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융의 이야기

내가 부처임을 자각하라.

통융 2024. 3. 5. 15:38

나도 부처 너도 부처

우리 모두가 부처이다.

 

이 세상은 부처 아닌 것이 없다.

그래서 불국토라 한다.

 

부처는 이 세상에 모든 존재, 있는 그대로가 부처다.

나 뿐만 아니라 모든 존재는 조건인 인과 연에 의해서 일어나는 작용이다.

이것을 연기법이라 말하고 부처님이 깨달은 진리라고 한다.

 

신이나 특정 우상을 섬기는 자들은 이 세상에 모든 존재하는 것은 신이 창조한 것이라 한다. 

유일한 신이 있어 모든 것을 만들고 소멸시킨다고 믿는다.

시간과 공간이 직선적이라 시작과 끝이 있다. 

 

하지만 연기작용의 진리는 영원히 고정된 실체는 없다.

모든 것은 변한다는 사실이다.(성주괴공,생주이멸)

 

그리고 서로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시간과 공간은 둥근 원이며 이것은 영원한 시작과 끝이 없는 무한대이다. (무시무종)

 

근현대 물리학자들이 시공간의 무한대를 과학적 지식을 통해  밝혀 내고 있지만 

붓다는 이미 2천5백년 전에 체험을 통해 밝히고 있다.

 

이 연기의 진리를 부처님은 어떻게 깨달았을까?

 

사캬국의 왕자인 싯달타는  성문 밖에서 (사문유관)

사람들이 태어나 병들고 늙고 죽음을 벗어날 수 없는 괴로움의 현실의 모습들을 보면서 깊이 사유하기 시작 했다. 

태자는  이러한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궁을 떠나 출가를 한다. 

 

당시에 최고라는  스승들을 찾아 자신의 괴로움의 소멸에 대한 의문점을 해결하려고 시도한다.

그리고 직접 선정수행을 통해 그들이 말하는 최고의 경지까지 도달해 보았지만 싯달타가 찾고자 하는 완전한 괴로움의 소멸은 해결되지 않았다.

 

선정주의 명상에서 느껴본 일시적인 고요함이나 평온함이 아닌 

영원한 대자유, 해탈 열반에는 어떻게 도달할 수 있을까?

 

결국 태자는 스스로 자신의 내면을 회광반조하여

'나의 문제는 내 안에 있음을 자각'하고 사색하기 시작한다.

 

보리수 아래서 좌선을 하고 앉아 정진에 들어간다. 

그동안 외부에서 찾고 도달하려고 애쓰던 모든 지식과 알음알이를 내려 놓고 

내 몸과 마음을 관찰하고 내 안에서 일어나는 존재 의식에 집중한다.

 

나는 무엇이며 누구인가?

태어나고 병드는 고통과 늙고 죽음의 괴로움은 왜 일어나는가?

그러한 괴로움의 조건과 원인은 무엇으로 인해 일어나고  어떻게 작용하는가.

또한 괴로움의 소멸은 어떻게 일어나며 어떻게 되는가?

 

그동안 나는 나라는 존재, 즉 개아,자아라는 주관적인 정체성인 나를 기준해서

 모든 것을 통제하고 비교하고 판단하던 마음(일체개고)인 '자아의식'에서 차츰 객관적인 '무아의식'으로 전환되기 시작한다.

들숨과 날숨을  알아차리고 깨어 있는 존재 내면의 소리를 느껴본다. 

몸의 알아차림, 마음의 알아차림, 알아차림의 알아차림

 

결국 나라는 몸도 5가지의 무더기(色)로 지수화풍의 모든 요소로 인연되어 연결 되어진 물건(200조의 세포)이고 매 순간순간 생성소멸하며 변해간다. 

그렇기 때문에 내 몸은 태어나는 순간 부터 고정된 나라고 할 만한 것이 없다.

유년기 아동기 청소년기 청년기 성인기 노연기를 거치며 병들고 늙어 변해간다. 

 

마음(受相行識)도 그렇다.

생각이라는 것도 본래 있는 것이 아니라 6가지의 몸의 뿌리(6根=안이비설신의)를 통해 조건(6識)에 인연이되면 경계(6境)가 나타났다가 사라진다. 기쁨이, 슬픔이, 괴로움이 영원히 머물거나 존재하는 것이 없다.

 

이와 같이 모든 존재는 조건인연에 따라 작용하는 것일 뿐이다.

이것이 있으면 저것이 있고

이것이 소멸하면 저것이 소멸한다.

그러면서도 모든 것은 서로서로 연결되어 있구나.

 

모든 존재는 한 순간도 고정됨이 없이 변해간다. 

찰나찰나 모든 존재는 생멸을 반복하며 변해 갈 뿐, 고정된 실체가 없구나.

즉 내가 있는것이 아니라 없다.

내가 없다는 무아(無我)가 된다. (제법무아)

무아를 다른 표현으로는 내가 공(空)하다고 할 수 있다. 

 

그동안 내가 있다는 것은 착각이다. 

그 착각이 모든 괴로움을 만들어 냈구나.

내가 없다면 모든 생로병사의 괴로움을 누가 느끼겠는가. 

모즌 존재는 일어남을 알아차릴 뿐, (조견오온개공도 일체고액)

 

내가 없어지면 나는 무엇에 의존해서 비교하고 판단하여 결정하는 기준이 없어질 뿐만 아니라

그렇게 판다하는 존재 자체도 없기에 모든 것은 그냥  '있는 그대로' 일어날 뿐이다. 

 

즉 무아가 되면 내가 없기에 내가 의식하는 괴로움이 사라지고 없어진다. 

괴로움도 즐거움도 그냥 일어날 뿐이다. 

이것이 괴움의 소멸이다. (열반적정)

 

하지만 이 연기작용은 모든 존재가 서로서로 인연과를 통해 하나로 이어져 있다.

그러면서도 나타난 존재는 절대 같은 것이 없다. (제법실상, 천상천하 유아독존) 

즉 모든 존재는 하나로 연결된 그물(인드라망)과 같다는 것이다. 

 

결국 하나 속에 전체가 있고 전체 속에 하나가 있는 것이다.(일즉일체 다즉일 일미진중 함시방)

고정된 '나'라는 실체는 없지만 연기작용으로 나타난 이 우주는 거대한 하나,  나라고도 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모든 이웃, 사람, 동물,자연 등이 나이기에 어찌 사랑하고 자비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통체대비)

 

이 세상의 모든 존재는 연기법으로 일어날 뿐이며

나 홀로 존재하는 것은 없고 나와 연결되어 있다. 

그래서 모든 존재는 소중한 또 다른 나이기에

'내가 나를 바라보듯' 모든 존재 이웃을 사랑 하고 연민하고 자비를 베풀어야 한다고 했다.(자비희사)

 

이러한 연기작용으로만 존재하는 나

한 순간도 머뭄 없이 변해가는 나

이 세상 모든 존재가 또 다른 나이다.

 

모든 존재는 허공에 핀 꽃처럼 거짓이면서도 실재이고 실재이면서도 거짓인 아바타이다. 

내가 없기 때문에 전체가 나이며 내가 전체가 된다. 

 

그 진리를 깨달은 자를 붓다 부처님이라 하고 

부처님이 자신의 깨달은 진리를 설명하고 가르친 종교가 불교이다.

 

불교는 이 세상에 존재하는 그 어떤 진리나 신앙 종교 철학에서 찾아 볼 수 없는 

가장 위대한 것이 내가 없다는 '무아사상'인 무아설(無我說)과 

동시에 모든 존재가 나와 하나라는 '동체대비사상'인 이 동체대비설(同體大悲設) 이다. 

그러면서도 모두를 아우르며 수용하는 종교가 불교이다.

.

또한 불교를 지혜와 자비의 종교라 한다.

연기의 참된 진리를 깨닫는 것이 지혜요.

모든 존재가 나임을 알아 내 몸같이 사랑하고 자비하는 것이다.

 

이것이 붓다가 깨달은 연기법의 진리이며 중도,불법이라고 한다. 

그러니 이 세상에 모든 존재는 불법으로 나타난 존재이니 부처이다. 

그 법의 작용이 일어나는 성품이 불성이고 부처, 여래, 본성 등으로 설명하는 것이다. 

 

즉 내안에 불성의 성품이 있고 그 성품작용으로 나타난 존재이니

나는 본래 부처인 것이다. 

 

내가 부처인 것을 확실히 알아차리면 부처님이 된다.

 

부처님은 대자유인이기에 걸림이 없는 행복, 열반 적정을 갖지만

중생은 분별심(탐진치)으로 늘 괴로워하고 힘들어 하기에  깨달아 부처님이 되고자 노력하는 것이다.

왜냐면 인간은 늘 괴로움에 벗어나 행복하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나는 본래 부처임을 자각하자. 

 

 

 

<설명으로 부처님이 깨달은 과정을 살펴보자>

태자가 보리수 아래서 사마타 집중 선정 수행을 통해 얻은 삼매가 일어나고

연기법의 본질을 꿰뚫어 해체하여 통찰하는 위빠사나 수행을 한다.

무상함을 통해 무아를 알아차리고 무아를 통해 괴로움의 소멸을 알아차리면서 고요하면서도 성성한 선정이 일어난다.

 

내 몸에서 떠난 의식은 더욱 명료해지고 거대한 에너지로 확산 되기 시작한다.

그러면서 숨 쉬는 내 몸은 그대로 인데 인식의 대상이 사라지고 마음 또한 분명하지만 공해지고

온전히 청정법신인 진리의 빛으로 세상은 텅 비워졌다.

 

어두운 밤하늘에 샛별 빛이 정수리를 뚫는 순간 대각을 이루며 

한마음 안에 온 우주의 법계가 화엄으로 투명해 졌다.

 

모든 존재가 서로서로의 연기작용으로 그렇게 나투며

각자의 존재가 천상천하에 독존이면서 대자비의 원융함으로

 차례차례로 6신통이 깨어나기 시작한다.

아! 이것이 열반의 법계이구나.

무엇이 여기에 더하고 덜 할 수 있으며 참과 거짓으로 나눌 수 있을까.

진리가 나를 붓다로 만들고 나의 고뇌에서 해방을 시켜주니

나는 드디어 천인사 세간해에 무상사 조어장부로  부처님이 되었도다.

 

그렇게 대오각성한 부처님은 진리에 감사를 한다.

"나는 연기법의 진리를 창조한 것이 아니다.

이 진리는 이미 존재 했고 다만 나는 그 진리를 알아차렸을 뿐이다."

 

"내가 진리를 깨닫고 보니

모든 존재가  이미 부처이구나. 다만 그들이 부처인 줄을 모를고 있을 뿐이구나."

 

이렇게 부처님의 역사가 시작된다. 

부처님은 연민이 생긴다.

괴로움에 허덕이던 자신의 옛 모습과  깨닫지 못한 중생들의 모습이 겹쳐지며 스크랩 된다. 

내가 일체중생의 괴로움을 구원해 주리라.

 

무지가 중생의 마음을 혼돈케하여 괴로움이 생기니

그 혼돈의 마음을 어떻게 하면 해방되고

참 본성인 불성을 찾아 깨어 있는 대 자유인, 주인공으로 살아가야 하는 지를 전도하기 시작한다.

 

내 안에 불법을 등불로 삼아 귀의하고 게으르지(방일하지) 말고 정진하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