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도사상

중도사상

통융 2010. 12. 27. 19:50

*중도(中道)는 무엇인가?

비구(比丘)들이여 세상에는 두변(二邊)이 있다. 제욕(諸慾)에 있어서 끄달리는 욕락(樂)과 스스로 괴로워(苦)하는 것에서 두변을 버리고 중도(中道)를 증지(證紙)하였노라....즉 석가가 육사외도(六師外道)의 고행(苦行)주의와 쾨락(快樂)주의를 부정하고 중도(中道)적 입장을 설명했다. 녹야원(鹿野苑)에서 다섯 비구에게 첫 설법이다.

초기불교에서는 팔정도(八正道)를 중도(中道)로 의미한다. 부처님이 최초의 법문이 팔정도 즉 중도였듯이 마지막 법문 또한 팔정도를 법문했다. 부처님께서 성불하고 나서 함께 수행하던 다섯 비구를 찾아가서 무슨 씀을 맨 처음 하셨는가 하면,"내가 중도를 바로 깨쳤다"고 했다. 그리고 부처님의 마지막 행적경인 대반열반경(大般涅槃經)에 보면 수빗타가 부처님 열반 직전에 어떤 것이 사문입니까? 라고 하는데 8가지 성도(中道)가 없으면 사문(師門)이 없다고 답했다.

이렇듯 중도가 불교의 근본입니다. 중도는 정과 반의 모순이 융합되는 것 즉 치우침이 없이 서로 토하는 융통(融通)입니다.

예를 들어 순자(荀子)의 성악설과 맹자(孟子)의 성선설인 선(善) 과 악(惡) 이 서로 대립되어 있는데 불교의 중도(中道)법에 의하면 선.악을 떠난 공중(空中)설이다. 선도 아니고 악도 아닌 그 중간이란 말이 아니다. 선과 악이 서로 통해 버리는 것이다.

모순 대립된 양변인 생(生) .멸(滅) 을 초월하여 생.멸이 서로 융화(融和)하여 생이 즉 멸이고 멸이 즉 생이 되어 버리는 것을 말한다. 이것은 물과 얼음에 비유하면 아주 알기 쉽다. 물이 얼어서 얼음이 되면 물이 없어(滅)졌습니까? 물이 얼어서 얼음(生)으로 나타났을 뿐 물은 없어지지 않았다. 결국 물이 얼음으로 나타났다 얼음이 물로 나타났다 할 뿐이고, 그 내용을 보면 얼음이 즉 물이고, 물이 즉 얼음인 것이다.

다시 말해서 선이 즉 악이고 악이 즉 선으로 모든 것이 서로 통한다. 서로 통한다는 것은 유형이 즉 무형이고 무형이 즉 유형이라는 식으로 통한다는 말이다. 그래서 중도법문(中道法問)이라는 것은 일체만물, 일체만법이 서로서로 융화(融和)하는 것을 말한다.

아인슈타인의 에너지 질량의 법칙인 E=mc2이란, 에너지(E) 가 곧 질량(m) 이라는 등가원리 공식을 보면 에너지가 질량으로 나타나고 질량이 에너지로 나타날 뿐, 질량과 에너지가 따로 없습니다. 물과 얼음이 서로서로 다르게 나타날 때에 물이 없어지고[滅], 얼음이 새로 생긴 것[生]과 같이 모양만 바뀌어서 물이 얼음으로 되었을 뿐이다. 그러니 언제나 불생불멸(不生不滅) 그대로입니다. 마찬가지로 질량이 에너지로 나타나고, 에너지가 질량으로 나타난다. 에너지가 질량으로 전환될 때 에너지는 멸(滅) 하고 질량이 생겨(生)  생(生) 이 즉 멸(滅) 이다. 질량이 생겼다(生) 는 것은 에너지가 없어졌다(滅) 는 것이고, 에너지가 없어졌다(滅) 는 것은 질량이 생겼다(生) 는 것입니다. 그러니 생.멸이 완전히 서로 통해 버린 것이다.

부처님께서는 2천5백년 전에 혜안(慧眼) 으로 우주 자체를 환히 들여다봤다. 일체 만법 전체가 그대로 불생불멸이라는 그 원리가 현대 과학적으로 입증되어 버렸다.



붓다[buddha]의 가르침은 열반涅槃과 여기에 이르는 길, 다른 말로 해탈解脫

가르쳤습니다. 어느 분이 " 깨달음은 중도中道다!" 하고 새로운 것을 발견한 듯 외치셨는데

중도中道역시 열반 Nirvana 이나 해탈의 중국식 표현일 뿐 설명할 문자만 복잡해집니다.


중도中道는 돈문頓門이지, 가르치거나  점수漸修<닦아서>

는 안 됩니다. 말로서 말 없는 '곳' 을 지칭하여 중도中道라하고, 이 뜻이 전해지면 이심전심

以心傳心이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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