 

 

자 이제 16장으로 넘어갑니다. 16장도 매우 쉽습니다.

 

아주 간단한 요점입니다. 그래서 빨리 진도를 나가겠어요.

 

이 경전이 나오기 전까지인 소승불교가 종교적인 관점에서 볼 때,

 

우리의 업은 수 많은 전생의 그것이 쌓여서 모인 것이라고 하고,

 

또한 수 많은 생을 거쳐 그 업을 소멸시킬 수 있다고

 

말을 합니다. 그리고 단계에 따라 업장이

 

소멸된다고 하죠.

 

3번 더 환생을 해야 한다고 말을 합니다.

 

다음에는 2, 다음은 마지막 한 번, 그리고는 더 이상 태어나지

 

않는 다고 하죠. 그리고는 열반에 든다고 합니다.

 

단계, 단계, 단계, 단계.....

 

그러나 이제 16장에서는 아주 흥미로운 가르침이 나옵니다.

 

 

 

 

부처님은 여기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가르침을 실천하면 업장을 소멸할 수 있다.

 

이 말은 단 한순간에 모든 업장을 소멸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업장은 단계별로 사라지지 않습니다.

 

어떤 단계를 가지고 있는 커다란 얼음덩어리와 같은 것이 아닙니다.

 

어마어마한 빙산 같이 수 십년이 지나야 녹는

 

그런 것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지금 이 순간, ! 이 소리를 듣는 바로 이 순간에는

 

아무런 업이 없습니다. 단계라는 것이 없어요.

 

이 순간 우리 모두는 똑같은 순간을 경험 햇자나요.

 

이 한 순간만은 모두 다 똑같은 마음이었습니다.

 

아무런 업이라는 것이 없었습니다.

 

 

 

 

다음으로 수보리여! 선남자 선여인이 이 경전을 배우고

 

마음에 간직하여 남을 위해 독송하였는데도 불구하고

 

그들에게 업신여김을 당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 사람은 전생에 지은 죄업으로 말미암아 지옥에 떨어져야 할

 

터이지만 이들의 업신여김을 당함으로써 앞 생의 죄업이 모두

 

소멸되어 위없는 아뇩다라삼약삼보리를 얻게 될 것이다.

 

 

 

 

그러니깐, 만약 여러분이 업의 공함을 깨달으신 다면,

 

만약 여러분이 업의 공함을 깨닫는 다면 업장은 모두

 

이미 사라졌습니다. 한 순간에 말입니다.

 

죄업, 무거운 업, 슬픈 업, 화내는 업, 혼란스러운 업,

 

초조하고 긴장하는 업, 욕망의 업, 공포를 느끼는 업 등,

 

바로 이 순간, 이 모든 업의 본래 공 함을 느끼신다면,

 

이미 다 사라진 것입니다.

 

이런 뜻입니다.

 

다시 말해서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지은 업을 다른 이들의

 

잘못으로 비난을 합니다. 나라 전체가 그러는 경우도 있지요.

 

이 세상에는 나라 전체가 잘못을 남에게 돌리기도 한다구요.'

 

나라 전체가 말입니다. 아주 쉬운 예가 바로 북한이고요.

 

그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의 이런 상황은 오직 미국과 일본 때문이야!

 

다 그들 때문에 우리가 이렇게 힘들게 사는 거지.

 

다른 것은 우리가 다 잘 하고 있는데 말이지. 다 저들 잘못이야!'

 

중동의 여러 나라들도 이렇게 생각을 합니다.

 

'우리 상황이 이렇게 안 좋은 것은 저 멀리 있는 나라들이

 

우리들에게 수년 전 나쁜 짓을 했기 때문이지.'

 

그래요. 어쩌면 그 말이 어떤 면에는 일리가 있습니다.

 

당연하죠.

 

그러나 그것은 진정으로 업을 이해하는 것이 아닙니다.

 

업이라는 것을, 내가 무언가를 말하면 내가 그 결과를 받는다는

 

것입니다. '자업자득'이죠.

 

유대 그리스도 전통에도 이런 속담이 있지요.

 

네가 심은 것을 네가 수확한다.'

 

우리가 수확하는 곡식은 오직 우리가 예전에 심은 것이 자나요.

 

'미스터 존스가 심은 것을 내가 수확한다고 말하지 않고,

 

내가 수확하는 것을...

 

! 내가심은 것을....

 

아이고 빨리 시차를 극복해야 겠네요.^^

 

아주 간단하죠. 이게 바로 업의 법칙입니다.

 

그리스도나 불교 전통 모두 같습니다.

 

이것을 통찰할 수 있으면, 이미 업장은 사라진 것입니다.

 

업의 어떤 효력이 사라지는 것이죠. 어는 정도는 말입니다.

 

여러분이 이 삶에서 경험하는 모든 것들은,

 

수확하는 그 어떤 것들은 얻고 경험하는 것들은,

 

'좋고~ 나쁜~ 경험'

 

힘들고 슬픈 경험, 바로 지금 우리가 경험하는 이 모든

 

것들은 오직 우리가 이 전에 심은

 

씨앗의 열매일 뿐이죠.

 

그러니깐, 다른 사람에게 잘못을 뒤집어씌우기보다

 

다른 나라나 다른 민족 또는 다른 단체에게 잘못을 돌리지 않고,

 

대신 업의 법칙을 이해한다면 이런 업장은 다 불타서

 

사라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다른 사람을 비난하게 되면 그 업장은 대신

 

더 커질 뿐입니다.

 

더 많은 업의 씨앗을 심는 것이죠.

 

극복하는 것이 아니라 더 크게 만드는 것이죠.

 

제 말을 믿지 마세요. TV를 켜보세요.

 

그리고 어떻게 돌아가는지 직접 한번 보세요.

 

사람들과 나라들 종교들이 다 그래요.

 

계속 업만 키우고 있자나요.

 

불교의 놀라운 점은 이런 업을 건들지 않습니다.

 

건들지 않아요....

 

1996년 누군가 우리 사찰을 불을 질렀는데도,

 

우리는 언덕을 내려가서 그들의 건물을 불 지르지 않았답니다.

 

건들지 않았어요.

 

대신 우리는 이 일을 겪고, '아 우리가 수행을 게을리

 

했나보다, 더 열심히 수행하자~'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10년이 지났는데도 아무도 우리 사찰에 불을 지르지

 

않았네요. 허허...

 

우리 방법이 먹혀 든 거죠.

 

, 정말 흥미로운 내용입니다.

 

지금 우리가 받고 있는 이 모든 업장에 대해서 그 어느

 

누구도 비난하지 마십시오. 그냥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

 

이미 여러분은 업장을 떠나 보내버리시는 겁니다.

 

그냥 떠나보내시는 것입니다.

 

그냥 떠나보낸다는 말은 업장을 덜 만든 다는 것입니다.

 

소승불교처럼 단계별로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이번 삶에 수행하고, 또 다음 생에 수행하고, 또 다음 생에

 

수행해서 단계별로 없애는 것이 아니라요.

 

한 순간에 바로 이 한 순간에는 아무 업이 없습니다. !

 

이 순간에는 아무런 업도 없습니다.

 

아주 간단하죠?

 

 

 

 

"수보리여! 내가 과거 한량없는 아승지겁 연등부처님

 

이전에도 팔백사천만억 나유타의 모든 부처님을 공양하고 받들어

 

섬김에 한 분도 빠뜨린 적이 없었다.

 

만약 다시 어떤 사람이 훗날 말세에 이 경전을 마음에

 

간직하고 독송하여 공덕을 쌓으면 나의 그것은 이 사람의

 

백분의 일, 천만 억 분의 일도 되지 못하며 어떤 셈의

 

비유로도 미치지 못할 것이다."

 

 

 

 

만약 이 가르침을 깨닫는 다면, 모든 것이 다 공 함을 안다면,

 

업도 공하고, 생각도 공하고, 욕망, , 무지 등 이 모든 것이

 

공함을 깨닫는 다면, 부처님을 수백억년 동안 섬기는 것보다

 

낫다는 뜻입니다.

 

정말 대단한 가르침이 아닙니까?

 

불교의 노예가 되라고 가르치지도 않고요.

 

종교적 의식에 노예가 되라고 하지도 않으며,

 

수행의 노예가 되라고 하지도 않습니다.

 

제가 아는 한 스님이 계신데요.

 

그 분이 어느 날 다른 선사님께 당신의 스승님에 대해서

 

얘기를 하신 적이 있어요.

 

~ 우리 스승님은 35년 동안 단 한 번도 결제[안거]

 

빠지신 적이 없거든요.

 

단 한 번도 동안거나 하안거를 빠뜨리신 적이 없어요.

 

35년이란 긴 시간동안 말이에요.

 

단 한 번도 수행을 놓치신 적이 없답니다. 라고 다른 큰스님에게

 

늘어놓았답니다. 제 스승은 참 위해하신 분이죠!

 

한 번도 수행을 하지 않으신 적이 없다니깐요.' 하시면서

 

소백산에 있는 이 큰 스님께 자랑했더랍니다.

 

그러자 큰 스님께선 아이고 미안해서 어쩌나~

 

'네 스승이 아직도 바로 이것을 탕!

 

깨닫진 못했다니 참 애석한 일이로구나.

 

그러니깐 내년에 또 한 번 결제를 해야겠네.

 

또 하고~ 또 하고... 애석하구료...'

 

그러니깐 이것은 결제에 관한 것이 아닙니다.

 

난 결제를 한 번 더 했어. ~

 

난 이 수행도 했고, ~ 한개 더-

 

난 이 레벨[경계]에 도달했지.

 

그는 아직 멀었고, 이런 것이 아닙니다.

 

벌써 지옥에 떨어진 것입니다.

 

엄청난 고통이죠. 더 이상 그건 불교가 아닙니다.

 

기독교는 그럴 지도 모르지요.

 

그러나 만약 여러분이 바로 이 순간의 본래 공 함을 깨닫는 다면,

 

35번의 100번의 500번의 결제가 따로 필요 없습니다.

 

아무것도 더 필요할 게 없습니다.

 

부처도 필요 없고, 신도 필요 없으며, 그 어떤 것도 필요 없습니다.

 

엄청난 가르침이지 않습니까? 대 자유의 가르침입니다.

 

부처님을 섬기는 것보다 더 낫다고 하니 말입니다.

 

그 어떤 종교가 이런 말을 합니까?

 

어떤 종교가 이런 말을 했다고 상상해 보세요.

 

신을 섬기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는데 그것은 네 이웃들을

 

돕는 것이다.' 라구요.

 

그 어떤 종교에도 이런 가르침을 볼 수 없습니다.

 

정말 엄청난 가르침이죠.

 

부처님은 '난 이렇게 보시를 해서 큰 공덕을 얻었지만

 

무수히 많은 부처를 섬겼지만, 네가 이 가르침을 지금 이 순간

 

깨닫는 다면, 네 모든 망상의 공 함을 말이지,

 

그건 내가 이 모든 부처님을 위해 한 일보다 더 위대한 일이니라~'

 

맘에 드세요? 놀랍습니다.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대자유의 가르침입니다.

 

진정으로... 당신을 위한 것입니다.

 

모두 다 당신에게 돌아가는 것입니다.

 

정말 멋집니다!

 

그 어떤 모양에도 의존하지 않고요, 어떤 구속도 없습니다.

 

당신이 잘한 일이나 잘 못한 일 등 그 어떤 것에도 구속 받지 않고,

 

 

7

 

저번 주에 16장까지 진도를 나갔는데요.

 

16장은 아주 중요한 내용이었습니다.

 

대부분의 종교는 우리가 지은 업장[또는 죄업]

 

오랜 기간의 수행을 통해서 천천히 없어진다고

 

가르치는데 비해서 부처님은 여기 16장에서

 

아주 위대한 가르침을 주시고 계십니다.

 

그것은 바로 그 어떤 죄나 고통도 1초 안에 사라지게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아주 중요한 가르침입니다.

 

바로 한 순간, 한 순간에 모든 죄가

 

[불교에서는 업이라고도 하고요.]

 

완전히 사라진다는 것입니다.

 

지금 여러분의 삶에서 겪는 모든 어려움은

 

단지 여러분 자신이 전에 지은 업에 의해서 생겨나는 것이지요.

 

아침에 일어났더니 허리가 아프다든지,

 

아니면 기침을 한다든지 머리가 아프다든지.

 

잘 관찰해 보시면 이런 것들은 전에 일어났던

 

일의 결과임을 알 수 있습니다.

 

어쩌면 지난 3일 동안 일하면서 커피를 너무 많이

 

마셨는데 오늘은 마시지 않아서 머리가 아플 수도 있겠죠.

 

그래서 갑자기 머리가 아픈 것이 아니라,

 

전에 있었던 일의 영향으로 발생하는 현상이겠지요.

 

그래서 지금 우리가 겪는 모든 일은 전에 일어났던

 

일의 결과인 것입니다.

 

아주 간단하죠. 이것이 불교의 가르침입니다.

 

원인과 결과 바로 인과의 법칙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위대한 점은 바로 이 결과가

 

한 순간에 사라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많은 단계나 수많은 세월이 지나서 또는 그 만큼

 

수행을 해야만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바로

 

한 순간 한 생각이 완전히 사라지는 그 순간,

 

한 업이 초래하는 그 영향도 사라지는 것입니다.

 

아주 흥미롭지요?

 

불교에서는 이렇게 바로 한 순간에 자유를 얻을 수 있습니다.

 

긴 시간이 아니라 바로 한 순간에 말입니다.

 

아주 간단합니다. 아시겠죠?

 

, 그럼 오늘은 17장부터 시작해보도록 하겠습니다.

 

 

 

 

"마침내 무아가 됨"

 

 

 

 

이 때 수보리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선남자 선여인 들이 아뇩다라삼약삼보리의

 

마음을 내고는 어떻게 마음을 머무르고 어떻게 스스로의 마음을

 

다스려야 합니까?

 

 

 

 

~ 아주 재미있네요. 수보리가 똑같은 질문을 2장에서 하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이번 질문은 사실 약간 다릅니다.

 

부처님은 이미 이에 대한 대답을 해주셨는데요.

 

수보리는 똑같은 질문을 다시 합니다.

 

약간 다르지만요.

 

 

 

 

"선남자 선여인들이 아뇩다라삼약삼보리의 마음을 내면 마땅히

 

[내가 일체 중생을 열반에 이르도록 제도하리라]고 마음을 먹으나,

 

일체중생을 다 제도하고 나서는[실은 한 중생도 제도한 바가

 

없다]고 생각해야 하느니라. 왜냐하면 수보리야!

 

만약에 보살이 아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이 있으면

 

곧 보살이 아니기 때문이다. 무슨 까닭이냐 하면

 

수보리야, 실은 아뇩다라삼약삼보리의 마음을 내는

 

법이라는 것이 사실은 없기 때문이니라.

 

~ 정말 대단히 흥미로운 가르침입니다.

 

수보리가 아주 솔직하게 질문을 합니다.

 

 

 

 

어떻게 깨달음을 얻을 수 있습니까?

 

어떻게 이 삶을 살아가야 하고

 

어떻게 마음을 다스려야 하나요?'

 

 

 

 

하고 묻지요.

 

그러자 부처님은 아주 흥미로운 대답을 하십니다.

 

 

 

 

"너는 모든 중생을 제도하리라는 이러한 큰 원을 세워야 한다.

 

그러나 네가 모든 중생을 제도했더라도, 사실은 아무도

 

제도 했다고 생각을 해서는 안 된다.

 

 

 

 

고 하신 것입니다.

 

재밌는 표정을 지으시네요. 여러분~

 

여기에 앉아 있으면 말이죠.

 

여러분께서 이해를 잘 하고 계신지 아니면, 완전히 저기 멀리서

 

헤매고 계신지 잘 보이거든요. 너무 재밌습니다.

 

그런데 진짜로 그렇습니다.

 

그러니까 수보리가 2장에서 질문한 내용과

 

첫 번째는 다른 점은, 2장에서는

 

 

 

 

"내가 중생을 모든 중생을 제도하지만, 사실은 아무도 제도 받은 적이 없다.

 

 

 

 

고 하시고 여기서는[보살과 부처는 사실 똑같은 것입니다만]

 

 

 

 

"보살이 중생을 제도하지만, 제도라는 것이 따로 없다."

 

 

 

 

고 하시는 겁니다. 재미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저번에도 말씀드렸지요.

 

정말 파격적인 가르침이라고요. 진짜 파격적이네요.

 

! 그러니깐 한 번 잘 들어보세요.

 

여기 젊은 분들이 많이 오셨는데요.

 

사랑에 빠졌을 때 기억나시죠?

 

사랑에 빠지면 모든 게 다 행복해 보이지 않나요?

 

내가 하는 일도 다 행복하고요. 베스킨로빈슨이라고

 

적혀있는 간판도 행복해 보이고요.

 

길거리에 오고가는 자동차들도 행복해 보이고요.

 

길거리에 불쌍한 사람들을 봐도 내 마음은 행복하잖아요.

 

어느 문짝에 묻어있는 진흙을 봐도 예술적으로 보이고 말이죠.

 

그러니깐 여러분이 행복하면 모든 것이 다 행복해 보입니다.

 

여러분들이 좋은 학교에 입학을 했거나 좋은 직장에 뽑혔을

 

때를 생각해보세요. 그 순간에는 모든 것이 다

 

행복해 보이지 않았어요?

 

온 우주가 여러분 눈에는 행복해 보입니다.

 

그런데, 시간이 좀 지나고,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게 되거나

 

애인과 이별을 하게 되면 옛날에는 편지로 이별을 전했는데,

 

요즘은 문자 메시지로 "이제 난 너 싫어 저리가라" 라고

 

쉽게 헤어집니다. "안녕~ 잘 가~" 문자 메시지 끝!

 

그러면 어제 봤던 똑같은 모든 것들이 다 슬퍼 보입니다.

 

어둡고 침울하게 느껴집니다.

 

"어 왜 베스킨로빈슨은 핑크색이야."

 

너무 싫어! "다 더럽고 지저분해." 어제 보았던 똑같은

 

것들이 오늘은 지저분하고 기분 나쁩니다.

 

그런데 뭐가 변했나요?

 

한개도 변한 게 없습니다. 우리 마음이 변하니까

 

온 우주가 다 변합니다. 그런데 사실은 아무것도 변한 게 없습니다.

 

무슨 말씀인지 아시겠어요?

 

불교의 가장 기본적인 가르침입니다.

 

"모든 것은 다 마음먹기에 달려있다."

 

모든 것은 다 마음이 만들어 낸다는 것입니다.

 

또 다르게 표현할 수 있습니다. 정말 놀라운 가르침이죠?

 

부처님은,

 

 

 

 

"모든 중생을 제도하리라고 마음먹어라.

 

그러나 그렇게 제도하더라도 아무것도 변한 것은 없다.

 

아무도 제도 받은 일이 없다."

 

 

 

 

라고 하십니다.

 

공간적으로도 설명할 수도 있습니다.

 

하늘에 해가 매일 뜨지요?

 

저기 뜰에 보이는 공간이 보이세요?

 

아침에 와서 한 번 보세요. 태양이 솟아오르면, 저 하늘은

 

파랗게 보입니다. 지금은 약간 노랗네요.

 

아니면 하얗거나요, 그런데 해가 지면 하늘은 노을빛이 되고

 

결국은 다시 검은 색이 됩니다.

 

그런데 이 공간은 전혀 변하지 않았습니다.

 

해가 뜨면, 공간이 이렇게 보이고, 해가 지면, 공간은

 

어둡게 보입니다. 그런데 이 공간은 단 한 번도 파래지거나,

 

노래지거나 하얗거나, 검지 않습니다.

 

우리 눈에는 변한다고 보이지만 빛이 생기면 색이 변해보이지만,

 

사실 공간은 변한 적이 한 번도 없는 것이죠.

 

우리 눈에는 변해 보이지만, 공간은 변한 적이 없습니다.

 

완전히 공합니다.

 

부처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고통과 열반[니르바나]

 

사실 본질은 같습니다.

 

죄나 구원 또한 그렇습니다. 본질은 모두 똑같습니다.

 

다만 모든 것은 마음먹기에 달려있는 것이죠.

 

모든 것이 다 마음으로 돌아오는 것입니다.

 

정말 대단한 가르침입니다. 아뇩다라삼약삼보리를 얻는 것이

 

아니고, 깨달음을 '얻는'것이 아니죠.

 

저 공간이 파란 색을 얻지 않듯이 말이죠.

 

단지 그렇게 '보일 뿐'이죠.

 

 

 

 

"만약 보살이 아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이 있으면

 

더 이상 보살이 아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수보리야,

 

사실은 아뇩다라삼약삼보리의 마음을 내는 법이 따로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니라."

 

 

 

 

깨달음으로 인도하는 어떤 특정한 한 가지 법이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부처님은 당신의

 

제자들이 하나의 길, 하나의 법, 하나의 가르침, 하나의 종교,

 

하나의 철학에 집착하는 것을 걱정하셔서 이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하나의 길이라는 것은 없다."

 

 

 

 

단 한가지의 깨달음만 존재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말입니다.

 

이 점을 아시면 모든 것이 다 길입니다. 모든 것이 깨달음이죠.

 

텅 빈 우주와 같이 말입니다. 모든 것은 다

 

마음먹기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아주 간단합니다.

 

아주 쉬운 가르침입니다.

 

만약 그래도 잘 이해가 안 가신다면, 저기 밖을 쳐다보십시오.

 

그러면 볼 수 있으실 겁니다.

 

하늘을 쳐다보시고 스스로 물어보세요.

 

[하늘이 정말 검은 색일까?]

 

밝을 때도 물어보세요.

 

[하늘이 정말 파란색일까? 아니야, 햇빛이 나면 밝게 보이고,

 

햇빛이 사라지면 공간은 어둡게 보이는 거야.

 

공간은 사실 변하지 않은 거야.]

 

죄와 열반, 순수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이 다 그렇습니다.

 

아주 쉽습니다.

 

오직 생각이 그런 차별을 만드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 우리가 이런 생각으로부터 자유로워

 

지도록 가르쳐 주시고 계신 것입니다.

 

 

 

 

"수보리야~ 여래가 연등부처님 회상에 있을 때, 법이 있어서

 

아뇩다라삼약삼보리를 얻었겠느냐?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 설하신 바에 따르면,

 

세존께서 연등부처님 처소에 계실 때 얻은 아뇩다라삼약삼보리의

 

어떤 법이 있어 얻은 것이 아니라고 알고 있습니다."

 

 

 

 

이 뜻은 단지 한 가지의 길만 있지 않다는 뜻입니다.

 

한 가지 가르침, 한 길, 한 종교 만 깨달음으로 갈 수 있게

 

하는 것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이게 바로 진짜 깨달음입니다.

 

정말 흥미로운 가르침 아닙니까?

 

여러분, 그러니까 볼 때 오직 볼 뿐! 들을 때 오직 들을 뿐!

 

맛 볼 때 오직 맛 볼 뿐! 이 경험은 한 가지 가르침,

 

한지가 법이 아닙니다.

 

보세요. 법문을 들으러 온 새가 뚜르뚜 뚜르뚜~ 우니까

 

여러분 모두 고개를 돌리시잖아요. 한국사람,

 

미국 사람, 프랑스 사람, 캐나다 사람, 모두 말이죠.

 

바로 이 것입니다.

 

부처님은 바로 이 점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Bird sound 와 새소리는 구분된 법이지요.

 

Bird sound 는 영어 법이고, 새소리는 한국어 법이죠.

 

그런데, '꾸르꾸~ 꾸르꾸' 바로 이 법입니다.

 

바로 그 고개를 돌리게 하는 바로 그 법입니다.

 

바로 이것이 이장의 요점입니다. 재밌네요.

 

여러분 모두가 지금 이 가르침을 증명하셨습니다.

 

 

 

 

"그렇다 바로 그러하다 수보리여!

 

실로 아무 법도 없이 여래는 아뇩다라삼약삼보리를 얻었다.

 

수보리여! 만약 어떤 법이 있어 여래가 아뇩다라삼약삼보리를

 

얻었다면, 연등불께서 나에게, 그대는 내세에 마땅히 부처가

 

되어 석가모니라고 불릴 것이다. 라고 말씀하시지 않았을 것이다.

 

실로 어떤 한 가지의 특별한 법이 없이 아뇩다라삼약삼보리를

 

얻었기 때문에 연등불께서 나에게 수기를 내리시면서,

 

내가 다음생에 마땅히 부처가 되어 석가모니라고 불릴 것이다.

 

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왜냐하면 여래란 곧 모든 법을 뜻하기 때문이니라."

 

 

 

 

그러니까 소리, 소음, 노래 소리, 새소리 등,

 

이 단어들은 모두 다른 법이고 다른 언어입니다.

 

'꾸루꾸 꾸루꾸' 이 소리에 대해서 설명을 하는 것은,

 

이 소리가 들렸을 때 고개를 획 돌리는 것이 어떠한 단어로

 

표현하는 것보다 낫습니다.

 

어떠한 가르침보다, 어떠한 표현 보다요. 여러분의 마음과 소리가 붐~

 

완전히 하나가 되는 것이죠. 절 안에 다른 특별한

 

법이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교회 안에 특별한 가르침이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대학교 안에 특별한 법이 있다고 생각하세요?

 

그것은 유일한 진리의 가르침이 아닙니다.

 

눈으로 보는 모든 것, 귀로 듣는 모든 소리,

 

코로 맞는 모든 냄새를 어떤 특정한 법이라고 말을 할 수는 없지만,

 

단지 우리가 ''이라고 이름 붙인 것일 뿐입니다.

 

 

 

 

"만약 어떤 사람이 여래가 아뇩다라삼약삼보리를 얻었다 말하더라도

 

수보리여! 실로 어떤 법도 없이 부처는 아뇩다라삼약삼보리를

 

얻었다."

 

 

 

 

, 여래라는 뜻은 '이와 같이 오다'라는 뜻입니다.

 

'이렇게 나타난다. ~' 라는 뜻이에요.

 

여러분 여래불은 보시고 싶으세요?

 

저 분은 음~ 하시네요.

 

진짜 여래불을 만나셨네요.

 

그 경험, 그 순간, 바로 그것이 여래입니다.

 

그렇게 붐~ 나타났죠. 여러분의 귀가 허~ 했을 때,

 

바로 그렇게요. 바로 그 법입니다.

 

만약 이 경험을 여래라고 부른다면 사실 그건 실수지요.

 

대신 여러분 눈에 나타날 때, 귀에 나타날 때, 코에 나타날 때,

 

혀에 나타날 때, 바로 그 경험이 그 어떠한 언어로

 

표현하는 것 보다 낫습니다.

 

그러니까 부처님은 이 진리의 경험들이 뭔가 따로 깨닫은 것이

 

있느냐? 라고 질문하시는 겁니다.

 

바로 이 '~ 이 깨달음을 얻습니까?

 

그러자 수보리는

 

 

 

 

"아닙니다. 이 것, 이 순간은 탕~

 

아무 것도 따로 얻지 않습니다. 무언가 따로 얻지 않습니다.

 

 

 

 

부처님은 '그렇다!' 왜냐하면 탕~ 이것은 이미 탕~ 이다.

 

저기 더 새도 알아들었네요. 너무 분명하죠.

 

'불교'를 이해할 필요도 없어요.

 

바로 저 새와 같이요. ~

 

이미 여래를 이해한 것입니다. 저 비둘기가 이미

 

여래불을 이해한 것이지요.

 

우리는 깨달음이라는 것을 따로 얻는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특별한 경험으로 체험하는 것이라고 말이죠.

 

'어디에 있나?' 하면서 참선 중에도 어디선가

 

따로 찾으려고 말입니다.

 

그런데 이미 여기 있습니다. 정말 대단한 가르침입니다.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파격적입니다. 그 어떤 종교의 가르침 보다,

 

파격적이라는 이 단어보다 더 파격적입니다. 정말 엄청나네요.

 

 

 

 

"수보리야, 실로 어떤 법이 없이"

 

 

 

 

이 탕~ 을 얻는 그런 법이 없는 것입니다.

 

어떠한 특별한 법이 없이도 그 순간은 그대로 여래입니다.

 

어려워요? 어려우시면, 다시 새를 법당 안으로 불러요죠.

 

 

 

 

"수보리여, 사람의 큰 몸과 비유해서 말할 수 있다.

 

그러자 수보리가 말했다.

 

세존이시여! 여래께서 몸이 크다고 해도 그것은 큰 몸이 아니며,

 

단지 그것의 이름이 큰 몸입니다.

 

수보리여! 보살 또한 이와 같다.

 

만약, 내가 마땅히 무수한 중생을 제도 하리라. 하고 말한다면

 

보살이라 불릴 수 없다.'

 

 

 

 

아주 쉽습니다. 방금 저 새가, '나는 그것을 경험할 것이다.'

 

라고 말하지 않았듯이요.

 

저 새는 '난 그 소리를 경험할 것이다.'

 

라고 말하지 않았잖아요. 그냥 알 뿐이었습니다.

 

그 순간, 그 소리 탕~ 과 하나가 된 것입니다.

 

이것뿐입니다.

 

그래서 부처님은 부처에 대해서 이야기 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부처님은 14가지의 질문에 대해서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14가지의 주제에 대해선 부처님은 항상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셨답니다. 그 중 8가지는 우주의 기원에 관한 것이었고요.

 

그 중 2가지는 생명의 기원에 관한 것이었는데요.

 

아무 대답을 하지 않으시고, 오로지...[침묵]으로 일관하셨습니다.

 

마지막 4가지는 여래에 대해서 였습니다.

 

누군가 '여래는 무엇입니까? 라고 물으면, 그럼 부처님은

 

말씀하셨지요. ....[침묵] 이렇게요.

 

재밌지요? 이것을 법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여러분 모두 지금 눈을 뜨시고요. 바로 앞에 있는 바닥을 쳐다 보십시오.

 

집중하세요. , , , , 마음 모두요.

 

과연 어떤 단어로 이 경험을 표현할 수 있겠습니까?

 

뭐라고 이를 붙일 수 있겠어요? 과연 이 경험에 대해서 뭐라고

 

말씀하실 수 있겠습니까? 묘사 할 수 없겠죠?

 

바로 이것을 여래하고 이름한 것입니다. 바로 부처입니다.

 

바로 이 경험이 타타가타[여래] 입니다. 너무 쉽지요?

 

아셨죠?

 

 

 

 

자 다음 장, 18장입니다.

 

이 금강경은 정말 명료합니다. , 어렵지도 그렇다고 그리 간단하지도

 

않지만, 정말 분명합니다.

 

바로 이 순간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인류의 종교 역사에서 가장 파격적인 가르침입니다.

 

 

 

 

[18, 어떠한 상태의 마음도 모두 한 마음이다.]

 

 

 

 

수보리야, 그대 생각은 어떠하니?

 

여래에게 육안이 있느냐?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여래에게 육[인간]안이 있습니다.

 

여래께서 천안이 있느냐?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여래에게 천안이 있습니다.

 

여래에게 혜[지혜]안이 있느냐?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여래에게 혜안이 있습니다.

 

여래에게 법안이 있느냐?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여래에게 법안이 있습니다.

 

수보리야, 그렇다면 여래에게 불[부처]안이 있다고 생각하느냐?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여래에게 불안이 있습니다.

 

 

 

 

자 아주 쉽습니다.

 

여러 가지 종류의 안[]이 있습니다.

 

다섯 종류의 안이라고도 하는데요.

 

사실 별 상관은 없습니다.

 

관세음보살, 자연을 그대로 보는 눈을 뜻합니다.

 

'부처는 인간의 눈을 가지고 있는가?

 

부처님은 인간의 눈을 가지고 계십니까?

 

아주 재밌네요. 만약 당신이 크르스찬이라면,

 

여기에 많은 크리스찬이 오는 것으로 제가 알고 있는데요.

 

똑같이 질문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인간의 눈을 가지고 있나요?'

 

대답하기 아주 쉽습니다. 보이시죠? 아 다행이네요.

 

~ 신은 인간의 눈을 가지고 있군요.

 

부처도 인간의 눈을 가지고 있군요.

 

다 보셨잖아요? 저 불상은 무슨 색깔입니까?

 

무슨 색이요? 더 크게요- 저 불상은 무슨 색이죠?

 

무슨 색? 금색.

 

모두 피곤한 부처님들이신가 봐요. 여기 계신 부처님들

 

모두 커피 좀 드셔야 겠어요.

 

불상은 금색이죠? 그러니까 부처님은 인간의 눈을 가지고 계시네요.

 

아주 쉽죠? 금색을 보셨잖아요.

 

, 다음입니다.

 

 

 

 

"여래에게는 천안이 있는가?"

 

 

 

 

Divine 이란 대단한 것이 아니라 형상을 제대로

 

볼 수 있는 눈이라는 뜻이죠.

 

참선을 많이 하시면 얻을 수 있는 눈입니다.

 

저 겉모습만이 아니라, 생각들 까지 모두 볼 수 있는 눈을 말합니다.

 

 

 

 

"네 여래께선 천안이 있으십니다.

 

여래는 지혜의 눈을 가지고 있는가?

 

 

 

 

공함을 아는 눈을 말합니다.

 

공함을 보는 눈입니다.

 

 

 

 

네 여래께서는 공함을 관하십니다.

 

그럼 여래는 법안이 있는가?'

 

 

 

 

법안이란 중생을 자유롭게 할 줄 아는 눈입니다.

 

중생을 제도시키는 지혜의 눈입니다. 보살의 눈이지요.

 

, 여래께서는 법안, 중생을 제도시키는 눈을 가지고 계십니다.

 

마지막으로요.

 

 

 

 

여래에게 불안이 있는가?

 

 

 

 

이 뜻은 불이를 뜻합니다. 둘이 아니라는 뜻이죠.

 

그것은 탕~ 어떤 사람은 허~ 하고 고개를 드시네요.

 

네 여래께서는 그 불안을 가지고 계십니다.

 

아주 명료합니다.

 

다 한 가지 뜻입니다. 똑같은 눈이지요.

 

실상을 관할 줄 아는 눈입니다.

 

그런데 만약 마음을 비우면 보이지만 마음이 복잡하면, 생각을

 

따라가고, 의견에 집착하고, , 욕망, 무지, 공포, 불안,

 

질투하는 마음이 일어나면, 실상을 바로 불수가 없습니다.

 

저 벨소리 들리시죠? 저 소리를 듣는 바로 그것입니다.

 

그 귀가 당신의 인간의 귀이자 부처의 귀입니다.

 

저 기침 소리 콜록 콜록~ 을 듣는 바로 그것이요.

 

인간의 귀이자 곧 그것이 불상 입니다.

 

이젠 저렇게 들리네요.

 

그러니깐 저 소리를 들을 이 귀....

 

정말 신비하게도 순간 순간 순간 아주 분명하게 선명하게

 

들립니다. 거울과 똑 같습니다.

 

유리가 아니라 유리 밑에 보이는 그 그림이 아니라,

 

여러분 혹시 거울을 깨뜨려 보신 적이 있으세요? 유리인데요.

 

유리 밑에 뭔가 하나 더 있잖아요.

 

유리도 아니고 그 뒤의 것도 아닙니다.

 

두 개가 하나로 가능합니다.

 

바록 그 하나가 되었을 때 모든 사물을 있는 그대로

 

비출 수 있는 것입니다. 아시겠죠? 어렵지 않은 내용입니다.

 

 

 

 

"수보리여! 그대 생각은 어떠한가?

 

갠지스 강의 모래에 대해서 내가 가르친 적이 있는가?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모래에 대해서 가르치신 적이 있습니다.

 

그래 맞다 수보리야,

 

그대 생각은 어떠한가? 갠지스 강의 모든 모래 수만큼의

 

갠지스강이 있고, 이 모든 갠지스강의 모래 수만큼

 

부처의 세계가 있다면, 정말 그 수가 많지 않겠는가?

 

아주 많습니다. 세존이시여! "

 

 

 

 

그러자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그대가 생각하는 모든 국토에 사는 모든 중생의 갖가지

 

마음을 여래는 모두 알고 있다. 왜냐하면 여래가 말한

 

마음은 마음이 아니라 단지 이름이 마음이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수보리여, 과거의 마음은 얻을 수 없고, 현재의

 

마음에도 머물러 있을 수 없으며, 미래의 마음도 붙잡을

 

수 없기 때문이니라."

 

 

 

 

이 말이 무슨 뜻이냐구요?

 

~ , 고개를 딱 드시네요.

 

바로 이 뜻입니다. , 너무 어려워요?

 

지금 이 순간으로 돌아가라는 것뿐입니다.

 

아무 형체 없는 바로 이 순간으로요.

 

이 순간만이 바로 여러분의 삶이니까요.

 

보고 듣고 말하고 느끼는 바로 이 순간입니다.

 

이 경험을 마음, 의식, 부처, 여래, 타타가타[여래]

 

그리스도성[여러분이 크리스챤이라면요], 어떤 이름으로

 

표현하든 상관없습니다.

 

그러니까 과거의 마음도 붙잡을 수 없고, 현재의 마음도 붙잡을 수 없고,

 

미래의 마음도 붙잡을 수 없습니다. 오직 지금!

 

~ 이렇게 들릴 뿐입니다.

 

바로 이렇게요. '크크음~ 이렇게요.

 

지금 경험하는 바로 이것이 여러분의 삶입니다.

 

너무 심플한 거예요.

 

모두가 다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고 생각하지만요.

 

특별한 방법이나, 특별한 지혜, 특별한 경험, 또는 특별한 깨달음이

 

있다는 말이죠. 또는 특별한 진리나, 신이나, 부처가 저기 멀리에

 

있다고, 또는 나중에 나타날 거라고 말이죠.

 

그런데 이 파격적인 법문은 오직 지금 이 순간으로 돌아오라고 합니다.

 

이 순간은 시간과 공간을 이미 초월해 있으니, 여기서 살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여래입니다. 바로 여래입니다.

 

바로 여기! 지금 이 순간 입니다.

 

~ ~ [박수소리, 소음] 바로 이 경험이요.

 

이것이 바로 여래지요.

 

아직도 이해가 안 가시는 분이 계시군요. 걱정 마세요.

 

지금까지 읽은 내용 다 잊어버리시구요. 그냥 다시 이 순간으로

 

돌아오시면 됩니다. 이 경전은 단지 과거도 아니고 현재도 아니고

 

바로 이 순간으로 탁 탁 탁 탁~ [목탁소리] 이 경험이요.

 

적게 얘기할수록 더 완벽하지요. 탁 탁 탁....

 

굉장히 간단합니다. 여러분이 이렇게만 사실 수 있으면,

 

지금 목탁 소리를 듣듯이 자유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당신 제자들에게 어린아이처럼 되라고

 

하신 것처럼 말이죠.

 

이것이 바로 여래입니다. 여래불입니다.

 

이와 같이 오는 부처입니다. 이렇게요.

 

~ 지금 쯤 너무 감격해서 춤추시는 분이 있을까 기대했는데....

 

다음 주에는 있겠죠.

 

 

 

 

19장입니다.

 

역시 어렵지 않습니다.[오직 절대적 현실뿐이다.]

 

오직 절대적인 현실 밖에 없다. 오직 절대적인 현실 뿐.

 

절대적 현실, 절대적 현실뿐이래, 그게 뭐야?

 

내가 과연 어떻게 절대적 현실을 깨달을 수 있을까?

 

목탁소리 들리시죠?

 

여러분의 절대적 현실입니다.

 

이 분, 저 분, 저 분 모두요.

 

이 말은 그 어디도 아닌 여기가 바로 여러분의 삶입니다.

 

너무 심플해서 지겨워지기 까지 하네요.

 

오늘 열 장을 한꺼번에 다 나갈 수도 있겠네요.

 

왜냐면 더 이상 아무 말도 필요 없으니까요. 오직!

 

어른들에게 걸음마를 가르치는 것 같네요.

 

[딱 딱 딱~~] 바로 이겁니다.

 

이래서 불교에는 엄청난 신도들이 몰려들지 않는 것입니다.

 

이런 진리를 어떻게 다른 말로 속여서 더 재미있게

 

만들 수 있겠습니까?

 

이해하느냐 못하느냐는 진정으로 여러분에게 달려있는 것이죠.

 

 

 

 

"수보리여! 그대 생각은 어떠한가?

 

만약 어떤 사람이 있어 삼천대천세계를 가득 채운

 

칠보로써 보시한다면, 이 인연으로 인한 복덕은 많다고 할 수

 

있겠는가?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그 사람은 많은 복덕을 얻을 것입니다.

 

수보리여! 그런데 만약 그 복덕이 진짜 있는 것이라면,

 

여래는 복덕이 크다고 말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복덕이라는 것이 사실은 본래 없는 것이기에

 

여래는 복덕이 많다고 말한 것이다."

 

 

 

 

좀 어렵게 들리시죠?

 

그런데 잘 보시면 단지 복덕에 관해서 말하는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복덕이요.

 

선한 일을 많이 함으로서, 남을 돕는 다든지, 굶주린 사람에게

 

음식을 준다든지, 병든 사람을 간호하는 등의 그런 보시를

 

함으로써 얻는 보덕, 인과응보는 정말 큽니다.

 

어마, 어마 하게 커요. 그렇지만 공합니다.

 

텅 텅 비었어요. 우리가 복덕에 집착을 하니깐 부처님이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난 얼마나 얻었지? 얼마나 얻었을까?

 

이 보시로 난 얼마나 좋은 일을 한 거지?

 

내 영적 은행 계좌에 얼마나 많은 복이 쌓였을까?

 

하는 그런 마음 말입니다.

 

얼마나 많은 복을 지었나? 복을 많이 지었으니까

 

기분이 좋아져야겠지? 수행도 많이 하고 좋은 일도 많이

 

했으니까 내 기분이 좋아져야돼! 라고

 

생각하는데, 여기서는 그런 복이 다 공하다고 하네요.

 

공하다는 말은 사라졌다는 말이 아닙니다.

 

단지 공하다고[가질 수 없다고] 말입니다.

 

공 하니까 진정 대단하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만약 어떤 형체가 있다고 하면, 1파운드, 2파운드....

 

하면서 잴 수 있는 말이죠.

 

'당신은 2파운드의 복을 얻었는데, 저 분은 20파운드의 복을 얻었네요.

 

, 당신은 좋은 일을 했으니까 100파운드의 복을 얻었습니다.'

 

이런 복덕이 그 양을 잴 수 있는 것이라면, 법문이 끝나면

 

여러분들이 여기 이 보시함에 많은 보시금을 내고 가시겠지만요.

 

우리 스님들은 가난하니까요. 만약 복덕의 무게나,

 

어떤 모양이 있다면, 여러분들은 그 양을 재기 시작할 것입니다.

 

'저번 주에는 100만원을 보시했는데 50파운드의 복을 받고,

 

이번 주는 십만 원 밖에 안했는데 100파운드의 복을 받았네.

 

왜 다르지?

 

이런 식으로 복덕을 재시면 안 됩니다.

 

복덕은 ''해서 대단한 것이니까요.

 

없습니다. 시작도 없고 끝도 없이 공하기 때문에

 

위대한 것입니다. 정말 좋지요? 좋아요.

 

시간과 공간에 구애받지 않아서도 좋습니다.

 

좋아요. 복덕은 공 합니다. 그래서 대단합니다.

 

왜냐구요? 시간과 공간에 구애받지 않으니까요.

 

여러분이 가진 어떤 것도 시간이 지나면 변하고 결국 사라지구요.

 

오고 가고요. 크고 작고구요.

 

신형이, 구형이고, 그러나 진짜 복덕은 시간이나

 

공간을 초월했습니다.

 

그래서 대단한 것입니다. 이해가 되세요?

 

이해가 안 되시면, 저 목탁 소리를 잘 들으십시오.

 

그게 가장 위대한 복덕입니다.

 

 

8

 

, 그럼 제 20장입니다.

 

이 장은 좀 더 얘기를 많이 해도 될 것 같습니다.

 

"형상으로 차별하면 안 된다."

 

매우 중요한 가르침입니다.

 

불교도이건 크리스챤이건 간에 이 점은

 

그 어떤 종교인이나 또는 모든 이에게 매우 중요한 가르침입니다.

 

 

 

 

"수보리여, 그대 생각은 어떠한가?

 

부처를 색시[완벽한 몸]을 갖춘 존재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여래를 완벽한 몸을 갖춘 존재로 보아서는 안 됩니다.

 

여래께서 말씀하신 완벽한 몸은 완벽한 몸이

 

아닙니다. 단지 그 이름이 완벽한 몸입니다.

 

수보리여, 그대 생각은 어떠한가?

 

여래를 모든 상을 완전히 갖춘 존재로 볼 수 있겠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여래를 모든 상을 완전히 갖춘 존재로

 

보아서는 안 됩니다. 왜냐하면 여래께서 모든 상을

 

갖추었다고 하신 것은 모든 것을 갖춘 것이 아니라

 

단지 그 이름이 다 갖춤이라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 매우 중요한 내용입니다.

 

여러분 한국의 산에 올라가 보시면, 사람들은 어떤

 

큰 바위를 보고 부처바위라고 하지요.

 

또는 관세음보살 바위라고 하던가요?

 

', 왜요? 하고 제가 물으면,

 

보세요, 부처님 얼굴처럼 생겼잖아요.

 

그래요? ! 새벽 4시에 해가 뜰 때 옆에서 보시면

 

영락없이 부처님 얼굴이거든요.'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그 부처바위 에 열심히 기도합니다.

 

부처 바위에요.

 

제가 옛날에 살았던 절에도 이런 바위가 있었는데요.

 

사람들은 그래서 그 절이 다른 절보다 훨씬 특별한 절이라고 하더군요.

 

', 정말요?'

 

', 이 절은 정말 특별한 곳이라니까요.'

 

'왜요?' '저 바위 보이시죠?' '.'

 

'바위를 잘 보시면, 부처님이 기도하시는 모습이잖아요.

 

저기 귀도 보이구요. 저게 빰이구요, 손으로 합장하고

 

있는 모습도 보이잖아요.'

 

', 그럼 저 부처님은 무엇을 위해 기도하고 계세요?'

 

부처는 이미 부처인데, 이미 모든 것과 하나가 된[여래] 것인데,

 

뭘 위해서 부처님은 기도를 하고 계신 걸까요?

 

신이 기도를 하고 있다는 말과 비슷하겠죠?

 

그런데 신은 이미 신 자체잖아요.

 

왜 기도를 하는 걸까요?

 

정말 흥미롭습니다.

 

사람들은 무언가를 부처로 만듭니다.

 

그 말은 다른 것은 부처가 아니게 되는 것이죠.

 

''을 만들게 된 것입니다.

 

이스라엘 같은 곳을 신성한 곳으로 만들구요.

 

다른 곳은 신성한 곳이 아니게 되는 것이죠. ''을 만드는 것입니다.

 

진정한 불교의 가르침은 여래입니다. 여래!

 

'불이' 두개가 아니라는 것이죠. 이 경험, ~ 은 둘이 아닙니다.

 

그대로 완전합니다.

 

완벽하게 있는 그대로 완전합니다.

 

이 순간을 경험하는 것 자체가 이미 완벽한 것,

 

~ 바로 부처입니다.

 

또는 신이라고 할 수도 있구요, 뭐라고 부르는 것 자체가

 

사실은 실수지만요. 꼭 이런 부처바위 이야기 말고,

 

다른 종교에도 이런 일이 많습니다.

 

제가 종종 이야기하곤 하는 이야기인데요.

 

2년 전 메사추세츠주의 보스톤에서 있었던 일이었어요.

 

그 곳에는 아주 큰 병원이 있는데요.

 

3층 한 유리창에 성모 마리아 그림자가 비춘 거예요.

 

그래서 사람들은 그게 바로 성모 마리아가 오신 거라고 착각하고

 

꽃을 올리고 울면서 기도하고, 휠체어를 타고 와서 '제발~'

 

하면서 주야를 안 가리고 계속 기도를 하는 사건이 있었습니다.

 

남미, 캘리포니아, 캐나다 등 세계 각지에서 기도를 하는 사건이

 

있었습니다. 남미, 캘리포니아, 캐나다 등 세계 각지에서 사람들이

 

이 성모마리아 유리창을 보러오기 시작했죠.

 

작년에 혹시 이 뉴스 읽어보셨어요. 치즈 샌드위치에 예수님 얼굴이

 

나타났다는 뉴스요. 혹시 이 뉴스 읽어보셨어요?

 

, 도대체 누가 한국 매체를 이끌어 가는지 모르겠습니다.

 

작년 미국에 엄청나게 유명한 사건이 벌어졌어요.

 

어떤 여자가 치즈 샌드위치를 만들려고 고기를 구워서 한 입

 

베어 물었는데요. 그 모양이 예수님 얼굴이랑 똑같이 생겼다는

 

것이에요. 저를 믿지 마시고요, 인터넷에서 찾아보세요.

 

구글닷컴 가셔서 '예수 치즈 샌드위치'라고 쳐보세요.

 

'jesus face sandwich' 바로 나올 겁니다.

 

그리고 이 아줌마는 그 샌드위치를 경매시장에 내놨는데요.

 

잘 기억은 안 나지만 10만 불인가에 올려놓은 거예요.

 

이 샌드위치가 예수님의 진짜 얼굴처럼 생겼다고 말이예요.

 

정말 미쳤습니다. 사람들이 점점 미쳐가고 있는 것 같아요.

 

저 하늘 위의 구름을 보고, , 호랑이다.

 

, 지금은 거북이네, 지금은 코끼리다 하는 것과 같지요.

 

모두 생각이 만든 허상입니다.

 

크리스찬이 그 유리창을 보면, '' 성모 마리아다. 하겠지요.

 

불자가 보면 '아니야! 관세음보살이야.' 할 수도 있겠죠.

 

그러니까 아무것도 만들지 마십시오.

 

, 들어보세요.

 

 

 

 

"수보리야, 어떻게 생각하느냐?

 

진짜 부처는 완벽한 몸을 갖추고 있다고 생각 하느냐?

 

부처와 같이 생긴 몸이라는 것이 있느냐?

 

저 뒤에 있는 것처럼?'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부처를 모든 상을 다 갖춘 존재로

 

보아서는 안 됩니다. 왜냐하면 부처는

 

 

 

 

[이와 같이 있는 그대로 나타나는 여래는] 부처라고 하는 것이

 

어떤 특별한 모양으로 생겼겠습니까?

 

이와 같이 나타나는 것이 어떤 특별한 모습으로 정해져 있냐구요?

 

진짜 부처, 진짜 신, 진짜 명성은 어떤 특정한 모양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이것이 바로 이 장의 가르침입니다.

 

그러니까 진짜 부처를 보시고 싶으시면, 부처를 버리십시오.

 

''도 버리시고 모두 다 버리세요.

 

그리고 볼 때 볼 뿐, 들을 때 들을 뿐, ~

 

냄새 맡을 때 맡을 뿐, ~

 

맛 볼 때 맛 볼 뿐, 제 장삼이 여기 계신 어떤 분들 보다

 

더 부처를 잘 이해하고 있네요.

 

제 장삼은 선풍기 부처를 잘 이해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 어떤 아이디어도 만들지 않구요.

 

'이것이다.' '저건 아니다' 라는 말도 않구요.

 

바람이 불면 바람 따라 흔들립니다.

 

잘 보이시죠? 전혀 어렵지 않지요?

 

우리의 마음도 이와 같습니다.

 

그런데 부처에 대한 상[아이디어]을 만들거나, 신에 대한

 

상을 만들거나, 이런 상, 저런 상, 한국 상, 미국 상, 보수 상,

 

진보 상, 여자 상, 순수한 상, 더러운 상 등 이런 상을 만드는

 

즉시, 더 이상 여래도 아니고 부처도 아닙니다.

 

정말 쉽지요? 인터넷 야후나 구글닷컴에 들어 가셔서

 

[제말을 믿지 마시구요. ] 'jesus tree image' 라고 쳐 보세요.

 

예수와 비슷한 모양의 나무가 있다고 말이죠.

 

, 예수님이다. 저 나무에 예수님이 들어 가셨어! 꾸꾸~ 꾸꾸~

 

그러니까 이 가르침은 이런 상을 모두 깨는 굉장히 파격적인

 

가르침입니다.

 

진짜 부처를 만나고 싶으시면 아무 것도 만들지 말고, 부처를

 

따로 다른데서 찾지 말라는 것입니다.

 

우리 선불교에는 이런 말이 있습니다.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여라! 부처에 대한 어떠한

 

[모양이나 아이디어]은 더 이상 진짜 부처가 아닙니다.

 

진짜 부처가 꼭 저렇게 생겨야만 하는 것이 아니지요.

 

그러니까 여기에 수많은 부처들이 있는 것입니다.

 

불교는 정말 특별한 방법으로 가르치고 있습니다.

 

많고 많은 부처는 결국 '부처'라는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여기 수백 수천의 불상에 있지요? 한국의 어떤

 

절에는 100만 불전이라고 하는 법당도 있는데요.

 

100만 불상의 뜻은 '부처'라는 것이 따로 없다는 것입니다.

 

, 정말 흥미롭지요? 불교에서는 이렇게 하나의

 

부처로 온 우주에 가득 채웁니다.

 

학문적으로 말하면, 부처라는 상을 분해시켜 버렸다고

 

말할 수 있겠지요.

 

부처가 저 뒤에 있는 것처럼 생겼다고 생각하셨다면,

 

착각하신 겁니다.

 

저건 아이들에게나 필요한 이미지일 뿐입니다.

 

진짜 부처는 볼 때, 들을 때, 냄새 맡을 때, 맛볼 때, 느낄 때,

 

있는 그대로 경험하는 것이 바로 부처입니다.

 

'이와 같이' 경험하는 여래입니다.

 

이와 같이 보고, 이와 같이 듣고, 이와 같이 냄새 맡고...

 

이것이 부처입니다.

 

이 진리를 보여드리기 위해서 이 주장자를 사용합니다만,

 

이것은 다지 이런 경험을 여러분께 보여 드리기 위해 잠시

 

사용하는 막대기일 뿐이지요.

 

여러분은 보고, 듣고, 냄새 맡고 이런 경험들에

 

너무 익숙해져서, 이 경험을 자체가 바로 부처인지를

 

느끼지 못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도 사실 부처라고 말하면 실수입니다.

 

그래서 만약 여러분께서 제게 부처에 대해서 물으신다면, ~

 

, 저기 있는 새는 벌써 알아듣고, '부처님 무서워~'

 

하면서 날아가 버렸네요.

 

재미있죠? 질문 있으신 분 계십니까?

 

없어요? 좋습니다.

 

지금까지의 내용을 다시 표현하자면, '색즉시공 공즉시색' 입니다.

 

색은 즉 공하고, 공은 즉 부처입니다.

 

여러분이 만약 저 뒤에 있는 불상이

 

유일한 진짜 생각하면요.

 

틀렸습니다.

 

여러분이 만약 예수가 이렇게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이라고 생각하면,

 

틀렸습니다. 진짜 부처, 예수, , 진리는 이와 같이 '여래'입니다.

 

여러분이 경험하는 있는 그대로의 진리, 바로 이 순간의

 

경험은 이미 '완벽' 합니다.

 

그게 바로 부처입니다.

 

, 정말 놀라운 가르침이죠?

 

 

 

 

, 다음 장, 21장으로 넘어갑시다.

 

'언어로써 진리를 표현할 수 없고, 진리를 표현하는 그

 

언어는 진리가 아니다.'

 

, 21장을 완벽하게 이해하고 싶으세요?

 

아주 흥미로운 것을 가르치고 있는 이 21장을

 

이해하고 싶으시냐고요.

 

21장은 이와 같이 이해하셔야 합니다.

 

다 준비되셨어요? 준비하세요.

 

21장을 완전히 이해하실 수 있는 비밀 열쇠를 가르쳐드리겠어요.

 

비밀 열쇠에요.

 

아무도 이 21장의 비밀은 모르는데, 나중에 친구들에게

 

가르쳐드리고 감동을 전하시길 바랍니다.

 

 

 

 

21장의 '언어는 진리를 표현할 수 없고, 진리를 표현하는

 

그 언어는 진리가 아니다.'

 

 

 

 

설명하겠습니다. , 준비되셨죠?

 

깊은 뜻을 이해하시길 바랍니다.

 

.................... !

 

모두 21장을 이해하셨습니까?

 

, 갑니다. , 모두 이해하셨죠? 좋습니다.

 

 

 

 

, 다음 22장 입니다.

 

 

 

 

"그 어떤 것도 얻을 수 없다!"

 

 

 

 

, 21장처럼 어렵게 들리네요.

 

어렵게 느끼시죠?

 

 

 

 

"그 어떤 것도 얻을 수 있다고 말할 수 없다."

 

 

 

 

그러나 수보리가 여쭙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 성취하신 아뇩다라삼약삼보리는

 

진정 아무것도 얻을 수 없는 것입니까?"

 

 

 

 

부처님께서 대답하십니다.

 

 

 

 

"그렇다. 수보리여, 나는 아뇩다라삼약삼보리뿐 아니라,

 

그 어떤 것도 얻은 것이 없다. 내가 깨달았을 때,

 

그 어떤 것도 얻은 것이 없느니라.

 

그래서 이것을 최고의 깨달음[아뇩다라삼약삼보리]이라

 

부르는 것이다."

 

 

 

 

! 이런 가르침이 어디 있어?

 

다른 반야경에 나오는 이야기인데요.

 

수보리가 어느 날 법문을 하러 자리에 앉았답니다.

 

진리의 법문을 하러 수보리가 법상에 앉았단 말입니다.

 

수보리가 자리를 잡으며 법문을 할 준비를 다하고,

 

막 법문을 시작하려고 했는데요.

 

갑자기 신[샤크라]이 나타나 하늘에서 꽃비를

 

뿌리기 시작한 거예요.

 

위대한 가르침이 설해지는 곳에는 이런 일이 종종 벌어지는데요.

 

부부가 결혼할 때 하객들이 축하하는 의미에서

 

꽃을 뿌리는 것 처럼요. 법문이 끝나면 종종 어떤 신이

 

나타나 꽃비를 그곳에 뿌렸답니다.

 

그래서 수보리는 자리에 앉아서 법문을 시작하려고 했는데,

 

하기도 전에 신이 나타나 꽃비를 뿌리는 것이었어요.

 

'헤이, 왜 뿌리는 거야?'

 

'아직 입도 안 열고, 진리에 대해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는데'

 

라고 수보리가 신에게 말합니다.

 

그러자 신은 ', 가르침에 감사드립니다.' 라는 거에요.

 

근데 난 아직 아무것도 말하지 않았잖아?'

 

, 당신은 아무것도 말하지 않았고,

 

저는 아무것도 듣지 않았어요. 그게 진리잖아요.'

 

이것이 진정한 법문입니다.

 

말하지도 않았고, 듣지도 않았지요.

 

그 신은 '가르침에 감사드립니다.'라고 하며

 

자리를 떠났답니다.

 

굉장하지요. 굉장합니다.

 

바로 이것이 이 장의 의미입니다.

 

아무것도 가질 수 있는 것이 없구요. 아무 것도 없습니다.

 

바로 이 순간 여러분은 이미 다 가지고 계십니다.

 

그렇죠? 너무 간단하죠?

 

수보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자리를 잡으며,

 

'이게 바로 법문이야' 라고 한 것입니다.

 

대단하죠? 이래서 금강경이 파격적이라고 한 것입니다.

 

제가 하는 이 법문까지도 파격적으로 만들고 있잖아요.

 

완전히 시간 낭비하고 있습니다.

 

, 바람, , 배 속에서 나는 '꼬르륵~'소리가 이미

 

금강경 법문이거든요. 선풍기 소리, 향 냄새, 이 냄새를

 

말할 때, 그 무언가를 얻는 것이 아니잖아요.

 

그 향냄새를 맡는 경험을 통해서, 여기 손등에 느끼는

 

이 감촉을 통해서, 여러분이 '어떤 것'을 얻는 것이

 

아니잖아요. 이게 다에요. 아시겠죠?

 

지금 아무도 일어나서 춤을 추지 않으시네요.

 

환희심이 나면 절돌 춤이 나올 텐데 말이에요.

 

이 경전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파격적으로 대자유를 설하는

 

가르침이 아닌가 싶습니다. 물론 언어를 사용한 가르침 중

 

말이죠. 언어를 사용한 것이 이미 실수이지만요.

 

아직도 춤추시는 분이 없네요.

 

나중에 그런 분이 있겠죠.

 

, '그 어떠한 것도 얻을 것이 없다.'

 

아무것도 얻을 수 있는 것이 없습니다.

 

이미 완전하니까요. 제가 자주 말씀드리는 이야기로

 

예를 하나 들겠습니다. 며칠 전에 있었던 일인데요.

 

약속이 네 개나 있었던 어느 날이었어요.

 

이것저것 챙기느라 정신이 없었답니다. 그중에 지하철 카드를

 

챙겨서 입에 물었습니다. 가방도 챙겨야 하고 이것저것

 

막넣어야 했기에 입에 무었던 거죠.

 

', 지하철 표 어디 갔지?'

 

그리고 지하철 표를 찾아 헤맸습니다.

 

누가 또 전화를 해서 한꺼번에 여러 가지 일을 하느라

 

정말 바빴거든요. '이런 지하철 표 어디 간 거야?'

 

이미 입에 물고 있었는데 말이에요.

 

그런데 딴 데서 표를 찾고 있었던 겁니다.

 

이미 가지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30초나 밖에서 찾아

 

헤맸던 것이죠.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이렇게 살아갑니다.

 

지혜를 다른데서 구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깨달음을 다른데서 구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구원, 해탈, 아뇩다라삼약삼보리를 어떻게든 구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살고 있어요. 그러나 이것은 멍청이가 이미

 

자기 입에 물고 있는 지하철 표를 찾는 것과 같습니다.

 

지하철 표가 하나 더 필요한 게 아닙니다.

 

그는 이미 가지고 있으니까요.

 

그걸 모르고 있을 뿐이죠. 이해가 가시죠?

 

간단하죠? 이렇게 말합니다.

 

'어떤 것도 얻을 수 없다. 왜냐하면 이미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라구요. ~ 대단합니다. 질문 있으세요?

 

아주 심플하죠?

 

쉽다는 뜻이 아니라요. 선명하다는 것입니다.

 

유리와 같이요. 유리를 통해 보면 말이죠.

 

유리는 보이지 않지요?

 

유리 뒤에 있는 것들이 보이잖아요.

 

금강경도 이와 같습니다. 안경처럼 말이죠.

 

안경 자체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이것 자체로는 그리 소중한게 아니라구요. 그런데, 안경을 끼면,

 

잘 사용하면, 머리 위에, 아니면 빰에, 아니면 가슴에 끼면

 

쓸모가 없지요? 그런데 안경을 올바르게 사용하면,

 

세상을 선명하게 볼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금강경을 따로 공부할 필요가 없습니다.

 

있는 그대로 보는 순간, ~

 

경전을 치우고 수행을 하셔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살아있는 금강경입니다. 아주 선명합니다.

 

얼마나 대단한 가르침입니까?

 

얼마나 정직하고 위대합니까?

 

 

 

 

, 그럼 23장으로 너머갑시다.

 

 

 

 

"선을 행함으로 마음을 밝히다.'

 

 

 

 

다음으로 수보리여, 이 법은 이것은 높고 낮음이 없이

 

어느 곳에서든 모두 평등하다. 그래서 그 이름을

 

'아뇩다라삼약삼보리'라고 한다.

 

 

 

 

아뇩다라삼약삼보리는 우주 전체에 충만히 꽉 차있다.'

 

꽉 차있습니다.

 

지난 2년 반동안 숭산 큰스님을 모시며 살았는데요.

 

그러므로 큰스님께서 머무시는 처소에 있었던 시간이 많았겠죠?

 

그런데 큰스님을 뵈러 오는 소님들 중에는 이런 분들이

 

많았습니다. , 저 분은 깨달으신 분이야.

 

큰 스님은 깨달으셨지. '난 아직 중생이고 그는 가지고 있고

 

난 없어. ' 재미있습니다.

 

제 콧구멍에 공간이 있죠?

 

코가 커서 공간도 좀 크답니다.

 

그런데 이 공간과 여기 법당 안의 공간은 다르지 않습니다.

 

본질은 다르지 않다구요. 제 몸 속에도 공간이 있고,

 

여러분 몸에도 공간이 있겠지요?

 

그 공간들이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단 말입니다.

 

공간의 본질 말입니다. 같습니다.

 

 

 

 

 

 

 

"다음으로 수보리여, 이 것[여래], 있는 그대로, 이것은

 

우주 전체에 충만하다. 높고 낮음의 차별이 없이 말이다.'

 

 

 

 

질과 양의 차별 없이 말이죠.

 

제 콧구멍 속의 공간과 이 법당 안의 공간이

 

질적으로나 양적으로 다르지 않다는 말입니다.

 

공간의 분자 말입니다.

 

굳이 학문적으로 말씀드리자면요.

 

질적으로나 양적으로 다르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것을 가장 수승한 깨달음이라고 하는 것이다.

 

어떻게 이것을 얻느냐? 바로 무아의 수행을 통해서

 

얻을 수 있느니라.'

 

 

 

 

자아, , 나를, 나의, 로부터 자유로워져야 얻는다는 것입니다.

 

그 아이디어, 그 생각으로 부터 자유로워지는 바로, 깨달음입니다.'

 

이게 전부에요. 정말로 어렵지 않잖아요?

 

 

 

 

무아, 무인, 무중생, 무수자로써 선행을 하면

 

곧 아뇩다라삼약삼보리를 얻는 것이다. 수보리여, 우리가

 

선행에 대해서 이야기하지만 여래는 선행이라는 것이 없고, 단지

 

그 이름을 선행이라고 말한다.'

 

'선행'이라는 것은 본래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단지 이름을 선행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공간에 대고 외쳐보세요.

 

'공간아, 너 어디 있니?'

 

이 공간은 사실 '공간'이 아닙니다.

 

단지 우리가 공간이라고 이름 붙였을 뿐이지요.

 

단지 이름일 뿐입니다. '공간'

 

저 소리를 우리는 소리라고 하지요?

 

그런데 그건 '소리'가 아니라, 단지 그것을 소리라고 이름 붙인

 

것일 뿐입니다. '이름'으로부터 자유로워지세요.

 

그리고 오직, 볼 뿐, 냄새 맡고, 만질 뿐, 하십시오.

 

이시겠죠? 이 금강경의 가르침은 정말로 대단합니다.

 

저는 여러분 모두가 이 가르침이 가리키는 진리를

 

깨달으시길 바랍니다.

 

'바로 여기'를 말이지요.

 

내 본성, 안도 아니고 바깥도 아닌 바로 이 본성 말입니다.

 

아시겠죠? , 아무 질문이 없으시면, 오늘의 법문을 정리해서

 

마무리 지을까 합니다. 금강경에 대해서 한 가지 더 흥미로운 점을

 

말씀드리면, 금강경은 여기에 적힌 글자가 아닙니다.

 

글자가 아니라고요, 그리고 금강경은 완전히 아무것도

 

아닌 것도 아닙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 가르침을 듣고, 기억나세요?

 

몇 장 전에 부처님이 이렇게 말씀하셨지요?

 

 

 

 

'네가 이 가르침을 듣고, 충격을 받거나, 아니면 겁이 나지 않으면

 

너는 선업을 많이 지은 것이다.'

 

 

 

 

몇 장 전에 이렇게 말씀하셨지요,

 

누가 찾아 보시겠어요?

 

누구든지 이 가르침을 듣고, 소스라치게 놀라지 않거나,

 

'오마이갓' 하지 않는다는 말이죠.

 

충격을 받지 않거나, 너무 헷갈려하지 않으면,

 

당신은 선업을 많이 쌓아온 것입니다.

 

지난 많은 전생 동안 수행을 많이 했기 때문에 여러분은 이미

 

이 가르침을 받을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는 것입니다.

 

부처님이 말씀하신 겁니다.

 

여러분 중에서 아무도 도망치거나, 놀라서 방방 뛰지 않고,

 

머리카락을 쥐어뜯지 않는 것을 보니까,

 

'아 너무 겁난다, , 이해가 안 된다, 나한테는 너무

 

어려운 내용이야.' 하지 않는 것 같으니, 여러분은

 

지난 여러 번의 전생 동안 이 가르침을 받기 위해 마음의 준비를

 

해 온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 가르침을 듣고,

 

'아니야, 이 건 진정한 종교가 아니네,

 

이건 말도 안 되고 쓸모없는 가르침이야.' 라고 반응을 합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아직까지도 이 법당을 떠나시지 않고 계십니다.

 

이 뜻은 여러분은 스스로 이 가르침을 받기 위해

 

준비 해 온 것입니다.

 

, 이제 다음 단계로 뛰어넘어 갑시다.

 

 

 

 

24장입니다.

 

'이 가르침의 위대한 공덕'

 

여러분은 여기까지 잘 오셨습니다.

 

이 뜻은 여러분은 더 이상 종교의 이름이나 형식, 모양에 집착하지

 

않는 분들이십니다. 여러분은 부처, , 종교, 가르침, 도그마 등의

 

모든 상으로 부터 많이 자유로워지신 것입니다.

 

그리고 가장 수승한 가르침은 바로 이 순간, ~ 속에

 

모두 들어 있음을 이제 잘 알고 계십니다.

 

콜록! 이미 여러분은 약간이라도 이해를 하신 것입니다.

 

정말 위대한 공덕인 것입니다.

 

, 부처님은 말씀하십니다.

 

 

 

 

"이 가르침의 위대한 공덕, 수보리야, 만약 어떤 사람이

 

삼천대천세계의 수미산만큰, 에베레스트산 만큼의 칠보

 

[다이아몬드, 루비 등의]를 쌓아 놓고 보시하더라도

 

빌게이츠가 가진 돈 보다 십억배나 많은 돈이지요.

 

빌게이츠의 재산 곱하기 10억 배요.

 

누군가 그 만큼의 돈을 보시해도 엄청난 공덕을 쌓은 것이지요.

 

대단한 것이지요. 이런 사람이 한 명 있구요.

 

다른 한 사람은....

 

 

 

 

"어떤 사람이 이 경전의 사구게[네줄]라도 수지 독송하여

 

다른 사람에게 선명하게 말해 준다면...

 

 

 

 

저 처럼 말고요, 저는 사실 아주 못하고 있습니다.

 

제 입술이 계속 움직이고, 잇몸이 뻐금 뻐금 한 시간 반 동안

 

쉴새 없이 움직이니 아주 낮은 단계지요.

 

 

 

 

"그리고 상세하고 선명하게 말해 준다면, 이 사람의

 

공덕은 앞 사람의 공덕보다 [빌케이츠보다] 산술적인 비유도

 

할 수 없을 만큼 훨씬 더 클 것이다."

 

 

 

 

그러니까 이 뜻은 재물 보시를 함으로 얻는 공덕은 굉장히 많습니다만,

 

재물로서 보시를 함은 엄청나게 대단한 일이지요, 어려운 사람을

 

돕는다든지요. 그린피스 같은 사회봉사 그룹을 돕는 다든지 하는

 

일도 매우 훌륭합니다.

 

병든 사람을 간호한다든지, 정신적인 문제가 있는 사람을

 

돕는다든지 하는 일은 모두 대단한 공덕입니다.

 

하지만, 이런 공덕이 아무리 크더라도, 이 가르침을 완전히

 

깨달은 사람의 그 것과는 비교도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 페이지에 있는 단어들이 아니라요.

 

우리가 지금까지 얘기했던 것들을 이해하는 자를 말하는 것입니다.

 

단지 머리로만 이해하는 것 말고요.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이 가르침이 가리키는 진리를

 

느끼는 자입니다. 아주 조금이 라도요.

 

단지 '네 구절만이라도' 라고 말씀하시지 않습니까?

 

단어와 문장 자체가 아니라, 바로 이 '경험' 말입니다.

 

아주 쉽게 말해서, 이것을 이해하는 사람, ~ 말입니다.

 

이 사람은 훨씬 더 큰 공덕을 지은 것입니다.

 

그 앞의 차가운 현금을 굉장히 많이 보시한 사람보다 더 말입니다.

 

하지만, 그래도 법문이 끝나면 여기에 보시금을 많이 넣어

 

주시기 바랍니다. 이런 보시도 당연히 대단한 공덕인 것을

 

잊지 않으셨겠지요?

 

, 정말 흥미롭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이 장에서 이런 가르침을 설하십니다.

 

이 전까지는....

 

 

 

 

"온 우주가 다 공하고, 아무 결함 없이 순수하고,

 

진리는 언어로서 표현할 수가 없지만,

 

 

 

 

중요한 삶의 목적[역할]을 잃어버리기 쉽게 됩니다.

 

그래서 부처님은 여기서 역할[기능]에 대해서 설하는 것입니다.

 

잊지 마시길 바랍니다. 아시겠죠?

 

집중해서 법문을 들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순간 순간, 과거도 붙잡을 수 없고, 현재도 붙잡을 수 없고,

 

미래도 붙잡을 수 없으니까 모두 내려 놓으십시요.

 

그러면 이미 여러분은 모든 것을 성취 하신것입니다.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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