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융의 이야기

신중기도는 왜 할까요?

통융 2023. 1. 29. 11:50

신중기도는 왜 할까요?

 

기도는 대상이나 명호, 혹은 방법이 중요하지 않습니다.

오직 지극한 일념으로 정성을 다하시면 됩니다.

내 안에 모신 불보살님들(불성)을 깨워서

스스로 가피를 받는 것입니다.

가피는 외부에서 얻는 것으로 알지만

사실은 자신이 원하는 것이 내 안에서 불성으로 작용하기에 내 안에서 얻습니다.

밖에 저렇게 많은 불보살님들과 신중님들을 향해 기도하는데

왜 내 안에서 작용한다고 할까요?

많은 신중님들을 믿고 인정하면서도

왜 내가 부처가 되고 그들이 될 수 있다고 할까요?

왜냐면 불교의 진리가 연기법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반야의 지혜이며 중도하고 합니다.

이 세상에 모든 존재는 그물처럼 서로서로 연결되어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너와 내가 둘이 아닌 우리, 하나의 동체이기 때문에

모든 존재가 또 다른 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모든 존재는 한 순간도 고정된 멈춤이 없고 변하기 때문에

딱히 나라는 존재가 없어 무아라고 합니다.

그래서 모든 불보살님과 신중님들도 이름이 다를 뿐이지

모두가 하나의 불성을 가진 존재인 부처이며 또 다른 내가 되는 것입니다.

불교에서 말하는 기도는 서원과 발원의

자비희사(慈悲喜捨)에 있듯

나도 좋고

너도 좋고

더불어 온 우주에 모든 것이 함께 좋아서 불국정토를 추구하는 것이 불교의 기도입니다.

불교는 이웃 종교처럼 절대의 유일신과

주종의 관계로 구원을 빌고 바라는 이원론적 기복신앙이 아닙니다.

불교의 기도는 앞에서도 설명 했듯이 궁극적으로 '내가 누구인가?'를 알아차리는 기도입니다.

즉 내 안에 불성을 깨워서 내가 부처가 되고 신이 되어 스스로 가피를 받는 일원론적 종교입니다.

신중(神衆)이란?

불법을 수호하고 호법하는 다양한 신들의 무리를 말합니다.

대표적으로 화엄경에서 등장하는 화엄신중39위와 중국과 우리나라 재래신들이 함께

모셔진 104위 신중님들을 대부분 사찰에 모십니다.

이들 모두가 불법의 수행 정도에 따라서 10법계와

삼계 28천으로 구분하여 계위를 나눠 나타낸 비유의 부처님들입니다.

신중임들에게 기도하는 것은 가장 가까운 선배나 스승님들과의 대화이고 부탁이니

아마 빠르게 이뤄지겠지요.

기도는 바르게 믿는 신심을 내고

꾸준하고 정성스런 일심으로

자비로운 한마음으로 지극히 발원하십시오.

그러면 모기가 무쇠솥을 뚫 듯, 입 없는 부처가 말을 하듯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 없습니다.

왜냐면 우리는 모두가 불성을 가진

부처님이기 때문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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