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물서

왕복서7문-8문

통융 2020. 2. 19. 22:21

7(7) 成益頓超(성익돈초)

 

若夫高不可仰(약부고불가앙)이라 則積行菩薩(즉적행보살)曝腮鱗於龍門(폭시린어용문)이요 深不可闚(심불가규)則上德聲聞(즉상덕성문)杜視聽於嘉會(두시청어가회)로다

見聞爲種(견문위종)이라 八難(팔난)超十地之階(초십지지계)하고 解行在躬(해행재궁)이라 一生(일생)圓曠劫之果 (원광겁지과)로다

獅子奮迅(사자분신)衆海頓證於林中(중해돈증어임중)이요 象王迴旋(상왕회선)六千(육천)道成於言下(도성어언하)로다

啟明東廟(계명동묘)하니 智滿不異於初心(지만불이어초심)이요 寄位南求(기위남구)하니 因圓不逾於毛孔(인원불유어모공)이로다

剖微塵之經卷則念念果成(부미진지경권즉염념과성)이요 盡衆生之願門(진중생지원문) 則塵塵行滿(즉진진행만)이로다

 

높아서 가히 우러러보지 못함은 수행을 많이 쌓은 보살도 용문(龍門)에 뛰어오르다가 떨어지는 물고기여라.

깊어서 가히 엿보지 못함은 덕이 높은 성문들도 보고 듣는 것이 아름다운 법회에 막혔도다.

보고 듣는 것이 종자가 됨이라, 팔난(八難)에서도 십지(十地)의 단계를 뛰어넘고

이해와 실천이 일신(一身)에 있음이라, 일생에 광겁의 불과(佛果)를 원만히 이루었도다.

사자가 맹렬한 기세로 일어나는 삼매에 들자 대중들은 서다림에서 몰록 증득하였도다.

큰 코끼리가 몸을 돌림에 육천 비구가 언하에 도를 이루었도다.

복성의 동쪽 대탑묘처에서 열어 밝히니 지혜가 가득함이 초심과 다르지 않고

지위에 의지하여 남쪽으로 법을 구함에 인행(因行)이 원만함이 모공(毛孔)을 넘지 아니했도다.

미세먼지와 같은 경전을 분석함에 순간순간에 불과(佛果)가 이루어지고,

중생의 서원을 다함에 먼지 먼지마다 수행이 가득하도다.


여천무비 대강백 화엄경 왕복서 특강

(2019624-26일 대구 동화사 국제선센타)

 

若夫高不可仰(약부고불가앙)이라 則積行菩薩(즉적행보살)도 

曝腮鱗於龍門(폭시린어용문)이요

높아서 가히 우러러보지 못함은 수행을 많이 쌓은 보살도 용문(龍門)에 

뛰어오르다가 떨어지는 물고기여라.

 

약부고불가앙(若夫高不可仰)이라 즉적행보살(則積行菩薩)도 

폭시린어용문(曝腮鱗於龍門)이요

높아서 가히 우러러보지 못함은 수행을 많이 쌓은 보살도 용문(龍門)에 

뛰어오르다가 떨어지는 물고기여라.

등용문이라는 말이 있잖아요.

등용문의 폭포수를 뛰어올라가야 용이 되는데 용이 되려고 뛰어오르다가 

이무기가 되고 만다.

뛰어오를 때 물고기 뺨에 시린어(腮鱗於) 햇빛만 쏘이고 마는 경우다

쬘 폭()자가 그런 뜻이지요.

밑에 자세한 설명이 나와있지만 높다고 하는 입장에서는 어느 정도 수행이 

많이 된 보살도 어림이 없는 경지가 있다 그런 말입니다.

*

79쪽 중간단락에 한 번 읽겠습니다.

 

여래출현품에 설사 보살이 한량없는 백천만억 나유타 겁 동안 육바라밀을 

행하고 가지가지 보리분법을 닦더라도 만약 이 여래의 부사의한 대덕위 

법문을 듣지 못하거나 혹 듣더라도 믿지 못하고, 이해하지 못하고, 수순하지 

못하고, 들어가지 못하면 능히 진실한 보살이라고 이름할 수 없으니 여래의 

집에 태어날 수 없기 때문이니라. 만약 이 여래의 한량없고 부사의한 

무장무애 지혜 법문을 듣고, 믿고, 이해하고, 수순하고, 깨달아 들어가면 

마땅히 알아라. 이 사람은 여래의 집에 태어나는 것이니라.”라고 하였다.

 

설사 보살이라 하더라도, 오랜 세월동안 육바라밀을 행하고 온갖 수행을 

했다 하더라도 불가사의한 화엄경 법문을 듣지 못할 수도 있으며 설사 

듣는다 하더라도 수순하지 못하게 되고 들어가지 못하게 되는 길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냥 대방광불화엄경을 한 번 읊조리는 것만 가지고도 공덕이 아주 

위대하고 뛰어난 입장이 있고 그 반대의 경우도 있다는 것입니다.




深不可闚(심불가규)則上德聲聞(즉상덕성문)도 

杜視聽於嘉會(두시청어가회)로다

깊어서 가히 엿보지 못함은 덕이 높은 성문들도 보고 듣는 것이 

아름다운 법회에 막혔도다.

 

심불가규(深不可闚)는 즉상덕성문(則上德聲聞)

두시청어가회(杜視聽於嘉會)로다

서울에 가회동이 있어요.

나는 총무원에 근무할 때 살다보니 어떻게 가회동에 살게 되었어

아름다운 모임.

화엄경의 이치가 너무너무 깊어서 가히 엿보지 못함은 덕이 높은 성문들도 

보고 듣는 것이 아름다운 법회에 막혔도다 그랬어요.

*

화엄법회 아 근사한 법회 이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정상회담이 있다는데 

그 소리만 들었지.

자기가 그 회담 장소에 있으면서도 이 회담이 천상천하에 가장 훌륭한 

불보살의 모임이라고 하는 사실을 몰라. 상덕성문(上德聲聞), 상당히 

수행을 많이 했다는 성문들도 그 장소에 참석해 있어. 참석했는데 

여기 있으면서 생각이 딴 데 가 있어.

그러면 인류역사에 최고가는 대학 무슨 대학이지?

나란다 대학.

나란다 대학 분교에 우리가 이렇게 생생히 살아있는 학생으로서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서,

나란다 대학 팔공산 분교에 참석하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거야.

내가 이렇게 가르쳐 주니까 어떻게 생각해 보면 그런 것 같기도 하다하지.

이게 명백한 사실입니다.

나에겐 확연히 가슴에 다가오는데 왜 긴가민가 하고 있어? 그저 내가 

이야기 하니까 야 그런 것 같기도 하고,산천초목을 보니까 

나란다 대학 분교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이거 꿈을 깨야 되나

꿈을 꿔야 되나이러고 있는 거야 지금. 그렇습니다.

*

상덕성문(上德聲聞)도 두시청어가회(杜視聽於嘉會)

불보살들의 정상회담에서

온 우주에 있는 모든 인류를 다 평화롭게 살자고 하는 법회가 이루어 지고 

있다고 하는 사실을

그냥 내용은 모르고.

참 훌륭한 법회가 있다는데 가회 아름다운 법회가 있다고 하는데거기에만 

딱 막혀 있는 거야.

무슨 내용인지 몰라.

참 훌륭한 법회가 있다는데 가회(嘉會) 무슨 내용인지 몰라. 누가 참석했는지

몰라.

그런 경지도 또한 이 화엄경입니다.


見聞爲種(견문위종)이라 八難(팔난)超十地之階(초십지지계)하고

보고 듣는 것이 종자가 됨이라, 팔난(八難)에서도 십지(十地)의 단계를 뛰어넘고

 

견문위종(見聞爲種)이라 팔난(八難)에 초십지지계(超十地之階).

보기만 해도 듣기만 해도 종자가 된다.

여덟 가지 어려움에 처했다 하더라도 그런 상황에 처한 사람이라 하더라도 십지보살의 단계를 뛰어넘는다. 등각 묘각에 이른다 말이야.

*

십지를 뛰어넘어서 등각(等覺) 묘각(妙覺)에까지 이른다 누가? 보통 우리는 말할 것도 없고 지옥(地獄)중생, 아귀(餓鬼)중생, 축생(畜生)중생, 오래 산다는 장수천(長壽天)

장수천은 호화롭게 아주 편안하게 죽을 염려도 없고 병들 염려도 없는 그런 곳에서 사는 사람들은 불교 좋아 안해요. 불교 안해도 잘 먹고 잘 사는데 뭘 불교를 해?

*

그 사람이 불교에 대해서 얼마나 심취하고 깊은 이해가 있는지는 모르지만 오늘 아주 상당한 장수천을 누리는 사람이 49재를 지냈어요.

그런데 불교하고 그 정도의 인연은 됐지만 그 이상은 과연 되었을까? 제대로 불교의 이치를 알까?

화엄경이 불교 안에 있다고 하는 사실을 알기는 할까?

그게 나는 좀 염려스러워요.

벼슬이 높거나 아주 거부장자들은요 돈 관리 하느라고 불교공부할 시간이 없습니다.

여러분들은 돈 없는 게 천만다행이야.

돈 있으면 돈관리 하느라고 여기 안왔어.

돈관리 할 만한 정도 시간에 그렇게 매이고 그런 정도 수준이 아니니까 여기 오는 거야.

이런 것을 청복(淸福)이라고 그래요.

돈이 많아서 돈에 휘둘리고 돈 때문에 형제가 죽을 때까지 재판을 걸고 하는 것은 탁복(濁福)이라. 그야말로 아주 혼탁하기 이를 데 없는, 사람의 정신세계를 흐리게 하는 우리들의 맑은 영혼을 흐리게 하는 탁복이라.

*

우리는 참 돈이 없어서 이렇게 청복을 누리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 큰 절 주지 하나도 없죠?

그거 봐요. 아 그것만 봐도 그냥 확연한 사실이잖아.

조그만한 포교당 하나 가지고 있으니까 그러니까 여기 와서 공부할 수 있는 거지.

본사 주지쯤 되면 여기와서 공부할 자격이 없어. 바빠서도 공부 못해요.

그거 하나만 봐도 안그래요? 장수천이라는 게 그런 것입니다.

그 밑에 다 있습니다.

*

지옥(地獄) 아귀(餓鬼) 축생(畜生) 오래 산다는 장수천(長壽天) 귀머거리와 장님

요즘은 점자경전도 나와서 장님도 어느 정도 경을 읽을 수 있도록 해줬어요.

혜성스님 비구니 스님이 참 천하의 대보살이라.

그런 사람들만 데리고 포교를 하잖아요.

얼마나 보살인지 몰라. 그 사람들이 안타까와서 불법과 인연을 맺어주려고 하는 우리 나라에 그런 스님이 있어.

참 우리가 정상적으로 생각하면 귀머거리와 장님은 불법을 깊이 공부할 인연이 못됩니다.

너무 풍요롭고 풍요롭게 잘 산다는 북울단월(北鬱單月) 아까 장수천에 이 이야기를 했는데 거기서 설명한 바와 같고.

또 세상의 지혜가 너무 똑똑하다는 세지변총(世智辨聰),

뭐 참 날 넘은 사람들이죠.

조금 자기 머리 총명하다고 이렇게 저렇게 꿰어맞춰서 불법을 다 지 나름대로 이리저리 회통을 다 쳐버립니다.

불법 그런 거지 뭐경전 있다 하더라도 서문만 슬쩍 읽어보고 다 읽었다고 하고.

세상 지혜 세상의 꾀만 늘어서 진정으로 용수(龍樹) 마명(馬鳴)이라든지 원효(元曉) 의상(義湘)이라든지 천친(天親) 무착(無著)이라든지 이런 천하의 뛰어난 희대의 천재들 진짜 천재들은 그런 작은 꾀 가지고 불법을 이리저리 해석해 버리고 나는 다 알았다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

진짜 희대의 천재들은요 석가 달마와 같은 그런 천재들이지. 천친 무착 같은 그런 보살들 용수 마명 같은 그런 보살들 아, 우리가 그 이름만 들어도 하늘처럼 보이지 않습니까. 천재가 되려면 그런 천재가 되어야지 세지변총(世智辨聰)이 되어가지고는 아무 쓸모가 없는 거예요.

이건 차라리 머린 둔한 사람이 훨씬 나아

여러분들 머리가 둔해서 이렇게 공부하게 되었으니 그것 또한 얼마나 큰 다행입니까.

*

나는 어려서 출가를 해서 많은 사람들을 봤어요.

머리가 아주 총명한 사람들도 봤어.

그런데 그 팔자가 전부 기구하고 잘 된 사람 하나도 못봤어요. 머리 좋은 거 그거 크게 좋아할 일이 아니예요.

그다음에 불법이전과 불법이후 불전불후(佛前佛後)라고 했는데 내가 불법이라고 했습니다.

지금 우리가 부처님 안계신다 하더라도 역사적인 부처님이죠. 당연히. 불법이 없을 때, 있기 전이나 있은 이후에 우리가 태어났다면 그것도 참 불행한 일입니다. 불법을 모르니까요.

그런데 부처님이 안계신다 하더라도 불법이 이렇게 살아있으니까 얼마나 다행입니까.

그리고 우리가 말세 말세 하는데 원효 의상 이후에 태어났으니까 원효스님 의상스님의 가르침을 우리가 알게 되는 거죠.

용수 마명 이후에 태어났으니까 그들의 가르침을 공부하게 되는 거고. 그리고 상당한 소득이 있어요. 늦게 태어난 것도.

*

전통적으로는 부처님 슬하에 태어나기를 상당히 선호하는데 꼭 그런 것만도 아닙니다.

부처님 당시에 태어났으면 그 정도 수준에서 만날 수 있는 불법밖에 못 만났어.

그런데 그후 천년 이후에 태어나거나 이천 년 이후에 태어나면 그 동안 역사적으로 있었던 모든 가르침을 다 접할 수가 있으니까 그것 또한 다행이야.

잘 생각해 보면 더 큰 다행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한 등등 불법하고는 전혀 인연이 맺어질 수 없는 상황이라 하더라도 이 화엄경을 한 번 보기만 해도 화엄경이라는 소리 듣기만 해도 대방광불화엄경이라는 제목만 한 번 들어도 십지 등각 묘각을 뛰어넘는 도리가 있다.

*

옛날에 사찰에서 보는 경전은 전부 한지로 된 경전이야. 여름 장마철이 지나고 가을이 다가오면 그것을 거풍을 하지요. 한지로 된 경전을 말려가지고 잘 보관하기 위해서 밖에다 죽 이렇게 내놨는데 아무 데나 널 수가 없지요.

탑전에 널어야 제일 깨끗해. 거기는 주로 바닥이 돌로 되어 있고 하니까. 탑전에다가 경을 지고 이고 와서는 죽 이렇게 늘어놓았는데.

아 소가 말이야 풀뜯으러 왔다가 목동이 그만 놓쳐버렸어. 그래 소가 저 혼자 들어왔다가 뭔가 종이가 나불나불하니까 그게 무슨 풀인 줄 알고 지가 뜯어먹을 수 있는 풀인줄 알고.

한지가 바람에 나부끼면 똑같아요. 비슷해. 소 눈에는 그렇죠 뭐.

그래서 코를 휙휙 불면서 콧바람을 쏘이면서 이게 뭐 먹을 것인가 하고 책장을 몇 장 넘겼어. 마침 대방광불화엄경 책을 넘겼어.

그게 지가 넘기고 싶어서 넘겼겠어요. 저절로 콧바람을 쐬다 보니까 그게 책장 몇 장 넘겼는데 아 그런데 그만 그 공덕으로 천상에 태어났다는 것 아닙니까.

이게 틀림없는 사실이예요.

그 정도야. 이 화엄경의 위력이라고 하는 것은.

*

화엄경의 위력이라고 하는 것은 그런 정도입니다.

아까 내가 어떤 장사꾼이 돈벌러 갔다가 황금을 얻게 된 사연 또 소가 화엄경을 몇 장 넘긴 인연으로 천상에 태어났다고 하는 이런 사연들.

여러분들 법문할 때 법문거리 아주 귀에 달콤한 보통 수준의 신도들에게는 너무 좋은 법문거리야.

잘 활용하세요.

이건 방편이 아니라 실법입니다.

절대 방편아니야. 실법이라. 사실이라 그게.


解行在躬(해행재궁)이라 一生(일생)圓曠劫之果 (원광겁지과)로다

이해와 실천이 일신(一身)에 있음이라, 일생에 광겁의 불과(佛果)를 원만히 이루었도다.

  

해행재궁(解行在躬)이라 일생(一生)에 원광겁지과(圓曠劫之果)로다 

이해와 실천이 일신(一身)에 있음이라. 이 한몸에. 일생이라고 했는데 일신에 

있음이라 그랬습니다.

*

일생에 광겁의 불과를 원만히 이루었도다.

보통 아함부 경전에서는 중생으로부터 부처가 되기까지 삼아승지겁이라고 

하는 길고 긴 세월을 거쳐야 된다고 말합니다. 심지어 수다원(須陀洹

사다함(斯陀含) 아나함(阿那含) 아라한(阿羅漢)이 되기까지도 입류(入流

처음에 성인의 무리에 들어와서 일래(一往來) 한 번 천상에 갔다온다

두 번 천상에 갔다와서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다. 이런 식으로 

소승 사과(四果)를 증득하는 데도 그런 세월이 걸립니다. 그리고 부처가 

되기까지는 삼아승지겁이라고 하는 수 많은 세월이 걸리는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언제 그걸 누가 보장합니까?

소승 사과 이야기를요. 죽어서 다시 천상에 갔다고 합시다. 천상에서 다시 

여기 돌아올지 여기와서 다시 공부할 수 있는 인연이 될지 누가 보장합니까.

또 돌아왔다 하더라도 지난 생에 하던 공부를 계속 할 수 있을지 그걸 누가 

보장하느냐고.

말도 되지 않는 소리야. 참 소승 불교야. 그야말로 소승불교야. 그거 누가 

보장하냐고. 죽어서 천상에 갈지. 갔다가 다시 여기 돌아올지. 돌아와서 

공부를 계속 할지.

계속 잘 했다손 치자. 그래서 또 갔다. 제대로 갔을지 아무도 보장못해.

그런데 그런 교설을 펼치고 있습니다.

*

해행재궁(解行在躬)이야. 이 일신(一身)에 있어.

일생에 광겁의 결과를 삼아승지겁의 불과를 원만히 이루어야지, 앉은 

자리에서 성불하고 일어나야지.

지금 우리가 공부하고 있는데 앉은 자리에서 견성 참성품 불성을 보고 

일어나야지.

불성 오전에 다 봤잖아요 우린.

참성품 보고 일어나야지.

언제 다시 앉아가지고 또 새로 공부해서 새로 보고 할 겨를이 어디 

있습니까.

다시 앉을 수 있는 보장을 누가 합니까? 못해요.

일어났다가 다시 앉을 수 있는 인연을 보통 우리가 결심하지 않고는 되기 

어렵다고.

오늘 저녁 여기 강의에 빠질 사람 내가 다 잘 알고 있어요. 그렇습니다

우리 인생사 아무 것도 보장이 안돼 있어요.

*

신념이 있어야 돼. 단단한 원력이 있어야 돼. 그랬을 때

그 원력과 신념이 자기를 지켜줘.

그러기 전에는 이럴까 저럴까 하는 그 마음 가지고는 안됩니다

보장이 안돼요. 모든 일이 다 그렇습니다.

그래서 소승불교에서는 삼아승지겁을 닦아야 된다고 하지만 이 화엄경의 

도리는 앉은 자리에서 성불하고 일어나자 이거야.

일생(一生)에 원광겁지과(圓曠劫之果)

광겁 동안 닦아야 할 불과를 다 이 자리에서 완성하고 일어나자 이거야

완성하게 되어 있다. 원만히 성취되게되어 있다.

그런 자세한 내용은, 아 여기 증거 글을 갖다 놨네

다음 페이지에 셋째줄

화엄경 78권에 있는 선재동자의 수행을 다른 보살들과 비교하여 

찬탄하면서 이렇게 설하였다같이 읽겠습니다.

 

85

 

여러 어지신 이들이여, 다른 보살들은 한량없는 백천만억 나유타 겁을 

지내고 나서야 비로소 능히 보살의 원과 행을 만족하며, 능히 모든 

부처님이 보리에 친근합니다. 이 장자의 아들[선재동자]은 한평생 동안 

능히 부처님 세계를 깨끗이 하고, 능히 중생을 교화하고, 능히 지혜로써 

법계에 깊이 들어가고, 능히 모든 바라밀다를 성취하고, 능히 일체 모든 

행을 넓히고, 능히 모든 큰 서원을 원만하게 하고, 능히 모든 마의 업에서 

뛰어나고, 능히 모든 선지식을 섬기고, 능히 모든 보살의 도를 청정히 하고

능히 보현의 모든 행을 구족하였습니다.”

 

이 보십시오. 여기 증거의 글이 이렇게 딱 명문이 화엄경 78권에 나와 

있습니다.

그냥 저 혼자 하는 소리가 아니예요. 청량스님도 혼자 하시는 말씀이 아니라.

모든 것이 증거로 이렇게 잘 나타나 있습니다.


獅子奮迅(사자분신)衆海頓證於林中(중해돈증어임중)이요

사자가 맹렬한 기세로 일어나는 삼매에 들자 대중들은 서다림에서 몰록 증득하였도다.


오늘 공부는 지난 시간에 제7() 성익돈초(成益頓超)

화엄경을 공부하거나 화엄경과 조금만 인연을 맺어도 심한 경우는 대방광

불화엄경이라고 하는 제목만 한 번 일컬어도 그 이익이 이루 말할 수 없이 

크다.

돈초(頓超) 다른 어떤 경전의 이익이나 다른 기도나 기타 불교 안에 수많은 

수행법이 있는데 그 어떤 수행법보다도 그 이익이 훨씬 뛰어나다 그런 

뜻입니다.

그 어떤 수행, 그 어떤 기도, 그 어떤 참선, 그 어떤 진언보다도 이 화엄경과 

인연을 맺는 것 심한 경우 대방광불화엄경제목 한 번 일컫는 이익으로도 

다른 것 보다는 훨씬 뛰어나다. 보통 뛰어난게 아니다. 게임이 안된다.

이런 표현을 여기서 지금 하고 있는데 어제 두 가지 화엄경의 위력에 대해서 

말씀을 드린 바가 있습니다.

오늘은 86

*

사자분신(獅子奮迅)에 중해(衆海)가 돈증어림중(頓證於林中)이오 그랬습니다.

사자가 맹렬한 기세로 일어나는 삼매에 들자 대중들은 서다림에서 몰록 증득하였도다.

서다림은 석가모니 부처님이 일생동안 무려 24안거를 지냈다고 하는 바로 

기원정사를 혹은 서다림, 기타림 그런 이야기를 하는 곳이죠.

입법계품 한 품이 그곳에서 설해진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화엄경의 이치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고 설해졌기 때문에 또 그것이 제대로 

우리가 이해를 하면 바로 이 순간이 그야말로 2600년 전에 나란다 대학의 

분교라고 하는 말이 틀림없는 사실이고 시간과 공간에 전혀 제약을 받지 

않는 그런 이치가 분명히 있습니다.

 

제가 짧은 상식 가지고 말씀을 드렸는데 우리의 불과 100년 미만의 한 생명

속에 45억년의 지구 역사가 아로새겨져 있을 뿐만 아니라 130억년의 이 

우주의 역사까지도 우리의 백 년 미만의 우리 생명속에 아로새겨져 있다

그건 지금 과학이 전부 증명하고 있는 사실입니다.

저 돌멩이 하나.

마당에 굴러다니는 돌멩이 하나만 분석하더라도 그것을 분석하면 그 속에 

45억년 지구의 역사가 아로새겨져 있다는 사실은 너무나도 명확하게 

지금은 의심의 여지 없이 다 아는 사실입니다.

그러니 어찌 어느 시간이 지금이다 과거다 현재다 미래다 그런 것을 잘라서 

나눠서 이야기 할 수 있겠습니까?

깨달은 사람들은요 그거 그렇게 쉽게 그렇게 잘라서 이야기 하지를 못합니다.

눈에 훤히 보이고 마음에 그렇게 계합이 되는 것을 어찌 그냥 둡니까.

그러니까 그대로 당신 마음에 계합되는 사실을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이 화엄경이 부처님이 깨달음을 성취하시고 삼칠일 안에 설해

졌다 라고 이야기를 해서 최초 화엄 삼칠일이라고 하는데 그때 기원정사가 

어떻게 있었습니까?

아주 단편적인 중생의 소견으로 볼 때는 도저히 그게 이해가 안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화엄의 입장에서는 그게 아무 문제가 되는 게 아니예요.

그래서 삼칠일 안에 설해졌으면서도 수년 뒤에 세워진 기원정사가 이 속에 

등장하는 거고,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모두모두 사무쳐서 자유자재로 

걸림없이 왔다갔다 하는 것입니다.

이런 이치를 우리가 조금만 맛본다면 참 정말 화엄경이 그러한 이치를 밝힌 

것에 불과하지, 화엄경이 있어서 굳이 그런 이야기를 처음, 이야기는 처음

했지만 그러한 이치가 처음 있는 것은 아니예요.

이미 존재하는 이치를 화엄경에서 밝혔을 뿐입니다.

*

그리고 이 기원정사는 너무나도 불자들은 잘 아는 내용이지만 저는 석가모니 

부처님의 그 위신력과 그 덕화와 그 자비와 지혜를 우리는 막연하게 이야기 

하고 있지만 그 감동 사람에게 감동을 주는 그 부처님의 모습을 이야기 할 때 

제일 우리가 이해하기 쉽고 또 남에게 설득하기 좋은 내용이 바로 기원정사 

이야기라는 생각이 듭니다.

왠고하니 아시는 바 대로 기타태자는 급고독 장자와 인연이 되어서 

기원정사를 건립했는데, 기원정사가 세워지기 전에 죽림정사가 먼저 세워져 

있거든요.

죽림정사가 최초 절로 되어 있습니다.

급고독장자가 죽림정사가 있는 마을에 장사하러 갔었잖아요. 그 사람은 아주 

거상이라.

인도에서도 유명한 거상이고 그만치 거부 장자이기도 하고 그런데 거기 

그동네 자주 가.

장사하러 자주 가는데 아주 가까운 친구가 있어.

으레 가면 그 집에서 자고 거기에서 장사도 거래도 하고 그러는데 늘 가면 

이 친구가 버선발로 뛰어나오다 반갑게 맞아들여.

그런데 어느날 한 번 갔는데 도대체 코빼기도 보이지 않는거야.

하인들이 안내를 해서 객실에다 모셔놓고 두 시간이 지나도 안오고 세 시간이 지나도 안오는 거야.

그래 한 네 시간 다섯 시간 쯤 경과한 뒤에사 헐레벌떡 쫓아오는 거야.

급고독 장자는 사람이 아주 자비스럽고 너그럽기는 하지만 아주 속이 크게 

상해 있어요.

이 사람이 평소에 내가 오면 버선발로 뛰어나오다시피 그렇게 상거래 뿐만 

아니라 그만치 흉허물 없이 툭 터놓고 지내는 사이인데도 불구하고 이날은 

세 시간이 지나고 네 시간이 가까이 되니까 그때서야 비로소 객실로 

쫓아오는 거야.

그러니까 급고독 장자가 화가 나서

아 이사람 자네말이야. 평소에는 내한테 대하지 않더니 오늘은 왜 이렇게 

푸대접 하느냐. 하인을 시켜서 객실에 모셔놓고 차 한잔 달랑 내놓고 어떻게 

자네하고 나하고 사이에 그럴 수가 있는가?”

하고 화가 잔뜩 나가지고 그렇게 하니까

야 이사람아 말도 말아. 내가 자네를 그렇게 대할 사람인가? 사유가 있네.”

그 사유가 뭔데?”

내일 말이야 이 세상에서 둘도 없이 위대하신 손님이 제자들을 데리고 

우리집에 와서 공양하기로 되어 있어서 그 위대하신 분이 공양드실 준비를 

내가 손수 해야지 어떻게 그걸 전부 시키기만 하고 내가 감독 안할 수가 

있겠나?”

이렇게 이야기 하는 거예요.

아니 도대체 그 사람이 누군데 나를 그렇게 소홀히 대접하고 그렇게 음식 

준비를 철저히 하고 정성을 들여서 한단 말인가?”

이렇게 되물었어요. 그러니까

말도 말게 내일 기다려 보면 알걸세.”

하고 설명으로는 도저히 안된다는 거예요.

그분의 모습에서 풍기는 덕화와 보기만 해도 느끼는 감동은 뭐라고 설명이 

안된다. 내 짧은 언변으로는 도저히 안된다.”

그렇게 이야기 하고 마는 거예요. 기다려 보면 안다는 거야.

그래서 급고독 장자가 저녁을 먹고 숲을 혼자 이렇게 거닐었어.

그러다가 보니까 무슨 기운엔가 그 기운에 이끌려서 저기 상당한 거리에 

있는 숲속까지 가게 되었어.

그래 가니까 어떤 사람이 조용히 앉아있는데 온 우주가 조용히 가라앉은 

듯한 느낌을 받는 거야.

돌던 지구마저도 멈춰선 듯한 그런 느낌을 받는 거야.

그래 저절로 거기 끌려가서 인사를 나누고 말을 몇 마디 건냈어. 그분이 바로 

부처님이라.

그래서 이 사람 급고독 장자는 그 부처님에게 감동을 받아서

당신이 이 마을에만 머물 것이 아니라 우리 동네에도 와서 머물러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니까

그렇게 초청을 한다면 내가 갈 수 있습니다.”

라고 해서 약속을 받고서 급고독 장자가 그 길로 뛰어간거야 고향으로

자기 시종들이고 말이고 전부 코끼리고 몰고 자지도 않고 뛰어간거야.

얼른 가서 저 부처님, 위대하신 부처님과 부처님의 제자들이 오시기로 

약속을 받았으니까 그 부처님과 제자들이 머물 장소를 빨리 

마련해서 한시바삐 모셔야겠다라는 이러한 마음으로 쫓아왔습니다.

거기서 보기만 해도 감동을 받은거야.

첫째 급고독 장자가 받은 감동 제일감동이지.

*

그다음에 와가지고 부처님이 머물 곳을 물색을 했는데

다시 말해서 절을 지을 곳을 물색을 했는데 제일 좋은 땅이 뭐라고

그 기원정사가 있는.

기타태자의 그나라 태자가 소유하고 있는 태자 앞으로 등기가 되어 있는 

땅이었다, 숲이었어요.

거기는 땅도 좋으려니와 숲이 하도 울창하고 정말 제일 좋은 곳이라.

지금은 터만 남아있고 뭐 이렇게 되어 있지만.

인도 성지 순례를 하다 보면 그 장소가 참 편안해요.

몇날 며칠이고 거기서 금강경을 읽든지 좌선을 하든지 기도를 하든지 거기서 

참으로 여러날 머물고 싶은 마음이 나는 터입니다.

지금은 터만 남아 있어도. 기원정사 터가요.

그래 급고독 장자가 그 터를 찾게된 거야.

찾아 보니까 태자의 소유야.

한나라의 태자의 소유인데 그걸 어떻게 하더라도 매입을 해서 절을 지으려고 

작정을 하고 기타태자를 찾아가서 흥정을 한거죠.

그러니까 태자가 땅투기 하는 사람도 아니고 무엇이 부족해서 땅을 팔겠어요.

급고독 장자 눈에 비쳐 보인 좋은 땅이라면 역시 기타태자 눈에도 좋은 

땅이고 기타태자 눈에 보인 제일 좋은 땅이라면 역시 마찬가지로 모든 

사람의 눈에 똑같이 가장 성스럽고 아주 좋은 숲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어.

*

그래서 팔라고 하니까 안판다고 안판다고 그런데 기어이 팔라고 

아 이 사람은 거부 장자인데 태자이기는 하지만 소홀히 여길 수는 없는 

상대라.

그래서 자꾸 조르니까 안판다고 하니까 왜 자꾸 팔라고 하냐고 하면서 

아 그 땅에다 황금을 깔면 모르겠다고 이렇게 한마디 내뱉은 것 아닙니까

그거 다 잘 아는 사실이죠.

그래?’ 황금 깔면 땅을 판다고 하니까 좋다 말이야. 두말 않겠다

그 때부터 급고독 장자가 있는 재산을 전부 황금으로 바꿔가지고 말에다 

코끼리에다가 소에다가 있는대로 싣고 와가지고 황금을 깔기 시작하지 

않습니까.

인도에 탑, 여러 가지 유물이 남아있는데 탑 같은데 가면 제일 많이 새겨져 

있는 그림이 바로 그 그림 아닙니까.

코끼리나 말에 소에 황금을 싣고 와서 그 기타태자 숲에다가 막 황금을 까는 

조각상, 여행하면 반드시 보셔야 할 곳이고 아마 보셨을 줄 믿습니다만 

그런 조각상이 제일 사람으로 하여금 감동을 하게 하는 거야.

그 이야기 하나가.

수레에다가 황금을 싣고 와가지고 땅에다가 까는, 그 조각상 하나가 

사람으로 하여금 다 감동하게 하고 그것이 아 2600년전에 오셨다 가신 

석가모니 부처님이지만 그 분이 얼마나 위대하다고 하는 사실을 우리들에게 

감동으로 일깨워주는 그런 조각상과 그림입니다.

그 그림 하나면요 부처님 설명 거의 다 다할 수 있어요.

*

그래서 결국은 그 땅을 왜 그렇게 황금까지 싣고 와가지고 깔려고 하느냐?’

그렇게 하니까

아 말하지 말라나는 이세상에 아주 위대한 분을 만났는데 그분을 

여기다가 집을 지어서 모시려고 한다

아니 얼마나 사람이 위대하기에 그렇게 황금까지 깔아가면서 인도땅이요 

참 쌉니다. 엄청 싸요. 땅도 넓고, 한국 신도들이 인도여행을 하면 맨 먼저 

야 이거 땅 넓고 싸다. 이거 사가지고 무슨 투기라도 하면 장사 잘 되겠다

이 생각부터 하는 것 아닙니까. 인도라는 땅이.

그렇게 넓고 값도 싸고 한 땅인데 그렇게 비싸게 사려고 하니까 이 사람도 

꼬치꼬치 물을 것 아닙니까.

그래서 부처님은 이러이러한 분이라서 내가 죽림정사가 있는 마을에 가서 

내 친구 집에서 들은 이야기고 마침 또 그분을 만나 뵙고 나는 무식해서 

별로 깊은 이야기도 나누지 않았는데 그만 그분의 덕화와 그분의 기운에 

매료되고 감동이 되어서 그분을 모시려고 땅을 사려고 한다고 하니까.

나도 당신 말만 듣고 역시 동참하겠다해서 급고독 장자와 기타태자 

기수급고독원(祇樹給孤獨園)이라고 하는 말이 바로 거기에서 생긴 것 

아닙니까.

*

부처님이 얼마나 위대하고 얼마나 덕이 출중한가

우리가 설명을 못하죠.

우리 덕이 있어야 그분의 덕을 설명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무엇으로써 백분의 일이라도 설명할 것인가?

바로 수레에다 황금을 싣고 와서 기타태자 숲에 깔아서 그 땅을 매입해서 

기원정사라고 하는 사찰에 짓고자 하는 그 그림 한장으로 설명을 다 해요.

나는 그 그림을 또 그 사건을 늘 생각을 하면서 2600년전에 살다가 가신 

석가모니 부처님이지만 그분의 덕화가 아 참 정말 사람들로 하여금 그렇게 

크게 감동을 주는 무슨 뭐 설법을 많이 들어서가 아니고 무얼 불교의 이치를 

많이 알아서가 아니고 바로 그냥 친견을 함으로 해서 그 덕화에 그렇게 

감동을 주는 거구나 하는 것을 나는 기원정사 이야기에서 그렇게 느끼고 

그것을 저는 제일 부처님의 위대함을 설명하기 좋은 사례다 이렇게 생각을 

합니다.

*

거기에서 부처님이 제일 오래 계셨고 또 그 절은 물론 죽림정사 이후에 지은 

절이기는 하지만 사리불이 모든 기원정사 사찰을 건립하는데 설계에서 

자재구입 감리 감독 일체를 사리불이 천하에 총명하기로 유명한 인도 

전역에서 인도 사회에서 가장 훌륭한 지성인으로 손꼽히는 사리불이 모든 

공사 감독을 책임지고 했다고 하는 역사의 기록도 있습니다.

지금은 비록 터만 있지만 그 터가 갖고 있는 의미와 유래가 그와 같은 것을 

담고 있습니다.

그게 바로 림중(林中)이라고 하는 것이 뭡니까.

서다림이라고 하고 기원정사 기타림이라고도 하고 하는 그런 곳입니다.

이거 너무나도 잘 아는 진부한 이야기지만 그 이야기 속에 부처님의 

위대함을 우리가 읽을 수 있다 하는 그런 내용입니다.

*

부처님이 사자분신(獅子奮迅)삼매에 듦으로 해서 중해(衆海) 바다같이 많고 

많은 숫자로 이루 다 헤아릴 수 없이 많고 많은 대중들을 전부 부처님 삼매의 

위신력으로 깨달음을 성취했다. 돈증(頓證) 문득 깨달음을 성취했다.

부처님이 삼매에 들었는데 우리가 어떻게 깨달아요? 그게 화엄경의 

위신력입니다.

성익돈초(成益頓超) 이익이 그만치 크다 하는 것입니다.

화엄경의 이익이 그만치 크다 하는 뜻이죠.


象王迴旋(상왕회선)六千(육천)道成於言下(도성어언하)로다

큰 코끼리가 몸을 돌림에 육천 비구가 언하에 도를 이루었도다.


상왕회선(象王廻旋)에 육천(六千)이 도성어언하(道成於言下)로다

큰 코끼리가 몸을 돌림에 육천 비구가 언하에 도를 이루었도다.

사자하면 보통 문수보살을 상징하고 코끼리하면 보현보살을 상징하는데 여기에서는 화엄경 입법계품 61권에 사리불존자가 6천 명의 비구들과 함께 문수보살을 따르려고 하자 문수보살이 마치 큰 코끼리가 천천히 돌아보듯이코끼리는 몸집도 크지만 그 움직임이 느리죠.

느리게 천천히 코끼리가 뒤로 돌아보는 그런 모습으로

보듯이 하여 여러 비구들을 살펴보았다.’그런 이야기입니다.

그후 문수보살은 대승에 나아가는 열 가지 법을 설하고 비구들은 그 법문을 

듣고는 곧바로 큰 이익[]을 얻었다하는 61권에 나오는 내용으로 

표현했습니다.

*

문수보살이 큰 코끼리가 돌아보듯이 했다 하는 거기에 벌써 6천비구가 

도성어언하(道成於言下) 그랬어요.

열가지 내용의 설법을 했는데 거기서 도를 다 이루어 버렸다. 대단하잖아요

화엄경.

우리는 이미 이렇게 화엄경을 오래도록 천착하는 그 인연이 오죽하겠는가

단 우리가 스스로 그것을 깨닫지 못할 뿐이다. 그렇게 이해하면 되겠습니다.

여기에서는 또 한가지 우리가 생각해야 할 점이 있어요.

*

6천명이라고 하는 것은 전부 비구들입니다.

비구는 뭐예요? 화엄경에서나 법화경에서 볼 때 전부 소승입니다.

기껏해야 고집멸도 사성제를 공부하는 성문이고 12인연의 연기법을 

공부하는 연각들이고 그래요.

그들이 6천명이야.

거기 88쪽 중간 단락 한 번 보십시다.

 

이 이야기는 실로 역사적인 순간이다. 6백여 년간의 시비와 갈등으로 얼룩

졌던 세월이 한순간에 깨끗이 녹아 사라지는 순간이다. 대중부불교와 상좌

부불교가 얼마나 많은 시간을 허비하며 시비를 일삼았던가. 소승불교와 대

승불교는 또한 얼마나 오랜 시간을 다투어 왔던가. 그 모든 역사를 뒤로하

고 이와 같은 화해의 순간을 문수사리보살과 사리불존자뿐만 아니라 석가

모니 세존께서도 다같이 증명하여 아실 것이라고 6천 명의 비구들이 이구

동성으로 말하고 있다.

 

바로 여기서 원효스님께서 화엄경의 많은 여러 종류의 뜻이 있는데 그중에

서도 화쟁(和諍) 서로 다른 소견들을 융합해서 갈등을 없애는 그런 부분만을 

딱 찝어서 화쟁론을 썼어요. 화쟁론은 간단해 글도 얼마 안돼요. 그것이 

늘날까지도 빛을 보지 않습니까.

다른 경전에서는 참 대소승의 갈등이 심합니다. 대소승에 대한 주의주장은요 

참 너무 분분합니다. 오늘날까지도 그래요.

그런데 화엄경에서는 뭐라고?

그 소승불교의 대표자들인 6천 비구가 말하자면 전부 깨달음을 성취해서 

화엄의 큰 바다에 동참을 했다 하는 그런 의미를 이 속에 담고 있습니다.

입법계품 서두에 그런 이야기를 담고 있어요.

*

사람이 사는 역사속에는 전부 시시비비와 옳고 그른 것 서로 갈등 원결 이런 

관계가 너무 많지요.

불교에는 유리왕이라고 하는 왕이 석가족을 쳐서 없애는 역사가 있는데 그걸 

어떻게 하더라도 화해를 시키고 불교안에서 원결을 풀고 넘어가야할 

사항입니다.

뒷사람이 누가 하더라도.

금강경을 편찬하고 결집한 보살은 바로 그 점을 금강경안에서 해소하고 

있어요.

그래서 거기 보면 할절신체(割截身體) 마디마디 말하자면 우리 신체를 

잘라서 칼로 베고 잘라서 분해하는 듯한 그런 아픔을 견디면서 그 아픔을 

나는 무아상(無我相) 무인상(無人相) 무중생상(無衆生相

무수자상(無壽者相)이라

그렇게 하면서 나는 거기에 대한 아무 감정이 없었노라 라고 하는 그런 말 

하나로써 부처님 당시때 유리왕과 석가족과의 갈등과 원결관계를 

금강경에서 풀어준 내용입니다.

금강경에 보면 두 가지 이야기가 있죠.

하나는 어떤 왕이 신선을 만나서 인욕보살의 어떤 내용을 이야기 하는 

대목이 있고 또 가리왕의 할절신체라고 하는 대목 그거하고 자세히 보면 

두 가지 예를 들면서 무아상 무인상 무중생상 무수자상 진정한 무아의 

이치는 이렇게 표현되어야 된다. 하는 내용이 거기에 있는데 그 속에 사실은 

가리왕이라고 되어 있죠. 사실은 유리왕입니다. 내용은 유리왕이예요.

석가족의 가비라성을 다 파멸해 버리고 석가족을 다 죽여 버린 바로 그 

유리왕을 거기서는 가리왕이라고 표현했을 뿐입니다. 저는 그렇게 봐요.

금강경에서 유리왕과 석가족과의 원결관계를 그렇게 풀어줬고 그다음에 

법화경에서는 제바달다품이 있잖습니까. 제바달다가 부처님을 여러 번 

살해하려고 노력했던 분입니다.

만고에 우리 불교의 원수가 제바달다입니다

그런데 그 관계를 그대로 두고 갈 겁니까?

그러면 부처님의 교설이 부족한 교설이 되고 맙니다.

그거 어떻게 하더라도 풀어줘야 돼요.

어떻게 하더라도 풀고 넘어가야 할 상황이라. 그런 관계.

부처님 일생의 제일 치욕스럽고 아프고 힘들었던 부분이 그 두 가지입니다.

자기가 천하의 위대한 성인임에도 불구하고 눈앞에서 유리왕이 석가족을 다 

침범해서 살해하고 그래서 가비라 국이 사라져버린 그 사실 하나하고 

자기하고 사촌이라고 하는 제바달다가 속가에 있을 때도 그렇게 경쟁을 

하면서 살았는데 또 출가해서까지 불교의 교단을 빼앗으려고 했던 역사가 

있었지 않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우리 불자들에게는 만고의 원수로 생각하는 이가 바로 

제바달다입니다.

대개 스님들은 싸우다가 심한 욕, 가장 심한 욕을 할 때 

저 제바달다 같은 놈제바달다 정도는 괜찮아요.

조달이 같은 놈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조달이라고 하는 말이 같은 

사람이지만 더 흉측스럽게 들려요. 내가 한 번 들은 바가 있어서 그래.

조달이 같은 새끼이렇게 가요.

그만치 제일 불교도들이 싫어하는 욕이 바로 그 이야기인데 그만치 

제발달다는 불교도의 만고의 원수입니다. 왜냐 우리 석가모니 부처님이 

어느 분인데 그분을 살해하려고 여러 번 시도했으니까 원수 아닙니까.

두고두고 세세생생 원수야.

그런데 그 원결을 어디서 어떻게 풀었느냐?

*

법화경 제바달다 품에서 제바달다 때문에 내가 성불하였고 그러므로 

제바달다는 나의 스승이노라그리고 이 제바달다품 끄트머리에요 

제바달다품을 따로 이야기 하면서 이 품을 읽으면 그 공덕이 무량무변한다’ 

다른 품은 그런 이야기를 안했는데도 제바달다품을 읽으면 공덕이 무량하다 

그렇게 이야기 했습니다.

그 속 뜻이 무엇이겠습니까?

자기를 죽이려고 했던 원수까지도 용서했을 때 그 사람이 얼마나 너그러운 

사람이 되며 얼마나 자비로운 사람이 되며 얼마나 대인(大人) 큰 사람이 

되겠습니까.

그런 의미가 다 그 속에 행간에 다 적혀 있어요. 그걸 읽을 줄 몰라서 

그렇지.

법화경 제바달다품 참 위대한 품입니다.

만고의 원수를 그렇게 거기서 해소시키고 넘어가는 거예요.

부처님 일생 중에 가장 가슴아팠던 두 가지 사건 아닙니까. 이야기가 다른 

데로 조금 번졌는데.

*

그러니까 소승과 대승의 갈등도 여기에서 화엄경에서 이렇게 6천 육천(六千

비구가 도성어언하(道成於言下)라는 말로써 풀고 넘어갔고 더이상 소승과 

대승 싸우지 말란 말이야. 참 소승과 대승의 싸움은 오랫동안 지속되어 왔고 

지금도 지속되고 있습니다.

지금도요 대승불교를 좋아하는 사람은 소승들 남방불교에서 공부하고 온 

사람들하고 말도 섞지 말라. 차라리 기독교인들하고 이야기를 하지 소승불교 

하는 사람하고는 말섞지 말라. 같이 놀지도 마라. 밥도 같이 먹지 마라

이렇게 말합니다. 그거 들어보셨어요 혹시?

유튜브에 보면 그런 것 충분히 들을 수 있습니다.

많이 있어요. 그런 정도예요 사실은.

차라리 기독교 인들하고 놀고 기독교인들하고 이야기 하지 소승불교 하는 

사람하고는 말도 섞지 말고 같이 차도 마시지 마라 이런 정도예요.

그런 표현을 지금 사람도 하는데 과거는 더 말할 것도 없습니다.

오랜세월 동안 피 터지는 싸움이 있었습니다.

그런 것을 화엄경에서는 다 해소하고 넘어가는 거예요. 그런 것을 

해소해야지. 그래야 부처님의 자비지.

, 참 이런 짧은 글속에는 우리가 그 속에 묻혀 있고 드러나지 않는 내용을 

이야기 하기로 하면 끝이 없습니다.

啟明東廟(계명동묘)하니 智滿不異於初心(지만불이어초심)이요

복성의 동쪽 대탑묘처에서 열어 밝히니 지혜가 가득함이 초심과 다르지 않고

 

계명동묘(啓明東廟)에 지만(智滿)이 불이어초심(不異於初心)이요

복성의 동쪽 대탑묘처에서 열어 밝히니 지혜가 가득함이 초심과 

다르지 않다.

이것도 부처님 가르침을 의지하여 큰 이익이 있다는 것을 부연 설명

하는 이야기입니다.

화엄경 제62권에 이때에 문수사리보살이 모든 비구들을 권하여 아뇩다라

삼먁삼보리심을 발하게 하고는, 점점 남방으로 가면서 인간세상을 지나다가 

복성(福城)의 동쪽에 이르러 장엄당사라숲[莊嚴幢娑羅林]에 머물렀습니다

이곳은 옛적에 모든 부처님들이 계시면서 중생을 교화하시던 큰 탑이 있는 

곳이며또한 세존께서도 과거에 보살의 행을 닦으시며한량없이 버리기 

어려운 것을 능히 버리시던 곳이었습니다.”라고 하였다.’

요는 우리가 불교 공부를 왜 하는가?

이러이러한 이익이 있다.

화엄경 공부는 어떤 이익이 있는가?

그 이익을 죽 나열하는 대목입니다.

*

그런 이야기가 사실은 어떤 이치를 설명하는 것 보다 더 많죠.

금강경만 하더라도 금강경을 수지독송하고 위인해설하면 거기에 따르는 

공덕이 어마어마하다 라는 것이 거의 금강경의 한 3분의 2를 차지합니다.

그래 공덕이 많은 줄 알아야 돼요.

그래야 공부를 하려고 하겠지요.

아 공덕이 많다는데, 공덕이 많다는데

*

여러 해 전에 내가 아는 신도가 알라스카에 갔다 왔어요. 자기 딸이 있고 

사위가 거기에서 직업을 가지고 알라스카까지 갔는데 그 딸이 아이를 

낳았어그래 아이를 봐주러 가서 여러달 있다가 왔는데 다녀와서 

법회 때 와서 하는 소리야.

아 스님 이상한 일을 봤어요.”

무슨 일이냐?”

자기가 아이를 봐주다가 어깨가 아프고 목이 좀 아프고 해서 침을 놓으러 

갔는데 침 놓는 사람이 기독교인인데 법화경을 사경하고 있더라는 거야.

아니 기독교 믿는 사람이 왜 법화경을 사경하느냐?”

아 법화경을 사경하면 부자된대요.”

불자가, 이 신도님은 절도 하나 가지고 있어요.

아들도 스님이야그런데 그 정도로 불자야. 선방도 운영하면서, 그런

정도 불자인데 엉뚱하게 알라스카까지 가서 사경을 하면 부자가 된다는 

교화를 받고 온거야.

와가지고 그 말 듣고 열심히 사경하는 거야 이제 또.

참 어느 그물에 걸릴지 몰라 우리가.

그래서 부처님은 그물을 있는 대로 펼쳐놓는 거 아닙니까.

엉뚱하게 거기가서 기독교인에게 교화를 받고 온다니까. 신기한 일 

아닙니까.

이익이 있다고 하는 것을 자꾸 선전해야 돼.

그래 금강경에는 이익이 많다는 이야기가 그렇게 많고. 어떤 경전이든지 

다 그렇습니다.

법화경 같은 데는요 영험록이 법회경 10배 이상 돼요.

열 배가 뭐야 몇 십 배 될 정도로 영험록이 많습니다.

물론 화엄경도 그렇지만. 제일 영험록 많은 것이 법화경입니다.


寄位南求(기위남구)하니 因圓不逾於毛孔(인원불유어모공)이로다

지위에 의지하여 남쪽으로 법을 구함에 인행(因行)이 원만함이 모공(毛孔)을 넘지 아니했도다.

 

기위남구(寄位南求)하니 인원(因圓)이 불유어모공(不踰於毛孔)이로다

지위에 의지하여 남쪽으로 법을 구함에 인행이 원만함이 모공을 넘지 

아니했도다.

이건 선재동자의 이야기인데 계속해서 선재동자 이야기죠.

남쪽으로 남쪽으로 일백 이십 성을 지나가면서 선지식을 친견하고 거기에서 

한 지위 한 지위 52위 지위점차를 다 밟아가고 그 많은 선지식을 만나지 

않습니까?

인원이 불유어모공이라 그랬어요.

일백이십성을 지나면서 오십삼 선지식을 다 친견하지만 뭐라고? 인행이 

원만함이 한 생각 내었을 그 순간을 인행이라고 합니다

원인, 씨앗, 거기에 모공을 넘지 아니했도다. 씨앗하나 속에 이미 저 큰 

소나무, 소나무가 그 씨앗 속에 있어.

솔씨 있잖아요. 솔씨. 조그만해. 솔씨.

솔씨 그거 하나 속에 저 아름드리 소나무, 저 낙락장송이 그 안에 있다고.

*

인행이 원만함이 모공을 넘지 아니했도다.

이런 사례들은 초발심시변성정각 초발심시변정각

발심필경이불별(發心畢竟二不別) 여시이심선심난(如是二心先心難) 그런 

말도 있죠.

발심 그리고 필경 결과 저 솔씨와 솔씨를 심어서 낙락장송이 된 그 소나무 

둘 중에 솔씨가 중요하다 그랬어요.

두 가지 마음, 성불한 그 마음과 발심한 그 마음 그 두 가지 마음이라고 

합시다. 그 마음이 그 마음이지만.

둘로 나누었을 때 그 두 가지 마음 가운데 무엇이 중요하다

발심이 중요하다.

여시이심(如是二心) 이 두가지 마음 가운데 선심(先心발심한 마음이 

중요하다 말이야.

씨앗이 중요해요.

씨앗이 있음으로 해서 저 낙락장송이 존재하게 되니까.

*

서울 가려고 기차를 탔는데 서울에 이르는 것은 표 끊어서 기차 타기만 

하면 거기서 책을 봐도 서울에 실어다

주고. 잠을 자도 실어다 주고, 식사를 해도 실어다 주고가는 것은 서울에 

도착하는 것은 따논당상이야.

모든 이치가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剖微塵之經卷則念念果成(부미진지경권즉염념과성)이요

미세먼지와 같은 경전을 분석함에 순간순간에 불과(佛果)가 이루어지고,

 

부미진지경권(剖微塵之經卷)에 즉념념과성(則念念果成)이요

미세먼지와 같은 경전을 분석함에 순간순간에 불과(佛果)가 이루어지고

그랬습니다.

경전 그 양만 봐도 기겁을 할 정도로 많은 경전이죠.

미세먼지와 같이 많고 많은 경전을 우리가 많이 읽는다고 좋나 어디?

대방광불화엄경 제목만 척 한 번 읽어도 거기서 한순간 한순간에 불과(佛果)

부처의 결과를 이루게 된다. 염념과성(念念果成)이다.

화엄경은 그렇게 삼아승지겁 경과해야 비로소 부처가 된다 하는 그런 이야기 

아니예요.

앉은 자리에서 성불 안하고 언제 일어나서 어디가서 성불할래요?

앉은 자리에서 성불하는 거예요.

성불하는 가르침입니다.

*

탐진치 삼독과 팔만사천 번뇌를 가지고 있는 그 자리에서 그거 하나도 

버리지 아니한 그 순간 그 자리에서 성불하는 거예요.

이미 성불 되어 있는 줄 아는거라.

이게 화엄경 도리라.

그러니까 그 공덕이 얼마나 많습니까?

(p.93)에 화엄경 제51권에 있는 글 다음 페이지 끝까지 있네요. 한 번 같이 

읽겠습니다.

 

예컨대 여기에 크나큰 경책이 있어서

삼천세계와 그 분량이 같지마는

한 작은 티끌 속에 있으며

일체 티끌도 모두 그러해

 

어떤 총명한 사람이 있어

맑은 눈으로 분명히 보고

티끌 쪼개고 경책을 꺼내어

여러 중생을 모두 이익되게 하듯이

 

부처님의 지혜도 그와 같아서

중생들의 마음에 두루 있지만

허망한 생각에 얽힌 바 되어

알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거든

 

여러 부처님 크신 자비로

허망한 생각 없게 하려고

이와 같이 세상에 출현하시어

모든 보살을 이익되게 하도다.”

 

그렇습니다.

모든 티끌 하나하나 속에 큰 경전이 있다.

여러분들 그대로 놔두면요 아주 보잘 것 없고 시시하고 무시해도 좋을 

작은 미세먼지에 불과해 우리는.

그렇지만 그 속에 뭐가 들어 있다고? 큰 경책이 하나 들어있어

큰 경책이 하나 들어있어.

그러한 비유를 들어서 우리 존재의 실상을 이렇게 드러낸 것입니다

이것도 또한 화엄경의 이치에 의해서 볼 때 그것이 가능합니다.

그래서 화엄경은 이익이 많고 위대한 경전이다.

이 세상에 많고 많은 수억만 종류의 책이 있는데 그 중에서 제일 가는 

책은 뭐다?

대방광불화엄경이다. 이런 이치를 담고 있으니까.

문장은 좀 좋습니까?

글은 또 좀 많습니까?

좋은 이치를 그 큰 그릇에다 그렇게 담았으니 이 세상에서 제일 가는 책은

가르침은 대방광불화엄경 이거 우리는 철저히 마음에 새겨서 곤하게 자는 

사람을 깨워서 이 세상에서 제일가는 책이 뭐게? 하고 물어도 바로 

대방광불화엄경 아니면 아니면 화엄경이라고 이렇게 잠결에도 대답할 수 

있어야 돼요.

원효 의상이 그렇게 했으니까. 우리는 둔해서 잘 모르고 아 그 존경하는 원효 

의상스님이 그렇게 사셨었는데. 무조건 원효 의상 스님만 흉내내고 따라가면 

뭐 그건 조금도 잘 못됨이 없다 스스로 이해하고 깨달아서 그렇게 알면 더 

말할 나위 없고 거기까지안되면은 원효 의상만 믿으세요. 그러면 됩니다.


盡衆生之願門(진중생지원문) 則塵塵行滿(즉진진행만)이로다

중생의 서원을 다함에 먼지 먼지마다 수행이 가득하도다.

 

진중생지원문(盡衆生之願門)에 즉진진행만(則塵塵行滿)이로다.

중생의 서원을 다함에 먼지 먼지마다 수행이 가득하도다.

진진행만이로다. 중생의 그 서원 얼마나 많고 큽니까.

*

생명의 본질은요 서원에 있어요. 꿈에 있어요.

기대감에 있어요. 그걸 불교에서는 원력(願力)이라고

그래.

모든 생명은 다 그것 때문에 존재하는 것입니다.

무조건 성장하려고 해요.

무조건 자라려고 하고 무조건 더 나아지려고 하고.

그러니까 수십억 재산가도 더 많이 가지려고 하는 거야.

생명의 원리에서 보면 그건 조금도 잘못이 아니야. 그것을 순리적으로 하고 그렇게만 하면 참 좋은데. 수천억 헤아릴 수 없이 많고 많은 재산을 가진 사람이라도 더 가지려고 하는 것은 절대 잘못이 아니야.

이치에 맞게 도리에 맞게만 하면 그 재산을 취할 줄 알면 그 재산이라는 것이 뭐예요? 도리에 맞는 재산 그러면 아무 이상이 없습니다.

그건 살아있는 생명의 존재원리이기 때문에 그래요.

*

저 소나무 봐요.

저렇게 큰 데도 더 크려고 하잖아요.

몸통도 더 굵어지려고 하는 거라. 죽을 때까지 저럽니다.

몇 백 년이 되어도 저렇게 나아가요.

여러분들 큰 나무를 보십시오.

매해 매년 키가 더 커지고 굵기도 더 자랍니다.

이것은 살아있는 동안 그렇게 사는 거예요.

우리 모두 똑같습니다. 그래야 돼요.

꿈도 없고 희망도 없고 욕심도 없는 사람은 죽은 시체야.

그저 숨만 붙어 있는 죽은 송장과 같아요.

혼불산저사인(魂不散底死人) 혼이 흩어지지 않은 죽은

사람이라. 선문(禪門)에 그런 말도 있죠.

혼이 흩어지지 않은 죽은 사람.

혼은 있는데 죽은 놈이나 똑같애.

그런 욕심도 없고 꿈도 없고 기대감도 없는 사람.

그래 우리는 죽는 순간까지 목숨이 다하는 순간까지

원력으로 충만해 있어야 돼.

원력으로 좋은 꿈, 좋은 욕심 그걸 우리는 원력이라고

하죠. 원력으로 충만해야 돼.

그럼 그 열정과 원력이 다음 생으로 이어지는 거야.

다음 생으로 이어져서 태어나자 마자 말도 못하는 게 말하려고 하고 나부대고 그러는 거야.

영어도 하려고 하고 일어도 하려고 하고 티비 보고 다 흉내내고 그러는 거야.

살아있는 사람이라면 그렇게 살 줄 알아야지.


8(8) 結歎宏遠(결탄굉원)

 

 

眞可謂常恒之妙說(진가위상항지묘설)이며 通方之洪規(통방지홍규)稱性之極談(칭성지극담)이며 一乘之要軌也(일승지요궤야)로다

尋斯玄旨(심사현지)하고 却覽餘經(각람여경)하니 其猶杲日 (기유고일)麗天(여천)奪衆景之耀(탈중경지요)

須彌橫海(수미횡해)落群峰之高(낙군봉지고)로다

 

 

참으로 항상하는 미묘한 설법이며, 시방에 통하는 드넓은 법규며

성품에 칭합하는 지극한 말씀이며, 일승(一乘)의 요긴한 궤범이로다.

이 현묘한 뜻을 찾고 나서 다시 다른 경전을 살펴보니 마치 떠오르는 태양이 하늘에서 빛남에 온갖 빛들이 그 밝음을 다 빼앗긴 것과 같고, 수미산이 바다에 높이 솟음에 수많은 산봉우리들의 높음이 다 떨어져 나간 것과 같도다.

 

  

여천무비 대강백 화엄경 왕복서 특강

(2019624-26일 대구 동화사 국제선센타)

 

8(8) 結歎宏遠(결탄굉원)

크고 넓고 심원함을 맺어서 찬탄하다

 

 

8() 결탄굉원(結歎宏遠) 크고 넓고 심원함을 맺어서 찬탄하다.

화엄경이 크고 넓고 심원하다.

그것을 또 결론적으로 찬탄하는 내용입니다.

 

眞可謂常恒之妙說(진가위상항지묘설)이며 通方之洪規(통방지홍규)

참으로 항상하는 미묘한 설법이며, 시방에 통하는 드넓은 법규며

 

진가위상항지묘설(真可謂常恒之妙說)이며 통방지홍규(通方之洪規)며 그렇습니다.

이 화엄경이란 참으로 항상하는 미묘한 설법이다.

상항(常恒) 우리는 항상이라고 말하지요.

미묘한 설법이다. 묘설이다. 참으로 언제 어디서나

진리의 가르침은요 어떤 지역과 시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서 다 맞는 말이라야 진리입니다.

지역이 다르다고 해서 기후 조건이 다르다고 해서 풍속이 다르다고 해서 변화가 있으면 그것은 크게 진리라고 할 수가 없어요.

특히 우리 계율이 그렇지요.

*

계율이 추운 지방에서는 탁발하러 못다니니까 농사를 짓든지 쌀을 한 번 탁발을 해놓고 한철을 자기가 사는 곳에서 숙식을 해결을 해야 된다.

인도나 태국이나 미얀마나 따뜻한 지방은 매일 가서 탁발해서 해결 할 수 있도록 되어 있어요.

그런데 그 법을 북방에다 적용시키면 그거 되는 거예요?

안돼죠 그건. 그런 것은 방편이야 그냥.

상황 따라서 알아서 해도 돼.

지역과 풍속과 시대에 따라서 변한다.

어쩔 수 없이 이건 변할 수 밖에 없다.

금은보석 지니지 말라. 그렇게 되어 있죠?

지금은 몇천 만원짜리 자가용 몰고 다니는데 어떻게 해?

당연히 몇 천 만원짜리 자가용 타고 몰고 다녀야 되는 거야. 시계도 차고 다녀야지. 시계는 요즘 필요 없을 정도로 그렇게 우리가 풍족하지만. 그렇습니다.

*

그렇게 변하는 것을 가지고 이게 법이니 아니니 진리니 아니니 지켜야 되느니 말아야 되느니 그러한 소소한 일에 매달리고 시간보낼 겨를이 없어요.

상황지묘설(常恒之妙說)이다.

어느 시대 어느 풍속 어느 나라 어느 지역에 가더라도 맞는 이치라야 돼. 적용이 되는 이치라야 돼.

그런데 화엄경은 그런 가르침이다. 야 좋잖아요.

*

통방지홍규(通方之洪規).

시방에 통하는 드넓은 법규다. 그래 어디가도 다 통해야 돼. 수억년 뒤에도 이 화엄경의 가르침은 통해야 돼요.

그게 만약에 경문하고 뭔가 상치된다. ‘뭐가 안맞는데?’ 그러면 화엄경을 푸는 열쇠 드렸지요?

그 열쇠가지고 풀어보면 다 풀리게 되어있어.

*

옛날에 우리 어릴 때 통방학인(通方學人) 남행강사(南行講師) 그런 말이 있어요.

통방학인은 이 강원 저 강원 강원 졸업하고 또 다른 강원에 가서 시침 딱 떼고 나는 지금 막 처음 들어온 사람이다하고 앉아서 처음부터 초심부터 배우는 학인이 있었어. 아주 무서운 학인, 제일 무서운 학인이 통방학인이야.

소견이 좁은 사람은 강원하나 달랑 나왔다고 내가 어느 강원 나왔는데하고는 더 이상 공부 안하는 사람 그건 아주 쓸모 없는 인간이야.

통방학인이 되어야 해.

사실 지금은 전부가 통방학인이지요.

왜냐? 유치원에서 선생 여러 사람 만났지.

초등학교에서도 만났지.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에서 많은 선지식을 만나왔어.

출가해서도 또 불교에 얼마나 많은 선지식이 이 세상에 있습니까? 얼마나 많은 선생이 있습니까?

그거 다 듣고 섭렵하고 공부 해야 돼요.

*

그래 남행강사라는 게 뭐냐?

남쪽으로 남쪽으로 선재동자가 선지식 친견하듯이 그렇게 다니면서 많은 스승을 참배하고 거기에서 배운 사람을 남행강사라고 해요.

어떤 특별한 한 사람에게만 딱 전수받은 사람은 소견이 좁아. 왜냐. 그 사람 법만 알고 있으니까.

그러니까 많은 선지식을 친견해서 강사가 되어야 그 사람이 안목이 넓고 견문이 아주 넓어서 제자들에게 가르치는 것도 넓다 하는 그런 이야기도 있죠.

*


화엄경은 참 상항지묘설(常恒之妙說)이며 통방지홍규(通方之洪規)라 어느 지방에서든지 다 적용이 되는 큰 가르침이라.

性之極談(칭성지극담)이며 一乘之要軌也(일승지요궤야)로다

성품에 칭합하는 지극한 말씀이며, 일승(一乘)의 요긴한 궤범이로다.

 

칭성지극담(稱性之極談)이며 일승지요궤야(一乘之要軌也)로다

성품 우리 본성에 다 칭합하는 지극한 말씀이야.

더 이상 지극할 수가 없어.

전부 우리 마음에 딱딱 마음의 원리에 딱딱 계합하는 추호의 어떤 어긋남도 

없이 딱딱 계합하는 칭성지극담이야.

참 화엄경의 위대함을 이렇게 간단하게

상항지묘설(常恒之妙說)이며 통방지홍규(通方之洪規)

칭성지극담(稱性之極談)이며 일승지요궤야(一乘之要軌也)

일불승 바로 모든 사람, 모든 생명이 그대로 부처다 라고 하는 그런 가르침의 

요긴한 궤범이다 말이야.

일승지요궤야(一乘之要軌也)


尋斯玄旨(심사현지)하고 却覽餘經(각람여경)하니

其猶杲日 (기유고일)麗天(여천)奪衆景之耀(탈중경지요)

이 현묘한 뜻을 찾고 나서 다시 다른 경전을 살펴보니

마치 떠오르는 태양이 하늘에서 빛남에 온갖 빛들이 그 밝음을 다 빼앗긴 

것과 같고,

 

심사현지(尋斯玄旨)하고 각람여경(却覽餘經)하니

이 화엄경의 깊고 깊은 오묘한 뜻을 다 찾아보고 읽어보고 새겨보고 천착해 

보고 탁마해 보고 연구해 보고 그리고 나서 다시 다른 경전 해인사에 있는 

팔만대장경을 낱낱이 다 살펴보니 게임이 되나 안되나?

*

기유고일(其猶杲日)이 여천(麗天)에 탈중경지요(奪衆景之耀)

밝은 태양이 하늘에서 빛나고 있는 그 나머지, 한밤중 해가 안 떴을 때는 

달도 있고 별도 참 많고 초롱초롱 하죠.

그런데 날이 새고 태양이 떠버리면 어떻습니까?

다 그 빛은 사라져 버리죠.

탈중경지요라.

중경의 그 빛남을 다 빼앗아 버린다.

햇빛 속에 다 감추어져 버리잖아요.

여기에 아무리 밝은 전등을 켰다 한들 무슨 그게 무슨 빛이 납니까?

須彌橫海(수미횡해)落群峰之高(낙군봉지고)로다

수미산이 바다에 높이 솟음에 수많은 산봉우리들의 높음이 다 떨어져 나간 

것과 같도다.

 

수미횡해(須彌橫海)에 낙군봉지고(落群峰之高)로다

수미산이 바다에서 우뚝 솟았어.

그러면 어떤 산도 무슨 금강산도 팔공산도 지리산도 백두산도 그 수미산하고 

비교가 됩니까?

낙군봉지고로다. 온갖 높은 산들의 높음도 다 거기에서 무너지고 만다

떨어지고 만다 말이야. 게임이 안된다.

이것을 제가 이야기했다면 그건 진짜 그런가?

저 사람이 화엄경 공부 좀 하더니 화엄경 선전하려고 저러는 거 아닌가

아니예요.

*

청량스님은 참으로 위대한 분입니다.

청량소초가 어렵다는 게 뭐가 어려운지 아세요?

그 속에는 팔만대장경이 다 들어있고. 유교 도교 주역까지 다 들어있습니다.

그래서 까다로와서 나는 청량소초 잘 안봐요.

봐도 아는 것만 내 마음에 드는 것만 취하지,

그거 다 알려고 안합니다.

그런데 요즘 청량소초 가지고 아주 참 씨름하고 있는 사람이 있어요. 아주 

너무 고맙죠.

화엄경은 그런 것이다 말이야.

그러니까 우리는 각람여경 다른 경전 안봐도 좋아요.

이 말만 믿고 아 그저 화엄경 화엄경 해도 그사람 99점이야.

딴 경전 딴 유교 도교서적 서양철학 다 보고 하면 그 사람은 100점이고.

그렇지 않고 그런 것 안보고 화엄경에만 목을 매고 엎어져도 그 사람은 99점 

짜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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