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 연재글

새벽을 쓰는 것은 무명에서 깨어나 진리를 얻는 것이다.

통융 2016. 8. 31. 21:35
새벽을 쓰는 것은 무명에서 깨어나 진리를 마주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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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열면 밝은 세상
2016.09.01 08:47 입력

 

통융스님

 

세상이 드러나지 않는 투명한 새벽 시간에 일어나 법당에 혼자 앉아서 종을 친다.

원차종성변법계 철위유암실개명 (願此鐘聲遍法界 鐵圍幽暗悉皆明) ” ~~~

원컨대 이 종소리 법계에 두루 퍼져 철위산간 지옥의 어두움이 모두 다 밝아지고

삼도이고파도산 일체중생성적각 (三途離苦破刀山 一切衆生成正覺)” ~~~      

삼악도의 고통을 여의고 모든 지옥이 부서지면 일체 중생이 정각을 이루어지이다.

 

종소리가 우주법계에 숨을 쉬기 시작하면 삼라만상에 모든 중생들의 귀를 열게 한다. 산 속에서는 산울림과 온갖 새들이 함께 깨어나지만 도회지에서는 빌딩 숲들과 가로수길 사이로 끝없는 듯 이어지는 생명의 파문이 번져간다.

숨죽이던 어둠의 무명을 깨워 만물을 창조해 내는 새벽은 지구 위에서 가장 황홀한 연극 무대의 주인공이며 창조자이기도 하다.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가 새벽의 여신인 에오스(Eos)의 아름다움과 젊음을 시기한 것을 이해 할 만큼 새벽은 장엄하고 환희롭다.

 

한 번을 울어서/ 여러 산 너머/ 가루 가루 울어서/ 여러 산 너머

돌아오지 말아라/돌아오지 말아라/ 어디 거기 앉아서

둥근 괄호 열고/ 둥근 괄호 닫고/ 항아리 되어 있어라/ 종소리들아 .

서정춘 시인의<종소리>라는 시다.

오래 전에 시인을 만났을 때 이 시를 써 놓고 통곡을 하고 울었다고 했다.

한 편의 시가 우주를 닮게 되면 시는 살아 숨 쉬는 생명이 되고 무명을 벗기며

세상을 밝히는 새벽 미명과 같은 경이로움이 있다.

 

그런데 요즘은 새벽종 소리도 산 속에서나 들을 수 있다. 도시 안이나 마을이 인접한 데는 소음 공해라고 한부로 대종을 칠 수도 없다. 그래서 대부분 소종을 친다.

소승도 법당 안에서나마 예불을 하면서 새벽의 화엄장경(華嚴場景)으로 깨어서 진리를 참구하는 것을 늘 고맙게 생각한다.

 

물론 새벽을 깨우는 화엄(華嚴)은 새벽 농산물 경매장에서도 하루 막노동 일을 위해 모이는 인력 시장에서 야근을 하고 새벽을 맞는 일손까지 두두물물(頭頭物物) 모두가 또 다른 위대한 삶에 오케스트라의 주인공들이며 자신의 화엄세상을 충실하게 깨어서 사는 사람들이다.

 

요즘 같이 밤 낮 구분 없이 일하는 세상에서 새벽을 쓰는 것은 무명에서 깨어나 진리를 마주하는 것이며 지혜롭게 사는 사람들일 것이다.

왜냐 하면  지구의 모든 생명들은 자전과 공전을 통해 시간대별 작용하는 기운들이 다르다밤이 되어 어두워지면 잠을 자게 하는 멜라토닌 호르몬이 분비 되어 술()시인 저녁9시부터는 몸이 하던 일을 멈추고 하루 동안 사용했던 모든 기능을 저장하거나 비워내고 휴식과 재생을 통해 새로운 에너지를 보충하는 시간들이 새벽 인()시인 3시전 까지라 한다.

그 후 인시부터는 잠을 깨우는 코르티솔 호르몬이 분비되기 시작하는데 인간 뇌의 기능과 활동이 가장 왕성하게 되며 이 시간에 공부를 하면 가장 효율적이라 한다.

과거 동경시를 쓸 때는 술시는 저녁 9시부터 11, 인시는 새벽 3시부터 5시 이었으나 서울시를 쓰는 요즘은 30분씩 늦어진 시간을 쓴다는 것도 참고해 보자.

 

또한 새벽은 고요하기 때문에 깨어서 자신의 삶을 찾아 볼 수 있는  좋은 시간 이기도하다. 요즘 같이 외형적이 물질추구와 시간에 쫓겨 바쁜 현대인들에게는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내면의 자아탐구와 성찰을 위해 멈춤과 느림의 시간을 체험하는 것이 대단히 중요하다.

일정한 시간을 정해서 새벽 참선이나 명상 기도를 통해 가만히 들숨과 날숨을 챙기면서 나는 누구인가스스로 에게 묻고 답해 보자.

 

우주법계 모든 중생들이 다 같이 일시에 참 진리를 깨치길 원합니다.

원공법계 제중생 자타일시 성불도 (願共法界 諸衆生 自他一時 成佛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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