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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깨어 있으면 '당신은 붓다'입니다.

통융 2016. 3. 9. 08:53
지금 깨어 있으면 ‘당신은 붓다’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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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열면 밝은 세상
2016.03.06 08:49 입력 | 2016.03.02 08:49 수정

 

 

통융 스님

 

한 선승이 제자와 함께 길을 걷다가 개울을 건너게 되었다. 그런데 비가온 뒤라 개울물이 불어나서 돌다리가 물에 잠겨 있었다. 그 때 한 젊은 아낙네가 물을 건너려고 왔으나 돌다리가 물에 잠겨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었다그런 상황을 보던 선승이 아낙네을 등에 업고 개울을 건네주었다. 스승의 행동을 지켜봤던 제자는 승려는 절대 여자를 가까이 하거나 몸을 만져서는 안 된다고 늘 스승이 가르쳐놓고 당신은 계율을 어기면서 여인을 등에 업을 수 있단 말인가말과 행동이 다른 이런 스승을 내가 따라야 할 것인가제자는 산길을 걸으며 내내 스승의 행동과 등에 업힌 아낙네 생각에 머리가 복잡했다제자는 도저히 참지 못하고 스승께 질문을 했다.

"스승님은 어째서 계율을 어기며 여인을 등에 업고 물을 건네 줄 수 있습니까?"

스승이 " , 이놈아! 너는 아직까지도 그 여인을 등에 업고 왔느냐? 나는 물을 건너고 땅에 여인을 내려놓는 순간에 다 내려놓고 왔다."

 

깨달은 자와 그렇지 않는 자의 차이가 이런 것이다.

모든 행위는 스승이 했지만 오히려 행위에 대한 업장은 제자가 짊어지고 있지 않는가. 선승은 모든 행위를 그냥 할 뿐이었다. 오직 난처한 상황에 처한 사람을 도와 줬을 뿐 어떤 마음을 내지 않는다. 그런데 제자는 자신이 행하지도 않은 일이면서도 모든 생각과 정신을 빼앗겨 버렸다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 그런데 우리 중생들 대부분 이 제자와 같은 행동과 마음으로 늘 밖의 경계에 끄달려 본래 여여한 자성을 잊어버리고 세상을 살고 있다. 그러면서도 그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고 의식적·무의식적으로 자신의 욕망과 집착에 사로잡혀 괴로움과 즐거움을 끊임없이 반복하는 번뇌의 속박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깨달아 일상 속에서 늘 지혜로운 삶을 살 수 있을까?

깨달음을 특별한 방법이나 고도의 수행이 필요한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다. 그 진리는 너무나 평범한 일상 속에 있고 우리 모두가 이미 깨달아 있는 존재이다. 그런데 우리는 자신이 깨달아 있는 사실을 믿지 않고 온갖 생각과 분별 심을 내기 때문에 본래의 청정함으로 살지 못하고 그르치게 되는 것이다

 

당나라 때 120살을 살다간 고불 조주스님이 스승인 남전스님께 '도가 무엇입니까?' 물으니 '평상심(平常心)'이라 했다. “

평상심이 도라면 어떻게 해야 도를 얻을 수 있습니까?"
"얻으려고 하는 마음이 있으면 얻을 수 없다."
"얻을 수 없는 것이라면 그것이 ''라는 것을 어떻게 압니까?"
"도는 생각으로 아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알지 못하는 것도 아니다. 생각으로 아는 것은 망상(妄想)이 되고 알지 못하는 것은 자각이 없는 무기(無記)이다. 안다 모른다하는 분별을 없애면 바로 거기서 도가 나타난다.
그것은 마치 맑게 갠 하늘같아서 분별이 끼어들 여지가 전혀 없다. “

 

분별없는 마음으로 생활하는 것이 평상심이라 했는데 중국 유원율사가 묻고 대주선사가 답한다. “수행할 때 열심히 하십니까?” “열심히 하지.” “어떻게 열심히 하십니까?”  “배고프면 밥 먹고 졸리면 자는 것이지.” “그렇다면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열심히 수행하고 있는 거 아닙니까?” “같지 않다. 그들은 밥을 먹을 때도 밥을 먹지 않고 온갖 것들을 바라고, 잠을 잘 때도 잠을 자지 않고 온갖 생각을 꾸민다. 그래서 같지 않다.”


그렇다. 우리는 일상의 매 순간을 분별심 없이 모든 일을 행하고 있는지, 지금 내가 일으키고 있는 생각들과 마음이 얼마나 외부에 끄달려 내 자신을 잊어버리고 불필요한 에너지와 시간을 소비하고 있는지를 점검해 봐야한다.

대상을 보거나 생각을 일으켜서 옳다 그르다 분별하는 마음만 내려놓고 '오직 할 뿐!'

 

매일 10분도 좋고 30분도 좋고 자신을 되돌아보는 시간을 만들어 보자.

당신이 지금 숨 쉬고 있는 들숨과 날숨을 가만히 집중해서 침착하게 들이쉬면 들이쉰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내 쉬면 내쉰다는 것을 챙겨 보자.

그러면서 스스로 질문하고 답을 찾아보라

숨 쉬고 있다는 걸 알고 ''를 부르면 알아차리는 이놈이 무엇인가?’  '이뭤고?' 이렇게 늘 자신을 찾아보는 시간을 갖게 되면 마음속에서 질문이 점점 더 커지면서 매 순간을 깨어 있게 된다.

이러한 시간이 몇 분씩 늘어나면 자신이 하고 있는 행동이나 생각들을 관찰하게 된다. 내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지, 내가 지금 보고 듣고 있는 것이 뭣이지? 이렇게 스스로를 관조하게 되고 생각이 밖을 향하던 것이 내 안으로 들어오게 된다. 그렇게 직접 때와 장소에 구애됨이 없이 늘 행하는 것이다

 

불교는 절에서 법당에서만 수행하고 공부하는 것이 아니다. 당신이 지금 서 있는 그 자리가 법당이고 지금 쉼 쉬는 순간을 바로 알아차린 때가 공부이고 수행이다.

사실 한 순간에 자신이 본래 부처이며 한 찰나에 온 우주와 너와 내가 분별없는 하나임을 알게 되면 사무량심(四無量心)이 생겨 일체중생의 기쁨과 슬픔을 함께 나누고 느끼며 자비심과 사랑으로 늘 여여하여, 지금 깨어 있으면  ‘당신은 붓다입니다…….



허경태 기자 gjshstnf@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