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원/동아시아 불교

『3법계(三法界)』와 『화두3실문(話頭三實門)』의 비교 연구

통융 2024. 10. 9. 07:08

3법계(三法界)화두3실문(話頭三實門)의 비교 연구

 

과목명 : 화엄사상연구2(01)

담당교수 : 고승학

제출자 : 김영섭(통융)

학번 : 20111003

제출일 : 2020,12,15

 

 

 

 



. 들어가는 말
. 3법계(三法界)화두3실문(話頭三實門)의 비교
. 나가는 말


<참고자료>

 

 

, 들어가는 말

부처님이 보리도량에서 정각을 이루신 후 초전법륜경에서 여래는 양극단을 떠나서 중도(中道)를 얻었고, 이 지견(智見)이 생겨 적멸(寂滅)을 얻는 것을 선언하고 있다. 즉 중도실상인 연기법(緣起法)을 확철히 실지실견(悉知悉見)하여 깨닫고 붓다가 됨을 천명한 것이다. 이러한 진리를 공부()하여 지혜를 증득하고 수행()과 자비 나눔을 통해 자각각타(自覺覺他)의 삶을 사는 것이 불교의 목적이다. 즉 지혜와 자비는 교학(敎學)과 선행(禪行)으로 설명할 수 있다. 서산대사도 선가귀감에서 부처님 3처전심 즉 마음이 선지가 되고, 말씀은 교문이다라고 설하듯이 지혜와 선행은 새의 양 날개로 병립한다.

본 논고는 이러한 교와 선을 대승교학의 화엄법계(華嚴法界)와 선불교(禪佛敎)의 간화선(看話禪) 실참화두(話頭)어떻게 대대(對帶)를 이루며 상응(相應)하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또한 천태에서 교설하는 3실제(三實諦)와 기신론(起信論)3(三大)도 함께 알아본다.

화두는 선어(禪語)로 단어의 개념이나 그 말 속에 그때그때 살아 움직이는 모습을 포착한 것이라고 한다. 본각(本覺)을 이루려는 방편 도구로 언하(言下)에 대오(大悟)를 체험하게 하지만 그 자체가 진실이다. 법계관문에서 말이나 알음알이로서 도달할 바도 아니며 생각을 움직이면 곧 진리의 본체에 어긋난다.’고 했고, 법은 보여 줄 수 없고 언어로 표현할 길 없다.는 것을 법화경은 설하고 있다.

그래서 선불교에서는 '불립문자 교외별전'을 내세워 교학을 소홀히 하는 경향이 있다. 역으로 교학에서는 선사들의 선문답을 희론(戱論) 쯤으로 이해하는 측면도 있다. 이러한 선교가 서로 회통하게 하는 연구가 필요하다고 느낀다. 선문에 1700여 공안이 있지만 대표적인 공안을 가지고 부족한 소승의 선행 경험이지만 실참한 화두를 체상용(體相用)3실문(實門)으로 구분하여 진리의 실제(實諦)를 고찰해 보고자 한다.

 

. 3법계(法界) 화두(話頭) 3실문(實門)의 비교

 

먼저 대승 교학의 중심인 화엄사상은 법계(法界,Dharma-dhātu)연기법계불사의(緣起法界不思議)’ 한 진여법계(眞如法界)가 핵심개념이다.

이러한 법계는 화엄종의 시조인 두순(杜順,557640)의 저서로 알려진 법계관문(法界觀門)에서 크게 세 부문으로 나눈다.

진공관(眞空觀), 이사무애관(理事無礙觀), 주변함용관(周遍含容觀)이다.

이 삼관을 규봉종밀(峰宗密,780~841)주화엄법계관문(註華嚴法界觀門)을 통해 체계적으로 설명되고 있다.

청량징관(澄觀, 738838)이나 규봉종밀은 화엄의 대표적인 4법계로 나누는데 법계관문3법계인 진공관은 사법계(事法界)와 이법계(理法界)로 이사무애관은 같은 이사무애법계(理事無礙法界)로 주변함용관은 사사무애법계(事事無碍法界)로 나누어 이법계(理法界), 사법계(事法界),이사무애(理事無礙),사사무애법계(事事無碍法界)를 확립하고 있다.

 

먼저 3법계관을 살펴본다.

진공관(眞空觀)은 법의 실체로 단공공, 단색공으로 일체가 공()해서 상()이 전부 떨어진 것이다.

이사무애관(理事無礙觀)은 진공관에서 모든 것이 공하여 일체의 상이 떨어졌으나 여기에 이르면 도리어 이치와 사물이 걸림이 없이 원융무애하다.

그래서 만법 성상(性相)의 자체가 진공절상임을 즉견하여 비색공즉(非色卽空)인 이사무애관이 성립된다.

앞의 2관을 바탕으로 세 번째 주변함용관(周徧含用觀)은 있는 그대로의 함용으로 사사무애법계(事事無碍法界)가 성립하고 십현문(十玄門)의 무애원융한 것으로도 구분하다.

 

진공관은 또 4()로 나누고 있는데 이 것도 체상용(體相用) 3관의 대꾸로도 설명할 수 있다.

회색귀공관은 색이 나타난 경우고, ‘명공즉색관은 공이 나타난 경우로 이 둘을 하나로 보면 색즉시공 공즉시색으로 공관(空觀)이 된다.

공색무애관은 색공이 동시에 장애 됨이 없이 원융유하게 나타나는 현상으로 실상관(實相觀)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민절무기관을 실천에 의해서만 드러나는 것으로 설명이 필요 없이 순일(純一)한 상태의 실용관(實用觀)을 말한다.

 

다음은 4법계를 살펴보자.

()법계는 연기적 현상의 본체가 차별성을 나타내어 색즉시공의 일여(一如)이다.

()법계는 법의 연기성인 본체를 말하며 현상 속에 공즉시색이며 일여(一如)이다.

이 둘은 하나의 진공관(眞空觀)으로 일여(一如)이다.

이사무애(理事無碍)법계는 이와 사가 하나의 걸림 없는 상호관계 속에 있는 색즉시색 공즉시공인 여여(如如)을 말한다.

사사무애(事事無碍)법계는 개체와 개체가 자재융섭하여 현상계 그 자체가 절대적인 진리의 세계라는 뜻이며 있는 그대로의 화엄의 법계연기의 즉여(卽如)인 무애행(無碍行)이다.

 

이법계(理法界)는 공()의 세계를 말하며 연기(緣起)의 실체로 제법공상이고, <대승기신론>에서는 진여문(眞如門)이고 공즉시색이다.

초기 수행단계로 보면 정()을 닦는 사마타이다.

하나의 진공관(眞空觀)으로 일여(一如)이다.

 

사법계(事法界)는 유(=)의 연기적 현상(現相)인 공()성을 바탕으로 이루어진 가()의 세계로 색즉시공이다.

제법실상의 묘법의 세계이며 있는 그대로가 진리인 일여(一如)이다.

<기신론>의 생멸문이다.

대상의 알아차림인 관()법의 위파사나이다.

 

이사무애(理事無碍)는 진공(眞空)묘유(妙有)인 색즉시공(色卽是空) 공즉시색(空卽是色)이다.

번뇌즉보리(煩惱卽菩提), 현실즉이상(現實卽理想)의 세계이다.

와 사가 하나의 걸림 없는 상호관계 속에 있는 색즉시색 공즉시공인 여여(如如)을 말한다.

진여문(眞如門)과 생멸문(生滅門)이 일심(一心)으로 회통한다, 쌍차쌍조(공과유), 정혜상수 지관겸수 성성적적이라 한다.

 

사사무애(事事無碍)는 이()와 사()가 장애를 일으키지 않는다.

일중일체 다중일인 함용(含用)과 일즉일체 다즉일인 상즉(相卽)으로 모든 것이

이와 사가 있는그대로 나타내 쓰여지는 무애행(無碍行)으로

이사무애 법계의 내용을 구체적으로 쓰여지는 법계관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것이 중도(中道)이다.

 

법계를 진공묘유(眞空妙有)의 공()과 유()가 원융함을 밝히는 법장스님의 진공사의(眞空四義)를 알아본다.

첫째. 자기를 버리고 남을 이루는(廢己成他義) 것은 공()이 곧 색()이기 때문에 색은 드러나고 공은 숨어버리는 것이다. 둘째. 남을 숨기고 자기를 드러내는(泯他顯己義) 것으로 색이 공이기 때문에 곧 색이 다하면 공이 드러나는 것이다.

이 둘은 드러냄과 버림이 색이공이고 공이색이다.

즉 자기와 남이 함께 존재(自他俱存義)하는 것으로 숨음과 드러남이 둘 아닌 것이 진공이기 때문에 공과 색이 둘이 다 존재하는 것입니다.

셋째. 자기와 남이 같이 사라지는(自他俱泯義) 것은 색즉공이라 색이라 할 수 없고 공즉색이라 공이라 할 수 없으므로 색과 공이 사라진 면에서 쌍민(雙泯)하여 원융 자제한 것을 설명하고 있다.

 

또한, 청량국사는 화엄경()을 체종용()으로 나누고

이실(理實)은 체()가 되고, 연기(緣起)는 용()이 되고, 인과(因果)는 종()이 된다.

종을 탐구하여 이실인 본체에 향하게 한 까닭이다.

법계는 체종용(體宗用) 셋을 다 포섭하고 있다고 했다.

 

이와같이 화엄법계의 모든 것은 3법계로 나눠서 설명할 수 있다.

연기작용성은 실체(實體)이고 보여지는 현상은 살상(實相)이 된다.

이러한 체상이 쓰이는 일심법계로 융통 자제한 있응 그대로의 쓰임을 중도실용(實用)으로 설명한다.

 

기신론에서도 일체법이 진여(眞如)이며 평등하여 늘어나거나 줄어들지 않는 체대(體大)라 했다.

 여래장(如來藏)이 한량없는 본성의 공덕을 구족한 것은 상대(相大)라 했다.

일체 세간과 출세간의 선한 인과를 나타내고 모든 부처님께서 본래 성취하셨고 모든 보살이 이 법을 타고서 여래의 지위에 이르기 때문에 용대(用大) 밝히고 있다.

 

천태종의 교설인 3제원융(三諦圓融)을 알아보면,

교주인 천태대사 지의(538~597)는 중도실상을 바탕으로 공가중(空假中)3(三諦)설을 설파하고 있다.

즉공즉가즉중(卽空卽假卽中)3(三諦)가 상호 원융한 일실제(一實諦)임을 논한다.

대사는 중관(中觀)사상인 ()과 가()는 둘인 듯 하나이고 하나인 듯 둘의 원리를 체득하는 것으로 붓다의 구경의 가르침인 중도(中道)이며 원만각(圓滿覺)’이라했다.

이것을 토대로 모든 것은 부사의(不思議)한 삼제원융하며 가(假)와 중()이 없으면 공()이 아니고 공()과 중()이 없으면 가()가 아니며 공()과 가()가 없으면 중()이 아니어서, 삼제(三諦)가 원융(圓融)하다라고 마하지관(摩訶止觀)에서 설명한다.

공한 법을 삼제(三諦) 일심삼관(一心三觀)의 공관(空觀), 가관(假觀), 중관(中觀)으로 나눈다.

공관(空觀)이란 현상계의 일체법은 실체가 없는 공으로 마음의 본바탕인 불성(佛性)을 깨닫고자 함이다.

가관(假觀)은 현상계의 차별성에 나타난 연기적 현상계로 모두가 허실임을 설명하고,

중관(中觀)은 공과 가를 일심으로 원융한 일체법을 달관하는 대승의 보리도를 말한다. 

 

선불교(禪佛敎)의 간화선(看話禪) 화두(話頭)에 대해서 알아본다.

불법은 늘 적적성성(寂寂惺惺)하게 살아있는 실제(實諦)를 직접 체험한 한 소식, 혹은 돈오(頓悟)할 수 있는 수단과 방법이 화두다.

다시 말해 실상무상 미묘법문 불립문자 교외별전을 내세우며 '직지인심 견성성불'을 통한 언하(言下)에 대오(大悟)하는 것이라 한다.

이러한 화두 실참선행(實參禪行)을 통해 체험하는 단계를 3실문(三實門)인 체상용(體相用)으로 나누어 살펴본다.

체(體)는 공()의 연기성인 실체(實體)로 나타낸다.

()은 연기적 현상으로 나타내 보이는 실상(實相)이고,

()은 체상이 하나로 실제 쓰임인 중도실용(中道實相)을 설명한다.

 

한국 숭산(崇山1927-2004)스님은 선의 나침판에서 360도의 선원(禪圓)을 활용해 정확한 상황(situation) 정확한 관계(relation) 정확한 활용(function)을 체상용의 세 부분으로 구분해서 설명하고 있다.

고봉(高峰12381295)선사도 선요(禪要)에서 고봉 문하에서 누구나가 뚫어야 할 관문 실중삼관(室中三關)이 있다.

법의 실체(實體)를 체험하고 나아가 연기실상(緣起實相)을 알아차려서 중도실용(中道實用)의 마지막을 언하에 대오하게 하는 관문 있다.

도솔(兜率從悅:1044-1091)스님의 3관문(三觀門)도 역시 이와 유사한 화두참구를 통해 알아차림의 실제가 있다.

 

이러한 화두의 실제를 가지고 앞에서 살펴본 화엄의 3법계와 유식의 3, 천태의 3제원융한 진리를 어떻게 대대를 이루며 설명될 수 있는지 아래 <법계와 화두 3실문의 비교> 도표를 참고해서 고찰해 보고자 한다.

법계와 화두 3실문의 비교
3법계 4법계 3 3 3
진공관 이법계 () 체대(體大) 조주구자(趙州狗子)
구지수지(俱胝竪指)
이사무애관 사법계 () 상대(相大) 운문미궐(雲門屎橛)염화미소(拈花微笑), 동산수상행(東山水上行)
이사무애
주변함용관 사사무애 () 용대(用大) 삼계 화택(火宅)에서 구명(救命)
남전참묘(南泉斬猫)

< 법계와 화두 3실문의 비교 >

 

먼저 진리의 실체를 체험하는 조주선사(趙州778~897)의 무()자 화두다.

한 스님이 조주선사에게 물었다.

개에게 불성이 있습니까?

조주 왈 라고 했다.

이 화두는 선종에 대표적인 깨달음의 첫 관문이다.

진공을 체험하는 순간이다.

는 제법이 드러난 즉시 이미 감춰짐(即照而遮)’ 연기성의 실체(實體) 즉 차공(遮空)을 보여준다.

구지수지(俱胝竪指)의 공안을 보자.

구지선사가 불법을 물으면 손가락 하나 들어 보이는 것감춰진 즉시 이미 드러남(即遮而照)의 조공(照空)을 알아차림이다.

이 둘의 공안은 무분별심으로 오직 밖에 없고 손가락이 드러남 밖에 없어야 한다.

우주 법계에 오직 , 손가락만 존재하는 지금의 순간이 돈오(頓悟)로 성성적적한 깨어있는 개시오입(開示悟入)이다.

덕산(德山)의 방(棒)이나 임제(臨濟)의 할(喝)도 다를 바가 없다. 

즉시 해탈을 얻으려면 어떻게 수행해야 하느냐?’는 질문에

대주(大珠)선사는 오직 돈오(頓悟) 일문(一門)이고 돈()은 망념을 여의고 오()는 무소득이라고 했다.

()은 분별없는 순간인 개시(開示)라면 오()는 돈()의 순간을 취한 오입(悟入)으로 비유된다.

능가아발다나보경에서도 즉시 여래의 본성에 들어가는 문은 모든 중생이 개시오입 하는 것이기에 부처와 선()은 같은 것이다라고 했다.

 

다음은 연기성의 실상을 알아보는 화두다.

대변을 보고 오는 운문(雲門864~949)선사에게 학승이 물었다.

부처가 무엇입니까?

건시궐(乾屎橛), 마른 똥 막대기니라.” 하였다.

당시 특정한 화장실이 없어서 아무데나 대변을 봤던지 주위에 마른 대변들이 많았던 모양이다.

함께 드러남과 함께 감춰짐(雙照雙遮)이다.

모두 드러남으로 그 속에는 공의 실체도 있고 연기의 현상도 있다.

또 가섭의 염화미소는 이심전심(以心傳心)의 대표적인 화두이다.

부처님이 영산회상에서 법화경을 설하시다가 부처님이 말없이 꽃을 한 송이 들어 보이셨다.

모든 대중이 부처님이 왜 꽃을 들어 보이시지?’ 어리둥절하고 있는데 가섭존자만 빙그레 웃었다.

이에 부처님이 정법안장을 전한다는 내용이다.

이 두 공안은 똥 막대기 부처로 늘 성성적적하게 살이 있음을 여실하게 우리 눈앞에서 웃고 있는 것이다.

어떤 스님이 운문(雲門)에게 묻기를

어떤 것이 학인의 자기입니까?” 하니,

운문이 대답하기를 동산(東山)이 수상행(水上行)이로다하였다.

이사무애(理事無碍)의 일중일(一中一)의 묘유(妙有)를 설명하고 있다.

열반경에서 일체 성문연각들은 아직도 생각과 견해를 멈추지 못하지만, 부처는 오직 실지실견(悉知悉見)한다고 설명하고 있듯 이 소식을 알아차리게 되면 비로소 연기작용의 모든 제법실상을 알아차리게 된다.

 

끝으로 중도실용의 공안을 살펴보자.

법계는 하나로 꿰뚫어 무애하게 밝히는(圓明一觀) 것이다.

법화경2방편품'삼계의 불타는 집(火宅)에서 동서로 뛰어다니느라 큰 고통을 당하면서도 걱정할 줄 모르고 장난하고 놀고 있는 아이들을 부처님은 지극한 자비로 구해 내는 화택의 비유.

이를 고봉(高峰1238~1295)선사는 선요(禪要)에서 온 대지가 불구덩이거늘 어떤 삼매로 살아날 것인가?”라는 공안을 제시한다.

이 공안은 고봉 문하에서 누구나가 뚫어야 할 관문 실중삼관(室中三關)에 마지막 화두다.

불타는 집이 번뇌망상으로 살아가는 중생심이다.

오탁악세의 삼계화택에서 벗어나 이고득락(離苦得樂) 하는 것을 설명한다.

남전보원(南泉748834)스님이 대중 앞에서 한 손에 칼을 들고 한 손에 고양이 목을 움켜잡고 질문한다.

이 고양이를 살리려면 한 마디 일러라?”

아무도 답이 없자 고양이 목을 베었다.

제자를 가르치기 위해 지옥고(地獄苦)를 마다하지 않는 자비다.

만약 그대가 그 자리에 있었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불법의 대의는 이해하고 아는 것이 아니라 바로 깨달아 활발발하게 쓰는 삶이다.

부처님도 독화살을 비유한 것이 있다. 답은 분명 깨어 알아차릴 때 나온다.

()은 설명이 아닌 실제를 알아차리는 것이다.

말이 필요 없다.

오직 할 뿐, 볼뿐, 들을 뿐이다

있는 그대로 지금을 깨어서 알아차리는 것이 중도 실용이다.

만약 고양이를 살릴 수 있는 안목이면 그가 정변지(正徧知)자요 법계의 정복자다.

이 두 화두에서 앞에 화택 화두는 자리(自利)의 이고득락이라면 뒤에 남전참묘는 이타(利他)에 자비희사(慈悲喜捨)의 공안이다.

사사무애(事事無碍)한 법의 진리이다. 

진리는 평상심시도라 했다. 있는그대로가 이미 완전한 법이다.

 

이상에서 법계와 화두의 관계를 살펴 봤다

법의 교학적 이론을 화두의 실참으로 여실하게 나타내려고 노력 했다.

하지만 논제의 범위가 넓고 지면 관계상 고찰의 내용이 부복함을 인정한다. 앞으로 보다 체계적인 연구의 과제로 남긴다.

 

. 나가는 말

 

법은 오직 현현(顯現)하여 살아있다. 중도실용(中道實用)으로 귀일(歸一)한다. 교학과 선행(禪行)3실문인 체상용으로 비교하여 살펴 봤다. 이들은 격별하면서도 서로 무애(無碍)하여 일심진여(一心眞如)의 법계임을 확인했다.

또한 선불교에서 1700여 공안도 체상용으로 구분하여 법의 실체를 깨닫는 과정이 각기 다름을 알 수 있었다. 

모든 법계의 작용성()은 진리의 본체()로 공성(空性)을 가진 일여(一如) 즉 진공(眞空)이다. 이 진공이 묘한 연기적 현상을 실지실견(悉知悉見)으로 알아차리면 기()의 여여(如如) 즉 실상()이 된다. 그리고 체와 상이 하나로 쓰이는 실제(實諦)평상심시도(平常心是道)요 번뇌즉보리(煩惱卽菩提)인 즉여(卽如) 즉 중도실용이다. 오직 지금! 알아차림(止觀)이다.

이러한 모든 법은 언어적 개념(槪念) 속에서 경()의 의도를 잘 알아차려 지혜를 얻고 법을 직접 체험하여 깨닫아 쓰는 삶이 되어야 한다. 그 때 비로소 법계의 원융(圓融)한 법신이 성성적적(惺惺寂寂)하게 드러난다. 이것이 불교의 대의라 생각한다.

 

<참고자료>

 

-원전-

大方廣佛華嚴經疏3卷 大正藏 (T)35, No.1735

雜阿含經12, 大正藏, T2, No.299, p85b24

妙法蓮華經大正藏. 1(T)9 No.0262

法藏述 般若波羅蜜多心經略疏1卷 大正藏, T33, No.1712

龍樹造梵志青目釋 姚秦三藏鳩摩羅什譯 『中論4卷 大正藏, T30, No.1564

馬鳴造 諦譯 大乘起信論,1, 大正藏 (T) 32

註華嚴法界觀門1卷 大正藏 (T)45 No.1884

曹谿退隱述禪家龜鑑卍新續藏第 63 No. 1255

註華嚴法界觀門1卷 大正藏 (T)45 No.1884

高峰原妙禪師禪要卍新續藏第 70 No.1401

無門慧開著無門關大正藏第 48 No.2005

華嚴經疏3, 大正藏35,

澄觀述華嚴法界玄鏡大正藏第 45 No. 1883

智顗 妙法蓮華經玄義大正藏, T,9

智顗 摩訶止觀大正藏, T,46

永嘉禪宗集註2卷 卍續藏 (X) 63

四十二章經註卍新續藏, 37,

승가제바(僧伽提婆) 중아함경K.648, 22

慧海 『頓悟入道要門論卍續藏, X,63

 

 

-단행본-

광도 법화현의의 묘해금강대학교 출판부, 2019

崇山述 玄覺譯선의 나침판도서출판열림원, 서울, 2001

장휘옥,김사업 提唱, 윤재승 무문관 참구민족사, 서울, 2012

 

-논문-

정엄 (서해기) 징관의 화엄법계관불교학연구 2005,

정성욱(자명) 선문답의 원리에 대한 고찰()한국불교학회 2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