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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실할매의 베일을 벗긴다.

통융 2009. 11. 10. 07:24

달길

 

                                              김솔계

누가 벽공(碧空)에 소식을 풀었나

 

어둠의 갈빗대를 뚫고 나오는 늑대 울음인 듯

 

목 없던 돌부처 감춰둔 얼굴이 능청스레 남산 어께에 목말을 타고 웃나

 

한 송이 연꽃안부가 번진다

 

*감실할매 앉았던 천년을 툭 걷어차고 선다

 

달빛사태다

 

 

 

 

 

*경주 불곡의 감시할매가 베일을 벗는다.(현재 경주남산 불곡 계곡에 있는 감실할매)

 

감실할매는 우리의 삼신사상에서 가장 중심이 되는 삼신할매인 칠성할매이며 북두칠성의 대진씨(뉘조) 이다.

우리 어머니들이 새벽마다 정안 수를 장독대 위에 떠 놓고 칠성님께 비나이다! 비나이다! 기도 올리는 어머니의 어머니인 뉘조할매다.

뉘조는 우리 민족의 최초 문자역사를 개천하신 신농(神農)할배의 딸이며 황제(皇帝)의 부인이다.

 

이러한 역사적 사실을 알아내는 데는 고조선 시대에 사용했던 문자인 금문(金文)을 해석하면서 이다. 특히 이러한 사료를 통해 우리민족의 역사인 고조선과 현재 사용하고 있는 단군의 역사적 자료들이 많은 부분 오류와 외곡된 사실들이 발견되고 있다.

 

먼저 고조선(古朝鮮)의 역사를 밝힌 金文(고조선 시대인 청동기 시대에 쓰여졌던 문자)의 비밀을 찾아 보기로 한다.

금문은 당시 사용하던 동기(銅器)나 칼, 도구 등에 기록된 그림문자을 말하며, 금문(金文)의 종류를 보면 오제금문인 (원시상형체문자)名氏金文 bc2500년경),殷周金文,春秋金文, 등으로 구분하는데 명씨금문은 갑골문자보다 무려 1,000년이나 앞선 글자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금문을 연구하고 해석한 중국의 곽말약,나진옥,왕국유,등 학자들이 있지만 금세기의 소설가이며 금문학의 대가인 낙빈기(장군박)의

금문신고<金文新攷>를 인연으로 만나 함께 고조선의 역사를 밝혀낸 한국의 召南子 김재섭(현 장성에 생존하시며 사학자)선생님이다.

이분들의 평생을 연구하고 밝혀낸 자료를 통해 보면 동서양권의 역사적 사실이 많은 부분 외곡 되고 오류가 많다는 것을 지적했다. 중국인으로써 중국의 여러 문헌자료 史記(사기),說文(설문)해자,孔子(공자)서 등에 문제점을 찾아내고 외곡 된 사실을 적확한 사료에 의하여 수정 보완을 요구하고 있다. 우리나라 역사는 물론 삼국사기의 우리 민족의 개국신화인 단군신화가 많은 부분 잘못 되었음을 알 수 있고 (개천bc2333년이 아닌 bc2517년 부터 밝혀 져야할 부분이 많다.), 즉 청동기 시대인 명씨금문은 중국역사에 기록된 삼황오재 시대가 우리 고조선 할아버지들의 역사임을 새롭게 밝혔고, 최초로 사람의 이름을 문자로 쓴 분이 양족(羊)의 염(炎)제(帝) 신농(神農) 할아버지이다. bc2517년 상원갑(上元甲)자년에 고조선(古朝鮮)를 개천 하시고 4명의 아들과 회화 柱,亥,熙,脩(수),한명의 따님이 뉘조(嫘祖)할머니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농사(農事)짓는 법을 알리고(農者는 天下之 大本), 차(茶)를 발견한 분이 바로 우리 고조선 神農祖이다. 지금의 양자강 중류인 염능현 곡부(曲阜)(현재도 신농님의 능이 현존하고 있음)에서 新市를 열었다. 그리고 당시의 푸나루아,양급제도(결혼제도가 뉘비결혼이라하여 2명씩 짝을 지어 결혼을 하고 모계중심의 사회)로 羊族인 神農祖는 虎族인 황제(견원)의 누이와 결혼하고 皇帝(견원)은 신농조의 딸인 뉘조 할머니와 결혼을 한다. 이 뉘조할머니는 누에(辰) 할머니,뽕할매,누에의 신으로 당시 누에를 키워 양잠을 했는데 최초의 여성의 글자가 탄생되며 여성의 상징인 누이,뉘,누부야. 등의 누에에서 파생된 단어들이 오늘날 까지 사용되고 있다.

 

특히 누에의 생태(네잠의 4계절과, 13마디의 월력과 한잠27주기의 여성월경주기 등)를 보고 만들어지는 달력과 천문학을 탄생시키고 신농과 뉘조,회화씨 셋이 하나님, 한늘님,,한일님으로 삼신(三神)이 되며 뉘조 할머니는 칠성(七星)북두(北斗)의 가장 빛나는 별인 대진大辰(창룡7수 가운데 심숙(心宿)의 다른 말),즉 큰누에라는 말로 뉘조할매를 가리킨다.

자미원, 태미원, 천시원 3개의 권역을 나누는데 자미원은 누에(뉘진)가 잠자는 뜰, 잠의 궁전, 곳이라는 뜻으로 뉘조할매가 주인공이다. 이러한 기원이 우리민족의 칠성사상과 삼신할매 사상이라 한다.(칠월칠석의 견우와 직년의 이야기 또한 뉘조와 신농씨)

 

청동기 시대 고조선 사람들은 무덤인 고인돌 뚜껑 위에 북두칠성을 새겨 넣었다. 이를 본받은 문화가 내려오면서 고구려 사람들은 무덤 속에 북두칠성을 그려 넣었으며, 고구려를 이어받은 고려 사람들도 무덤 속 벽화에 별자리를 그렸는데 고려시대에 제작된 <치성광여래주임도(熾盛光如來往臨圖)>에 칠성이 표현되고 있어 적어도 고려시대에는 칠성이 불격화된 칠성여래가 우리나라에서 신앙의 대상으로 섬겨졌음을 짐작할 수 있다. 조선시대에는 사람이 태어나면 삼신께 빌고 죽으며 널안에 북두칠성을 새겨 넣은 칠성판을 지고 묻혀야 편안히 저승에 갈 수 있다고 믿었다. 도교에서 칠성의 각 별자리에까지 이름을 붙여가며 각 별의 능력을 따로 설명하고 칠성은 천(天)의 후설(喉舌)의 노릇을 하여, 모든 인사(人事)를 주관하는 총책의 구실을 하는 대임을 맡아 민간의 주요한 신앙의 대상으로 인식되었다. 그리하여 기자(祈子, 아들을 기원), 복록(福祿), 수명(壽命)에 이르기까지 북두의 위력은 관여하지 않는 바가 없을 정도로 확대되었다. 무속과 불교에도 북두칠성에 대한 애정이 남아 있는데, 절마다 지어 놓은 칠성각은 우리 고유의 칠성신앙이 불교에 녹아 들어간 것이며, 무당이 모시는 칠성님이나 우리네 할머니가 정화수를 떠 놓고 치성을 드리는 칠성님도 바로 북두칠성이며 삼신할머니인 뉘조할매에게 기원하는 것이다.

 

이러한 칠성을 그림으로 표현된 모습을 보면 칠성을 사람의 모습으로 표현하여 숭배했던 것은 고려 이후부터라고 볼 수 있다. 특히 불교에서 칠성은 불격으로까지 높이 올려져 법당에 칠성탱화로 봉안되었다. 19세기에 이르러 불교에서 칠성신앙은 매우 크게 유행하여 전국 거의 모든 사찰에서 칠성탱화가 봉안될 정도에 이르게 되었다. 한편 민간싱앙인 무속에서도 칠성이 인기 있는 신으로 등장하면서 매우 활발하게 그려지게 되었다. 무속신으로 등장하는 칠성신은 대개 관복을 입고 관을 쓰고 홀을 든 전형적인 관리의 모습으로 그려지는게 가장 보편적이다. 그러나 한복을 입은 여자들이 칠성으로 표현되는 경우가 많다.

 

칠성신 사상의 조각이나 불상등의 역사를 찾아보면 신라 불교는 우리민족 신앙인 풍류의 신앙즉 칠성사상과 함께 접목되고 있는 것을 많이 볼 수 있는데 칠성(七星)단이나 산신(山神)각 등이 대표적인 예이다. 불교가 우리 민족의 생활 속에 빠르게 접근할 수 있고 보급될 수 있었던 것은 불교에서 이야기 하던 보살행이나 우주의 진법계를 하나로 어우르는 사상과 정신 등은 이미 우리 민족 풍류정신에 보편화된 정서였기에 쉽게 흡수 될 수 있었다. 신라가 멸망하고 고려가 들어서면서 우리 민족의 역사를 더 많이 간직하고 있는 북방민족의 정신과 문화가 접목되면서 정신적 사상의 기원이나 천문학,민속신앙 등에 나타난 벽화나 석물 조각 등을 통해서 많이 남겨져 있는데, 대표적인 것인 여성의 석불인데 그것도 부처나 관음상이 아닌 순수 우리 어머니 할머니의 모습을 한 민속 신앙적 석물로 재작되는 것을 볼 수 있다.

감실은 우리민족이 신위를 모시는 곳을 감실(監室)아라 하는데 동굴을 판다든지 석물을 이용해서 지붕을 만드는 등의 형식으로 경주의 남산 일원과 석굴암 등 우리나라 곳곳에서 그 역사를 찾아볼 수 있다. 초기 기독교에서는 성체를 모시는 곳이 바로 감실이라 쓰고 있는데 그 어원도 우리 민족의 칠성사상에서 비롯된다.

 

그리고 일반 가정에서도 모시고 있던 (현재 일본에서는 조상신을 집안에 모시고 있는 풍속 등은 우리 고조선의 풍습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조상신인 성주신(성주단지), 부엌에 주왕신, 우물가에 조왕신, 화장실 등에 각각 모셔진 신들은 우리의 고유민족 정신인 칠성사상과 삼신사상에서 비롯된 신앙이며 곧 풍류정신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러한 역사적 근거와 사료를 통해 볼 때 대표적인 경주 감실할매라고 알고 있는 감실의 주인공은 부처도 아니며 소박하고 인자한 우리의 할머니 조상인 뉘조 할매인 삼신할매라고 확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