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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무신론과 유신론 끝나지않을 전쟁 <네이버지식>

통융 2014. 12. 23. 1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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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무신론과 유신론 끝나지않을 전쟁

kds1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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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6.23 11:17

우리의 아름다운 지구별은 오늘도 햇살을 받아 강물은 반짝이고

산 숲에는 새들이 노닐고 빌딩 숲 속에는 사람들이 삶을 살기 위해 부지런히 일하고 있습니다.

더러는 지구별을 떠나고 더러는 다시 태어나고 끊임없이 변하는 세상은 찰나도 쉬지 않습니다.

밤하늘에 무수히 떠있는 별들을 보면 우주의 무한함 속에서 우리의 존재를 너무나 작게 만들고....

신이 있든 없던 나는 배고프면 밥 먹고 잠 오면 잠을 자야하고

자신들의 처해진 위치에서 열심히들 삶을 살고 있습니다.

이 세상은 어느 누구도 내가 배고플 때 대신 밥 먹는다고 내 배가 부를지 않으며

나를 위해 대신 죽어주지 않습니다. 결국 유신론이든 무신론이든 나에게는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오직 내가 배고플 때 내가스스로 밥을 먹어야만 배부를 수 있습니다.

결국 세상의 주인공은 나입니다. 내가 신이 되어야 합니다.

성경에 (갈2:20) ‘나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가 내 안에서 산다'고 결국 내안에 온전하게 하나님의 성품을 영접하면 내가 하나님이 되는 신과 하나되는 것이지요.유신론자들이 들으면 기절할 이야기입니다만 그들이 참 진리를 모르는 무지 때문입니다.

그리고 무신론 또한 무한한 우주의 세계를 참되게 알지 못할 때 생각되는 개인적 식견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신(神)이란 우리 몸이 육신(肉身)인데 다르게 표현하면 육신(肉神)으로 산 사람의 신이고 죽은 사람은 귀신(鬼神)인 즉 영혼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죽으면 아무것도 없다는 것은 무신론적 견해이나 그렇지 않고 일정한 상태의 신들이 존재 한다고 합니다. 불교적 입장에서는 우리의 의식중에 아뢰야식(현대심리학에서는무의식)이 영혼이 되고 업이된다고 합니다.  천상이니 천당이니 하는 것들이 막연한 이야기는 아닙니다.

그러한 세계는 차원을 달리한 세상이다 보니 단지 우리의 현실로는 확인되지 않는 현상일 것입니다.

물론 그러한 신들의 세계가 우리의 지구별처럼 존재하는 그런 세상은 아닙니다. 차원이 다른 의식적 세계 일 뿐입니다.

예를 들어 운전을 하다가 갑자기 무엇이 뛰어들었는데 다행히 사고를 면했다면 우리는 지옥과 천당을 넘나들었다고 하지요. 즉 우리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찰나에 현실이 현상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결국 천당과 지옥이라는 세계는 우리의 마음 속에 신과 함께 존재하는 현상입니다.

이러한 사실들을 보았듯이 우리의 세상은 너무나 광대무변하여 감히 우리가 무엇을 안다고 할 수가 없읍니다. 우리 뇌의 기능 100% 중에 쓰고 있는 량은 불과5%밖에 않 된다고 합니다. 즉 우리가 안다는 것은 빙산에 일각일 것입니다.

하지만 이 땅에 왔다간 여러 성인들은 우리의 범부들 보다는 많은 혜안을 통하여 고달파하는 우리의 삶을 보고 참 되게 살아가는 방법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하지만 우리 중생들이 그러한 참 진리를 바로 알지 못하고 자기 식데로 해석하고 분석하여 놓은 철학이나 종교관들이 오늘날 이렇게 복잡고 힘들게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아인슈타인도 자서전에서 내가 다음 생에 태어나면 불교공부를 하겠다고 했고,

토인비도 이런 말을 했습니다. 불교가 세상에 퍼졌을 때는 진정한 평화가 온다고 했습니다.

나도 기독교을 공부하고 불교를 공부하고 있는 사람으로 불교의 무궁한 법이 너무나 대단하다는 것을 느끼고 있습니다.

그리고 불교는 신도 인정하고 무신론도 인정하는 비신론(非神論)입니다. 즉 신은 인정하되 신의 종이 되는 믿음을 갖지 않고 오직 이 세상의 주인공은 나임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불상은 무엇입니까? 질문하시는 분들이 있는데 불상은 기독교의 십자가 처럼 상징적 표상으로 우리에게 깨달음의 공부를 가르쳐 주시는 부처님을 존경하고 부처님 처럼 공부를 하겠다는 뜻이며 또한 불상을 보고 절을 하는 것은 우리의 본래 성품인 자신에게 절을 하는 뜻입니다. 부처인 불상에게 무엇을 구걸하는 그런 기복적 신앙이 아니라 불교는 신행(信行)으로 오직 내가 참 법의 진리를 믿고 행하여 이웃을 위해 나누는 현실의 삶이 불교입니다. 신을 믿고 따르는 종적인 계념의 신앙과는 큰 차별이 있습니다.

어줍잖게 긴 글을 적었습니다.

이 세상에 와서 가장 소중한 것이 좋은 스승을 만나는 것입니다.

님께서도 귀한 스승을 만나 상구보리하화중생(위로는 법을 공부하고 아래로는 더불어 이웃과 함께한다는 뜻)하는 보리도를 이루시길 빕니다.

출처
직접서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