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 연재글

솔의 예찬

통융 2016. 9. 1. 07:39


솔의 예찬      문열면 밝은 세상

  • 대경일보
  • 승인 2016.09.27 21:08

통융 스님
 
나타내면서도 표현하지 않고
한 자리에 수 백 년을 서서 있으면서도 머물지 않는다.
저 고준한 벼랑 우에 고고한 자태로 도올한 낙락장송은 천하제일의 선비다.
 
늘 푸르면서도 푸름을 더하지 않고 덜하지도 않으며 웃자란 만큼 땅으로 뿌리를 뻗어 나가는 이치를 보게 한다.
아무리 거센 비바람도 스스로 몸 안으로 받아 삭혀내는 지혜를 갖추고 있다.
어떤 척박한 환경에서도 고준한 벼랑의 바위틈에서도 한 뼘의 흙이 내린 땅위에 서면 씨알의 뿌리를 내리고 터를 다져 청아한 삶을 살아가는 것이 솔나무이다.
 솔나무는 '솔 나무'로 뛰어 쓰게 되어 있으나 솔나무가 친근하여 필자는 그냥 붙여 쓴다.
 
솔나무에는 높이 하늘을 나는 고고한 학이나 왜가리 등 흰옷을 입고 있는 새들에게 자리를 내어주며 그 그늘 아래에서도 특별한 송이버섯과 약용으로 쓰는 백봉을 키우고 있다.
조상들 묘를 보호하고 지키는 도래솔로 마을을 수호하는 동신목(洞神木)으로 신령함을 나투는 그 기운은 감히 어느 나무에 비교할 수 있겠는가.
 바람에 솔나무가 연주하는 파성(波聲)은 천하제일의 화음(和音)이요.
흰 눈이 나려 옷을 입으면 그 우아한 모습은 천하제일의 비경이다.
그윽하게 내 뿜는  솔내음인 피토치드는 우리에게 온갖 심신과 건강을 챙겨주고
또한 그 향기는 어느 향에 비길 바 있으랴.
 
고준한 벽암(碧巖)에 서서 솔잎과 뿌리를 적시며 흘러내린 감로수가 내를 이루고 강을 이뤄 우리가 마시는 물이 솔의 정기이니 이러한 솔나무가 우리 강산에 가장 많이 이웃하여 자라고 있다는 것은
우리 국토가 축복 받은 땅임에 틀림이 없으리라.
 
우리 조상들은 나무 중에 군자로 일컫는 솔숲에서 태어나고 자랐으며 솔나무로 집을 지어 살다가 죽으면 솔나무 관에 들어가 다시 솔숲으로 돌아간다.
그래서 우리 민족은 솔문화 속에서 생사고락을 함께하며 살아왔던 것이다.
그러기에 그의 청아한 기상과 절개와 고고함을 두루 갖춘 성품과 철학을 보고 배웠기 때문에 우리 민족정신을 대표하는 선비정신이 만들어 젔다고 본다.
또한 모진 풍상을 겪으면서도 당당하고 곳곳하게 살아가는 생명력은 우리 민중들 삶 속에서 은근과 끈기의 투혼정신으로 나타난 한얼 정신으로 승화 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솔나무의 인격적 성품과 삶이 수 만년 역사를 유구하게 이어온 우리 민족정신의 근원이요 스승임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우리는  우리 솔을 사랑하고 보호하는 일은 곧 우리 한민족의 정체성을 세우며 민족 얼을 바르게 지키고 가꾸는 일이라 생각한다.
과거나 현재나 미래에도 이 지구별에서 우리 조상들과 나의 숨소리이고, 나의 부분이며 우리와 함께 할 소중한 이웃 친구인 솔낭구,
그런 솔나무가 오늘날 환경오염으로 인한 병충해나 기후변화로 숲의 생태가 바뀌고 고사 되어 우리 곁에서 멀어져 가고 있다. 
전문가들의 의하면 50년 뒤에는 솔나무를 보기가 쉽지 않다고 한다. 안타까운 일이다.
자연이 나와 동일한 존재이며 또 다른 나임을 자각하는 상생적 하모니즘(harmonism)을 일깨우고  자연보호를 해야 한다.

우리가 후손에게 물려 줄 것은 경제적 부도 중요하겠지만 더 중요한 것은 우리민족 정신을 바로 세우는 일이다.
세계 어느 곳에서도 찾아보기 드문 홍익인간과 제세이화의 상생정신은  바로 솔나무 정신에서 비롯됨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즉 솔나무와 어우러진 자연의 숲과 생태가 살아나서 우리 산하에 늘 푸른 솔이 넉넉하고 솔밭에서 동화되는 민족이 된다면 한국 미래의 정신은 늘 푸르고 싱싱할 것이다.
솔나무는 우리가 살아갈 삶에 지혜의 등불을 밝혀주는 스승이기에…….通

대경일보  webmaster@dk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