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반니원경(佛說大般泥洹經)

불설대반니원경 제2권

통융 2020. 6. 18.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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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설대반니원경 제2

 

 

동진 법현 한역

한지안 번역

 

 

 

4. 애탄품(哀歎品)

 

이때 온 땅이 여섯 가지로 진동하였다. 취락과 성읍과 산과 바다, 그리고 시방이 모두 크게 진동하였다. 때에 여러 중생들이 각기 큰 두려움을 내었으며 천상과 인간아수라들이 소리를 지르며 슬피 탄식하면서 부처님 발에 절하고 공양하여 마치자 모두 한꺼번에 게송으로 말하였다.

 

사람 가운데 영웅이신 이에게 머리 조아립니다.

저희의 지금 고로(孤露)함을 불쌍히 여기소서.

세존의 발아래 몸을 던져

미묘한 공덕을 우러러보옵니다.

 

저희에게 나고 죽는

갖가지 한량없는 고통을 말씀해 주시고

여러 천상과 인간의 듣는 자가

싫증을 내지 않게 하셨습니다.

 

비유컨대 외로운 아들이

곤란한 병이 스스로 몸에 걸려

비록 훌륭한 의사의 치료를 만났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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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병이 아직도 낫지 않아

 

의사가 홀연히 중도에

저를 버려 타방으로 보낸 것같이

저희들과 일체

궁핍하여 괴로운 이도 또한 그러합니다.

 

비로소 방편으로

뭇 삿된 번뇌견을 치료함을 입었으나

큰 의술의 왕이신 세존께서

홀연히 저희들 버리고 가시니

 

바로 궁핍하고 병든 아들이

의사를 잃고 의지할 데 없는 것과 같습니다.

슬프도다. 이 세상

이제부터 텅텅 비는구려.

 

나라가 흉년들고 어지러운데

현명한 군주를 잃는 것과 같습니다.

슬프도다. 천상과 인간들이

나찰의 환난을 당한 듯

 

곡식이 귀한 시절에

백성이 기근의 고통을 당한 것 같습니다.

슬프도다. 천상과 인간들이

길이 감로의 맛을 잃었습니다.

 

사나운 불길이 일어나

중생들이 모두 타 죽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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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프도다. 천상과 인간들이

악도에 치연(熾然)하였습니다.

 

슬프도다. 천상과 인간들이

긴 밤에 큰 고통 받아

나고 죽는 흐름에 돌고 도니

코끼리가 깊은 진흙에 빠진 것 같습니다.

 

슬프도다. 이제 천상과 인간들이

몸에서 피를 흘리고

근심과 슬픔이 고뇌를 더해

연모하는 마음 이와 같습니다.

 

세존의 열반과

행업 다시 헤아리기 어려우나

해와 달이 구름에 숨듯

지혜의 빛이 이로부터 사라지옵니다.

 

슬프도다. 천상과 인간의 무리들이여,

긴 밤 깊은 어둠에 처하니

가 때문에 근심과 괴로움 품어

무엇으로도 비유할 수 없나이다.

 

몸은 즐거울 것 없다고 보아

침을 뱉듯 버리려 하여

항상 세상에 계시려 아니하시니

부처님 열반에 드신다는 소리 들었습니다.

 

오직 원하오니 큰 지혜 갖춘 세존이시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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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머무셔서 감로를 말씀하소서.

구름이 걷히면 햇볕이 나고

무거운 어둠 모두 사라지듯이

여래 지혜의 햇빛이

길이 생사의 장애를 소멸하나이다.

 

이때 세존께서 여러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들 비구들이여, 범부나 천상 세상 사람들처럼 근심하여 울지 말고 마땅히 부지런히 정진하여 여래가 말한 실다운 법을 받들어 지녀 오로지 생각하여 지켜 행하라.”

그때 여러 천상과 인간아수라들이 부처님께서 여러 비구들을 위해 말씀하신 법을 듣고 나서 원해 청하여 살을 베는 듯한 아픔을 참는 슬픔과 연모 끊기를 바랐다. 마치 효자가 어머니가 죽자 묘소에 보내 장례를 치르고 돌아오면서 애달픔과 오뇌를 굳이 스스로 억제해 그치는 것과 같았다.

이에 세존께서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너희들은 마땅히 뜻을 열어라.

부처의 법은 마땅히 그러하니라.

각각 돌아가 다시 앉아

내가 말하는 것을 자세히 들어라.

 

마음을 거둬들여 방일하지 말고

청정한 계를 지켜야 한다.

모든 어지러운 생각을 안정시키고

잘 스스로 마음을 보호하여라.

 

또 여러 비구들이여, 의심나는 것이 있거든 지금 반드시 물어라. ()한가 공하지 아니한가, 항상한가 무상한가, 돌아가는가 돌아감이 없는가, 의지할 데인가 의지할 데가 아닌가, 항상함인가 항상함이 아닌가, 중생인가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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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이 아닌가, 진실한가 진실하지 아니한가, 참인가 참이 아닌가, 열반인가 열반이 아닌가, 비밀인가 비밀이 아닌가, 두 법인가 둘이 아닌 법인가, 이러한 갖가지 법 가운데 의심이 있으면 지금 다 물어라. 마땅히 너희들을 위하여 묻는 대로 말하리라. 마땅히 너희들을 위하여 죽지 않는 문을 열어 준 뒤에 열반하리라. 그러므로 너희가 지금 현재 마음에 의심나는 바가 있거든 각기 물어라. 왜냐하면 부처가 태어남을 만나기 어려우며 사람 몸 얻기 어려우며 믿음을 얻기 또한 어렵기 때문이니라. 여덟 가지 어려운 곳을 여의고 계를 지니어 갖추기가 더욱 어려우니라. 항하의 모래 속에서 좁쌀을 찾는 것과 같으며 우담발화와 같으니라. 또 비구들이여, 온갖 곡식과 약나무와 진기한 보배들은 모두 땅에서 나오는 것이며, 일체 중생도 땅을 의지해 살아가나니, 여래도 이와 같이 미묘하고 좋은 감로법을 출생하느니라. 중생들이 이를 인해 법신을 키우는 것이니, 이렇기 때문에 비구들이여, 마땅히 의심나는 바가 있으면 물어라. 여래가 모두 확실한 뜻을 설명한 후에 열반하여 일체 중생들을 안락하게 하리라.”

그때 여러 비구들이 여래께서 결정코 열반하신다는 말을 듣고 마음에 슬픔과 두려움을 품어 몸의 털이 모두 곤두섰다. 해가 처음 돋아 비출 적에 푸른 나뭇잎의 붉은 잎맥이 다 나타나는 것 같았다. 그 몸이 이처럼 온몸의 사지 마디에서 피와 눈물이 번갈아 흐르며 부처님 발에 머리 조아려 절하고 오른쪽으로 돌고 나서 부처님께 아뢰었다.

훌륭하십니다. 세존이시여, 무상하고 괴롭고 공한 것이라는 가르침을 만족스럽게 말씀하십니다. 일체 중생의 발자국 가운데 코끼리 발자국이 으뜸이듯이 그러하옵니다. 세존이시여, 말씀하신 무상을 생각하는 것이 모든 생각 가운데 가장 으뜸가는 생각이라 하겠습니다. 부지런히 닦아 익혀 능히 일체 욕계의 탐애와 색계의 탐애와 무색계의 탐애와 무명과 교만이 이로부터 길이 사라질 것입니다.

또 세존이시여, 비유하건대 농부가 가을에 풀이 무성하지 않을 적에 그 땅을 깊이 갈아 봄에 오곡을 심으면 잡초가 자라지 않듯이 수행하는 자도 이와 같이 깊이 무상하다는 생각을 하여 부지런히 닦아 익히면 능히 욕계의 탐애와 색계의 탐애와 무색계의 탐애와 무명과 교만을 여의어 길이 다시 생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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않을 것입니다. 무릇 농사짓는 사람이 가을에 가는 것[]을 으뜸으로 치듯이 세존이시여, 법 가운데 무상을 생각하는 것이 제일이 되겠나이다.

또 제왕이 자기의 목숨이 다한 줄 알고 천하에 은혜로운 사면을 하여 감옥에 갇힌 죄수들을 모두 풀어준 뒤에 목숨을 마치듯이 오늘 세존께서도 또한 열반에 임하여 감로법(甘露法)을 말씀하셔서 중생들에게 이익을 베푸시어 탐애의 감옥에서 모두 벗어나게 한 후에 열반하시려 하니, 마치 어떤 사람이 악귀에 들어 주문 잘하는 사람을 만나 악귀를 벗어나는 것과 같나이다. 이와 같이 중생들이 탐애의 나찰에 사로잡혔으나 다행히 여래의 성스러운 지혜의 큰 주문을 입어 온갖 삿된 은애(恩愛)의 나찰을 벗어났습니다. 병든 사람이 훌륭한 의사의 약을 만나 고통을 모두 없애듯이 저희들도 또한 그러하나이다. 한량없는 몸의 병과 사견과 번뇌를 세존의 법약을 얻어 다 낫게 되었습니다. 마치 술에 취한 사람이 친척과 친척 아닌 사람과 상전과 노비, 어른과 아이를 식별하지 못하다가 나중에 술을 깨고 나서 마음에 부끄러움을 품어 깊이 자책하듯이 저희들도 그와 같아 가없는 생사의 가운데 정욕에 취하고 삿된 견해에 미혹되었다가 비로소 깨어나게 되었습니다. 갈대와 이란(伊蘭)이 견실하지 못한 것처럼 이 몸도 그러하여 나라는 것, 사람이라는 것, 수명이라는 것이 견고하지 못합니다.”

부처님께서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들이 이처럼 내가 없다는 생각[無我想]을 닦는가?”

비구들이 대답하였다.

. 세존이시여, 저희들은 내가 없다는 생각을 닦으며 나머지 사람들도 또한 무상하고 괴롭고 공하여 내가 아니라는 생각을 닦나이다. 세존이시여, 사람들이 해와 달과 별과 산과 땅이 돈다고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것은 도는 것이 아닌데 다만 중생들이 현혹되어 돈다고 하나이다. 이와 같은 사람이 무상과 괴로움과 공과 내가 아니라는 말을 하여도 이러한 중생들은 또한 세속에 현혹된 줄 알아야 할 것입니다. 저희들이 닦는 것은 평등하게 닦는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가 비유한 말과 같이 이 비유 가운데 의미가 있는 것을 너희가 아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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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하지 못하느니라. 내가 다시 설명하리라. 어떤 사람이 해와 달과 산과 땅이 돈다고 말하지만 이는 도는 것이 아니라 현혹되어 돈다고 하는 것처럼 중생들도 어리석어 뒤바뀌어 라 생각하고, 항상하다 생각하고, 즐거움이라 생각하고, 깨끗하다 생각하나, 그러나 저 부처라는 것이 라는 뜻이요 법신이 항상하다는 뜻이며 열반이 즐거움이란 뜻이며 법이라 이름하는 것이 깨끗하다는 뜻이니라. 너희 비구야, 현혹된 생각으로 내가 일체법에 대하여 무상하고 괴롭고 공하고 깨끗하지 못하다는 생각을 닦는다 말하지 말라.”

비구들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저희들도 또한 세 가지 닦는 것을 깨끗하게 닦나이다.”

부처님께서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이 세 가지 닦는 것은 내 법 가운데에서는 진실한 뜻이 없느니라. 틈틈이 괴로움을 닦음은 성질이 오르락내리락 하기 때문에 괴로움을 즐거움이라 생각하여 전도되고, 즐거움을 괴롭다고 생각하여 전도되며 무상함을 항상하다는 생각으로 뒤바꾸고 항상함을 무상하다는 생각으로 뒤바꾸며, 내가 아닌 것을 라는 생각으로 뒤바꾸고 를 내가 아니라는 생각으로 뒤바꾸며, 깨끗하지 않은 것을 깨끗하다는 생각으로 뒤바꾸고 깨끗한 것을 깨끗하지 않다는 생각으로 뒤바꾸나니, 이와 같이 네 가지 뒤바뀐 생각은 평등을 알지 못하여 이에 닦는 것이 올바르지 못한 것을 올바른 닦음이라 하며 괴로움을 괴로움이 아니라고 닦으며 무상한 것을 항상하다고 닦으며 내가 아닌 것을 라고 닦으며 깨끗하지 않은 것을 깨끗하다고 닦으니, 이 네 가지 닦는 것은 세간의 즐거움과 항상함과 나와 깨끗함이니, 세간을 여의고도 또한 네 가지 즐거움과 항상함과 나와 깨끗함이 있느니라. 너희는 세간법에서 말하는 이름과 출세간법에서 말하는 뜻을 알아야 하느니라.”

비구들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저희들이 어떻게 세존께서 가르치신 대로 세 가지 생각의 견해와 네 가지 뒤바뀜을 닦아야 하나이까? 오직 원컨대 여래께서 1겁을 세상에 머무소서. 만약 1겁이 지나면 세존께서 가르치신 대로 저희가 마땅히 닦고 행할 것입니다. 만약 여래께서 세상에 머무시지 아니하면 저희가 어찌 능히 오래 독사(3독 번뇌)와 그 굴 속에 동거하며 길이 여래를 어기고, 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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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땅히 세상에 머물러 정법을 맡아 지키겠나이까? 마땅히 여래를 따라서 열반에 들겠습니다.”

부처님께서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그런 말을 하지 말고, 그런 말을 하지 말라. 비구들이여, 마땅히 알아라. 여래의 정법은 대가섭에게 부촉(付囑)하였으니, 대가섭이 마땅히 너희들의 귀의처가 될 것이다. 널리 일체 중생들을 구호하매 부처와 같아 다름이 없을 것이다. 비구들이여, 마땅히 알아라. 비유하건대 나라 임금이 법으로 나라를 다스리다 만약 다른 나라에 유행하려 할 적에 반드시 한 대신을 세워 나라 일을 처리하게 하여 임금이 있을 때와 같게 하나니, 나도 또한 이와 같아서 이 세계에 마땅할 마하가섭을 세웠다. 다만 너희 비구들이 먼저 닦아 익힌 무상하고 괴롭고 공하고 내가 아니라는 생각은 진실한 닦음이 아니니라. 비유하건대 봄철에 여러 상인 무리들이 즐거운 모임에 참석하여 물가에서 놀다가 무리 가운데 한 사람이 유리 보배를 잃어 깊은 물속에 빠뜨렸을 때에 여러 상인들이 각각 물에 들어가 보배를 찾으면서 혹 기와조각이나 돌, 물에 잠긴 나무를 얻어 보배라 하여 기뻐하면서 가지고 나왔다가 진짜가 아닌 줄 아는 것과 같으니라. 저 유리구슬은 아직 물속에 있어 광색이 사무쳐 비치어 밝기가 해와 달보다 더하자 여러 사람들이 빛을 보고 보배인 줄 알고 그 기특함에 감탄하여 각기 찾으려 하는데 어떤 한 사람이 교묘한 지혜가 있어 방편으로 진짜 보배를 찾아낸 것과 같으니라. 이와 같이 비구들이여, 너희가 일체 괴로움과 공함과 무상과 깨끗하지 못함에 대해 모두 생각했다 하며 내가 닦아 익혔다 말한다면, 마치 저 사람이 손에 보배 아닌 것을 잡고 보배라 여겨 스스로 속는 것과 같으니라.

너희 비구들이여, 저 사람처럼 부질없이 속지 말라. 마땅히 상인들이 약은 지혜가 있는 것처럼 해야 하느니라. 비구들이여, 마땅히 내가 있고 항상함이 있고 즐거움이 있고 깨끗함이 있는 줄 알아야 한다. 너희가 닦은 일체를 섭수하는 것은 모두 뒤바뀐 것이니, 저 유리 보배구슬을 모르는 것과 같으니라. 너희 비구들이 진실한 법을 닦아야 보배구슬을 얻은 것과 같나니, 진실하지 못한 법에 무상하다는 생각을 닦지 말 것이니라.”

모든 비구들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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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존께서 말씀하시는 것처럼 일체 법에 내가 없으니, 마땅히 이와 같이 닦아야 한다면 이와 같이 닦을 때에 나라는 생각이 없어지고 나라는 생각이 없어지면 바로 열반으로 향할 것이니, 여기에 무슨 뜻이 있나이까? 오직 원컨대 세존께서 불쌍히 여겨 다시 말씀해 주십시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훌륭하고 훌륭하도다. 비구들이여, 너희들이 내가 나라는 의혹을 제거하려는 자는 마땅히 그렇게 물어야 할 것이다. 비유하건대 어떤 임금이 어리석고 지혜가 없었는데, 그때 어떤 약사도 또한 어리석어 천하를 속여 임금의 봉록을 받으면서 오직 우유약만 알고 다른 약은 잘 알지 못해 항상 우유약으로써 나라 사람들의 병을 치료하고, 더 이상 풍병가래병침병에 맞는 약을 알지 못하였다. 그런데도 어리석은 임금은 의술이 높은 의원으로 여기다가 때에 여덟 가지 의술을 통달한 명의가 먼 곳으로부터 와서 먼젓번 의원에게 말하였다.

당신이 나를 위해 나의 스승이 되고 나는 당신의 제자가 되어 당신으로부터 배우겠소.’

먼저 의원이 말하였다.

좋소. 그대에게 죽지 않는 약 만드는 법을 가르쳐 주겠소. 그대는 부지런히 48년 동안 배우시오. 그대로 하여금 최고의 의술을 다 알게 하겠소.’

그리고 뒤의 의원을 데리고 왕궁을 출입하였다. 어리석은 임금도 서로 좋아하였다. 뒤에 온 의원이 임금에게 아뢰어 말했다.

대왕이시여, 응당 모든 기예를 배우소서.’

임금이 기뻐하며 배워 지혜가 점점 늘어나 이에 먼저 의원이 지혜가 없고 속이는 줄 알고 나라에서 쫓아내고 뒤에 온 의원을 공경하였다. 뒤에 온 의원이 때가 온 줄 알고 다시 왕에게 말했다.

소청이 있사오니 저의 뜻을 따라 주소서.’

왕이 그렇게 하라 하자 의원은 말하였다.

대왕이여, 먼저 의원이 쓰던 우유약은 독이 있어 해롭고 위험하니 다시 복용하지 못하게 하시고 이 법을 버리소서.’

왕이 그 말을 따라 온 나라 안에 이제부터 우유약을 먹는 자는 중벌에 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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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다는 명을 내렸다.

이때 뒤에 온 의원이 다섯 가지 약으로 달고 시고 짜고 쓰고 매운 다섯 가지 맛을 이용하여 모든 병을 낫게 하였다. 그 무렵 왕이 병을 얻어 의원에게 치료를 청하였다. 의원이 왕의 병을 살피니, 응당 우유약을 써야 할 병이었다. 왕에게 말하기를 오직 우유약을 써야 낫게 할 수 있다 하자 왕이 말했다.

그대가 지금 미쳤는가? 먼저는 독이라 하여 나로 하여금 먼저 의원을 쫓아내게 하더니, 이제 다시 우유약을 먹으라 하는가?’

뒤에 온 의원이 대답했다.

아닙니다. 대왕이시여, 제가 한 말에 뜻이 있습니다. 비유하건대 판자에 벌레가 먹어 임금 왕()자 같은 글씨 자국이 생겼을 적에 벌레가 먹어서 그런 줄 모르는 자는 진짜 글씨라 하고, 벌레가 먹어서 그런 줄 아는 자는 진짜 글씨가 아닌 줄을 알 것입니다. 먼젓번 의원도 이와 같아서 비록 우유약을 모았으나 시절에 상응하는 바를 분별할 줄 알지 못했나이다. 마땅히 우유약이 능히 사람을 죽일 수도 있고, 사람을 죽지 않고 살아나게 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사람을 죽지 않게 하는 것은 젖소를 기를 때에 광야의 독초가 없는 곳에 놓아 두어 물을 가려 마시게 하고, 출입할 때 몽둥이나 회초리로 때리지 않으며, 우유를 짤 적에 거품이 일어나지 않게 하면, 이 우유는 일체 병을 구하여 낫게 하며 죽지 않는 약이 되는 줄 아옵니다.’

왕이 말했다.

매우 좋다. 우유약을 먹겠다.’

그때 나라 사람들이 왕이 우유약을 먹는다는 말을 듣고 모두 놀라서 왕이 있는 곳으로 와 모두 말했다.

이 사람이 귀신이 씌인 것이 아닌가? 먼저는 사람을 죽게 한다 말하더니, 이제 대왕으로 하여금 다시 우유약을 먹게 하다니.’

이때 왕이 곧 사람들을 위하여 널리 우유가 약이 되고 독이 됨을 설명하였다. 왕과 백성들이 뒤의 의원을 더욱 공경하고 공양하였다. 그의 법을 받들어 이용하여 항상 우유약을 먹게 하였다.

비구들이여, 마땅히 알아야 하느니라. 여래응공등정각명행족선서세간해무상사조어장부천인사불세존도 큰 의왕이 되어 세상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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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서 외도들의 삿된 의술을 부수기 위하여 중생들과 더불어 점점 서로 가까워지게 하여 좋아할 줄 알게 하고는, 문득 외도들의 삿된 말을 버리게 하느니라. 나라는 것이 없으며 중생이나 수명이라는 것도 없는 것이니, 여러 외도의 무리들이 말하는 나라는 것은 저 벌레가 먹어서 된 글자와 같은 것이므로 나라는 것이 없다 말하느니라. 모든 중생들이 여래의 말을 받들어 펴나가 서로 가르쳐 모두 내가 없다는 것을 말해야 하느니라. 이것이 여래가 때를 알아 방편으로 중생들을 제도하는 것이니라. 일체 법이 그 성품에 나라는 것이 없다는 것은 세간에서 생각하는 나라는 것과 같지 아니하므로 일체 법이 그 성품에 나라는 것이 없다고 하는 것이니라. 그러다 다시 나를 말하는 것은 저 훌륭한 의원이 우유약의 처방법을 밝히는 것과 같으니라. 마땅히 알아야 하나니, 여기서 말하는 나라는 것은 실이며 항상 있어 변하거나 바뀌는 법이 아니며 마멸하는 법이 아니니라. 나라는 것은 덕()이며 자재(自在)며 우유약을 잘 처방하는 의원과 같으니라. 여래 또한 그러해서 모든 중생들을 위해서 진실한 법을 말하느니라. 모든 사부대중들은 마땅히 이와 같이 배워야 할 것이니라.”

이때 세존께서 다시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모든 율법에 대하여 만약 의혹이 있으면 마땅히 여래에게 물어라.”

모든 비구들이 말하였다.

그러하옵니다. 세존이시여, 저희들이 이미 모든 수행의 최고를 닦아서 몸에 관한 것들이 모두 공적한 줄 알았나이다.”

부처님께서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들은 일체의 지혜를 얻은 부처님처럼 나는 일체 몸에 관한 것들이 모두 공적한 줄 알았다고 말하지 말라.”

다시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들이 율법에 대해 아직도 의혹이 있으면 마땅히 다시 물을지니라.”

비구들이 말하였다.

세존이시여, 여래응공등정각의 평등한 뜻은 저희들의 경계가 아니라 어찌 감히 거듭 묻겠습니까? 모든 부처님께서 설하신 바는 불가사의하며 모든 부처님께서 행하시는 바도 불가사의하나이다. 이렇기 때문에 저희들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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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여 있는 대중들이 모두 여래께 거듭 여쭙지를 못하나이다. 세존이시여, 비유하건대 어떤 사람의 나이가 백스무 살인데 오래 병들어 병석에 있을 적에 한 장부가 지혜가 없으면서도 한량없는 재물을 가진 부자라 그곳에 와 병상에 나아가 병든 사람의 손을 잡고 말하기를 선남자여, 마땅히 나의 보배 창고를 맡아 주시오. 내가 먼 타국에 여행을 가고자 하오. 10년이나 혹 20년이 지나 내가 돌아오면 그때 모두 내게 돌려주시오라고 하였습니다. 그때 그 병든 노인은 자식이 없었고 또 권속도 없었습니다. 병이 더욱 위독해져 마침내 죽고 말았습니다. 맡았던 재물도 모두 잃어 버렸습니다. 재물의 주인이 뒤에 돌아와 찾았으나 있는 곳을 알지 못했습니다. 이와 같이 세존께서 저희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모든 법의 율행에 대하여 의심되는 바가 있으면 지금 마땅히 물으라 하시오나, 만약 성문들로 하여금 여래께 묻게 하신다면 이 정법이 오래 머물지 못할까 염려되나이다. 또 어떤 것을 물어야 할지 모르겠나이다. 능히 일체 중생들로 하여금 모두 좋은 일과 즐거움을 입게 하고자 하기에 세존이시여, 저희들이 지금 거듭 여쭙지를 못하나이다. 마치 어떤 사부(士夫)가 있었는데 점쟁이가 점을 쳐서 나이 120에 권속을 이루고 재물과 부귀를 한없이 누린다 하고, 또 어떤 사람이 사부에게 와서 말하되 내게 재보가 있으니 이제 그대에게 맡기겠소. 그대가 마땅히 나를 위하여 내고 들여 이식을 키워 주시오. 10년이나 20년이 지나 돌아오면 내게 돌려주시오라고 하였습니다.

그때 대부가 곧 재물을 가져 그를 위해 이식을 늘려 주인이 뒤에 와서 찾자 모두 돌려주었습니다. 이와 같이 세존이시여, 존자 아난과 모든 성문들이 여래께서 설한 법장을 보호 유지하여 길이 보존코자 함은 옳지 못하나이다. 그 까닭은 성문승(聲聞乘)인 탓이며 오직 보살마하살과 가섭 등이라야 여쭈어 여래 법장을 받들어 지녀 백천만 겁을 맡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일체 중생들은 모두 항상 좋은 일과 즐거움을 입을 뿐이니, 이렇기 때문에 세존이시여, 마땅히 보살들로 하여금 중생들을 위하여 의심되는 것을 묻게 하옵소서. 저희 범부들이 감당할 바가 아닌가 합니다.”

이때 세존께서 여러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훌륭하고 훌륭하도다. 너희 비구들이 무루법을 얻어 아라한을 이루었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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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문에 능히 이런 진실한 말을 하는구나. 내 뜻을 깊이 이해하는 데에는 두 가지 인연이 있으니, 마땅히 보살들로 하여금 정법을 맡아 지니게 하여 능히 대승법장으로 하여금 오래 머물도록 하고 또 일체 중생들로 하여금 모두 좋은 일과 즐거움을 입게 하리라.”

 

 

5. 장수품(長壽品)

 

이때 세존께서 널리 대중들에게 말씀하셨다.

여러 선남자선여인들아, 세 가지 법[三法:敎法行法證法]과 율교(律敎)에 의심이 있는 자는 이제 마땅히 물을지어다.”

이와 같이 세 번을 말씀하셨다.

그때 좌중에 나라(那羅)마을의 보살이 있었다. 성은 가섭(迦葉)이고 바라문 종족이었다. 부처님의 위신력을 받자와 자리에서 일어나 옷깃을 가지런히 하고 오른쪽 어깨를 드러내고 부처님 발에 머리를 조아려 절하고 백천 바퀴를 돌고 오른쪽 무릎을 땅에 대고 하늘의 향과 꽃으로 공양올리고서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여쭙고 싶은 것이 있사옵니다. 오직 원하옵나니 세존께서 자비로 연민히 여겨 연설해 주옵소서.”

부처님께서 가섭보살마하살에게 말씀하셨다.

여래응공등정각은 너희에게 마음대로 물으라고 하였으니, 마땅히 너희들을 위하여 말하리라.”

가섭보살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제가 여쭙는 것은 모두 여래의 위신력을 받은 까닭이며 또한 일체 중생의 선근을 인한 까닭입니다. 오늘 여래께서 네 개의 큰 어진 무리들로 권속을 삼으셔서 큰 사자들로 권속이 되었으며, 여러 금강사들로 권속이 되었으며 미묘한 지혜의 큰 바다도 권속이 되었으니, 그 모임의 보살들이 모두 한량없는 공덕을 성취하였습니다. 이와 같은 무리들이 권속이 되었으니 저희들은 못난 범부라 묻고 싶은 것이 있어도 여래의 신력으로 가피하여

 

 

[50 / 210]

도와줌을 입지 못하면 능히 물을 수가 없습니다. 이렇기 때문에 제가 이제 감히 여쭙습니다만 모두 여래의 신력인 줄 알겠습니다.”

이어 부처님 앞에서 게송으로 물었다.

 

무슨 인연으로 장수하고

금강과 같은 부서지지 않는 몸을 얻사오며

어떻게 하면

이 경전의 깊은 뜻을 받아 지닙니까?

 

보살이 중생들을 교화할 적에

법을 말하는 것은 몇 가지가 있사오며

어떤 사람이 능히 감당하여

진실하게 의지하는 이가 되리까?

 

비록 아라한은 아니나

도량(度量)이 아라한과 같으며

천마(天魔)와 여래의 말씀을

어떻게 능히 분별한다 하시며

 

어떻게 평등한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의 뜻과

네 가지 뒤바뀐 모습과

괴로움과 공함과 내가 아닌 행을 알겠습니까?

 

어떻게 보살들이

여래의 보기 어려운 성품을 보며

어떻게 반 글자의 뜻을

분명히 요달함을 갖추겠습니까?

 

 

[51 / 210]

어떻게 기러기와 학과

사리새같이 화현하겠습니까?

어떻게 해와 달과

별과 같은 지혜를 얻겠습니까?

 

어떻게 보살이 불쌍히 여겨

원하는 대로 결정코

이와 같은 모든 법문의

한량없고 심심한 뜻을 설하겠습니까?

 

저희들이 마땅히 알아야 하겠기에

그러므로 이렇게 묻사옵니다.

어찌 감히 여래께

모든 부처님의 경계를 묻겠습니까?

 

부처님께서 가섭에게 말씀하셨다.

훌륭하고 훌륭하도다. 선남자야, 점점 여래의 일체종지(一切種智)에 올라 이에 능히 이 심심한 경전의 뜻을 묻는구나. 낱낱의 방면에 있는 아승기 항하의 모래알처럼 많은 부처님도 본래부터 스스로 세계에 보리수 아래에 앉아 등정각을 이룰 적에 그 수가 한량이 없었느니라. 본래 보살이 되어 보리도를 얻어 차례로 열어 깨달았으니, 다 여래에게 심심한 법장을 물었기 때문이니라. 너희들이 오늘 또한 이와 같이 능히 일체종지의 경계를 내게 물으니, 일체 중생들을 안락케 하려고 그러는구나.”

가섭보살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제가 세존의 일체종지의 경계는 물을 수가 없습니다. 비유하건대 모기가 능히 허공을 지나 큰 바다 저쪽 언덕으로 날아갈 수 없는 것과 같습니다. 또한 바닷물을 다 마실 수 없는 것처럼 저도 그러하여 세존의 허공과 같고 큰 바다와 같은 심심한 지혜를 감당하매 두려움이 없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또 대왕의 상투 속의 구슬과 같이 지켜 간직하는 자가 더욱 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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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해 지키기를 그의 정수리를 보호하는 것처럼 하듯이 저 또한 그와 같이 이제 여래의 심심한 정법을 묻사오니 여래께서 널리 말씀하셔서 그 의심의 그물을 벗겨 주소서.”

부처님께서 가섭에게 말씀하셨다.

선남자야, 내가 이제 마땅히 장수하는 업을 말하리니, 보살마하살로서 이 업을 행하는 자는 등각(等覺)의 인()이 될 것이다. 너희들은 자세히 듣고 잘 생각하라. 저 행을 듣는 것은 본래 널리 사람을 위하여 등각을 낳는 인연을 말하려는 것이다. 선남자야, 나도 또한 저 업을 행하여 널리 사람들을 위하여 말했으므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었다. 비유컨대 대왕이 그의 아들이 죄를 범하여 감옥에 가두어 두었으나, 그의 아들인 까닭에 널리 죄수들을 사면하여 그의 아들을 구하듯이 이와 같이 보살들도 장수업을 닦아서 일체 중생을 외아들처럼 생각하나니, 모든 중생에 대해 대자(大慈)대비(大悲)대희(大喜)대사(大捨)로 청정한 계율을 받아 지녀 중생을 해치지 않고, 일체 중생을 5계와 10선업의 자취에 세워 그 힘을 따라 능히 지옥아귀축생을 제도하여 일체 악취의 업연을 끊으며, 벗어나지 못한 자를 벗어나게 하며, 제도되지 못한 자를 제도되게 하며, 뜻과 생각이 굳세고 강하여 방편의 지혜를 이루나니, 이 업을 행하는 것을 인해 과를 의지하고 과를 갚느니라. 장수가 끝이 없어 큰 묘지(妙智)를 이루어 두려움이 없이 자재하나니, 보살은 이와 같이 하여 길이 죽는 법을 여의느니라.”

가섭보살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의 말씀과 같이 보살마하살이 평등하게 중생들을 보기를 외아들같이 하라는 것은, 여기에 무슨 뜻이 있습니까? 만약 보살마하살들이 평등하게 중생들을 보기를 외아들같이 한다고 말하는 것은 옳지 못하나이다. 왜냐하면 불법 가운데 혹 계를 범하여 5역죄를 짓거나 정법을 비방하는 이가 있으니, 이런 중생에게 모두 외아들과 같다는 생각을 닦아 익힐 수 있겠습니까?”

부처님께서 가섭에게 말씀하셨다.

그러하니라. 가섭아, 나는 일체 중생들을 라후라와 같이 보느니라.”

가섭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만약 그렇다면 어떻게 어느 때에 보름날 포살대회에서 대중 스님들이 청

 

 

 

[53 / 210]

정한데, 한 사람 구족계를 받지 않은 이가 있어 몰래 계를 훔쳐 들었다고, 금강역사가 부처님 신지(神旨)를 우러러 금강저를 가지고 부수어 티끌과 같이 해 버렸습니까? 어떻게 일체를 평등하게 보기를 아들과 같이 한다 하겠습니까?”

부처님께서 가섭에게 말씀하셨다.

그런 말을 하지 말라. 저 동자는 화현으로 만들어졌을 뿐이니라. 정법을 밝히고자 죄를 범한 자는 반드시 버린 것이니라. 장래를 엄숙히 하여 도적질할 마음을 품은 자들과 일천제(一闡提) 무리들의 악한 마음을 몰래 조복하게 하였느니라. 마치 왕과 대신이 범법자를 잡아 죄를 따라 다스리는 것처럼 부처도 또한 그와 같이 법을 파괴한 사람이 있으면 이치로써 징벌하여 악을 범한 자로 하여금 스스로 죄보를 보게 하였느니라. 여래는 항상 자신의 광명으로 중생들을 편안하게 위로하여 두렵지 않게 하고 해롭지 않게 하나니, 비록 어떤 중생이 광명을 입지 못하고 죽음에 이르는 자가 있더라도 여래는 그에게 대비를 버리지 않느니라. 또 가섭아, 너희들이 만약 능히 여래의 미묘하고 비밀스런 뜻을 잘 이해한다면 이제 마땅히 다시 말하겠다. 비유하자면 가섭아, 다른 지방에 여러 비구들이 있어 계를 청정하게 지키고 도덕이 순수하고 한결같으며 위의를 갖추었는데, 저곳의 여래께서 이미 열반에 들어 여러 비구들이 책임질 만한 이가 없자, 저 여러 스님들이 큰 스승이 없기 때문에 무도한 사람이 비구들을 괴롭혔느니라.

그때 불법을 좋아하는 국왕이 있어 저들을 해치는 악한 사람들을 나라 밖으로 쫓아내었다. 악한 사람들을 내쫓음으로써 정법을 세운 까닭에 한량없는 복을 얻었나니, 그렇게 된 것은 무거운 과실을 벌하고 큰 법을 세웠기 때문이니라. 또 사람이 사는 집에 독나무가 자라는 것과 같아서 마땅히 빨리 베어 없애야 하는 것처럼 불법 가운데 계를 범하고 법을 어지럽히는 것도 그러하니라. 주인을 해치는 노비는 다 반드시 쫓아내야 하듯이 만약 쫓아내지 아니하면 이 무리가 내 법을 멀리 버리는 줄 알아야 할 것이니라. 쫓아내는 자가 내 제자이니라.”

가섭보살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이러한 뜻이라면 평등하게 중생들을 외아들같이 하는 것이 아니지 않습

 

 

[54 / 210]

니까? 바르고[] 잘라내면서 평등하게 관한다고 한다면 이 말이 어긋납니다. 만약 여래께서 법을 파괴한 사람을 다스린다 한다면 어찌 이 뜻이 있겠습니까?”

부처님이 가섭에게 말씀하셨다.

왕과 대신과 장자와 거사가 단정하고 총명하고 지혜로운 아들을 낳아 온 세상이 둘이 없다 하여 누구나 사랑하고 소중히 여겼는데, 아버지가 그 아들을 데리고 스승이 될 사람의 문하에 가 모든 기술과 재주를 배우게 하고자 저 스승에게 말하되 내가 비록 이 복덕 있고 단정한 아들을 낳았으나 기술과 재주를 배우지 못했으니 나를 위해 가르쳐 배우게 하여 반드시 성취시켜 주시오. 만약 법답게 부지런히 하지 않으면 매를 때리시오. 내게 네 아들이 있는데 모두 그대에게 맡기니, 설사 세 아들이 매를 맞아 죽더라도 한 아들은 남아 있을 것이므로 마땅히 고되게 다스려서 성취시켜 주시오. 나는 원망하지 않겠소라고 하였다면, 가섭아, 어떻게 생각하는가? 부모 및 스승이 그 아들을 고생되게 가르치다 이에 아들이 목숨을 잃었다고 한다면 부모 및 스승이 살인죄를 범한 것인가?”

가섭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아들을 사랑한 탓으로 성취하고자 하여 비록 매를 때렸으나 미워서 해치고자 한 뜻은 없었나이다. 그 복이 한량없으며 죽인 죄는 없나이다.”

이와 같이 선남자야, 여래도 또한 그러하니라. 법을 부수고 계를 범한 사람이 있어도 평등하게 보기를 아들과 같이 하나니, 자비로 어여삐 여겨 가르쳐서 성취시키려 할 뿐이니라. 법을 부수고 계를 범한 이를 마땅히 고되게 다스리는 것은 허물이 없느니라. 그러므로 보살마하살이 평등하게 중생들을 보기를 외아들과 같다고 생각함을 알아야 한다. 이와 같은 평등한 삼매를 닦아 익혀 마음에 해침을 품지 않느니라. 이것이 보살이 오래 사는 업이며 지혜가 자재한 것이니라.”

가섭보살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일체 중생을 외아들같이 생각한다 하는 것은 보살마하살이 이 생각을 닦아 장수를 얻는 것이옵니까?”

 

 

[55 / 210]

그러하느니라.”

가섭보살이 다시 부처님께 아뢰었다.

오직 원하옵나니 세존이시여, 그렇게 말씀하시지 마옵소서. 장난하는 아이와 같은 두 가지 말씀이옵니다. 세존이시여, 비유하건대 장난하는 아이가 여러 사람이 모인 가운데서 갖가지로 부모께 공양을 드리고 찬탄하는 말을 하다가 스스로 집에 돌아와서는 반대로 거슬려 불효하는 것과 같습니다. 부모를 괴롭히고 은혜에 보답하여 봉양하지 않으니 세존께서도 또한 이와 같습니다. 보살마하살은 일체 중생을 외아들을 봄과 같이 생각하는 이 공덕으로 말미암아 장수를 얻고 지혜가 자재하여 항상 머물러 죽지 않는다고 말씀하셨으나 이제 세존께서 인간의 수명과 같으시면, 세존께서 계시지 않는 무수겁 가운데 항상 일체 중생에게 대하여 도검(刀劍)을 품었다고 생각하겠습니다. 괴이하나이다. 세존이시여, 이 짧은 수명을 받는 것은 중생을 해롭게 하는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세상 사람들의 백 세 수명과 같으니, 오히려 보살들도 그럴 수 없는데 하물며 여래이겠습니까?”

부처님께서 가섭에게 말씀하셨다.

여래응공등정각 앞에서 그러한 거친 말을 하지 말라. 너희 선남자들아, 마땅히 여래는 장수하여 그 수명이 한량없다는 것을 알아야 하며, 여래는 항상 머물고 있는 법이라는 것을 알아야 하며, 여래는 변하여 바뀌는 법이 아닌 것을 알아야 하며, 여래는 마멸하는 법이 아닌 것을 알아야 하느니라.”

가섭보살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어떻게 여래께서 장수하는 줄을 알겠습니까?”

부처님께서 가섭에게 말씀하셨다.

염부제에 있는 여덟 개의 큰 강 및 모든 샘물은 흘러 모두 바다로 돌아가 다함이 없는 것과 같다. 큰 바다는 온갖 강물의 흐름을 받아들이는 그릇인 것처럼 여래도 또한 그러하여 모든 천상과 세상 사람들의 일체 수명이 모두 여래의 수명이라는 큰 바다로 돌아간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여래의 수명은 한량이 없느니라. 또 가섭아, 비유하건대 허공이 상주하여 변하지 않는 것처럼 여래가 상주함도 그와 같으니라. 또한 제호(醍醐)의 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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량한 약이 능히 뜨거운 번뇌를 제거하듯이 여래응공등정각도 항상 청량제호의 법약으로써 널리 중생들을 위하여 모든 환난을 제거하느니라. 이러한 까닭으로 여래는 항상 청량한 데 머물러 모든 근심과 번뇌를 없애느니라.”

가섭보살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만약 마땅히 여래께서 수명이 길어 한량이 없으며 또 일체 중생을 안락하게 한다면 오늘 세존께서 마땅히 세상에 1겁이나 1겁이 조금 넘는 동안을 머무셔서 청량한 법의 물을 널리 중생들에게 내려야 할 것이옵니다. 오직 원하옵나니 세존이시여, 불쌍히 여기시어 세상에 머무옵소서.”

부처님께서 가섭에게 말씀하셨다.

여래에 대하여 없어진다는 생각을 하지 말라. 만약 비구거나 비구니거나 우바새거나 우바이거나 외도들이라도 오히려 다섯 가지 덕이 있나니, 능히 수명이 1겁이나 1겁이 조금 넘는 동안 머무는 것이요, 허공을 거닐며 앉고 눕는 것이 자재한 것이요, 왼쪽 옆구리에서 불을 내고 오른쪽 옆구리에서 물을 내며 몸에서 연기를 내는 것이요, 능히 자기의 몸을 크게 하여 끝이 없게 하고 가늘게 하여 사이가 없는 데 들어가나니, 이 다섯 가지 덕이 있어 이와 같은 자재한 신통력을 얻었거늘, 어찌 하물며 여래가 일체 한량없는 공덕을 성취하고 힘이 능히 1겁이나 1겁이 조금 넘는 동안을 세상에 머물지 못하겠는가? 그러므로 여래는 항상 머물며 변하여 바뀌는 법이 아니며 마멸하는 법이 아니니, 이 몸은 더러운 것을 먹는 몸이 아닌 줄 알아야 할 것이니라. 이 세계에 응화하는 몸은 독약의 나무와 같으므로 이제 마땅히 버리려 하노라. 그러므로 가섭아, 여래의 법신은 항상 머물며 변하여 바뀌는 법이 아니며 마멸하는 법이 아닌 줄 알고, 널리 사람들을 위하여 말할지니라.”

가섭보살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세간과 출세간이 어떤 차이가 있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여래께서 항상 머문다 하시면 세상 사람들도 항상 머문다 말할 것이요, 저희 가섭의 종족도 말할 것이 없사옵니다. 예전에 범천을 스승으로 섬길 적에 그 신성(神聖)이 항상 두루 유행하여 가고 옴이 있다 하였나이다. 만약 여래께서 항상 머문다면 세간법과 세간법을 여읜 것의 그 차이를 보지

 

 

[57 / 210]

못하겠습니다.”

부처님께서 가섭에게 말씀하셨다.

비유하건대 어떤 장자가 한 마리 젖소를 가지고 있다가 소치는 사람에게 맡겨 그로 하여금 키우게 하여 독초가 없는 광야에 놓아두게 하여 다른 소들과 한 마구간에 매지 않고 애호하여 길러 좋은 소락(酥酪)을 얻어 권속들에게 공급하려 하였다. 이와 같이 하였으나 오래지 않아 그 사람이 죽고 소치던 사람도 뒤에 또 죽어 버렸다. 그때 들에 살던 사람이 못 있는 데 나갔다가 이 젖소를 얻었다. 그 젖을 짜서 자급해 살려고 소락을 만들고자 하였으나, 만드는 방법을 알지 못하여 폐기에 담아 차고 더움을 맞추지 못하여 마침내 소락을 만들지 못하고, 다시 우유맛을 파괴하고 우유의 응고된 엉킴을 파괴하고도 소락이라 하여 소락이라는 생각을 하고 취하여 먹었느니라. 중생의 어리석음도 이와 같다. 정법의 깨끗한 못은 깊고 넓고 미묘한 이치인데, 부처님이 이미 멸도하면 소의 주인이 죽은 것과 같다. 저 모든 중생들이 생사 광야의 못에 있는 것은 저 들사람과 같다. 세속의 지혜로써 부처님 정법의 깨끗한 못과 같은 율의에 뒤바뀐 생각을 지어서 중생과 나와 사람과 수명이 있으며 이것이 해탈이요 이것이 항상 사는 것이다라고 하나, 이는 중생들이 삿된 의혹에 덮인 것이다. 해탈을 알지 못하며 항상 머묾을 알지 못하고, 온갖 이도(異道)의 견해를 익혀 벗어나는 요의를 얻지 못하고, 멀리 참된 진리인 계율을 지키는 위의를 행하는 곳을 떠나서 여래가 항상 머무는 법이라는 것을 알지 못하니, 어리석은 들사람이 소젖이 다섯 가지 때에 따른 맛이 있음을 알지 못하고 스스로 소락을 먹었다 하나, 실로 다섯 가지 맛 가운데 하나의 맛도 보지 못한 것과 같으니라. 다만 세속에서 범천의 조화에 집착하여 항상하다 하거나 중생이라 하거나 해탈이라 하지만, 범천을 구하므로 조금 범행을 닦아 사음을 여의고, 효도로 부모를 봉양한 까닭으로 천상에 태어나 자연히 즐겨 먹나니, 저 들사람이 그 상한우유를 먹는 것과 같다.

선남자야, 세속의 범행은 부모에게 공양을 드리지만 세 가지[]에 귀의할 줄 알지 못하니, 마땅히 알라. 이 결과가 항상함이 있는 것이 아니니라. 부모에게 공양을 드리고 사음을 하지 않는 등은 부처님이 교화한 바와 같다 할 수 있지만 무상한 것으로 겨와 같은 세속법일 따름이니라. 오직 여

 

 

[58 / 210]

래만이 항상 머물러 멸하지 않나니 이렇기 때문에 선남자야, 마땅히 방편을 만들어 모든 의심을 여의어야 하느니라. 부지런히 여래가 항상 머무는 법인 것을 생각하라. 또 선남자야, 그때 들에 사는 사람이 젖소를 키웠는데 전륜성왕이 세상에 나오심을 만나니 전륜왕 법에도 응당히 젖소가 있었느니라. 왕의 덕의 힘으로 저 들사람으로 하여금 소를 버리게 하면 소들이 저절로 전륜성왕의 장물관리를 맡은 신하의 처소에 가니, 보배창고를 맡은 신하가 이 젖소가 반드시 다섯 가지 맛을 내는 진짜 맛의 우유를 생산하는 줄 안다. 결정코 성왕의 복덕이 감응한 것이라 하듯이 부처님이 법왕이 되어 세상에 출현할 때도 또한 그러하니라. 저 젖소와 같이 세간에서 누리는 바가 항상한 법이라는 음성이 옮겨 여래가 항상한 법이라는 소리가 되었느니라. 범속한 들사람이 꺾어 부수고 흩어지게 하여 소를 버려 항상한 법인 젖소라는 말을 버리고, 문득 여래의 제자인 보배 맡은 신하 앞에 가 머무나니, 중생의 복력인 까닭으로 항상한 법인 젖소가 항상 향기로운 우유를 내느니라. 이렇기 때문에 선남자야, 여래는 항상한 법이며 변하여 바뀌지 않는 법임을 마땅히 알아야 하느니라. 세간의 범부는 어리석어 능히 알지 못하는 바이니, 다 여래가 항상 머문다는 음성을 인한 까닭으로 알 뿐이니라. 저 모든 세간이 이런 생각을 하되 항상한 법이라는 소리는 곧 여래가 항상한 법이라는 소리이다. 이 소리로부터 마땅히 여래가 수가 없고 한량이 없음을 알 수 있느니라. 이와 같이 선남자·선여인이 만약 여래가 상주(常住)한다는 두 글자를 지녀 겁을 지나 닦아 익히면 이렇게 하는 중생들이 오래지 않아 등정각의 도를 이루는 것이 나와 같아 다르지 않으리라. 너희 선남자들아, 방일하지 말고 항상 상주라는 두 글자를 닦아 견고하게 받아서 유지하라. 오늘 여래가 마땅히 열반에 들 것이니, 이것은 모든 부처님의 정해진 법이니라.”

가섭보살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무엇이 법이며 법에는 무슨 뜻이 있습니까? 원컨대 정해진 법의 성질이 어떠한 것인지 듣고자 합니다.”

부처님께서 가섭에게 말씀하셨다.

네가 지금 법의 성질을 듣고자 하는가?”

듣고자 하오니 자세히 말씀해 주십시오.”

 

 

[59 / 210]

법의 성질이란 몸을 버리는 것이다.”

몸을 버린다니 더욱 의심됩니다.”

이렇게 보지 말 것이니 여래가 몸을 버리고 다시 몸을 받는다 하지 말라.”

몸을 받는 것에 대해 묻지 않았습니다.”

모든 법이 아주 없어지는 것이라고 말하지 말라. 또 가섭아, 비상천(非想天)과 같이 저에 색음이 없으니, 그곳의 여러 중생들은 어떻게 머무르며 어떻게 죽으며 어떻게 나타나며 저들의 심상(心想)이 어떻게 회전하는가? 이를 아는 것은 부처의 경계이니 네가 응당히 물어라. 또한 내게 다시 몸을 받는 것도 물어라. 만약 어떤 사람이 너에게 저 무상천의 중생들의 모양과 생각과 머무는 곳과 낙을 받는 것이 어떠한가 묻는다면 어떻게 대답하겠느냐? 성문이나 연각보살들의 경계에서는 미치지 못하며, 오직 여래의 경계라야 가는 곳이다. 또 선남자야, 여래의 몸은 그에 견주면 다시 배로 알기 어려우며 성문이나 연각보살들의 경계로 미칠 바가 아니다. 여래가 어느 곳에 머무르며 어떻게 나타나는가? 여래의 불가사의한 방편의 몸은 너희의 경계가 아니다. 선남자야, 너희가 나에 대해 다만 이렇게 생각하라. 여래는 항상 머무르며, 법과 승()도 또한 그러하니라. 이 세 가지 일은 무상한 법이 아니다. 항상 머물러 변하지 아니하고 청량하며 진실로 모든 번뇌와 근심을 여의었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저 선남자·선여인들이 청정하게 삼보에 귀의해도 모두 성취하지 못한다. 마땅히 이와 같이 불가사의하여 항상 머무는 법을 닦아야 한다. 선남자야, 비유하건대 여기에 나무가 있으면 여기에 그림자가 있고, 만약 저기에 나무가 없으면 저기에 그림자가 없는 것과 같으니, 나무를 보지 못하고 그림자를 본다는 것은 옳지 못하다. 이와 같이 이미 여래가 반드시 일체 중생을 위하여 항상 큰 나무가 되어 중생들을 덮어 보호하여 중생들의 의지가 되나니, 만약 여래를 무상하다 한다면 모든 천상과 인간들의 최상의 의지가 되는 응공(應供)이라 이름하지 못한다.”

가섭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어떻게 세존이시여, 밤에 어두움 속에 나무 그림자가 나타날 수 있겠나이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60 / 210]

그림자가 있으면 이미 그 나무가 있는 것이니 어떻게 그림자가 없겠는가? 다만 육안으로 능히 보지 못할 따름이니라. 그러므로 이미 여래가 있으면 항상 머무는 것이요, 변하여 바꿔지는 법이 아니며 마멸해 없어지는 법이 아님을 알아야 하느니라. 저 나무 그림자와 같이 어둠 속에서는 육안으로 보지 못할 뿐이니라. 부처님이 열반하여도 항상 머물러 변하지 아니함을 육안으로 보지 못하는 것도 그러하니라. 여래에 대해 무상하다는 생각을 하는 것은 망상일 뿐이니라. 만약 선남자야, 너희들이 부모 및 존귀한 불승 삼보에 항상하지 않다는 생각을 하는 자는 모두 삼보에 귀의함이 청정하지 못한 탓이니라. 너희가 이제 마땅히 세 가지 법이 항상 머문다 하여 부지런히 가르쳐야 하느니라. 세 가지 법에 보살의 세 가지 귀의함을 이루어야 하느니라.”

가섭보살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 세존이시여, 제가 오늘부터 마땅히 불승 세 법이 항상 머문다는 것으로써 부모에게 여쭈어 깨닫게 하고 일곱 대까지 이르도록 모두 항상 머무는 법을 받들게 하겠습니다. 기이하옵니다. 세존이시여, 세 가지 법이 항상 머무는 것임을 제가 마땅히 받아 배워 널리 사람들을 위하여 말하겠습니다. 만약 저들이 이 진실하고 미묘한 가르침을 받지 않는다면 이들은 무상에 혹한 자들이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저희가 마땅히 하루 세 때에 말하여 그들로 하여금 친해 가까워지게 하겠나이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훌륭하도다, 훌륭하도다. 선남자야, 바른 법을 수호하기를 마땅히 그와 같이 할 것이니, 또한 항상 해치지 않는 자비의 마음을 닦아 익혀라. 저들이 해치지 않는 결과로 보살의 장수를 얻게 될 것이니, 끝이 없는 지혜로 자재하리라.”

 

 

6. 금강신품(金剛身品)

 

그때 세존께서 다시 가섭에게 말씀하셨다.

 

[61 / 210]

선남자야, 여래의 몸은 항상 머무는 몸이며 깨뜨릴 수 없는 몸이며 금강 같은 몸이며 더러운 것을 먹지 않는 몸이니, 이것이 바로 법신이니라. 항상 이렇게 보도록 할 것이니라.”

가섭보살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저희 범부의 품성으로는 능히 볼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만약 마땅히 여래가 열반에 드신다면 이는 바로 깨뜨려지는 몸이요 티끌 같은 몸이요 더러운 것을 먹는 몸이기 때문입니다. 만약 마땅히 여래가 길이 열반하시지 않는다면 응당 따라서 평등관을 닦을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가섭에게 말씀하셨다.

선남자야, 내 몸이 세상 사람과 같아 위태하고 취약하여 파괴되거나 긴 밤의 오랜 세월을 생사에 윤회한다고 하지 말라. 여래의 몸은 깨뜨려지지 않는 몸이며, 세상 사람의 몸이 아니며, 천상 사람의 몸이 아니며, 더러운 것을 먹는 몸이 아니며, 몸이 아닌 몸이니라. 또한 생겨나지 아니하며, 소멸하지 아니하며, 모여 일어나지 아니하며, 유전하지 아니하여 가장자리가 없으며, 족함이 없으며, 지혜도 아니요 행도 아니라 본성이 청정할 뿐이니라. 있는 바도 없으며, 받는 바도 없으며, 오고 감도 없으며, 머무르지 아니하고 움직이지 아니하며, 맛보지 못하며, 접촉하지 못하며, 인식도 없고 생각도 없고 동등함도 없고 위도 없으며, ()가 아니며 취와 취가 길이 끊어졌으되 아주 없는 법도 아니며, 일도 아니고 실제도 아니며, 깨달음도 아니고 생각도 아니며, 비로소 지음도 아니고 마침내 이룸도 아니며, 건립도 아니고 채워짐도 아니며, 방처(方處)도 아니고 사택(舍宅)도 아니며, 그쳐 쉼도 아니고 적정도 아니며, 널리 청정하여 모든 번뇌를 여의었느니라. ()하지도 아니하고 물들지도 아니하며, 다툼과 다툼을 여읜 것도 아니며, 항상 머물되 머묾이 아닌 까닭으로 항복하지 않고 죽지도 않느니라. 법도 아니고 법 아닌 것도 아니며, 밭도 아니고 밭 아닌 것도 아니며, 다할 수 있는 것도 아니며, 비구도 아니고 비구가 아닌 것도 아니며, 명자(名字)를 여의고 찬탄을 여의며, 언설을 여의고 닦고 익힘을 여의며, 생각으로 원함을 여의며, 화합도 아니고 화합하지 않는 것도 아니며, 헤아림[]도 아니고 헤아림이 아닌 것도 아니며, 이른 것도 아니고 이르지 못함도 아니며, 통함도 아니고 걸림도 아

 

 

[62 / 210]

니며, 모양이 모양을 여의었거나 모양과 모양으로 꾸민 것도 아니며, 가진 것도 아니고 있음[]과 있음을 여읨도 아니며, 능히 복밭이 되나 실제로 볼 수 없고 보일 수 없어 여여한 진실일 뿐이니라. 일체 중생을 제도하되 제도한 바가 없으며, 일체 중생을 해탈케 하되 해탈케 한 바가 없으며, 일체 중생을 청정케 하되 청정케 한 바가 없으며, 일체 중생을 덮어 주되 덮어 주는 바가 없으며, 중생을 가르쳐 주되 둘이 없으며, 같은 것이 없고 같은 것이 같은 것도 없으며, 양이 같다거나 허공이 평등하다는 것이 없으며, 처소가 같은 것이 없고 태어남이 같은 것이 없으며, 있는 바가 같음이 없고 같거나 같음을 여읨이 없다. 적멸하되 끊어진 것이 아니며, 행하되 구경에 헤매지 아니하며, 일체를 섭수하여 끊음이 매우 깊고 미묘하니라. 둘이 아닌 가르침을 나타내되 자성을 버리지 아니하며, 이루는 것도 아니고 긴 것도 아니고 짧은 것도 아니며, 5()도 아니고 18()도 아니고 6()도 아니며, 함이 있는 모습도 아니고 함이 없는 곳도 아니며, 키움도 아니고 높음도 아니고 낮음도 아니며, 저장해 쌓음도 아니고 저장해 쌓음이 아닌 것도 아니며, 땅도 아니고 땅 아닌 것도 아니니라. 이와 같은 한량없는 불가사의한 공덕으로 여래의 몸이 되었으니, 아는 자가 없고 보는 자가 없으며, 말하는 자가 없고 논하는 자가 없느니라. 세간이 섭수하는 바가 아니며, ()도 아니고 인이 없는 것도 아니며, 일체의 망상으로 모양을 취하여 열반이라 말하여도 비유가 될 수 없느니라. 이와 같은 한량없는 공덕을 성취한 것을 여래의 몸이라 이름하느니라. 이처럼 가섭아, 여래의 몸 모양은 성문이나 벽지불이 아는 바가 아니니라. 이와 같이 여래의 몸을 성취한 것은 이것이 법신이라 더러운 것을 먹는 몸이 아닌데 어떻게 병이 나고 괴로워하며, 날기와 그릇과 같이 무너지는 일이 있겠는가? 교화를 받는 자를 따라서 늙고 병들고 죽는 것을 나타낼 뿐, 여래 법신은 금강과 같아 무너지지 않느니라. 가섭아, 너는 오늘부터 마땅히 이렇게 알아야 하느니라. 여래의 몸은 더러운 것을 먹는 몸이 아니라, 미묘한 인으로부터 생겨 법신이 되고 금강과 같은 몸이 되고 깨끗하고 두터운 몸이 된 것을 널리 사람들을 위해서 말하고 마땅히 항상 머무는 법이라는 것을 알게 할지니라.”

가섭보살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63 / 210]

세존이시여, 여래께서는 이와 같은 공덕을 갖추었으니, 어찌하여 병들고 죽는 것이 있사오리까? 제가 오늘부터 마땅히 여래의 법신이 항상 머물러 변하여 바꿔지지 않으며, 좋고 수승한 적멸임을 관하여 사람들을 위하여 널리 말하겠습니다. 그러나 세존이시여, 여래의 법신이 금강과 같아서 부서지지 않으나 그 원인이 어떠한지를 알지 못하옵니다.”

바른 법을 보호하여 유지한 공덕이 인연이 되었느니라.”

어떻게 법을 보호하옵니까?”

“5계를 위하지 않으며, 또한 현자의 율행과 위의를 익혀 행하지 않더라도 나쁜 세상[惡世] 가운데서 몸과 목숨을 아끼지 아니하며, 예리한 무기를 가지고 법사와 모든 계를 지키는 자를 막아 보호하는 것이 바로 법을 보호하는 것이니라.”

비구가 저 무기를 가진 사람과 함께 다닌다면 비구라 할 수 없지 않겠습니까?”

아니니라.”

가섭보살이 다시 부처님께 아뢰었다.

비구가 무기를 가진 사람과 함께 다닌다면 이는 머리를 깎은 거사일 뿐입니다.”

가섭아, 그런 말을 하지 말라. 왜냐하면 혼자 한적하게 지내며 두타행(頭陀行)을 수행하는 데에 아홉 가지 법이 있다. 밥을 빌며 욕망을 없애고, 고요히 침묵하며, 선정으로 사유하며, 몸을 관하고, 경행(經行)하며, 또한 남을 위하여 보시와 지계 등 덕행의 업을 닦는 인과를 말하되, 능히 널리 무외(無畏)를 말하지 않으며, 또한 다시 능히 거짓된 나쁜 사람들을 항복시켜 교화하지 아니하면 마땅히 이 사람은 능히 자신을 제도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또한 저 범행을 닦아 지녀 홀로 선하게 하는 이들도 제도하지 못하는 줄 알아야 하느니라. 만약 다시 비구가 두타법을 행하고 겸하여 무외를 얻으려면 널리 9()의 수다라(修多羅)와 기야(祇夜)와 수기(授記)와 가타(伽陀)와 인연(因緣)과 여시어(如是語)와 본생(本生)과 방광(方廣)과 미증유(未曾有)를 말해야 하나니, 중생을 교화하여 스스로 제도하고 저들을 제도하는 것이니라. 또 사람들을 위하여 경전의 중요한 구절을 말해야 하나니, 아무

 

 

[64 / 210]

경에 말하기를 노비와 소축생 및 법에 맞지 않는 물건을 쌓지 말라. 만약 쌓는 자는 출가법이 아니니, 누구든지 율제(律制)를 범하고 도를 파하면 쫓아낸다. 여러 계를 범한 자들이 이 말을 듣고 무리를 지어 성을 내어 저 법사를 해치면 그가 비록 목숨은 마쳤으나 오히려 능히 스스로를 제도하고 또한 능히 저들을 제도한 것이니라. 이렇기 때문에 가섭아, 여러 우바새들, 저 왕이나 대신들이 마땅히 법을 보호하여 유지해야 하며, 또한 마땅히 머리 깎은 거사들을 항복시켜야 하느니라. 또 가섭아, 과거 오랜 아승기겁 때에 세상에 부처님이 계셨으니 이름이 난제발단(難提跋檀) 여래응공등정각이었다. 세상에 출현하여 항상 이 구이성(拘夷城)에 머물러 계셨느니라. 그때 이 세계가 넓고 깨끗하여 마치 서방 극락국토와 같았다. 여러 중생들이 모두 다 편안하고 즐거웠으며 배고프거나 목마른 생각이 없는 순수한 보살들이었다. 저 부처님이 세상에 계신 지 한량없는 억 겁이 되어 열반에 드셨는데 남기신 법이 세상에 머물기를 또한 한량없는 억 겁이었느니라. 이와 같이 되다가 불법이 멸하지 않은 40여 년 전에 불도달다(佛度達多)라는 비구가 있었다. 세간에 출현하여 대중 권속들이 앞뒤에 에워싸고 무외를 성취하여 법을 말했는데 9부의 경으로써 여러 비구들에게 가르쳐 말하기를 아무 경에 말하기를 노비와 축생 및 법에 맞지 않는 물건을 쌓거나 기르지 말라고 하자, 계를 범한 자들이 문득 성을 내어 무리를 지어 서로 도와 법사를 해치고자 하였다. 그때 그 나라 국왕인 파가달다(婆伽達多)가 저들 악인들이 법사를 해치려 한다는 것을 듣고 법을 보호하기 위해서 곧 예리한 무기를 가지고 함께 싸워 악인들을 꺾어 없앴다. 왕이 몸에 상처를 입고 법사가 있는 곳에 가자 법사가 왕을 위하여 호법의 공덕을 말하였다. 왕이 법을 듣고 나자마자 문득 목숨을 마쳐 아촉불국에 태어났다. 때에 왕의 권속들과 함께 법을 보호한 자들도 목숨을 마치고 차례로 모두 아촉불국에 가 태어나고 발심하여 기뻐한 자들은 모두 보리를 이루었다. 불도달다도 목숨을 마치고는 또한 저 나라에 태어나 아촉부처님의 첫째 제자가 되었고 파가달다왕은 두 번째 제자가 되었느니라.”

부처님께서 가섭에게 말씀하셨다.

그때의 국왕이 어찌 다른 사람이었겠느냐? 바로 나였느니라. 그때의 법

 

 

[65 / 210]

사는 바로 가섭불이셨다. 가섭아, 마땅히 알라. 바른 법을 보호하고 유지한 공덕은 한량이 없느니라. 내가 본래 몸과 목숨을 아끼지 않고 바른 법을 보호한 까닭으로 이 금강과 같은 부서지지 않는 법신을 얻었느니라.”

가섭보살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의 말씀과 같이 여래의 법신이 진실로 항상 머물러 마멸되지 않는 법이라면 제 뜻에 진실로 마치 돌에 형상을 그린 것 같다고 믿겠습니다.”

부처님께서 가섭에게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선남자여, 만약 비구비구니우바새우바이들은 마땅히 부지런히 방편으로 바른 법을 보호해 유지시킬 것이며, 또한 마땅히 널리 법을 보호하는 과보를 말할 것이니라. 또 가섭이여, 무릇 법사가 되어 청정한 계율을 지니는 자를 항상 스스로 보호하고 스스로 막는 도구가 없다 하여 그 거동을 업신여기지 말라. 만약 우바새가 5계를 받지 않고 대승을 배워 법을 보호하기 위한 까닭으로 무기와 작대기를 가진 자는 마땅히 이들을 의지하여 반려를 삼아야 하느니라.”

가섭보살이 다시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께서 이미 작대기를 가지는 것은 계율에 맞는 위의가 아니라고 하시지 않았습니까?”

부처님께서 가섭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열반에 든 후 혼탁한 세상 가운데 곡식이 귀하고 질병이 전염됨을 인하여 거짓 형상으로 이양(利養)을 추구하는 무리가 수없이 많을 것이니, 그때 어떤 법사가 계율을 지니고 위의를 갖추어 저들을 쫓아내려다 해치거나 죽이는 일이 있다. 이런 일을 당했을 때 계를 지닌 법사가 여러 성읍(城邑)이나 험난한 광야를 다니면, 내가 저 국왕과 대신과 야인(野人)과 거사와 전타라(旃陀羅)들에게 허락하노니, 갖춘 계를 받지 않아도 능히 법을 보호한 자는 반려를 삼을 수 있느니라. 저 여러 사람들이 비록 계를 받지 않았으나 법을 보호한 공덕의 과보가 한량없어 계를 받은 자보다 나을 것이다. 그 법사는 계행을 받들어 지니고 위의를 청정히 하여 깊이 대승을 좋아하고 사람들을 위하여 널리 말했으므로 능히 향과 기름과 번()과 꽃 등의 공양구로서 여러 국왕대신장자와 더불어 서로 바치더라도 사문의 법행(法行)

 

 

[66 / 210]

을 훼손하여 잃지 아니한 것이니, 이를 법사라 하느니라. 계를 지니는 자는 스스로 몸에 진실한 법을 거두어 지니기를 마치 큰 바다와 같이 해야 하나니, 위의를 갖추는 것을 계를 지닌다 하느니라. 만약 다시 계를 지니고 쾌락을 좋아하지 않으며, 명예를 기뻐하지 아니하고 이양을 싫어하며, 항상 사람들을 위하여 말하기를 욕망을 줄이고 만족할 줄 알라고만 하면 이와 같은 등은 자기의 이익과 손해에 견주어 권속을 줄이는 것이라, 즐거운 것이 아니며 법사라 이름하지도 못하느니라. 자기의 무리에게 싫어하는 생각을 일으키며 스스로 권속을 부수는 짓이라, 또한 부수는 승려라 이름하느니라. 승려에는 세 종류가 있으니, 계를 범한 승려[犯戒僧]와 어리석은 승려[童蒙僧]와 청정한 승려[淸淨僧]이니라. 세 종류 가운데 계를 범한 승려와 어리석은 승려는 깨뜨릴 수 있으나 청정한 승려는 깨뜨리지 못하느니라. 계를 범한 승려란 어리석은 범부가 계를 범한 자를 따라 서로 살피지 아니하고 혼탁을 탐하므로 함께 어울리니, 이를 계를 범한 승려라 하느니라. 바로 자신의 몸으로만 능히 계를 지니는 자는 또한 계를 범한 축이 되나니, 이러한 승려는 응당 행하지 않으면서도 행하느니라. 만약 능히 이런 법답지 못한 자를 교화하면 이를 이름하여 법사라 하느니라. 어리석은 승려는 쓸데없는 일을 익혀 행하며 근기가 둔하고 어리석어 설사 이양을 얻어도 스스로 공양하고 권속들을 각각 닦게 하여 어울려 화합하지 못하니 자자(自恣)하고 포살(布薩)할 적에 계를 범한 자와 더불어 같이하지 못하니, 만약 능히 이 어리석고 법답지 못한 이를 교화하면 법사라 하느니라. 법답게 계율을 지키는 승려는 이와 같은 승려 무리의 마군들이 백천억이라도 능히 깨뜨리지 못하느니라. 만약 보살인 승려가 성품이 청정하면 저 두 종류의 승려의 스승이며 계율을 범한 이에게 계율을 지니는 스승이 되느니라. 잘 교화하되 때를 알며 계율의 무거운 것과 가벼운 것을 알며, 계율이 아닌 것도 끊지 않고 또한 계율에 타당한 것도 끊지 않아야 바로 법다운 계율을 지닌 자이니라. 어떤 것이 잘 교화하며 때를 아는 것인가? 교화 대상자가 혹 보살이거나 혹 아이거나 보살이 가르치는 것은 법을 보호하기 때문이며, 또한 때와 때 아님과 남고 남음이 없음과 열고 제지함을 관찰하지 아니하고 그 응할 바를 따라서 마을의 집 사이를 마음대로 다닐 적에도 법을 보호하는 마음 때문에 어겨 범하는 바가 없으

 

 

[67 / 210]

, 오직 기생이나 과부, 음녀와 여러 동녀의 집은 제외되느니라. 배우는 성문은 그곳을 다니지 못하나 나머지 모든 곳에 법을 보호하는 보살은 종일 두루 왕래하여도 허물이 없으니, 이것을 법사가 때를 알아 교화한다 하느니라. 계율의 무거움을 안다는 것은 만약 여래께서 제정한 계율의 처음 일어난 사례를 보고 가벼이 업신여기는 마음으로 범하거나 네 가지 중대한 계율을 범하면 출가가 아니라고 하는 것이 무거움을 아는 것이니라. 가벼움을 안다는 것은 만약 비구가 하나하나 연기에서 범한 가벼운 계를 보고 마음에 중요하게 여기지 않고 혹 스스로 생각하기를 여래의 계와 같다 하여 범한 일에 만족하지 않는 것이 가벼움을 아는 것이니라. 끊지 않고 남겨둔 율이라는 것은 만약 노비 등 여러 깨끗하지 못한 물건을 쌓아 율에 남겨 두어 응당 결단하지 아니하고 항상 계를 범한 자와 더불어 다투지 않으려는 것을 옳은 율이 아니라 결단하지 않는 것이라 하느니라. 타당하다고 결단하지 않음은 비록 계율이 아니나 다른 경전 가운데서 계율과 같다고 말한 것은 이 또한 율이라 타당하다고 결단하지 않는 것이니라. 언설만 따르는 자는 글을 지켜 한 글자도 해석하지 못하나니, 만약 능히 해석하는 자는 삼세 모든 부처님이 말씀한 경전 가운데에서 마음에 무외(無畏)를 얻으리라. 이와 같이 부처님의 가르침은 깊고 넓으며 한량없어 능히 보호해 가지는 자는 여래 법왕의 헤아릴 수 없는 것을 성취함에 이르리라.”

이에 가섭보살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그러하옵니다. 세존이시여, 여래 법왕은 생각이나 말로 하지 못하나이다. 여래의 항상 머물러 변해 바꿔지지 않는 법을 제가 마땅히 받들어 지녀 널리 사람들을 위하여 말하겠습니다.”

부처님께서 가섭에게 말씀하셨다.

훌륭하고 훌륭하도다. 가섭아, 금강과 같이 깨뜨려지지 않는 법신을 받들어 지니겠다니. 평등하게 여래 몸을 관찰하는 것을 배우려 하는 자는 마땅히 금강처럼 깨뜨려지지 않는 법을 관찰하는 것을 닦아야 하느니라. 보살마하살로서 이와 같이 닦는 자는 곧 평등하고 위없는 법신을 관찰하게 되리라.”

 

 

 

[68 / 210]

 

7. 수지품(受持品)

 

또 선남자야, 이 매우 깊은 경전을 지니는 공덕을 내가 지금 마땅히 말하리라. 그 어떤 중생으로서 이 경을 들은 자는 세세생생 네 가지 갈래 가운데 떨어지지 아니하고 태어난 곳에서 항상 모든 부처님을 가까이하리라.”

가섭보살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마땅히 이 경을 무엇이라 이름하며 어떻게 받들어 지니오리까?”

부처님께서 가섭에게 말씀하셨다.

이 경은 이름이 대반니원(大般泥洹)이니라. 처음 말이 좋고 가운데 말도 좋고 또한 나중 말도 좋으니라. 좋은 뜻과 좋은 맛이 순일하여 가득하고 깨끗하느니라. 금강보장을 내가 이제 마땅히 말하노니, 선남자야, 염부제의 여덟 개 큰 강의 물이 모두 큰 바다로 들어가 그 물이 다함이 없듯이 대반니원도 또한 그러하니라. 번뇌를 소멸하고 뭇 마군을 항복하여 생사를 등지고 몸을 버리고 떠나므로 이름이 니원이니라. 일체 부처님과 이 묘법이 같아서 다하거나 끝이 없으며, 또 의법(醫法)에 미묘하고 비밀스런 기술이 있는 자를 큰 의원이라 하고 일체 처방하는 약이 다 그 가운데 들어 있는 것처럼, 여래가 말한 미묘하고 비밀스런 법장도 또한 다시 그와 같으니라. 일체 아홉 부()가 모두 이 가운데 들어 있으므로 이름이 대반니원이니, 비유하건대 여름에 밭을 갈아 종자를 뿌리면 항상 수확의 희망이 있는 것과 같으니라. 이미 그 열매를 거두면 온갖 희망이 모두 쉬듯이 수행하는 자도 그러하니라. 일체의 경전에 선정을 닦아 익혀 항상 희망을 가지듯이 이 경을 배우고 나면 속히 해탈을 이루어 삼계(三界)의 유()를 뛰어넘는다. 또 선남자야, 사람이 중병이 들면 제호를 먹고, 다음 여덟 가지 단맛의 약을 먹나니, 그 약이 가장 좋으니라. 이와 같이 중생들이 부처님의 은밀한 가르침에 의혹과 혼란의 병이 있으면, 점차 대승의 경전으로써 교화하고 그렇게 한 뒤에 대반열반의 여덟 가지 맛의 법약을 말할 것이니라. 여덟 가지 맛이라는 것은, 항상 머무르는 법적멸법늙지 않는 것죽지 않는 것청량함막힘없이 통함움직이지 않음쾌락이니라. 이 여덟 가지 맛을 대반니원이라 하느니라.

 

 

[69 / 210]

약 어떤 보살로서 이 대반니원에 머무는 자는 항상 능히 곳곳에 니원을 보여 나타내리니 그러므로 대반니원이라 이름하느니라. 만약 선남자가 대반니원에 열반하고자 하는 자는 마땅히 이렇게 배워야 하느니라. 여래의 항상 머무는 법과 스님도 또한 그러하니라. 그 어떤 선남자선여인이 이 대반니원경을 행하는 자는 마땅히 여래에게 항상 머무는 것을 배워야 하느니라.”

가섭보살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여래의 법신은 생각이나 말로 할 수 없습니다. 말씀하신 묘법도 생각이나 말로 할 수 없으며, 대중 스님들의 공덕도 생각이나 말로 할 수 없으며, 이 경도 생각이나 말로 할 수 없나이다. 제가 오늘부터 모든 중생들의 마음이 딱딱하고 억센 자들을 마땅히 저들을 위해 긴 밤의 나고 죽는 무지의 어둠을 없애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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