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반경

열반경의 세계

통융 2020. 3. 28. 07:13

열반의 세계

열반()이란 말은 산스크리트어 니르바나(nirvana)의 음역으로 니원() 또는 열반나()라고도 쓰며, 멸(), 적멸(), 멸도() 또는 그냥 적()이라고 번역한다. 또 반열반()의 반()은 산스크리트어의 파리(pari)의 음역으로 '완전하다'는 뜻을 가지고 있으며, 원적()이라고 번역한다. 열반은 원래 '불어서 끈다'는 뜻으로, '타오르는 번뇌의 불을 끄고 깨달음의 지혜인 보리를 완성한 경지'를 말한다.

열반하면 우선 떠오르는 것은 그 말이 가지고 있는 의미보다는 석가모니 부처님의 역사상 실제적인 서거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불교의 경전 중에서 부처님의 입멸을 다루고 있는 경전들을 열반경류라고 하는데, 이것은 크게 소승열반경과 대승열반경으로 나눌 수 있다. 소승열반경은 부처님이 입멸한 것을 사건 중심으로 서술하고 있는 데 반해, 대승열반경에서는 그 사건의 철학적·종교적 의미를 강조하고 있다. 즉, 전자는 부처님 입멸 전후에 걸친 부처님의 유행과 발병, 춘다의 공양, 최후의 유훈 그리고 불멸 후의 슬픔과 사리 분배 등을 기술하고 있고 후자는 법신()이 상주한다는 주장을 내세우며 적극적으로 열반을 상락아정()이라고 하여 소승의 소극적인 열반론에 반대하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소승열반경에는 「대반열반경」과 「불반니원경」 그리고 「장아함경」 속에 있는 「유행경」이 속하고 대승열반경에는 「대반니원경」과 「대반열반경」 등이 속한다.

그러면 대승열반경의 대표라고 할 수 있는 담무참의 「대반열반경」을 통해 열반의 세계를 조금이나마 살펴보도록 하자. 먼저 이 경전은 모두 40권 13품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5세기 초에 한역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역자 담무참은 중인도 출신으로 돈황을 거쳐 중국에 와서 역경사업에 참여했다고 한다.

이 「대반열반경」에 보이는 가르침 중 우리가 반드시 기억해두어야 할 것이 세 가지가 있는데, 그 첫째는 부처님은 항상 계신다고 하는 불신상주()의 가르침이다. 이 경전의 제1품인 '수명품()'을 보면 가섭이 부처님이 백 년도 못 되어 세상을 떠나려 함을 슬퍼하자 부처님은 여래의 상주성에 대하여 말한다. 그에 따르면 여래는 원래 출생이니 죽음이니 하는 것을 초월한 존재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여래가 사람의 몸으로 태어난 것은 중생들에게 불법을 가르쳐주기 위해서였고, 지금 이렇게 열반에 들려고 하는 것도 사람의 몸이란 잠깐 있다가 사라지는 물거품과 같이 허망한 것이라는 사실을 보여주기 위해서라고 한다.

두 번째는 열반상락아정()의 가르침인데, 부처님은 처음에는 외도들의 삿된 견해를 물리치기 위해 영원한 것, 즐거운 것, 깨끗한 것 그리고 '나'라고 할 만한 것은 없다고 했지만, 열반에 관해서 설하는 마당에서는 상락아정이 있다고 했다. 그러나 부처님의 입장은 외도들의 견해와 같은 것이 아니다. 그들은 마치 벌레가 나무를 파먹은 자리가 우연히 글자를 이루었다 해도 그 벌레가 글자를 안다고 말할 수 없는 것처럼 비록 상락아정을 말한다 해도 그 참뜻을 알고 있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 부처님이 말하는 상락아정에서 곧 '나'란 일체중생이 가지고 있는 불성을 말하며, 영원한 것은 법신()이며, 즐거움이란 열반 속에 있음이요, 깨끗한 것이란 불도를 닦는 일을 말한다. 또한 열반은 항상적이고 즐겁고 나()이고 깨끗하다는 가르침이기도 하다.

세 번째는 일체중생실유불성()의 가르침으로 모든 중생에게는 불성이 있다는 것이다. '사자후보살품'에 보이는 "일체중생은 모두 불성을 가지고 있지만, 번뇌에 덮여 있는 까닭에 보지 못한다"는 말은 도저히 제도할 수 없는 존재로 알려진 일천제()마저 성불할 수 있다는 열반경만의 독특한 사상을 나타내고 있는 구절이다. 이 한 마디 말로 인간은 인간의 무한한 가능성을 확인할 수 있고, 동시에 끝없는 희망을 가질 수 있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대반열반경」은 모든 중생에게 희망의 경전이라고 할 수 있다.

또 부처님은 '여래성품'에서 불성을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사람들이 자기 자신을 가리켜 '나'라고 할 수 있는 것은 각 사람에게 불성이 있기 때문인데, 만약 이 불성을 제하고 끊임없이 변하는 사람의 몸이나 마음을 가리켜 '나'라고 한다면, 이러한 '나'는 순간적으로만 존재하는 '나'이고 다음 순간에는 이미 다른 '나'가 될 것이므로 '나'라는 말 자체가 무의미하게 된다. 이처럼 종잡을 수 없는 '나'를 영원한 존재로 생각해서 집착하는 것이야말로 온갖 고통의 근원이다. 또 부처님은 누구에게나 불성이 있긴 하지만 사람들은 탐욕과 무지로 인해 깨닫지 못하므로 그들 자신에게 불성이 있다는 사실을 깨우쳐줄 스승과 그것을 키워줄 방법이 있어야 하는데, 그 스승은 바로 여래와 보살이며 그 방법은 불법이라고 역설하고 있다. 부처님과 불법 그리고 보살은 결국 하나로 귀결 되는데, 그것은 마치 사람이 머리와 몸과 사지로 이루어진 것과 같다고 한다.

다음으로 '일체대중소문품'에서 부처님은 자신의 설법에는 조금도 오류가 없으나 수많은 사람을 상대로 한 자신의 설법 가운데는 주어진 사람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있기에 이것을 무작정 다른 사람에게 적용하려 하면 잘못이라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예를 들면 부처님의 말 가운데 "누구나 제 목숨을 사랑하나니"라는 구절이 있는데, 이것은 부처님이 왕사성에 있을 때 사슴 고기를 권했던 사냥꾼들을 위해 살생하는 것은 죄라고 했던 설법에 들어 있는 말로, 그들에 대해서는 옳은 것이었지만 타인을 위해 자신의 생명을 버리는 보살들에게는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부처님은 당신의 설법이 부족하다 어쩌다 말 할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경우를 고려해볼 것을 촉구한다. 다시 말하면 어느 때 어떤 사정에서 누구를 상대로 한 설법인가를 따져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부처님은 '성행품'에서 보살이 사성제를 깨닫고 그에 따라 행동해야 함을 역설한다. 먼저 첫 번째 진리인 고제()를 말하면서, 부처님은 특히 출생이 온갖 고통의 시원이라고 한다. 그것은 사람은 태어났기 때문에 온갖 고통을 당할 뿐 아니라 출생은 필연적으로 죽음을 동반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부처님은 이 대목에서 한 가지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옛날 어떤 집에 남자 한 사람이 살고 있었다. 하루는 미모에 화려한 옷차림을 한 여인이 찾아왔다. 남자가 여인의 이름을 묻자, 그녀는 이렇게 대답했다. "저는 공덕천이라고 합니다. 그것은 제가 이르는 곳마다 재물이 쏟아지기에 붙은 이름입니다." 복이 제발로 굴러들어왔다고 생각한 남자는 황급히 그녀를 맞아들였다. 그런데 잠시 후 또 한 여인이 찾아왔는데, 그녀는 추한 외모에 누더기를 걸치고 있었다. 남자가 또 이름을 묻자, 그 여인은 "저는 암흑이라고 합니다. 그것은 제가 가는 곳마다 그 집이 망하기 때문에 생긴 이름입니다" 하고 대답했다. 그 대답에 깜짝 놀란 주인은 그녀를 칼로 위협하며 당장 사라지라고 했다. 그러나 그 추녀는 조금 전에 이 집에 들어갔던 미인은 자신의 언니이므로 나를 쫓아내면 그녀도 함께 쫓아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남자는 집 안으로 들어가 공덕천에게 그 사실을 확인했더니,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맞아요. 그녀는 내 동생이에요. 우리는 언제나 함께 다니며, 제가 이루어놓은 것은 동생이 다 허물어버리죠. 그러니 나를 사랑하려면 동생도 사랑해야 하고, 나를 공경하려면 동생도 공경해야 하는 것이죠." 그러자 남자는 할 수 없이 두 여자를 모두 쫓아버렸다고 한다.

부처님은 이 이야기에서 공덕천은 출생, 암흑은 죽음 그리고 남자는 보살을 비유한 것이라고 말한다. 이렇게 부처님은 애당초 육체를 가진 생명의 출생 그 자체를 없애버릴 때만이 죽음과 온갖 고통이 사라지게 된다고 한다. 말하자면 끝없이 윤회하는 육체를 가진 생물로 태어날 것이 아니라 육체를 해탈한 법신을 얻어야 온갖 고통과 죽음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보살은 이러한 진리를 깨닫기에 천상에 나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 천상의 수명이 비록 길기는 하지만 거기에 사는 존재들도 결국은 죽음을 면할 수 없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부처님은 집제()를 말하면서 애착을 버릴 것을 비유로 설법하고 있다. 가령 빚진 자가 그 일부를 갚았다고 해도 완전히 갚지 못하면 옥에 갇히듯이 소승의 비구들은 이 세상을 버리면서도 천상에 나기를 바라는 마음이 남아 있기 때문에 번뇌를 완전히 멸했다고 할 수 없다. 또 어떤 사람이 마녀를 아내로 맞아들였더니, 자식을 낳자 다 잡아먹고 결국에는 남편까지 잡아먹고 말았다고 한다. 이처럼 아직 그 마음속에 세상에 대한 애착이 남아 있는 사람은 마녀를 아내로 둔 사람처럼 착한 마음을 다 뺏기고 종국에는 지옥에 떨어지게 된다는 것이다.

계속해서 부처님은 멸제()에 관해 설법한다. 그에 따르면 번뇌가 없어진다는 것은 고통이 없어진다는 것을 의미하며, 고통이 없어진다는 것은 결국 육체를 가진 인간 그 자체가 없어진다는 뜻이 된다. 그것은 육체적 감각이 남아 있는 한 고통은 없어질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부처님은 모든 감각과 분별심이 없어진 고요한 열반 속에서만 즐거움이 있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부처님은 도제()를 말한다. 부처님은 보살이 따라야 할 팔정도와 삼학 등 여러 가지 길이 있지만 이것들은 결국 다 하나의 불도에 포함된다고 한다. 마치 유능한 의원이 환자에 따라 여러 가지 처방을 내리듯이 부처님도 사람에 따라 여러 가지 다른 방법을 일러준다는 것이다. 부처님은 성불한 후 녹야원에서 교진여에게 처음으로 설법한 때로부터 쿠시나가라에서 마지막 설법을 하기까지 그 모든 설법은 중생들을 구제하여 열반으로 이끌려는 하나의 불법을 가르친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리고 부처님은 아득한 옛날 자신이 수행자로 있었던 이야기를 들려준다.

어느 날 제석천왕은 야차의 모습을 하고 수행자를 시험하기 위해 그 앞에서 이런 게송을 읊었다.

"죽고 사는 모든 것이 덧없는 것이니."

이 게송을 들은 수행자는 정신이 번쩍 들어 그 다음 부분을 들려달라고 야차에게 부탁하였고, 그 야차는 지금 배가 고파 말할 수 없으니 사람의 따끈한 피와 고기를 먹어야 부탁을 들어줄 수 있노라고 대답했다. 수행자는 게송의 다음 대목을 들을 수 있다면 자기 몸을 내놓겠노라고 했다. 그러자 야차는 입을 열었다.

"죽고 사는 생각마저 없앤 그 자리에서 고요 속의 즐거움을 홀로 누리리."

수행자는 이 게송을 후세에 전하기 위해 여러 곳에 써놓은 다음, 약속을 지키기 위해 절벽 위로 올라가 야차를 향해 몸을 던졌다. 그때 야차는 본래의 모습인 제석천왕으로 돌아와 수행자를 안전하게 받아 땅에 앉히고 절을 했다고 한다. 이렇게 보살은 깨달음을 얻기 위해서라면 자신의 목숨도 초개처럼 여길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을 자신의 전생담을 통해 역설하고 있는 것이다.

끝으로 '광명변조고귀덕보살품'에서는 열반경을 배우고 실행하는 보람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다.

먼저 열반경을 배우는 첫째 보람은 이 경을 통해 그 전에 몰랐던 것을 알게 되는 데 있다. 곧 누구에게나 불성이 있으며 모든 사람은 성불할 수 있다는 교설을 알게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교설을 알게 되면 온갖 의혹이 없어지고 더욱 지혜롭게 된다고 한다.

둘째는 보살의 신비한 능력을 가지게 된다. 이에 따르면 보통사람은 마음이 괴로우면 몸이 여위고 즐거우면 살찌고 두려우면 떨리고 슬프면 눈물이 나오는 것처럼 몸이 마음의 상태를 따르게 되어 있지만, 보살은 언제나 즐거우면서도 사람들을 위해 눈물을 흘리며, 그 어떤 것도 두렵지 않으나 상대방에게 노여움을 일으키지 않게 하려고 몸을 떤다. 또 보살은 다른 사람들이 볼 수 없는 무수한 불국토를 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모든 것이 '공'이고 모든 이에게 불성이 있다는 깊은 이치를 모두 꿰뚫는 능력이 있다.

셋째는 보살이 열반경을 통해 속된 사랑을 버리고 참된 사랑을 지니게 된다는 것이다. 이에 따르면 보살의 사랑은 색욕에 사로잡혀 있는 남녀의 사랑처럼 속된 사랑이 아니며, 보살은 모든 중생들에게 차별없는 사랑, 사랑한다는 생각마저 초월한 사랑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넷째는 불법을 확고하게 믿게 되어 어떤 풍파에도 흔들리지 않으며 성불해서 모든 중생을 구제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다섯째는 보살이 이 경을 믿고 실행한다면 천인과 사람들의 공경을 받게 되리라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부처님은 열반경을 따르지 않고 외도들을 따르는 것은 황금과 구리, 불사약과 독약을 바꾸는 것처럼 어리석은 일이라고 경계하고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열반의 세계 (한 권으로 읽는 팔만대장경, 2007. 6. 10., 영담, 진현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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